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다리 짚은 ‘8.8대책’…“집값 상승만 부추길 것”
경실련 공개 질의에 정부는 '맹탕' 답변만
집값 상승은 공급 부족 탓… 진단부터 빗나가
규제 풀고 무제한 매입임대…해법도 엉터리
“국민 주거 안정 아닌 집값 띄우기에 올인”
대책 나온 지 한 달 넘었는데 집값 상승 지속
“졸속 추진 즉각 중단하고 전면 재검토 필요”
정부가 지난달 8일 발표한 ‘국민 주거 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확대 방안’(8.8대책)은 최근 집값 상승에 대한 원인진단부터 처방까지 총체적으로 헛다리를 짚은 것으로 평가됐다. 고금리 상황에서도 서울과 수도권 부동산 시장이 들썩이게 된 건 금리가 낮은 정책 자금과 규제를 마구 풀고 종합부동산세와 다주택자 세금 부담 등을 덜어준 탓이 크다. 그런데도 정부는 공급부족 타령만 늘어놓고 있다.
시장 안정화 대책으로 내놓은 방안도 막대한 세금을 투입해야 하는 무제한으로 매입임대주택을 늘리고 5년 이상 지나야 효과가 있는 공급 확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래 세대를 위해 남겨 놓아야 할 그린벨트까지 해제해 서울과 수도권에 집을 짓겠다는 환경 파괴적 발상도 포함돼 있다.
국민 주거 안정을 위해 가장 시급한 건 장기 공공주택이다.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되는 자금을 틀어막는 일도 중요하다. 저리의 정책 자금을 줄이고 부동산 규제를 다시 강화해 투기 세력이 기웃거리지 못하게 해야 한다. 졸속으로 추진되는 ‘8.8대책’을 전면 재검토하고 실효적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경실련 공개 질의에 형식적 답변 내놓은 정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정부가 진정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고자 하는 목적으로 ‘8.8대책’을 발표한 게 맞는지 확인하고자 지난달 14일 윤석열 대통령과 국토교통부 앞으로 등기우편을 통해 공개 질의서를 발송했다. 국토부는 답변 회신 요청일인 지난 5일 답변서를 보내왔다. 경실련은 그 내용을 11일 공개했는데 예상했던 대로 최근 서울과 수도권 집값 상승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 모두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었다. 발표된 지 한 달이 넘었으나 집값 상승세가 꺾이지 않은 것도 '8.8대책'이 맹탕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정부의 국민 주거 안정 대책의 주요 내용은 서울·수도권에 42만 7000호 이상 주택과 신규 택지를 공급하고 빌라 등 비아파트 신축매입임대를 11만호 이상으로 늘린다는 것이다. 서울에서는 비아파트 시장이 정상화될 때까지 신축매입임대를 무제한 공급하기로 했다.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획기적으로 풀고 그린벨트도 해제하겠다는 내용도 담겼다. 경실련은 이런 대책이 부동산 시장 안정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반면 집값 상승을 자극하고 환경파괴와 지역 불균형을 심화시킬 것으로 봤다.
그래서 △정부 출범 전후로 벌어진 집값 하락의 원인과 최근의 집값 상승의 원인 △매입임대 주택 공급물량 확대 결정과 관련된 예산내역과 회의 결과 △비아파트 시장 공급 상황 정상화의 의미 △그린벨트 해제부터 준공까지 세부 내용과 그로 인한 부작용 등을 공개 질의했다.
먼저 집값 변동에 대한 정부 답변은 다음과 같다. “대선 전후 집값 하락 원인은 고금리, 유동성 축소 등 거시여건 변화와 시장 과열기에 도입되었던 과도한 규제 정상화 추진 결과다. 최근 벌어진 집값 상승의 원인은 전세 사기 여파로 인한 아파트 쏠림 현상, 금리인하 기대, 시장의 공급부족 우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공급 부족이 집값 상승 원인이라는 거것말
경실련은 집값 상승 원인을 공급부족으로 답변한 것은 과녁을 완전히 빗나간 진단이라고 지적했다. 전임 정부의 대규모 공급정책인 3기 신도시 개발과 4년간 83만 호 공급이 주요 내용이었던 '2. 4대책' 등이 아직 실행되지 않았는데도 집값 하락이 최근까지 계속된 바 있다는 사실을 그 근거로 꼽았다. 대규모 공급이 없었는데도 집값이 하락했다는 점은 주택 공급부족이 집값 상승 원인이 아니었음을 방증한다.
집값 하락이 과도한 규제 정상화의 결과라고 한 것도 사실 왜곡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집값 잡는 정책은 거의 추진되지 않았다. 오히려 윤 대통령 대선공약인 270만 호 주택공급 숫자를 맞추기 위한 각종 규제 완화 법안이 추진됐다. 윤 대통령은 총선을 앞두고 전국 각지에서 민생토론회를 열고 지역 숙원사업과 개발정책 추진계획을 남발했다. 고금리 상황에서 그냥 놔두면 하향 안정됐을 집값을 자극하는 정책만 펼친 것이다. 전세 사기 여파로 인한 아파트 쏠림현상이 집값 상승 원인이라면서 임대인의 반환보증보험 의무가입 등 대책 수립에는 미온적 태도를 보였다.
매입임대, 계획만 있고 예산 마련 방안은 모호
매입임대주택 공급물량 확대와 관련해서는 올해 예산은 매입임대주택 공급 추이를 고려해 기획재정부 협의를 통해 구체화하고, 내년 소요 재원은 국회 심의를 통해 확정할 예정이라고 했다. 서울에서 매입임대주택을 무제한으로 늘리겠다고 하면서 관련 예산 마련 방안 등에 대해 정해진 바가 전혀 없다는 의미다. 나중에야 어떻게 되든 일단 던져놓고 보자는 식이다. 윤석열 정부는 경제 정책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감당하지 못할 일을 벌인 뒤 '나몰라라' 하는 정책이 많다. ‘의료 대란’으로 국민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의료 개혁(?)도 여기에 속한다.
비아파트 시장 정상화의 의미를 묻는 질의에 대한 답변도 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비아파트 공급이 정상화될 때까지 지속 매입할 계획이라고만 했다. 정상화되기 위한 적정수준이 얼마인지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그린벨트 해제부터 주택 준공까지 현재 구상하는 일정, 주택 종류, 공급 주체, 공급 내용은 무엇이며, 그린벨트 해제로 인한 지방소멸 가속화 등 부작용에 대한 질문 역시 현재 세부 공급계획은 확정되지 않았으나 그린벨트 해제 지역은 5~6년 내 분양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고만 밝혔다.
장기 공공주택 확대가 진정한 주거 안정 대책
경실련은 정부와 대통령실 답변 내용을 공개하며 “국민의 주거 안정보다 집값 띄우기에 훨씬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는 정책”이라고 일괄했다. 특히 재개발·재건축 속도를 높이기 위한 촉진법 발의 계획과 그린벨트 해제, 매입임대주택 무제한 공급 등은 정부가 집값 띄우기에 총력전을 벌이겠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경실련은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졸속으로 (8.8대책이) 발표됐음을 인정하고 지금 즉시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며 “정부가 진정 집값을 잡고자 한다면 공공택지 매각 대신 영구·50년·국민·장기전세 등 서민이 저렴한 임대료를 내고 20년 이상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진짜 장기 공공주택을 대거 공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