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보다 더 밝은 '응원봉' 세대가 나타났다
덩실덩실 춤추며 어른들을 한덩어리로 만들어
그들은 그렇게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구나
신선 발랄한 이름 깃발을 들고 나온 MZ세대
윤석열과 조선일보가 그들을 집회로 불러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을 써도 될지 모르겠다. 대통령과 그 아내의 무도함으로 온 나라가 난장판이 되었지만 다른 희망을 보았다. 참을 수 없는 분노에 얼굴 붉히는 어른들을 웃게 해주며 그들이 나타났다.
마음이야 다를 리 없겠지만 그들의 몸짓은 달랐다. 그것도 엄청나게. 그 다름이 어른들을 흔들어 한 덩어리로 만들었다. 그 한 덩어리가 거대한 산이 되어 끝내 윤석열과 그 아내 그리고 내란 음모 세력을 막아섰다.
마침내 그들이 돌아왔다. 돌아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지 않고 덩실덩실 춤을 춰댔다. 옆 사람이 그 몸짓에 밀려 함께 몸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덩달아 커다란 구름 되어 소나기로 내렸다.
저 아래 알량하게 뿌리도 없이 버티던 자들이 흔적도 없이 휩쓸리는 모습이 처연하다. 탄핵이 가결됐지만 그들은 쉽게 자리를 뜨지 않았다. 오기도 쉽지 않았으니 떠나기도 쉬운 일은 아니었으리라. 그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하염없이 몰려드는 사람들에 밀려 이 자리에 오길 잘했다.
고백하건대 나는 응원봉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촛불이 진화하는 모습을 보아왔기에 무심코 보아 넘겼다. 이미 LED 촛불은 익숙해졌으니 변종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렇게 깊은 뜻을 가진 줄은 짐작도 못 했다. 나중에 들으니 응원봉은 재산 목록으로 꼽혀 케이스에 보관할 만큼 귀하신 물건이란다.
내가 집회에 심취해 있는 그들에게 외람되게도 응원봉 을 만져볼 수 있느냐 묻고 기념사진도 한 장 찍은 무모함은 순전한 무지 덕분이다. 덥석 안겨주며 오히려 행복한 표정을 짓던 그들의 모습은 잊히지 않는다.
그들은 그렇게 성장해 있었고 우리들은 그들을 알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하나 더 알게 됐다. 아이돌 그룹의 팬들 사이에는 야릇한 알력이 존재한단다. 응원봉으로 이른바 커밍아웃을 한 상황에서 서로 어색함이 없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윤석열 탄핵이라는 뜨거움이 야릇함 정도야 쉽게 녹여 버렸다.
시국이 어수선하여 억눌렸던 함성이 어울림으로 끝도 없이 퍼지는 모습을 하염없이 지켜보았다. 이제 저들은 끝장이구나. 그들은 그렇게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구나. ‘나라가 어두우면 집에서 가장 밝은 것을 들고나오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말이 새삼스럽다.
이른바 시위 물품을 준비해 본 사람은 그 일이 생각보다 성가시다는 사실을 안다. 그런 사람들이 귀찮다면서도 깃발을 챙겼다. ‘전국 집에 누워있기 연합’과 그림을 보면 더 쉽게 이해될 ‘와식생활연구회’가 어려운 결단을 했다. ‘강아지발냄새연구회’ ‘전국뒤로미루기연합’ ‘화분안죽이기실천시민연합회’ ‘전국눈사람안아주기운동본부’ ‘사립돌연사박물관’ ‘전국김치싸대기협회’‘전국수족냉증연합’ ‘전국설명충연합회’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 못지않게 신선한 이름들이 많았겠지만 움직일 수 없어 확인하지 못했다. 이조차 눈 밝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전국깃발준비못한사람동호회’도 깃발을 준비했다. 오죽하면!
조선일보는 정치를 멀리하라고 외치는 MZ 노조가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고 했다. 그들이 공정과 상식을 외쳤다니 제대로 부메랑이 된 것이다. 윤석열이 극단적인 방법으로 공정과 상식을 깨부쉈기에 그들이 돌아오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윤석열과 조선일보가 함께 그들을 탄핵 촉구 집회로 불러들였다. 조선일보가 즐겨 쓰는 사필귀정이 아닐 수 없다. 조선일보가 사필귀정이라는 말을 쓸 때마다 그들의 겁 없음에 소름이 끼친다.
조선일보는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교육감 선거권을 주자는 의견에 학교가 정치 선전장이 되리라 호들갑을 떨었다. 당장이라도 나라가 결딴이 날 것처럼, 정작 윤석열이 학생들을 정치꾼으로 만들었다.
부모 손을 잡고 온 아이들이야 그렇지만 스스로 판단해 국회 의사당을 찾은 그들은 건강한 정치인이 되어있었다. 함부로 밀치지 않고 쓰레기도 주워 모으는 사림이 되어 있었다. 누가 부르지 않아도 왔다가 갈 때가 되면 알아서 가는 현명함을 보여줬다. 걱정이랍시고 엉뚱한 한숨을 쉬어대는 조선일보의 시대가 지나갔음을 치열한 몸짓으로 보여주었다.
조선일보가 자위해야 할 대목도 있다. 그들이 금과옥조로 여기고 있는 경쟁이 살아있었다는 얘기다.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경쟁을 하고 있었다. 다만 남을 끌어내리려 하지 않을 따름이다. 남을 함부로 짓밟고 군림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 정도 경쟁이라면 언제라도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상대를 인정하며 좋은 점을 본받아 자신들도 채워나가는 아름다운 경쟁이라야 좋지 아니한가?
아, 잊지 못할 깃발의 함성은 덧붙여야겠다. ‘오늘 하야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 윤석열과 족벌 언론 조선일보 사주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그리하여 다시 조선일보는 폐간만이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