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와 조선이 만나는 곳 '양비론'

탄핵 보도 차이 크지만 '증오정치 프레임' 유사

윤석열도 증오정치 희생양 돼버리는 논리 전개

양비론에서만큼은 서로가 서로에게 '숙주' 역할

2024-12-26     이명재 에디터

‘12.3 내란’ 사태에 대한 한겨레와 조선일보의 보도는 크게 대비되고 있다. 두 신문의 본래의 ‘색깔’이 이번 내란 사태 보도에서만큼은 확연히 구분된다. 그러나 두 신문이 특히 유사한 모습을 보였던 점에서는 아직도 근본적으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바로 ‘양비론’을 편다는 점에서다.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 진단에서 한겨레는 그동안 자주 보여왔던 양비론적인 접근을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 양비론에서만큼은 한겨레는 조선일보의 주장과 크게 다를 게 없는 칼럼들을 내보내고 있다.

두 신문의 25일자에 각각 실린 논설위원들의 칼럼에서 비슷한 논리 전개가 보인다.

한겨레의 이날자 논설위원 칼럼 <나라가 망하는 것은 순간의 일이다>는 조선 망국의 원인으로 고종과 명성왕후 부부의 전횡을 지목한다. 고종과 명성왕후의 실정과 독단이 조선의 멸망의 큰 원인이라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이지만, 이 칼럼은 이를 강조하느라 외세의 입장에 서고 말았다. ‘갑오개혁’의 실패 원인을 당시 주조선 일본공사관의 1등 서기관의 입을 빌어 진단해 조선의 멸망은 자신들의 침략이 아닌 조선에 원인이 있다는 논리로 연결된다. 위험하고 어설픈 논리 전개다. 필자 자신이 의도했건 않았건 간에 일본의 조선 침탈은 불가피한 침략이었다는 결론이 돼버리고 있다.

이 글은 “이래선 나라가 망할 수밖에 없었다”고 단언하는데, 고종의 아관파천을 ‘친위 쿠데타’라고 함부로 단정 짓고는 일본과 러시아가 ‘이런 처참한 광경’을 보면서 “조선은 자립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한다. 일본과 러시아가 조선의 개혁의 좌절에 안타까운 심경이었던 듯, 그래서 자신들의 침략이 불가피했다는 것으로 결론짓고 싶었던 것인가.

여기서 이에 대해 길게 따질 건 아니다. 다만 짚고 싶은 것은 이 필자의 이런 식의 단순화가 지금의 내란 사태에 대한 시각에도 그대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논설위원은 대결적인 정치 문화가 지금의 위기를 부채질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는 ‘정치 검찰’의 무도한 칼질을 비판하는가 싶더니 그로 인해 진보·보수 사이엔 ‘노무현 트라우마’(2009)에서 시작된 ‘상호 증오’의 감정이 뿌리내렸다고 말한다. ‘노무현 트라우마’가 무얼 얘기하려는 것인지 불분명하지만 상호 증오에 원인이 있다고 하고서는 여야 간의 극한대결 질타로 환원되는 한겨레의 정치 보도 패턴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래서 윤석열의 내란 도발을 망상이라고 하면서도 ‘내가 살려면 상대를 물리적으로 제거해야 한다’는 판단을 낳은 것은 이 상호 증오였다고, 상호 간의 증오라고, 양쪽이 다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마치 일본과 러시아가 조선 침략이 불가피했다고 결론 짓듯이 윤석열의 내란 도발이 어쩔 수 없었던 일이라고 보는 듯하다. 증오정치에 대해 '윤석열의 증오'를 '상호증오'로, 윤석열을 원인이 아닌 결과로 봄으로써 결과적으로 윤석열을 증오정치의 희생양처럼 만들어버린다.

이 글은 “윤석열에 대한 파면 절차를 조직적으로 마무리 지은 뒤, 개헌을 통해 극한 정치 대립을 완화하고 민의가 한층 더 잘 반영되는 새 국가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마무리하면서 ‘극한 정치대립’을 다시 강조한다. 양비론에서 시작해서 양비론에서 끝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의 같은 날 논설위원 칼럼 <'프레지던트'는 어쩌다 일본어 '大統領'이 됐나>는 윤석열 내란 사태를 ‘한국 대통령제의 비극’으로 보는 논리를 전개한다. “행정 권력과 입법 권력이 불화를 일으켰을 때 발휘됐던 정치와 타협의 지혜도 이젠 소진됐다. 양극단 지지층만 노리는 유튜브 알고리즘이 민주주의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다”고 비판한다. 윤석열 내란을 양극단 지지층의 문제로 지적하고 ‘유효기간이 지난 대통령제’의 문제로 연결한다. 윤석열의 문제를 양측의 문제로, 제도의 문제로 둔갑시킨다. 

그리고는 어김 없이 이 신문의 공식과도 같은 민주당 비판으로 향한다. 대통령제 유효기간 상실 주장은 ‘권력 8부 능선에 선 듯한 민주당’에는 ‘씨알도 안 먹힐 소리’라는 것이다. 나아가 앞으로 예상되는 ‘민주당 출신 대통령’에 대해 “그렇게 권력을 잡더라도 5년 내내 ‘범죄자 대통령’이라는 꼬리표로 나라가 두 쪽 나고, 5년 뒤 전임자들처럼 처형·추방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고 극언을 퍼붓는다. 이 글은 “일본이 166년 전 급조한 대통령이라는 말의 늪에 빠져 민주정과 봉건왕조 사이에서 우리만 허우적거리고 있다”고 하지만 필자 자신이야말로 스스로 설정한 전제와 결론 사이에서 허우적거린다.

한겨레는 이렇게 양비론과 혐오정치 비판을 고리로 조선일보와 만나고 있다. 그같은 양비론적인 태도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한겨레 자신의 지면을 통해서도 나오고 있다.

위의 논설위원 칼럼이 실린 25일자 미디어 전망대 칼럼 <‘계엄도 탄핵도 잘못’ 양비론 언론, 시민 단죄 못 피한다>가 이를 지적하고 있다.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표결을 놓고 여야의 의견이 갈리고 여의도의 탄핵 촉구 집회에 맞서 광화문에서도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리자, 일부 언론에선 객관과 중립을 내세워 정쟁으로 몰고 가는 고질병이 재발한 것이다.”

이 비평은 “아직은 언론이 양비론 뒤에 숨거나 뒷짐 지고 훈계할 때가 아니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이른 데는 언론의 책임도 크다”고 비판하고 있다.

물론 한겨레로서는 자신에 대해 조선일보와의 유사성을 지적하는 게 과도한 비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개별적인 사안들에 대한 보도에서의 큰 차이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내란의 원인에 대해 대결과 혐오·증오 정치로 일반화하는 것에서는 조선일보의 양비론 프레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6일자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1면에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특검법과 헌법재판관 임명을 하지 않기로 한 것에 대해 ‘거야의 데드라인’이라고 제목을 달고 있다. ‘거야’라는 표현으로 부당한 요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국민일보는 “법 기술 뒤에 숨은 정치권… 정권 수습은 뒷전”이라고 해 양비론을 펴고 있다.

이렇게 양비론은 매체들 간에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며 서로가 서로를 끌어주고 있다. 한겨레도 그 양비론 대열 속에서 양비론의 심화에 한몫하고 있는 것이다.  

한겨레의 24일자에 실린 저널리즘책무실장의 칼럼은 “윤석열을 망상의 세계로 이끈 것, 그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극우 유튜브”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 칼럼은 유튜브를 ‘숙주’ 삼아 허위 조작 정보와 음모론이 독버섯처럼 퍼지는데도 기성 언론은 ‘무시하는 게 상책’이라는 태도로 일관해왔다면서 이에 맞설 가장 강력한 해독제는 팩트체크이며 이런 일은 취재 전문성과 저널리즘 규범을 지닌 기성 언론이 응당 짊어져야 할 책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 칼럼이 놓치고 있는 것은 사실은 기성 언론이야말로 유튜브의 숙주라는 것이다. 기성 언론과 극우 유튜브는 많은 경우 서로가 서로를 강화하며 서로의 내용을 채워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양비론에서만큼은 한겨레도 조선일보, 다른 매체들에 대해 '숙주'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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