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은 옳았다' 윤석열 뺨치는 진보언론의 아집
경향·한겨레, 총선 결과에도 여전히 성찰 없어
당원과 지지자들 정치 참여에 '팬덤정치' 낙인만
윤석열 거부권 넘어선 개혁 추진보다 '협치' 강조
조국당은 가능성보다 단점 부각하며 비관적 전망
진보당 무시하거나 '진보정당도 아니'라고 매도뿐
총선 이후에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의 태도는 ‘우리가 추진한 방향은 옳았지만 소통과 홍보가 부족했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앞서, 족벌언론과 종편들이 총선을 평가하면서 내놓은 주장들도 이것과 비슷했다. 이런 언론과 그들이 대변하는 기득권 세력은 기본적으로 윤석열 정부가 추진한 한미일 동맹 지상주의, 부자 감세, 친재벌 반노동 정책 등에 불만이 거의 없고, 다만 지지율이 계속 추락해서 정책 추진 동력이 사라지는 게 불만이다.
그런데 정치적 입장은 전혀 다르지만 비슷한 태도를 다른 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바로 한겨레와 경향신문 같은 ‘진보’언론의 주요 기자나 필자, 기고자들에게서 말이다. 총선 때까지 이들이 보여 준 태도를 거칠게 요약하면 이렇다. ‘한국 정치는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관계가 문제이고, 민주당은 이재명 극성 지지자들의 팬덤정치라는 수렁에 빠져 있고, 박용진 같은 의원과 제3지대나 정의당 등에서 그나마 희망을 찾을 수 있다.’
이에 따라서 진보언론들은 양비론적으로 국민의힘과 민주당을 모두 비판하는 기사나 칼럼들을 자주 실었고, 민주당의 ‘이재명 사당화와 팬덤정치’를 강력 비판했고, 조국혁신당이나 진보당 등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총선의 핵심이 ‘윤석열 정권 심판’에 있다는 것도 잘 포착하지 못했고, 그래서 많은 정치평론가와 함께 총선의 성격을 이해하거나 결과를 예측하는 데서 성공적이지 못했다.
총선 결과는 윤석열 정권의 패배이지만, 동시에 진보언론을 포함한 레거시 미디어들과 그 지면에 단골로 나오던 지식인, 전문가들의 실패이기도 했다. 진보언론의 주요 기자, 필자, 기고자들은 자신들의 관점과 주장들이 어떤 측면에서 부족했고 무엇 때문에 어긋난 것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방향은 여전히 옳았다’는 것으로밖에 이해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총선 직후에 한겨레가 크게 실은 것은, 검언 카르텔에 타협해서 당원과 지지자들의 지지를 못 얻고 총선 출마도 못 한 박용진 의원과의 인터뷰였다. 거기서 느껴지는 것은 ‘우리는 틀리지 않았고, 이런 정치인이 출마하지 못하게 방해한 민주당 지도부와 당원, 지지자들이 문제가 있다’는 메시지였다. 그리고 한겨레와 경향 모두 계속해서 사설 등을 통해 ‘민주당은 이재명 일극체제로 가선 안 되고 총선 민심에 따라 양당의 협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 윤석열 정권을 심판하고 야당에 다수 의석을 준 많은 사람이 기대하는 것은 ‘협치’보다는 윤석열 정부의 거부권을 뛰어넘을 강력한 개혁의 추진이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하다. 이런 ‘민심’이 썩 내키지 않았는지, 한겨레 연재 기사에서 이철희 정치평론가는 이번 선거 결과를 ‘상대방에 대한 적개심에 찌든 강성 지지층에 포획’된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양극화 정치”와 “팬덤정치”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서 민주당 공천 과정 등에서 나타난 당원과 지지자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팬덤정치는 단순히 지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넘어선다. 총공(문자총공격)이라고 불리는 문자 공세, 시위 등 퍼포먼스, 댓글 달기 등을 통해 일상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 가히 팬덤의 권력화라 부를 만하다.”
한겨레 강희철 논설위원과 인터뷰에서 박상훈 박사도 “팬덤 민주주의는 곧 ‘정치 없는 민주주의’”라고 폄하하면서 “선거 과정을 지켜보는 내내 ‘진짜 우리 정치가 많이 병들었구나,’ 이런 생각을 했다”라면서 “선동가나 공익 파괴자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더 잘 대접받는 선거를 치른 게 아닌가 생각한다”는 총선 결과에 대한 철저히 부정적 평가를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권력이 소수의 엘리트보다 다수의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돌아가는 게 더 민주주의에 가깝다. 진보언론 스스로도 그동안 의원단과 당 지도부보다는 당원들의 참여를 중시하는 민주노동당과 같은 구조를 더 바람직한 모델로 칭찬해 왔다. 더구나 지금 한국의 민주당은 권리당원만 200만 명이 넘는 대중 정당이기에, 이것을 소수의 비이성적 강성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팬덤정치’라고 매도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또한 진보언론에서 계속되고 있는 것은 조국혁신당에 대한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태도다. 2019년 조국몰이에서 자유롭지 않았던 진보언론들은 올해 초 조국 2심 재판 결과에 대해 ‘공정의 잣대를 세웠다’고 높이 평가하고, 조국혁신당이 만들어질 때는 ‘유죄 판결받아서 정치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 대표인 정당’으로 취급했다. 그러니 총선 기간에 조국혁신당에 대한 진보언론들의 보도는 소극적 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번 총선 결과에서 조국혁신당이 보여 준 정치적 돌풍과 성과는 놀라울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총선 이후 진보언론의 보도 태도에서 변화가 느껴지기는 하다. 예컨대 한겨레는 얼마 전 주말 특집판에서 조국혁신당을 크게 다루었다. 그런데 이 특집 기사의 주요 인터뷰 대상자와 인용자들은 대부분 조국 대표나 조국혁신당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던 사람들로 구성돼 있었다.
그중에서 최병천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이재명의 대표직 사퇴와 병립형 선거제도로 후퇴(를 위한 국민의힘과의 야합)를 하지 않으면 민주당은 총선에서 필패할 것’이라고 예측했던 사람이면서, 툭하면 ‘조국의 강’을 말하던 대표적인 논객이다. 또 윤태곤 정치평론가는 얼마 전부터 조선일보 칼럼니스트로 변신해 대체로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에 코치하고 조언하는 내용의 칼럼들을 계속 쓰고 있다.
물론 조국혁신당에 대한 기사에서는 비판적인 평가와 목소리도 당연히 포함돼 있어야 한다. 하지만 굳이 조국혁신당을 오른쪽에서 비판하는 사람들을 주로 인터뷰해서, 조국혁신당이 추진하는 ‘한동훈 특검법’을 “앙갚음”이나 “사적 보복”이라고 깎아내리며, 그 앞날을 비관하는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인 것은 아쉬운 일이었다.
조국혁신당이 보여 준 가능성과 성과를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얼마든지 조국혁신당의 더 왼쪽에서 부족한 점을 지적하고 날카로운 비판을 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결국, '우리가 2019년에 조국몰이에 동참한 것은 옳았고, 조국 대표는 정치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고, 이번 총선 결과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생각과 미련을 떨치지 못한 결과라고 의심하게 된다.
진보당에 대한 진보언론의 외면과 소극적 보도, 주요 기자나 필자와 기고자들의 부정적인 태도는 더욱 심하다. 예컨대 경향신문 칼럼에서 김윤철 교수는 “정의당의 소멸”은 “거대 양당 간 전쟁 속에 나타난 팬덤과 극우적 광기” 속에 “약자층에게 쏠릴 추락의 충격을 완화할 정치·사회적 마찰력의 소멸”을 뜻한다고 평가하면서, 이번 총선에서 원내에 진출한 진보당에 대해서는 아예 아무런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진보당을 존재하지 않거나, 진보정당도 아닌 것처럼 취급하는 태도는 경향신문에 실린 김건우 참여연대 간사의 글에서 더욱더 노골적이다. “진보정당이 사라진 시대다. … 당명으로만 본다면 새진보연합이나 진보당도 원내 진보정당이다. 어쩌면 ‘진보’의 의미가 그만큼 희미하거나 무의미한 시대라는 생각도 든다. … 민주당은 입법활동을 대통령과의 대결 수단으로 활용할 것이다. … 숨이 턱 막힌다.”
한겨레에 실린 박권일 작가의 글은 한발 더 나아간다. 여기서 박권일 작가는 진보당을 “진보를 참칭하면서, 보수 기득권이 주도한 위성정당이라는 ‘시스템 해킹’에 적극 가담”한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부정”한 “기생적 진보정당”이라고 맹비난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 비례 위성정당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진보당을 이처럼 깎아내리며 비난하는 것은 과도하며 납득하기 어렵다.
이번 총선에서 진보당은 또다시 지난 10년처럼 의회 진출을 포기하느냐, 비례 위성정당이라도 들어가서 생존을 모색하느냐는 불가피한 선택에 직면했다. 이 과정에서 아쉽고 비판받을 지점들도 나타났지만 그것만을 유일한 절대 기준으로 삼아서 진보당의 오랜 역사나 기여를 전부 부정해 버릴 수는 없다. 정의당의 몇몇 단점과 아쉬운 부분만을 가지고 그렇게 하는 것이 부당하듯이 말이다.
진보당은 한국 진보정당 25년 역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 왔고, 지금도 가장 당원이 많고 민주노총에 큰 기반을 갖추고 있는 진보정당이다. 이번 총선에서도 전국 곳곳에서 정의당보다 4배나 더 많은 지역구 후보를 내보냈고, 일부 지역에서는 민주당보다 더 높은 지지율을 얻었고 현재 국회의원 3명, 기초자치단체장 1명, 광역의원 4명, 기초의원 18명이 있는 정당이다.
이처럼 무시할 수 없는 역사와 뿌리가 있기에 진보당은 ‘통합진보당 강제해산’을 비롯해 그동안 기득권 세력의 집요하고 악랄한 종북몰이를 겪어왔다. 그런 탄압을 뚫고서 가까스로 의회로 복귀한 진보당을 투명인간 취급하고 ‘진보정당도 아니’라며 깎아내리는 진보언론의 기자, 필자, 지식인들은 항상 ‘정파성’을 비판하며 ‘공정’을 강조하지만 스스로가 가장 ‘정파적’이라고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진보언론의 대다수 기자, 필자, 지식인들의 보여주는 이러한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관계에 대한 강조, 민주당을 이재명 사당화와 팬덤정치라고 낙인찍는 부정적 태도, 조국혁신당에 대한 거부감, 정의당 지지와 진보당 무시’라는 관점과 태도를 가장 앞서서 전형적으로 보여줬던 것은 진중권 교수라고 할 수 있다.
진보언론들은 한 때 진중권 교수의 칼럼을 싣거나 그의 의견을 수시로 인용하고 기사화하면서 ‘진중권 인용 저널리즘’이라는 비판적 지적을 받는 데서 자유롭지 않았었다. 진중권 교수는 지난 대선 때 양비론을 넘어서 사실상 윤석열 후보를 지지했었고, 이번 총선 기간에도 ‘김건희 여사는 명품백을 거절하지 못해서 억지로 받은 것’이라며 방어하는 태도를 보였다.
총선 이후에도 진중권 교수는 ‘이재명의 영수회담 15분 모두 발언은 약속 위반이자 반칙’이라고 비판하거나, ‘한동훈의 딸은 조민과 달리 실제로 공부 잘하고 뛰어나다’는 등의 주장을 하며 윤석열 정권과 권력자들을 옹호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대중의 집단적 인식과 선택을 인정하거나 거기서 배우려 하지 않는 진중권 교수의 태도이다.
모든 것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평가하는 엘리트적 위치에서 자신의 잘못된 판단과 오류를 결코 바로잡으려 하지 않는 성찰없는 지식인들의 전형이다. 그러면 기존의 잘못된 판단 위에 계속해서 새로운 잘못된 판단을 덧붙여가기 쉽다. 이것은 총선 이후에도 ‘우리의 정치적 판단과 방향은 틀리지 않았다’는 자세와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모든 언론과 필자들이 함께 곱씹어볼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