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조희연 "해직교사 채용 후회없어…사회정의 부합"
대법, 조희연 집행유예 확정…교육감직 박탈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직원·시민 눈물 환송
"혁신교육 불꽃 계속 태우길…계속 응원할 것"
"시민이 직접 선출한 교육감 처벌은 반헌법적"
"누구나 살면서 몇 번쯤은, 고난을 두려워 하지 않고 정의로운 가치에 몸을 던져야 할 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직 교사들이 다시 아이들을 만날 수 있도록 한 2018년이 제겐 바로 그런 시기였습니다. 당시 결정에 대해선 지금도 후회가 없습니다."
서울시교육청을 떠나는 조희연 교육감이 29일 직원들과 시민들에게 남긴 말이다. 조 교육감은 관용차가 아닌 20년 된 낡은 은색 소나타 승용차를 타고 교육청을 나섰다.
뇌물도 청탁도 없는 이상한 재판
해직 교사 5명을 특별채용했다는 이유로 재판에 넘겨진 조 교육감이 29일 대법원 선고를 받고 교육감직을 상실했다.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조 교육감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교육자치법과 공직선거법에 따라 조 교육감은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서 피선거권을 잃고 퇴직하게 됐다.
앞서 조 교육감은 2018년 해직교사 5명을 특별채용하는 과정에서 장학관 등에게 공개경쟁시험을 가장한 특채 절차를 진행하도록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2021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접수한 1호 사건이었다. 공수처는 수사 4개월 만에 검찰에 공소제기를 요구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통상의 사건과 달랐다. 뇌물도, 부정 청탁도, 측근 기용도, 횡령이나 배임 언급도 없었다. 조 교육감 측은 재판에서 공개경쟁을 했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직무상 원칙과 기준에 위반되는 방식으로 특별채용을 진행하게 했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절차의 공정성을 문제삼은 것이다. 1·2심 법원에 이어 대법원도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면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하게 됐다.
조 교육감이 대법원 선고로 직을 상실하면서 곽노현 전 교육감에 이어 서울시 진보교육감 2명이 모두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검찰 수사로 자리를 떠나게 됐다. 조 교육감은 2014년 당선된 뒤, 2018년, 2022년 내리 3선을 했다. 그는 무상급식을 확대하고 학생인권조례를 시행하고 혁신학교를 추진하는 등 교육개혁에 힘썼다.
"현실 법정이 수용 않더라도 가치 있는 일"
조 교육감은 직을 상실했지만, 과거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이날 서울시교육청 본관 1층 앞에서 입장문을 읽으며 "지난 2018년에, 다섯 분의 해직 교사가 특별채용돼 학교로 복귀하는 결정이 이뤄졌다"며 "교육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선생님들이 계속 거리를 떠돌도록 할 수 없다는 시민사회와 교육계의 염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당시 교육감의 책무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법부의 판단은 이와 달랐다"며 "해직 교사를 복직시켰다는 이유로 교육감이 해직되는 이 기막힌 현실에 대해 회한이 어찌 없겠는가. 하지만 법원의 결정은 개인의 유불리와 관계없이 존중하고 마땅히 따라야 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법원 선고와 관련 법률에 따라 저는 서울시 교육감으로서 재직한 10년의 역사를 마무리하고자 한다"고 했다.
조 교육감은 "누구나 살면서 몇 번쯤은, 고난을 두려워 하지 않고 정의로운 가치에 몸을 던져야 할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해직 교사들이 다시 아이들을 만날 수 있도록 한 2018년이 제겐 바로 그런 시기였다"고 떠올렸다. 이어 "당시 결정에 대해선 지금도 후회가 없다"며 "교육계의 역사적 화해를 위한 조치였으며, 사회정의에도 부합한다는 확신은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실의 법정에서는 수용되지 않지만, 가치 있는 일을 위해 고통을 감수해야 할 때도 있다"며 "법치주의를 존중해야 하지만, 법치주의가 가치 있는 일을 위해 아무 것도 감내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보장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더구나, 2018년 복직된 교사들의 당초 해직사유는 시민으로서의 '교사의 정치적 기본권' 문제와도 연관되어 있다"며 "서이초의 비극 이후 요구되는 교권을 더욱 두텁게 보장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저는 믿고 있다"고 했다.
지난 10년 혁신 교육의 성과도 언급했다. 조 교육감은 "시험 점수로 차별하고, 학생의 머리 모양을 단속하며, 체벌이 횡행하던 권위주의적 학교문화는 이제 사라졌다. 서울교육은 우리가 오랫동안 부러워했던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새로운 길을 열어가고 있다"며 "이처럼 눈부신 혁신 교육의 성과는 정말 많은 분들의 땀과 눈물로 이뤄진 교육개혁 운동의 결과다. 결코 교육감 한 사람의 노력으로 이뤄진 일이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희망의 미래 교육을 향해 나아가는 서울교육공동체의 열정은 뜨겁게 타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제가 교육감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혁신교육의 불꽃을 계속 태워주기를 간절히 소망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혁신교육의 길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며 "저는 이제 혁신교육을 응원하는 한 시민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겠다"고 했다.
끝으로 "공존의 교육과 공존의 사회를 함께 꿈꿀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소중한 분들과 손잡고 같은 길을 걸어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행복했다"며 "부족한 저를 10년 동안 성원해 주시고, 함께 해주신 서울시민 여러분, 그리고 서울교육공동체 여러분께 고개 숙여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입장문을 발표한 뒤, 조 교육감은 500여 명의 직원, 100여 명의 시민과 악수하며 인사를 나눴다. 마지막 퇴근길을 함께 한 직원들은 꽃을 건넸고, 일부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조 교육감도 눈물을 흘렸다. 시민들은 "고생하셨습니다" "우리가 조희연이다"라고 외쳤다. 그는 정문을 떠나기 직전 마지막 모습을 눈에 담으려는 듯 서울시교육청을 바라본 뒤, 손을 흔들었다.
"화해와 공존하려던 선의가 결국 짓밟혀"
"시민이 선출한 교육감 처벌은 반헌법적"
대법원 선고에 교육계는 반발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서울지부는 논평을 내고 "조 교육감은 누구처럼 뇌물을 받은 것도, 자리를 약속한 것도, 횡령이나 배임을 한 것도 아니"라며 "1만 명이 넘는 시민과 국회의원 109명이 '교육 현장의 역사적 상처를 씻고 화해와 공존을 실현하려는 노력'이라고 평가했던 그의 선의가 결국 짓밟히고 말았다"고 강조했다.
이어 "2008년 최초 직선 교육감을 뽑을 당시, 선관위가 안내한 대로 추진했던 활동들이 선거법 위반으로 둔갑했고, 그 결과 당시 전교조 서울지부장을 비롯해 여러 선생님들이 억울하게 교직을 떠나야 했다. 이명박 정권 때였다"며 "선관위가 제대로 했으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선관위 대신 그 책임은 오롯이 전교조 활동가들이 해직으로 대신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들의 복직을 막기 위해 해고된 지 3년이 지나면 복직할 수 없고 특별채용 또한 공개 전형으로 한다는 교육공무원임용령을 개정했지만 세부규정은 마련되지 않았다. 감사원과 법제처도 지적한 이 세부규정의 미비가 이번엔 (대법원에서) 직권남용으로 둔갑한 것"이라고 지적하며 "이 또한 교육부가 제대로 일을 했으면 될 일이었다"고 했다.
전교조 서울지부는 "그러나 대법원은 1, 2심을 바로잡거나 그 책임을 정부에 묻지 않고 조희연 교육감의 직을 박탈하고 말았다. 800원 버스 요금을 가져간 버스 기사에게는 해고가 정당하다는 엄격한 법의 잣대가 조 교육감에게도 적용된 것"이라며 대법원 선고의 부당성을 강조했다.
학부모 단체들도 나섰다. 서울혁신교육학부모네트워크,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서울지부, 토닥토닥 바른교육을 위한 학부모회, 평등교육실현을 위한 서울학부모회 등 5개 단체는 "시민이 직접 선출한 교육감을 사법적으로 통제하고 형사처벌을 남용한 법원의 반헌법적 결정 유감"이라고 했다.
학부모들은 "오늘의 결정은 전근대적인 법집행의 길을 열어주게 되고, 향후 공무원들의 행정활동에 대한 사법적 통제의 나쁜 선례와 기준을 만들어 주게 될 것"이라며 "우리 학부모 단체들은 다시 한번 오늘의 대법원 판결에 유감을 표한다. 그리고 조 교육감이 그간 걸어온 진보교육의 길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이어나가는데 열과 성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진보·보수 넘는 공존 교육 계속 돼야"
더불어민주당 서울지역 국회의원(강선우·고민정·곽상언·김남근·김동아·김민석·김병기·김성환·김영배·김영호·김우영·남인순·박민규·박성준·박주민·박홍근·서영교·안규백·오기형·윤건영·이용선·이인영·이정헌·이해식·장경태·전현희·정청래·정태호·진선미·진성준·채현일·천준호·최기상·한민수·한정애·황희)들은 "조 교육감의 '혁신과 공존 교육'이 잠시 멈추게 됐다"면서도 "조 교육감은 비리를 저지른 게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서울지역 의원들은 "사적인 이익을 위해 불공정하게 특별채용을 한 것이 아니라, 시대착오적인 정치활동 금지 위반으로 해직된 교사를 구제하려 한 정책이었다"며 "(대법원이) 도덕적 하자가 아닌 공익적 정책결정을 문제 삼아, 서울시민의 선택을 받은 교육감을 하차시키는 것에 대해서 심히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이들은 "오늘 판결은 형식적 정의가 실질적 정의를 부정한 결과"라며 "사회적 화해를 위한 해직교사 채용이라는 공익에 기반한 행정적 결정을 협애(狹隘)한 사법적 잣대로 판단하는 것이 올바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이 여전히 교원의 정치적 기본권을 보장하는데 후진국임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것 같은 답답한 심정을 감출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 교육감이 추구해왔던 '진보와 보수를 넘어 협력하는 공존의 사회, 공존의 교육'은 갈수록 양극화되고 배타성이 짙어지는 우리 사회에서, 함께 사는 공동체의 가능성과 희망을 키우는 소중한 가치였다. 우리 시대의 교육이 지향해야 할 최선의 가치였고 방향이었다"며 "대법원의 판결을 넘어서서 혁신과 공존의 교육 가치가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국민의힘 호준석 대변인은 "아이들 교육에는 아랑곳없이 자신의 정치적 뒷배인 전교조에 진 빚을 갚겠다는 생각뿐이었던 조 교육감에게 법의 엄정한 판결이 내려졌다"며 "사필귀정"이라고 평가했다. 호 대변인은 "이번 판결은 조희연 개인에 대한 단죄가 아니라 아이들의 미래와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범죄에 대한 심판"이라며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교육 정상화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