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이 보수우파의 대안 될까…'양두구육 시즌2'
기사회생한 이준석과 개혁신당이 위험한 이유
보수우파의 합리적 혁신보단 혐오정치 강화
소수자 혐오와 젠더·세대 갈라치기 무기 추가
레거시 미디어, ‘좌우 합작’에 가까운 띄워주기
조국혁신당 태풍 속에 소멸 위기 겪다 살아나
윤석열과 국힘 붕괴하면 공백 차지할 가능성
1. 이번 총선에서 가까스로 기사회생한 이준석 대표와 그의 개혁신당은 포스트 윤석열 시대의 재구성된 더 위험한 신우파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그것을 경고하고, 비판하고, 분석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이준석 대표는 언론과 SNS 등을 활용해 여성과 장애인 등 소수자 혐오와 젠더와 세대 갈라치기를 조장하면서, 그것을 능력주의와 결합해 청년(주로 남성)들을 중심으로 보수우파의 정치적 기반을 확대할 가능성을 보여줘 왔다.
2. 그가 보여주는 것은 보수우파의 더 진보적인 방향으로의 혁신이나 합리적인 내용으로의 개혁이라고 보기가 어렵다. 자유시장과 한미동맹 지상주의, 반공반북과 색깔론, 혐중 등에서 그는 기존의 전통적 보수우파와 본질적 차이가 없었다. 이것은 조선일보나 극우 논객 조갑제 씨가 거듭 지적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조갑제는 “침몰하는 보수의 구명정”이라고 이준석 대표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3. 다만 이준석 대표는 보수우파의 병기고에 소수자 혐오와 젠더와 세대 갈라치기라는 무기를 새롭게 추가했다. 지난 대선 때 윤석열 후보의 ‘여가부 폐지’와 ‘멸공 챌린지’ 퍼포먼스는 이준석의 아이디어였다고 알려져 있다. 이번 총선에서도 이준석 대표는 노인 무임승차 폐지, 여성 공무원 병역 의무화, 여성 할당제 폐지 등을 내걸었고 ‘성인지 교육’은 "국가가 국민의 사상적 자유를 침해하는 제도"라고 선동했다.
4. 이준석 대표가 부추긴 소수자 혐오와 젠더 갈라치기가 총선 직전에 있었던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에 대한 정치테러에도 영향을 준 것일 수 있다는 지적들이 있었다. 이준석 대표의 열성 지지자들이 모여있는 ‘에펨코리아’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배현진 의원은 “배퀴벌레”라고 불릴 정도로 증오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이준석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타기를 비난했을 때도 온라인에서 장애인 혐오 댓글과 발화들은 폭발적으로 증가한 바 있다.
5. 지난 대선 때 윤석열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든 ‘양두구육 시즌1’을 성공시킨 이준석 대표는 그 후 보수우파의 분열과 갈등 속에 국민의힘을 나왔고, 총선을 앞두고 레거시 미디어들의 ‘좌우 합작’에 가까운 띄워주기 속에 ‘양두구육 시즌2’를 시작했다. 레거시 미디어들의 친이준석 현상은 단지 클릭 수 장사와 엘리트 인맥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고 별도의 분석이 필요하다.
6. 이어서 이준석 대표는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금태섭 전 의원 등과 함께 이틀에 한 번씩 창당을 하며 당을 합치고 쪼개면서 한 방에 국고보조금 6억을 챙기는 화려한 정치공학을 펼쳤다. 이것이 너무 어지러워서 자신의 지지자들이 멀미하면서 반발하자 이 과정에 장기 말로 이용된 정의당 출신 정치인들(류호정, 배복주)에게 부정적 낙인을 찍어서 입을 막거나 쫓아내는 것에도 거침이 없었다. 나중에는 노회한 정치공학 전문가인 김종인 씨도 데려와서 높은 자리에 앉혔다.
7. 정의당을 떠나서 이준석 대표와 손잡았다가 토사구팽당한 박원석 전 의원은 뒤늦게 “빅텐트 걸고 혐오 팔았다”라면서 "이준석한테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고 말했지만, 누워서 침 뱉기로 보였을 뿐이다. 이준석 대표의 ‘양두구육 시즌2’에 진정한 타격을 가한 것은 조국혁신당의 등장과 그것이 일으킨 태풍이었다. 등장 한 달 만에 한국 정치를 뒤흔든 그 태풍 속에서 이준석 대표와 ‘제3지대 정치공학 전문가’들은 몰락의 길로 들어섰다. 개혁신당에 남아서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던 류호정 의원은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제3지대 정치는 실패했다”고 고백했다.
8. 하지만 이준석 대표와 개혁신당은 총선의 막바지에 가까스로 소멸 위기를 벗어났다. 특히 화성을 지역구 선거에서 이준석 후보의 막판 역전은 설명과 분석이 필요하다. 여기에도 이준석 대표의 철저한 정치공학적 접근이 중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첫째, 선거구 조정으로 새로 만들어진 ‘화성을’(동탄)은 반윤석열 정서가 크면서 동시에 그 지역의 국회의원과 시의원을 오랫동안 다수 배출해 온 민주당에 대한 실망 여론이 존재하고, 청년 유권자들이 많은 곳이었다. 개혁신당이 파고들기 좋은 조건이었다.
9. 둘째, 화성을은 현대기아차 직원들도 많은 곳인데 여기에 민주당이 특권과 반칙에서 자유롭지 않은 현대자동차 사장 출신인 공영운 후보를 내보낸 것은 적절한 선택이 아니었고, 이준석과 개혁신당은 네거티브 선거전을 통해서 그 기회를 낚아챘다. 셋째, 막판에 이준석 캠프는 ‘제3지대’에 대한 공허한 이야기들을 포기하고 ‘윤석열 정권 심판’ 바람에 적극 올라탔다. 윤석열 정권 탄생의 일등 공신인 이준석 후보는 마치 ‘윤석열 정권 타도 투쟁의 선봉장’인 것처럼 180도 변신했다.
10. 넷째,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의 참패가 명확해진 상황에서 보수우파의 전략적 선택이 작동했다. 대표적으로 조선일보나 조갑제는 포스트 윤석열의 우파적 대안이 자유통일당 같은 날것 그대로의 투박한 아스팔트 우파일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이준석과 개혁신당에 힘을 분산해서 몰아주기 시작했다. 류호정 문제 등으로 이준석에게 실망하며 떠나가던 온라인 청년 우파들도 막판에 다시 결집했다. 족벌언론들에 이준석과 개혁신당에 우호적인 기사들이 이어졌고, ‘댓글 알바를 풀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온라인 선거전은 치열했다.
11. 다섯째, 지금 상황에서 더 이상 국민의힘을 지지할 수는 없지만 민주당도 지지할 수 없었던 의사협회가 이준석과 개혁신당에 조직적 지지를 보냈다. 개혁신당 비례후보 1번도 의사였다. 파워엘리트들의 돈과 힘이 한층 더 개혁신당으로 모이기 쉬운 조건이 됐다. 마지막으로 이준석 후보의 모친까지 직접 유세차에 올라서 눈물로 아들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여성을 깎아내리던 정치인이 결정적 순간에 여성의 힘에 기댄 역설적 장면이지만, 이것은 보수 지지자들의 마음을 움직인 최후의 한방이었을 것이다.
12. 결국 이준석 대표와 개혁신당은 최악의 위기에서 벗어나 살아남았다. 그러자 레거시 미디어들은 또 “최대의 이변”, “역전의 드라마”라면서 그 성과와 의미를 부풀려서 계속 이준석 대표를 불러주고 그의 말을 받아써 주고 있다. 사실 집권여당의 전 대표와 의원들까지 있었던 개혁신당이 총선에서 거둔 성과보다, 10년 동안의 종북몰이 속에 철저히 외면당해 온 진보당의 부활이 더욱 극적인 요소가 있다. 창당 한 달 만에 대성공한 조국혁신당에 비하면 그토록 ‘제3지대’의 가능성을 떠들던 개혁신당의 성과는 초라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13. ‘그럼에도 이준석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쫓겨난 서사가 있어서 언론이 더 관심을 갖는 것’이라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당한 것으로 치자면 조국 대표나 이재명 대표를 따라올 사람이 없다. 진보당의 전신인 통합진보당이 박근혜 정부에게 당한 괴롭힘과 탄압은 이준석 대표가 당한 것과 비교하면 수백 배나 더 지독했다. 하지만 언론은 이런 문제와 인물들에는 그만큼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14. 하지만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의 위기가 나중에 붕괴로 이어지게 된다면 이준석 대표와 개혁신당은 그 공백을 차지하며 급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김용태, 김재섭 등이 여기에 합류할 수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우파 기반의 청년 확장을 위해 이준석과 손잡은 적이 있다. 그래서 주시하고 경계해야 한다. 더구나 민주당에도 ‘이준석에게 귀를 기울이고 배울 게 있다’며 동조하는 일부 흐름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정의당의 일부에서 그런 주장을 하던 사람들은 이미 개혁신당으로 흡수돼 있다.
15. 이처럼 이준석 대표와 개혁신당은 국민의힘의 오른쪽에서 우파를 재구성하며 의제를 결합하고 기반을 확대하는 신우파의 가능성과 위험성을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이번에 태풍을 일으킨 조국혁신당과 기적적으로 부활한 진보당 등이 민주당의 왼쪽에서 의제의 재구성과 결합, 정치적 기반 확대를 통해서 희망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와 함께 한국 정치의 미래를 규정할 중요한 요소로 남아있다.
* 뱀발 – 언론은 왜 이준석에 우호적인가?
레거시 미디어들이 툭하면 이준석 대표를 불러서 이야기를 듣고 받아써 주는 것은 클릭 장사라는 측면과 이준석 측이 언론사와 기자를 공들여 관리하며 인맥을 쌓아온 결과로 보인다. 또한 이준석 대표와 레거시 미디어는 정치를 게임이나 스포츠 중계처럼 정치공학적으로 접근하고 해석하는 측면에서도 통하는 점이 있다. 이 사회에는 엘리트들과 보통 시민들 사이에 ‘공감 격차’도 있다. 그러니 이준석 대표에게 상처받은 소수자들의 감정은 크게 고려하지 않게 된다. 더구나 보수적 주류언론들은 윤석열 정부를 적당히 비판하면서 보수우파의 대안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이준석 대표에게 매력을 느낀다. 하지만 ‘진보’ 언론까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에 대해서는 김내훈 칼럼니스트가 잘 지적하고 비판했다.
“진보언론이 전략적인 패로 활용하려는 의도로 보수 진영의 청년정치인을 띄워준다면, 전략적으로 활용하기는커녕 오히려 그가 구심점이 되는 새로운 헤게모니적 블록을 만들어줄 수 있다. … <한겨레> <경향신문> 등 진보 성향 언론이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를 그토록 띄워주는 것을 보면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다. … 오직 무언가에 대한 증오를 표시하는 것만으로 지지세를 얻은 자의 시끄러운 준동을 숨 막히는 양당체제에 뚫어준 숨구멍에 비유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적 상상력의 빈곤을 방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