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영화 ‘너와 나’, 살아남은 아이들은 어쩔 것인가
[오동진 칼럼] 낙관적 의지로 극복해야 하는 세상의 삶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조현철 감독의 영화 ‘너와 나’는 6개월 전에 개봉했다. 개봉 당시 평단에서는 주목을 받았음에도, 대중적으로 폭발적인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독립영화로서 당연한 현상이었다. 사람들은 준비가 덜 된 것처럼 보였다. 어떤 영화는 서서히 물이 드는 방식으로 소문이 퍼져 나간다. 조금씩 조금씩 물이 들고 색깔이 완성된다. 그런 식이다. 이제야 사람들은 서서히, 아주 천천히, 세월호의 집단적 죄의식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럼으로써 그것을 객관화하기 시작하는 듯이 보인다.
세월호를 탄 아이, 타지 않은 아이, 둘의 사랑이야기
‘너와 나’는 세월호 이야기이다. 세월호가 침몰하고 아이들이 아비규환 속에서 죽어가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이건 세월호 아이들의 하루 전 얘기이고 정세미(박혜수)와 김하은(김시은)이란 여학생 둘의 러브 스토리이다. 잘 들어야 할 것이, 두 여학생의 우정 얘기가 아니라 사랑 얘기라는 것이다. 둘은 사랑해서 엄청 싸운다. 설익은 레즈비언 아이들이며 이럴 때 여학생이 다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기에도 둘의 사랑은 농익은 면이 있다.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몰라준다고 싸우는데 그게 그냥 우정의 틈새가 아니다. 서로가 서로의 사랑을 표현해 내는 게 서투를 뿐이지 진실로 사랑의 교감을 이루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아이들을 잃었다. 그런 아이들을 죽게 놔뒀다. 차가운 물 속에서 죽게 버려두었다. 우리는 언젠가 그 죄 값을 치를 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영화 ‘너와 나’는 더 이상 그러지 말라며, 정작 아이들이 우리가 그러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제 영화가 그런 식의 얘기를 하기 시작한 셈이다. 그런 식의 첫 영화가 ‘너와 나’이다. 영화 ‘너와 나’는 세월호의 비극에서 벗어나, 실로 진부한 표현이겠으나, 이제 세월호를 새로운 희망으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영화이다. 세상의 삶이란 비관적 지성으로 살아가되 낙관적 의지로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10년 만에 필터 건너편으로 간신히 응시한 천국의 아이들
사회적 대참사가 일어나고, 그것을 소재로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일정한 시간이 경과해야 한다. 물론 다큐멘터리는 사건사고 직후부터 만들어질 수 있다. 그건 팩트의 연결이니까. 그러나 픽션과 허구의 이야기, 감정선의 복잡성을 드러내는 이야기, 곧 극영화는 함부로 만들어지지 못한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그 비극을 드라마로 담기까지, 프랑스 알랭 레네 감독은 14년의 세월을 경과시켰다. ‘히로시마 내 사랑’은 1959년에 첫 선을 보였다. 세월호의 비극이 일어난 지 10년이 됐다. ‘너와 나’는 10년이 되어서야 우리가 이제 이것을 이야기로 바꿀 수 있음을, 설령 아이들에게 너무너무 미안하다 해도 이제 그렇게 할 수 있고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첫’ 작품이다. 이제 바야흐로 세월호에 관한 ‘최초 격’ 영화가 나온 셈이다.
‘너와 나’의 화면은 시종일관 뿌옇게 보인다. 촬영감독 DQM(정다운)이 카메라 렌즈에 ‘블랙 프로미스트’ 필터를 썼기 때문이다. (한국영상대학 교수이자 촬영감독인 구재모 감독에 따르면) 이 블랙 프로미스트 필터 기법은 주로 일본의 노보루 시노다 촬영감독이 써서 노보루 기법이라 불리는 것으로, 이와이 슌지 영화 ‘러브 레터’나 ‘4월 이야기’ ‘릴리 슈슈의 모든 것’ 등의 촬영에 쓰였다. 현실이되 현실이 아니었으면 하는 비현실에 대한 욕망을 표현하기에 매우 뛰어난 촬영기술로 알려져 있다. 이건 곧 이 영화를 만든 조현철 감독의 연출 의도를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죽었고, 아이들은 천국에 있을 것이며, 아이들을 정면으로 볼 용기가 없고, 필터 건너편으로 보아야 간신히 응시할 수 있음을 얘기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너와 나’를 블랙 프로미스트 필터로 촬영한 것은 아주 잘 한 선택이다. 조현철 감독이자 배우(넷플릭스 드라마 ‘D.P.’)는 인권변호사 조영래 씨의 조카이다.
강아지를 되찾듯 언젠가 아이들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주인공 새미는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 자꾸 죽음을 본다. 그녀는 친구이자, 너무 사랑해서 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한 연인 하은에게 자신이 어제 꿈을 꿨는데 네가 죽는 꿈을 꿨다고 반복해서 말한다. 네가 죽어서 누워 있고 나도 그렇게 죽었는데 그런 후에 네가 내가 되고 내가 네가 된다고 말한다. 너와 나는 그렇게 너이자 나라고 말한다. 여자 아이 둘은 길 잃은 강아지 진식이(원래 이름은 똘이)를 주인에게 찾아 주기도 한다. 주인(길해연)은 잃어버린 줄 알았고, 영원히 못 볼 줄 알았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게 돼서 너무 기쁘다며 눈물을 글썽거린다. 매우 범상한 장면이고 스쳐 지나갈 수도 있는 보통의 장면이지만 이 씬은 보는 사람들에게 이상한 감정이입을 불러 일으킨다. 우리는 아이들을 영원히 못 볼 거라고 생각하지만 언젠가 똘이를 찾듯이 다시 찾아 낼 수 있을 것이다.
하은이와 새미는 별 일도 아닌 것 때문에 한바탕 싸우지만 결국에는, 그리고 천신만고 끝에 화해한다. 더 중요한 것은 서로에게 사랑을 고백한다는 것이다. 하은은 너를 너무 좋아 한다며 철철 우는 새미를 껴안아 준다. 그녀도 운다. 하은은 새미에게 입을 맞춘다. 이제 둘은 정말 사랑하는 연인으로 커 나갈 것이다. 그러나 하은은 수학여행을 같이 가지 않는다. 다리를 다쳤기 때문이다. 둘이 싸운 이유도 수학여행을 같이 가지 못하는 상황(임은 너무나 잘 알지만 그래도 그런 상황이 나만큼 섭섭하냐는 새미의 끊임없는 투정)때문이다. 수학여행은 새미와 다른 친구들이 간다. 이제 세상에는 하은이만 남게 됐다. 극 후반, 잠깐 보여주는 쇼트에서 하은은 홀로 버스에 앉아 통곡을 한다. 조현철 감독과 촬영감독 DQM은 그 장면을 담으면서 관객들에게 묻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자 어쩔 것인가. 살아남은 하은이를 어쩔 것인가. 세월호로 죽은 아이들을 넘어, 앞으로 세월호를 딛고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을 어쩔 것인가. 당신들은 정녕 어쩔 것인가. 준엄하고 비장한 느낌을 준다.
세월호의 비극 하루 전의 이야기를 담으면서 이토록 밀도 깊은 에피소드를 채워낸 감독과 촬영감독, 배우 박혜수와 김시은, 조단역 배우(박정민 박원상 포함) 모두, 전 스태프 모두에게 찬사를 보낸다. 그 진심이 읽힌다. 열정도 느껴진다. 이 영화는 세상을 단 한 뼘만큼이라도 바꾸어 낼 것이다.
스스로 슬픔 극복하는 민중을 그린 영화
영화 ‘너와 나’는 이제 전국의 극장에서는 볼 수 없지만 얼마 전 열린 ‘4.3 영화제’ 때 상영돼 백여 명의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 바 있다. 예상컨대 5월 29일 열리는 제11회 들꽃영화상에 주요 후보로 올라갈 것이 확실시 된다. 이 영화는 OTT나 VOD로 늦게 풀리기를 바란다. 많은 기획전과 상영회를 돌아야 한다. 영화 ‘너와 나’는 그렇게, 단체로 보는 것이 좋다. 집합적 힐링의 시스템으로 보여야 한다. 함께 있음으로 해서 함께 마음을 치유하는 과정의 관람 방식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 집단 지성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집단의 교감이 먼저이다. 그래야 네가 내가 되고 내가 네가 되기 때문이다. 같이 부여안고 펑펑 울어야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면 그걸 두려워 할 일은 아닐 것이다. 눈물 따위야 뭐가 그리 중요하겠는가. 마주할 용기가 더 중요하다. 이제는 진실을 마주할 때가 도래했다.
아 근데, 아무리 이런저런 수사를 갖다 댄다 해도 이 영화, 너무 마음이 아파서 보기가 힘이 든다. 중간 중간 눈물이 쏟아져 힘이 든다. 미안해서 볼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중은 스스로 슬픔을 이겨 내고 있음을, 영화가 그걸 담아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로 역설의 찬란함이 아닐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