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대량 학살 외면하는 프랑스와 미국의 위선
평화의 올림픽? 민주주의 선진국? 겉만 번드르
대량 학살 전쟁범죄 국가의 참가 허용한 프랑스
히잡 착용 무슬림 여성, 트랜스젠더는 참가 금지
올림픽 중에도 이스라엘은 폭격, 학살, 암살 지속
미국 의회도 네타냐후 환영, 58번 기립 박수 보내
트럼프에 맞선 해리스, 학살 반대 더 분명히 해야
윤석열 정부 공허한 ‘가치 외교’…‘꼬붕 외교’일 뿐
이번 파리 올림픽 개막식은 최초로 야외에서 진행됐고 다양하고 파격적인 공연과 퍼포먼스로 “혁명적”이었다는 평가까지 받았다. 불치병을 앓고 있는 셀린 디옹이 전설적인 샹송 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를 부른 피날레 공연도 큰 화제가 됐다. 센 강 위에서 불타는 피아노를 치면서 ‘천국과 지옥이 없고, 국가와 국경이 없고, 종교와 사유재산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자’라는 가사의 존 레논의 이매진(Imagine)을 부르는 장면도 감동적이었다.
전 세계 곳곳에서 국가 간 분쟁과 전쟁 속에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나 그런 나라에서 온 선수단은 그 공연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을 것 같다. 그러나 ‘관용과 화합’, ‘사랑과 평화’를 보여 주려고 한 개막식은 파격적이었던 것만큼 잡음도 많았고, 그 때문에 올림픽 조직 위원회는 몇 번이나 사과했다. 한국 선수단의 입장 장면에서 ‘북한’이라고 안내가 나간 경우는 그야말로 해프닝이었겠지만, 거듭 사과했다.
더 큰 논란이 되고 비난이 나온 것은 뚱뚱한 여성, 드랙퀸,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와 다인종의 공연자들이 ‘최후의 만찬’을 연상시키는 장면을 연출한 순간이었다. 이것은 다양성, 사랑, 평화를 상징하며 프랑스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보여 준 멋진 장면이었지만, 곧바로 보수주의자들과 기독교 근본주의자들, 트럼프 같은 우익 정치인들의 맹비난을 받았다. ‘예수와 기독교를 조롱했다’라는 억지스러운 논리였다.
그 공연에 참여한 여성 아티스트는 심지어 이후 온라인에서 악플, 모욕, 살해 협박까지 받았다. 하지만 올림픽 조직 위원회는 역시나 사과했다. 파리 올림픽 조직 위원회가 이처럼 보수적인 압력에 물러선 것은 이것만이 아닌 듯하다. 셀린 디옹이 부른 피날레 노래는 원래 지난 3월에는 아프리카 말리 출신이며 흑인인 프랑스의 세계적 팝스타 나카무라 아야에게 제안된 것으로 보도가 나왔다.
이민자 출신이지만 프랑스 가수로서는 전무후무한 세계적 수준의 성공을 거둔 아야가 그 노래를 부르는 것은 여러모로 적절해 보였지만, 프랑스의 인종주의적 극우 정당과 정치인들은 ‘여기는 프랑스이지 아프리카가 아니다’라며 공격했고, 그래서인지 최종 개막식 공연에서 나카무라 아야는 피날레 공연이 아니라 중간에 잠깐 등장하는 것에 그쳤다. 이렇게 보수적 압력에 거듭 물러서고 사과한 올림픽 조직 위원회가 절대 양보하지 않은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의 올림픽 참가 문제였다. 개별 선수들도 약물을 복용하거나 범죄를 저지르면 올림픽 출전 자격이 정지된다. ‘공정성’이라는 이유로 트랜스젠더 선수도 참가가 어렵다. 프랑스 정부는 ‘세속주의’라며 히잡을 쓴 자국의 무슬림 여성도 올림픽 참가를 막고 있다. 그러나 10개월 동안 팔레스타인 가자에서 4만여 명을 대량 학살해도 이스라엘은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올림픽은 원래 '비정치적'인 행사라서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러시아와 벨라루스는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올림픽 참가가 금지됐다. 반대로 이스라엘은 특별 경호까지 받으며 참가했다. 이스라엘은 90여 명의 대규모 선수단이 참가했지만, 팔레스타인은 8명만이 참가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지난 10개월 동안 이스라엘군의 폭격과 학살로 3백여 명의 운동선수와 스포츠 관계자들이 죽었고 운동 시설들도 파괴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파리 올림픽에서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과 공정한 참가와 경쟁을 할 수조차 없다.
더구나 이스라엘은 올림픽이 시작된 이후에도 결코 폭격과 학살을 멈추지 않았다. 수천 명의 가자 주민이 피난해 있던 학교에 폭격을 가해서 또 수십 명이 죽었고, 레바논 베이루트를 폭격해서 중동 전쟁으로 확전을 위한 불을 댕기고 있다. '레바논 헤즈볼라의 공격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죽었다'라는 명분이었지만, 헤즈볼라가 그랬다는 아무 증거도 없었다.
심지어 이스라엘은 7월 31일 이란에서 휴전 협상의 하마스 쪽 파트너인 이스마엘 하니예까지 암살했다. 하니예는 지난 10개월 동안 이스라엘의 폭격과 학살로 아들 3명과 손자 4명을 잃었고 결국 본인도 죽었다. 그는 그럼에도 협상을 통한 사태 해결을 추진했던 인물이다. 즉, 이스라엘은 결코 학살 전쟁을 멈출 생각이 없고 중동 전쟁이라는 대재앙만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러면서 휴전에 대한 기대는 기약 없이 사라지고 있다.
결국, 파리 올림픽이 ‘관용과 화합, 사랑과 평화의 축제’라는 모든 번드르르한 말들은 이스라엘의 올림픽 참가와 올림픽 중에도 계속되는 대량 학살 속에서 잿더미처럼 사라지고 있다. 그래도 올림픽 조직 위원회는 이것을 절대 사과하지도 철회하지도 않는다. 대량 학살을 하는 나라의 선수들은 참가할 수 있지만 트랜스젠더나 무슬림 여성 선수는 참가할 수 없는 이상한 '관용'의 올림픽인 셈이다.
지난주에 대량 학살 전쟁범죄 국가가 환영과 보호를 받은 곳은 프랑스만이 아니었다. 이스라엘 총리인 베냐민 네타냐후는 7월 24일 미국 의회에서 상·하원 합동 연설을 초청받았다. 미국 의회에서 4번이나 연설한 최초의 외국 수반이 된 네타냐후는 “미국이 무기를 더 빨리 주면 작업을 더 빨리 끝낼 수 있다”라고 연설하며 무려 58번의 기립 박수를 받았다. 이것이 한국의 보수세력과 언론이 ‘민주주의 선진국’이라고 부르던 미국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나마 “전쟁범죄자”, “대량 학살 유죄”라는 팻말을 들고 참석한 팔레스타인계 미국 하원의원 라쉬다 틀라이브의 모습이 희망을 보여 줬다. 좀 더 많은 미국 시민들의 마음은 틀라이브가 대변했다. 실제로 이런 여론의 눈치를 보며 민주당 상·하원 의원의 절반 가까이는 이날 연설에 불참했다. ‘제노사이드 조’라는 악명을 얻게 된 조 바이든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에서 물러나게 된 이유 중에 하나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미국의 저명한 진보 언론인 <자코뱅>은 “바이든은 적어도 해외 유혈 사태라는 한 가지 주요 범주에서 다른 대통령들을 능가했다. 트럼프가 실제로 저지른 일보다 더 끔찍했다. 부시의 이라크 전쟁에 필적한다. 그의 공적 생애의 마지막 행위는 가자 지구에서 인간 말살을 촉진하는 것이었다”라고 논평했다.
‘미국 민주주의를 위해서 바이든이 대통령 후보직을 사퇴하며 훌륭한 결단을 내렸다’라고 칭찬하는 이들에 대해서 미국의 한 진보적 언론인도 이렇게 일갈했다. “바이든의 품위와 영웅심을 강조하는 글을 읽을 때, 저는 턱이 날아간 가자지구의 어린 소녀와 미국의 무기로 절단되고 산 채로 불태워지고 살해된 다른 모든 팔레스타인 어린이들만 생각납니다.”
따라서 이제 바이든에게서 ‘횃불을 넘겨’ 받은 것이 분명해 보이는 카멀라 해리스 후보는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현재 카멀라 해리스는 주로 임신 중지(낙태) 권리로 반트럼프 전선을 구축하고 나섰다. 트럼프 진영이 '아이도 안 낳고 고양이만 키우는 여성들'을 공격하는 상황에서 타당하고 이해할만한 방향이다. 그러나 이것은 반드시 이스라엘의 대량 학살에 대한 지원 중단과 결합해야만 한다.
지난해 연말에 카멀라 해리스는 ‘무고한 팔레스타인인들이 너무 많이 죽고 있다’라면서도 “이스라엘의 안보와 자기 방어권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번 네타냐후의 의회 연설에는 상원의장이면서도 참가하지 않았다. 물론 바이든과 함께 네타냐후를 따로 만나서 지원을 논의했지만, 동시에 “죽은 아이들의 모습”과 “안전한 곳을 찾아 피란을 떠난 절망하고 굶주린 사람들의 모습”에 대해 “침묵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해리스는 이스라엘의 전쟁범죄에 더 분명해 입장을 취할 때 바이든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 한편, 한국 정부와 정치권, 주류언론들을 보면 파리 올림픽과 미국 의회의 한계나 모순을 비판하는 것이 한가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10개월 동안 이런 일방적인 대량 학살이 벌어지는데도 별로 관심이나 이것을 막기 위해 하는 일도 없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오로지 미국의 눈치만 보고 뒤만 쫓으면서 여전히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판매와 외교와 경제 협력을 지속하고 있다.
그래서 윤석열 정부에게 ‘가치 외교보다 실용 외교를 해야 한다’라고 주문하는 것은 번지수가 틀린 것 같다. 윤석열 정부가 정말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가치 외교’를 우선한다면 일본의 과거 전쟁범죄를 눈감아주며 피해자들을 짓밟고, 이스라엘의 대량 학살을 못 본 척하며 침묵하고 방관하는 일은 가능할 수가 없다. 윤석열 정부에게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미국의 요구에 따라 한미일 동맹에 매달리는 ‘꼬붕 외교’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