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도 식단도 선택권 없는 시화공단 노동자
‘오늘 점심 뭐 먹을까?’는 불필요한 고민
소규모 업체들 지정식당 오늘의 메뉴
그나마 저렴한 가격에 맞춘 부실재료
이슬람계 노동자는 밥, 김치, 야채만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지난 4~5년 간 한국 노동사회에서 주요 이슈 중 하나가 노동자 휴게권이었다. 휴일과 달리 근로시간 중에 부여되는 휴게는 노동자의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로, 휴식을 통해 육체적 피로를 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 휴게권은 크게 두 가지 영역으로 나뉜다. 휴게시간과 휴식을 취할 시설·공간 문제이다. 휴게시간은 하루 8시간이라는 근로시간 중에 부여하도록 되어 있다. 근로기준법 54조는 근로시간이 4시간인 경우에는 30분 이상, 8시간인 경우에는 1시간 이상의 휴게시간을 근로시간 도중에 주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람이 8시간 연속으로 일하는 것은 무리이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최저 근로기준을 규정하고 있는 근로기준법에는 휴게시간 규정만 있을 뿐 휴식을 취할 시설·공간 즉 휴게실에 대한 규정은 없었으며, 지금도 없다. 휴게실에 대한 세부 규정은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에 권고사항으로만 존재해 왔을 뿐이었다. 그러나 노동진영의 끈질긴 요구와 이슈화를 배경으로 2021년 8월,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어 2022년 8월 18일부터 모든 사업주는 사업장에 휴게실을 설치하도록 의무화되었다. 물리적으로 휴게실을 만들 수 없는 소규모 사업장의 경우에는 여러 사업체 노동자가 함께 이용하는 공동휴게실을 만들도록 했다. 법상으로는 최소한 화장실에서 밥 먹고, 지하실의 석면이 노출된 공간에서 휴식을 취하는 일은 개선할 수 있게 됐다. 비록 더디기는 하지만 한 걸음씩 진전되고 있는 셈이다.
점심시간을 ‘어디서 어떻게’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노동자 처지
하루 8시간 일하는 노동자에게 부여된 휴게시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점심시간이다. 대부분의 사업장에서는 정오 무렵을 기준으로 1시간 정도의 식사시간을 부여한다. 노조가 있는 곳은 단체협약으로 점심시간을 규정하고 있으며, 노조가 없더라도 점심 먹을 1시간 정도의 식사 시간을 취업규칙에 규정하거나 암묵적인 관행으로 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노동자 휴게에서 휴게시간과 더불어 휴게시설이 중요하듯이 점심시간에는 점심 먹을 식당과 메뉴, 즉 식단이 중요하다. 사무실이 즐비한 여의도와 광화문, 명동 같은 지역에서는 점심시간에 ‘오늘 뭐 먹지?’라는 얘기를 하며 근처 식당을 찾아가는 사무직 노동자를 보는 것이 어렵지 않다. 회사가 지급한 식권이나 식대 수당을 이용해 사무직 노동자 본인이 먹고 싶은 메뉴와 식당을 골라서 점심식사를 한다. 대공장의 생산직 노동자의 경우에는 공장 밖 식당까지 가는 것이 멀기에 대부분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대체로 전문 케이터링 업체에 외주를 주는데 케이터링 업체가 영양사를 배치하고 한 달 치 메뉴를 사전에 노동조합, 또는 노사협의회에서 협의해 결정한다. 나아가 지역의 우리 농산물 사용을 의무화함으로써 지역의 농축수산물 소비를 촉진하는 부수적인 성과로 이어지고 있기도 하다.
필자가 있는 시화공단은 어떨까?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사업장에는 구내식당이 있다. 노조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노조와 협의해 구내식당 운영과 식단 등을 결정한다. 하지만 거의 대다수 사업체는 휴게실을 만들 공간조차 없는, 무노조의 소규모 사업체이기에 사업장 밖에 있는 외부 식당을 이용한다. 일견 사무직 노동자가 점심때 식당을 선택하는 양상과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실제는 하늘과 땅 차이다. 소규모 제조 사업장이 즐비한 공단에서 식당 자체가 소수이고, 노동자가 식사할 수 있는 식당의 99.9%는 지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위치도 메뉴도 품질도 전혀 선택권 없는 시화공단의 점심
대부분의 시화공단 소규모 사업체는 사업장에 인접한 하나의 식당을 지정해 장부(외상)거래를 한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해당 식당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식대를 부담해야 한다. 설령 식비를 본인이 부담할지언정 다른 식당을 가고 싶어도 식당이 멀기에 이용하지 않는다. 10분 거리에 더 맛있는 식당이 있어도 시화공단 노동자는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장부거래 식당을 이용한다. 점심시간 중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휴식이나 수면을 취할 시간 10분을 더 뺏기기 때문이다. 그나마 휴식을 취하는 곳도 대부분이 작업장 바닥, 시멘트 바닥이지만 말이다.
장부거래 식당을 이용한다는 것은 곧 메뉴 선택권도 없음을 의미한다. 식당 사장님이 정한 반찬과 국에 맞춰서 식사를 할 수밖에 없다. 식당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김치를 포함해 4~6가지의 반찬과 국을 마련해 놓으면 노동자들이 식판을 들고 자율 배식하는 형태로 식사를 한다. 시화공단 점심식사 가격은 대체로 6,000원 내외이다. 광화문 사거리 식당의 김치찌개가 10,000원 하는데, 시화공단은 1/2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싼 만큼 대가가 있다.
올려야 하는데 올리지 못하는 식당 사장님의 또다른 딱한 사연
공단에 있는 식당은 개인 사업자가 운영한다. 공단 밖의 여느 식당들과 동일하게 식당 간 경쟁체제에 놓여 있다. 배추 한 포기가 1만 원에 육박했던 식자재 가격 상승 속에서 양질의 식자재로 메뉴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격을 올려야 함을 알고 있지만 개별 식당 차원에서는 불가능하다. 500원, 1000원 가격을 높이는 것은 곧 식당 매출의 99%를 차지하는 장부거래 사업체를 잃는 것이기 때문이다.
“올려야 돼요. 그런데 우리만 올리면 어떻게 해요? 500원만 올려도 저기 있는 장부의 1/2은 다른 데로 옮길걸요.”
시화공단 식당 사장님 얘기이다. 정해진 식사 가격 하에서 임대료와 전기료, 수도료 등을 제외하고 이윤을 남기기 위해 식당 사장님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가장 큰 비용이 드는 식자재 비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 저가의 식자재를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휴게실 얘기를 하시지만 식당 문제도 심각해요. 한번 보세요, 싸구려 중국산 김치, 고춧가루에 반찬도 전부가 기성품 갖다가 그냥 가열하거나 튀겨서 쓰는 거고, 국은 멀건 미역국에 밥맛도 그렇고… 나도 먹고 있고, 양이야 마음대로 먹는 거지만, 매일같이 이거 먹다가는 우리 직원들 건강이 남아날까 싶어요. 오후에도 일해야 되니까 먹는 거지, 그거 아니면 안 먹어요. 누가 먹겠어요, 저거를…”
필자가 만난 시화공단 제조사업체 사장님 얘기이다. 휴게실 실태와 관련해 사업주 조사를 진행했는데, 위 사업주는 휴게실도 중요하지만 식사 문제도 중요함을 강조했다. 필자가 있는 연구소가 올해 시화공단 식당 문제를 조사하게 된 계기였다.
식사 질 못지않게 부실한 식사 공간과 위생 의식의 문제
식사 공간 또한 부실하다. 시화공단은 수도권에 산재한 중소영세 제조사업체 이전을 위해 조성한 공단이다. 사업체를 위한다는 마인드는 있지만, 노동자를 위한 마인드 자체가 없는 공단이다. 지난 글에서도 썼던 것처럼 깡통으로 불리는 컨테이너 식당이나 공장 한편의 샌드위치 패널로 된 식당이 거의 대부분이다. 위생 의식 또한 낮다. 필자가 만난 여성 노동자의 얘기이다.
“야간조 할 때는 밤 12시에 가서 밥을 먹는데, 식당에서는 야식을 미리 이렇게 배식대 위에 쭉 (진열)해 놓고서 (식당) 사장님은 저녁 7시~8시 되면 퇴근하거든요. 그럼 4~5시간은 그냥 배식대 위에 있는 거예요, 반찬이나 국들이, 이 (여름)날씨에. 어떻게 되겠어요? 파리 날리고, 약간 상한 냄새 나고, 옆에 있는 친구는 배탈났어요. 그래서 그 뒤로 저는 야식을 안 먹어요, 집에서 샌드위치나 빵 같은 거 갖고 와서 먹어요.”
시화공단 노동자에게 식사 문제는 노동자가 식사 질 개선을 요구하면 할수록 식사 가격 인상과 식당 매출 감소로 이어지기에 식사 질이 제자리에 머무는 일종의 악순환에 처해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에게 돌아가고 있다. 시화노동정책연구소는 시화공단 노동자의 식사 문제와 관련해 올해 시화공단 노동자 43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조사에 참여한 노동자 중 1/4은 ‘식사가 맛이 없거나 질이 떨어져’ 장부거래 식당 변경을 회사에 요구한 경험이 있지만 거부됐다고 밝혔다. 그만큼 식사 질에 불만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어디에도 하소연할 곳이 없다.
식사주권을 임금·노동시간과 함께 보는 노동사회의 인식전환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공단 노동자의 식사 문제에서 준(準)공적 개입이 필요하며, 핵심적인 방향은 노동자의 식사주권 확보이다. 대부분이 무노조인 시화공단 노동자는 메뉴를 선택할 권한도, 식당을 선택할 권한도 없이 오로지 주어진 식당에서 메뉴도 모른 채 식사를 하고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공단이 소재한 지자체와, 국가산단의 경우에는 한국산업단지관리공단, 기초지자체의 일반 산업단지인 경우에는 입주기업협의회 등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지역마다 있는 노사민정 협의회를 활용해 노동자 식사주권 문제를 논의하는 협의 테이블을 만들고, 아울러 공단 소재 식당에 저렴하게 친환경 식재료를 공급하는 체계 마련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지자체에는 2010년대 초부터 학교 무상급식 체계를 구축하면서 지역의 친환경 식재료를 공급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시흥시의 경우에는 ‘시흥시 학교급식지원센터’라는 명칭으로, 광역지자체인 서울의 경우에는 ‘서울친환경유통센터’를 통해 유치원부터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지역의 친환경 식재료나 우수하고 안전한 식재료를 적정가격에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를 조금만 더 확대해 지역에 소재한 공단 노동자를 위한 염가·양질의 식자재 공급체계를 갖추는 것이다. 식당 사장님과 식당을 이용하는 노동자 모두를 위한 방안이다.
임금과 노동시간 문제에 집중해 왔던 한국 노동사회 또한 노동자 식사주권 문제를 개별 노동자의 선호·취향 문제로 치부·간주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이슈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1960년대 여성주의 운동 과정에서 제기된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다’라는 모토가 개별 여성의 문제로 간주되었던 임신·낙태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만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 사정도 딱하지만 이주 노동자에게도 따뜻한 배려를…
마지막으로 식사 문제는 뿌리 깊은 식습관 문화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도 언급하고자 한다. 시화공단에는 이주 노동자가 많다. 많은 정도가 아니라 시화공단 사업체의 사장과 (고위)관리자를 제외하면 작업장 노동자 중에는 반드시 이주 노동자가 있다. 재중동포에서부터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와 네팔, 미얀마, 베트남, 태국 등 필자가 식당에서 만난 이주 노동자의 국적은 다양하다.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국적의 노동자 중 상당수는 이슬람 신도이다. 독자들도 잘 알듯이 이슬람권의 고기 식습관은 한국인의 관점에서는 유별나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그리고 시화공단 식당에 단골 메뉴로 제공되는 돼지고기는 절대 먹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할랄 시스템, 즉 살아 있는 상태에서 도축하지 않은 고기도 먹지 않는다.
“그냥 밥하고 김치, 그리고 야채만 먹어요. 반찬이나 국에 있는 고기가 할랄인지 모르니까요.”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얘기를 할 수도 있지만 한국이 필요하여 외국에서 노동자를 데려왔으면, 그에 합당한 최소한의 처우는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다못해 젓가락질을 잘 못 하는 이주 노동자를 위해 수저와 함께 포크를 식당에 비치하는 것이라도 필요하지 않을까? 한국 사회가 조금만 신경 쓰면 노동자의 식사주권을 위해 할 수 있는 부분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