대기업도 막막…내년1월 경기 전망치 5년 만에 최악
트럼프 리스크에 내란사태까지 겹쳐
경기 부진 기간도 2년 10개월째 최장
중소기업들도 “내년만 생각하면 암울”
증권사, 상장사 목표 주가 줄줄이 하향
한국은행 “경기 하방 리스크 커질 듯”
내년 1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 이후 수출 여건이 나빠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국내 정치 불안까지 겹치며 우리 경제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소비 침체로 고통을 겪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뿐 아니라 대기업도 큰 혼란을 겪고 있다. 새해가 코앞에 다가왔으나 경영 계획을 확정하지 못한 기업도 수두룩하다. ‘12.3 내란 사태’는 불확실성을 더 키우면서 기업들은 내년 경기 전망을 극도로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대기업 경기실사지수 4년 9개월 만에 최대 낙폭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가 26일 내놓은 종합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대기업들도 불안감이 크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BSI는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금융업 제외)을 대상으로 조사가 진행된다. 응답 기업 담당자가 현재와 한 달 후 경기 전망을 기술하고 조사원의 질의로 보완하는 방식으로 기초 자료를 모아 지수를 만든다. 기업이 체감하는 경기를 잘 보여주는 지표 중 하나다. BIS가 100보다 높으면 기업들이 경기 전망을 긍정적으로 판단한다는 뜻이고, 100보다 낮으면 부정적으로 본다는 의미다.
한경협이 이날 공개한 종합 BIS 결과는 충격적이다. 내년 1월 BIS 전망치는 이달보다 12.7포인트 하락한 84.6를 기록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본격화했던 2020년 4월 이후 4년 9개월 만에 최대 낙폭이다. 지난 2022년 4월부터 2년 10개월 연속 기준선인 100을 밑돌았는데 이는 1975년 1월 이 조사가 시작된 이래 50년 만에 최장기 연속 부진 기록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느닷없는 비상계엄 선포가 대기업들마저 앞이 깜깜하게 만든 것이다.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대형 폭탄을 떨어뜨린 셈이다.
대기업들은 제조업과 비제조업을 가리지 않고 모두 부진할 것으로 봤다. 제조업의 BSI는 84.2, 비제조업은 84.9로 비슷했다. 제조업 BSI는 지난 3월 100.5를 기록했다가 4월(98.4)부터 10달 연속 기준선을 밑돌고 있다. 지난달 긍정 전망(105.1)으로 돌아섰던 비제조업 BSI도 한 달 만에 20.2포인트 급감했다.
수출, 내수, 투자, 재고…모든 게 최악
제조업 세부 업종 10개 중에서 전자와 통신장비가 105.3으로 유일하게 호조 전망을 보였고 비제조업은 7개 가운데 운수와 창고(103.8) 업종이 100을 넘었다. 나머지 15개 업종은 모두 경기가 부진할 것으로 예상됐다. 조사 부문별로는 내수 88.6, 투자 89.4, 고용 90.0, 수출 90.2, 자금 사정 92.1, 채산성 94.0, 재고 104.9 등 모든 항목에서 부정적으로 전망됐다. 재고는 기준선 100을 넘으면 재고 과잉을 뜻한다.
내수는 2020년 9월(88.0) 이후 52개월 만에, 수출은 2020년 10월(90.2) 이후 51개월 만에 가장 낮았다. 내수와 수출 모두 기록적인 부정 전망을 나타낸 것이다. 투자도 지난해 4월(88.6) 이후 21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한경협은 “미국 트럼프 신정부 등 대외 경영환경 변화에 더해 국내 정치 불확실성이 고조되며 환율 변동성 확대와 내수 부진 장기화 등 기업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소기업 경기 전망지수도 4.5포인트 하락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들의 내년 1월 경기 전망도 암울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 11~18일 중소기업 3071개를 대상으로 조사·분석한 경기 전망 결과를 26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내년 1월 업황 경기 전망지수(SBHI)는 68.1로 이달보다 4.5포인트 하락했다. SBHI 역시 100을 기준으로 이보다 높으면 경기 전망이 좋은 것이고 낮으면 그 반대를 의미한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74.0으로 5.3포인트 떨어졌고 비제조업은 65.5로 4.2포인트 하락했다. 제조업에서는 3개 업종을 제외하고 모두 전월보다 전망이 부정적이었고 비제조업도 대부분의 업종 지수가 하락했다. 항목별로는 수출 외에 내수판매, 영업이익, 자금 사정, 고용 등 모든 분야가 악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내년에 기업들 경영 환경이 나빠질 것이라는 점은 증권사가 상장사들의 목표 주가를 줄줄이 하향하는 추세를 봐도 짐작할 수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20일 기준으로 증권사 3곳 이상이 목표 주가를 제시한 281개 종목 중 지난 9월 말 대비 목표 주가가 하향 조정된 종목은 179개에 달했다. 전체의 63.7%로 10개 상장사 중 6곳 이상의 목표 주가가 하락한 것이다.
국내 상장사 10곳 중 6곳 목표 주가 하향
걱정스러운 대목은 하락률 상위 10개 종목 중 4개가 반도체 관련 기업이라는 사실이다.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 경기가 내년에 좋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2기 출범과 국내 정치 불안이 장기화하면 상장사의 실적 부진은 더 심해질 것이다. 특히 수출 증가율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상장사들의 목표 주가 하향 추세는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행도 25일 발표한 ‘2025년 통화신용정책 운영 방향’ 보고서에서 “경기 하방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물가 상승률은 안정된 흐름을 이어가겠으나 정치 불확실성 증대와 주력 업종의 글로벌 경쟁 심화, 통상환경변화 등 악재가 많다는 점을 이런 판단의 배경으로 꼽았다. 그러면서 한국은행은 “금융 안정 리스크에 유의하면서 경제 상황 변화에 맞춰 추가로 기준금리를 인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