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이 장착된 주권혁명
'탄핵 콘서트'의 열기, 승리는 확정되었다
20대, 촛불집회 주력 되다 “춤추는 민주주의”
눈물이 났다, 너무나 기뻐서
지난 주 국회 본청 앞 계단 앞에서 가진 촛불행동의 촛불문화제부터 20대가 부쩍 늘었다. 시민발언에 등장한 이들의 목소리는 깔끔하고 단호했으며 솔직했다.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 성소수자들의 육성이 모두의 환호와 박수를 이끌어냈다. 일요일(12월 8일) 촛불행동이 주관한 국회의사당 역 5번 출구 공간 촛불문화제에서는 10만에 이르는 집결이 있었고 여기에는 중학생, 고등학생, 오타쿠, 지체 장애인까지 무대에 올라 발언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그건 밀실에 은폐되어 있던 이들의 자기공개이자 광장에서 만들어진 “실존혁명”이었다.
실존과 역사가 만나 “혁명의 본체”를 완성해내고 있다. 우리 모두가 바라던 바다.
기운이 엄청 달랐다. 서로에 대한 연대감, 친밀감, 배려, 그리고 아픔을 지닌 이들에 대한 응원. 유명 스타에게 보내왔던 응원봉의 함성과 갈채가 무명의 동년배 청년들에게 쏟아지는 경이로움이다. 여의도역 안의 장애인 관련법 제정 요청 서명에는 이들이 줄지어 서명하고 있었다. 관련 법제정에 여전히 미적거리는 야당, 특히 민주당은 이 풍경 앞에서 깊이 깊이 반성해야 한다. 미래세대의 인식과 행동은 이미 22세기다.
탄핵콘서트, K-Pop이 장착된 주권혁명
떼창은 기본이다. 중간 중간에 탄핵구호, 체포구호를 자유자재로 그것도 동시에 함께 한다. 처음 듣는 노래도 바로 따라 부르고 후렴 합창은 톤이 높은 함성으로 순식간에 변한다. 시국선언을 한 대학생들이 줄지어 합류하고 모두가 한 덩어리가 되어 탄핵 콘서트를 연출해낸다. 그렇지 않아도 이들 20대는 “탄핵 콘서트”에 가자고 한단다. K-Pop이 장착된 주권혁명이다.
20세기의 촛불에서 이후 대중화된 스마트폰 플래쉬, 그리고 오늘날 이들의 응원봉에 이르는 진화는 디지털 세계에 포위된 우리의 현실을 강력하게 돌파해낸다. 이들은 환호할 준비, 응원할 태세, 뜨거운 반응을 보일 기대감에 충만한 세대다. 집회가 끝났는데도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더 노래를 요구한다. 춤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자칫 폭동(?)마저 일어날 기세다. 여성 정치인의 등장에는 순식간에 무대로 총력집결하는 진풍경을 보인다. 대중스타에게 보이는 열광을 정치의 현장에 쏟아내고 있다.
집회를 마치자, 자기들만 즐기면 안 된다고 운동가, 윗세대의 노래도 틀어달라는 요구까지 한다. 함께 즐기자는 것이다. 누구도 배제되면 안 되다는 것이다. 이게 우리의 “빛나는 청춘”들이다.
촛불부대 구성 완료!
촛불은 처음에는 40대, 50대가 주축이 되어 시작되었다. 60대, 70대 이상은 이들과 함께 든든한 보조부대였다. 그러다가 30대가 등장했지만 20대의 합류는 여전히 미세했다. 이제 10대는 물론이고 20대가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촛불부대의 구성이 이로써 완료되었다. 탄핵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일구는 동력이 확고하게 구비된 것이다.
이는 그저 된 것이 아니다. 지난 2년 반 이상 길거리 투쟁을 꾸준히 해온 촛불시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꾸준한 것이 실체를 만들어낸다. 이들이 버티고 지켜내고 지치지 않고 끌고 온 덕분이다. 수가 줄었네, 제대로 끝까지 가겠나, 등 일종의 야유와 험담도 잘들 이겨냈다.
정확한 정세관과 그에 따른 실천은 핵심이다. 윤석열 탄핵을 가장 먼저 선도했고 계엄에 대한 경고도 가장 먼저했으며 비상계엄 직후 국회사수를 가장 먼저 회원들에게 타전했고 이후 “즉각 탄핵, 즉각 체포”를 구호로 내걸었다. 언제나 신속한 행동이었다.
퇴역자들까지 합세한 본부대가 힘들이 딸릴지 모를 즈음에 청년부대가 들이닥쳤다. 병력은 더욱 늘었고 전투력은 하늘을 찌른다. 누가 봐도 승리는 확정되었다.
소년이 온다, 저만치 오고 있다, 아니 이미 왔다
탄핵도 기정사실이고 윤석열 일당의 체포와 일망타진도 기정사실이다. 이제 새로운 세상을 만들 준비에 시동을 걸어야 한다. 이론과 철학, 구상과 계획이 있어야 한다. 청년 세대에게 그 윗세대는 멘토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혹 있을지 모를 '꼰대' 비난과 낙인을 걷어치워야 한다. 자신들의 경험, 사상과 이론에 대한 전수가 요구된다. 책임이다. 세대를 걸친 합류의 완성을 향해 가야한다.
서로 배워나가는 것이다. 청년들은 배울 준비를 이미 갖추었다. 윗세대들이 용기와 자신을 가지고 이들과 손잡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된다.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릴 것이다. 그러면서 역사는 새로운 장을 연다.
소년이 온다, 저만치 오고 있다, 아니 이미 왔다. 그해 5월에 죽었던 동호도, 세월호의 아이들도, 이태원의 청년들도. 모두 함께다. 우린 어느새 단단한 하나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