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은 '사법리스크 사건' 재판을 유예해야 한다
조희연‧조국‧이재명…왜 야당 유력 정치인만?
검찰권 남용, 우파의 멸절 정치에 핵심 무기
법절차 악용해 정치활동 봉쇄, 참정권 침해
'법비'들 준동 막기 위해 법원 적극 역할해야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외국에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법이 많다. 예컨대 죽은 고래가 발견되면 어떤 부위는 여왕에게 간다는 식이다. 우리는 입헌군주제도 아니고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겠다. 한편, 배워야 할 법규범과 법현실은 여전히 많다. 우리한테는 낯설지만 민주주의 쟁취와 수호와 강화를 위해 필요하다면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세탁소는 (벽)돌로만 지으라는 조례가 왜 문제가 됐을까
미국에서 19세기 말에 익워 대 홉킨스 사건(Yick Wo v. Hopkins)이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시에서 있었던 일이다. 세탁소는 벽돌이나 돌로 지어진 건물에만 설립하도록 했다. 화재 예방을 위한 목적인데, 뭐가 문제겠는가? 문제는 특정 인종의 세탁소만 타깃으로 했다는 점이다. 당시 300개가 넘는 세탁소 대부분이 목재건물이었고 중국계가 3분의 2 넘게 운영 중이었다. 조례 위반 혐의로 체포된 사람은 당연히 중국인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법의 목적도 필요하고, 법적 절차를 따랐는데, 뭐가 문제냐고? 어디서 많이 들어본 논리 같다. 나치의 학살도 법에 따라 진행되지 않았던가? 미국 대법원은 중국계에 대한 선별기소를 위헌으로 보았다. 헌법적 근거는 평등권이다. 우리는 이런 식의 사고가 낯설 것이다. 미국을 미화할 목적이 아니다. 현재 우리 검찰의 특정 정치세력에 대한 검찰권 남용과 재판, 이른바 사법 리스크 유도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희연, 조국, 이재명, 왜 모두 야당 유력 정치인인가?
조국은 결국 의원직을 잃었다. 얼마전 조희연도 직을 상실했다. 이제는 이재명을 향한다. 아니 벌써 향했다. 너무 집요해서 무서울 정도다. 관련법은 필요하고, 법적 절차대로 진행됐다. 그러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가?
조국 대표에게 적용된 검찰권 행사와 재판은 왜 그 자에게는 적용되지 못하는가? 그 자는 아내의 범죄 혐의에 대한 조사를 막고자 몇 번이고 거부권을 행사했다. 한동훈에게는? 홍준표에게는? 오세훈에게는? 김영환에게는? 털어 먼지 나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왜 야당 유력 정치인만 멸문지화라는 말이 날 정도로 터는 행태가 정당한가?
검찰의 기소독점주의 같은 제도가 설정되었을 때 그 어떤 필요한 근거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현 정권 들어 검찰권의 남용은 우파의 멸절 정치를 자행하는 가장 중요한 무기가 되었다.
털리는 입장에서 각종 입법과 탄핵 등 법적 절차를 통해 방어권을 행사하는 것은 당연하다. 방탄 국회니 방탄 탄핵이니, 프레임으로 우파의 멸절 정치에 적극 동조하는 언론은 즉각 잘못된 기계적 중립을 그만 두어야 한다. 야당이 다른 방어수단이 없어 자구책으로 국회를 인권변호사처럼 활용하고 있는데, 잘못이라고 한다면, 누구를 편드는 것인지 뻔하다.
사법리스크가 야당의 유력 정치인의 대선 출마 자체를 봉쇄하는 목적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점은 명확하다.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으려면, 검찰권의 행사와 재판의 진행이 그 자에게도 그 자의 아내에게도 한동훈에게도 홍준표에게도 오세훈에게도 김영환에게도 동일하게 진행되는 전제가 필요하다.
법절차를 악용한 참정권 침해는 중대한 헌정 침해
검찰권이 평등하게 행사되지 않는데도 법원은 법에 따라 했을 뿐? 그러니 아무리 문제가 없다? 법원이 그 어떤 직접적인 범죄에 가담한 정도까지는 아니기 때문에 아이히만이 나온다면 지나치겠다. 그렇지만 적어도 법원이 결과적으로 유력 야당 후보의 참정권 침해에 동조한 셈이다. 참정권 침해는 중대한 헌정 침해가 되겠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엔 주로 야당 유력 정치인에 대한 가택 연금 같은 무지막지한 참정권 침해가 자행됐다. 눈에 바로 보였기 때문에 다수 국민은 민주화의 길을 걸었고, 6월항쟁 이후 다시 유사한 독재적 행각은 재현되지 않았다. 지금은 주로 법절차를 이용해 야당 유력 정치인의 정치활동을 봉쇄하는 방식이 우파 멸절정치의 주요한 수단이 되었다.
그 자들의 마음은 과거처럼 사법살인까지 자행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이번 계엄난동과 관련하여 속속 드러나는 사실들은 필자의 염려를 지나친 억측이라고 보기 어렵게 만든다. 속속들이 다 밝혀서 철저히 법적 심판을 내려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법절차를 악용한 참정권 침해라는 중대한 헌정 침해를 막기 위해 법원도 결단을 내려야 한다.
헌정 수호를 위한 법원의 역할
벌써 19세기에 있었던, 미국의 익워 대 홉킨스 사건(Yick Wo v. Hopkins)은 법원이 민주주의 수호와 인권 보호와 헌정 침해의 제거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 특정 인종에만 차별적인 입법권(조례 제정)과 행정부의 권한 남용(선별기소)이 자행되자, 법원은 다소 무리해 보이는(?) 법 해석으로 다른 권력을 견제했다. 3권분립이 왜 있는지, 제대로 작동된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잘 보여준 사례다.
다들 알 만한 유명한 사례로는 미란다 원칙이 있다. 이제 반세기가 넘어 웬만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입법으로 명시되기까지 했지만, 당시 미국에는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었다. 극악한 강간범이니 강력하게 처벌할 필요성도 있었다. 그런데, 겨우(?) 변호인 조력권이나 묵비권 같은 것을 고지하지 않았다고, 결국 무죄가 됐다. 실체적으로 강간이 부정된 것도 아닌데, 무죄라니. 법원의 무리한(?) 법 해석은 그 뒤 인권을 증진하고 민주주의를 튼튼히 하며 헌정을 개선하는 기본적인 법원리의 하나가 되었다.
지금 법원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는 명확하다. 개인적으로는 민주주의 쟁취와 수호와 강화에 법원이 동참해야 한다는 요구도 법리상 곤란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특정인의 평등권을 침해하고 권력분립 원칙을 훼손하는 행정부의 권한 남용에 대해서는 법원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은 법리상 당연하다는 점을 돌아보길 바란다. 익워 대 홉킨스 사건은 19세기 사건이다. 지금 21세기 대한민국 법원은 과연 무엇을 해야 하겠는가?
법원은 법비에 동조하지 않아야 한다
신속 재판의 권리를 침해한다? 반대 논리를 대자면 끝이 없다. 신속한 수사와 재판이 기본적인 인권의 내용으로 인정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왕정시대나 독재정권에서 국민을 부당하게 구금하고 정치적으로 억압하는 데 악용됐기 때문이 아닌가?
법적 절차를 악용하여 유력 야당 정치인의 정치활동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은 본질이 같다. 우파의 멸절 정치는 심각한 헌정 유린으로 봐야 한다. 신속 재판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논리를 반론하면 또 어떤 논리가 나올 것인가?
법이 보장하고 있는 모든 제도는 전 세계 각국에서 수백 년에 걸쳐 수많은 사람의 희생을 거쳐 나온 것이다.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마련한 제도를, 사악한 권력자를 제어하기 위해 그토록 어렵게 도입한 절차를, 그 자와 같은 자들이 악용하도록 놔두는 것은 결국 법비들에게 동조하는 법비적 행태다.
사법리스크 사건 재판 유예의 방법
그렇다면, 과연 사법리스크 사건 재판의 유예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미 우리나라 법원의 재판 지연은 법적 관행이다. 소극적인 방법을 선택한다면, 그저 지금까지처럼 재판을 지연하면 된다. 대선이 끝날 때까지 법적 절차가 우파의 멸절 정치에 악용되지 않도록 견제하면 된다.
적극적인 방법을 택한다면, 법원 차원의 선언 정도로도 충분하다. 법적인 근거가 없다고? 안 된다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민주주의와 인권과 헌정을 지키는 일이 아닌가? 법적 근거로 충분하다.
입법부가 할 일은 없을까? 이른바 사법리스크를 유도하여 특정 정치인의 정치활동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경우가 명백한 재판에 대해서는 재판 진행을 중단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을 만들면 된다. 법이 없어도 가능하지만, 법원의 변명을 확실하게 잠재울 수 있게 될 것이다.
사건 당사자가 되는 피의자는 당연히 제기할 수 있고, 국회와 일정 수 이상의 국민도 요청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결정을 상급 법원에서 하게 할지, 헌법재판소가 하게 할지, 제3의 독립기관을 구성할지는 법리를 검토하여 적절한 안을 만들면 될 일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어떻게 되냐고? 법리를 새롭게 만드는 일은 법률가들이 원래 하는 일에 포함되니, 본업에 충실하면 해결되는 문제다. 법학자들의 연구는 또 얼마나 많은가? 평등권과 참정권 등 심각한 헌법 침해를 법원이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 인권을 증진하고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권력분립 본연의 요구를 법원이 어떻게 구현하는지,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