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이…총선 전날까지 이재명 호출한 검찰과 재판부

제1야당 대표 유세 막고 '사법 리스크' 부각 현실화

공식 선거운동 13일 중 3일 손발 묶는 초유의 사태

이재명 "주권 포기 말고 꼭 투표해달라" 울컥하기도

박빙 지역구 민주당 후보들 거명…"승리할 수 있어"

재판 끝나면 저녁 용산역 광장서 마지막 '총력 유세'

이화영 최후진술에 민주 "공작 수사의 진실 드러나"

2024-04-09     김호경 에디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총선 하루 전날인 9일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대장동·성남FC·백현동 관련 재판에 출석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4.4.9. 연합뉴스

총선 바로 전날까지 제1야당 대표가 법정에 출석하는 초유의 사태가 기어이 벌어졌다. 막판 유세에 1분 1초가 아까운 야당 사령탑의 손발을 묶는 동시에 소위 '사법 리스크'를 최대한 부각시켜 선거에 영향을 주려는 여권의 의도가 그대로 실현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김동현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대장동·성남FC·백현동 관련 배임·뇌물 등 혐의 공판에 출석했다. 민주당 선거전을 총지휘하는 당 대표이자 인천 계양을에 출마한 후보이기도 한 이 대표는 이로써 총선 공식 선거운동 기간 13일 가운데 이날까지 총 사흘을 법정에서 보내게 됐다. 전날엔 이 대표의 부인 김혜경 씨가 취재진의 질문 공세와 카메라 세례를 받으며 '6명 밥값 10만 원 제공' 혐의로 재판을 받으러 법원에 들어갔다. 정치검찰의 노골적 기획에 재판부가 맞장구를 치면서 희대의 장면이 연출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이 대표는 검찰과 법원을 탓하는 대신 대국민 호소에 주력했다.

이 대표는 이날 법원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청사 앞에 모인 취재진을 상대로 오전 10시 15분쯤 기자회견을 갖고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오늘 2년째 겪고 있는 억울함과 부당함, 저 하나로도 부족해서 제 아내까지 끌어들인 정치 검찰의 무도함에 대해서는 말씀드리지 않겠다"며 "제가 겪고 있는, 그리고 가족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불편이 아무리 크다 한들 국민 여러분께서 겪고 있는 삶의 고통에는 비할 바가 못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 2년간 윤석열 정권은 경제, 민생, 외교, 안보, 민주주의, 이 모든 측면에서 국가를 후퇴시켰다. 지금까지 국민들의 힘으로 쌓아 온 대한민국의 성과를 모두 무너뜨렸다"면서 "경제는 폭망했고 민생은 파탄 났다. 세계 10대 경제 강국, 5대 무역 흑자 국가였던 대한민국이 북한보다 못한 무역수지 적자 국가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또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은행 이자는 두 배, 세 배 가까이 올랐다"며 "생활조차 어려워진 국민들이 사채 시장으로 내몰리고 전세 사기로 모든 재산을 잃은 국민들께서 도처에서 절규를 하지만 윤석열 정권은 아무런 대책도 없다. 관심도 없다"고 개탄했다.

이 대표는 "잡으라는 물가는 못 잡고 정적과 반대 세력만 때려잡는다. 해결하라는 민생 과제는 제쳐놓은 채 전국 곳곳을 다니면서 총선을 겨냥해 사기성 정책을 남발한다"며 "분명한 불법 관권 선거 아니겠느냐"고 짚었다. 아울러 "길거리를 걷던 국민 159명이 어처구니없이 목숨을 잃어도, 나라를 지키던 군인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어도 진정성 있는 사과, 책임지는 사람, 아무것도 없다. 오직 은폐에만 혈안이 된 참으로 비정하기 이를 데 없는 정권"이라며 "'입틀막' '칼틀막'도 모자라서 '파틀막'까지 일삼는 바람에 피로 일궈낸 모범적인 민주국가는 2년도 안 되는 이 짧은 시간에 독재화가 진행 중인 나라라고 국제 사회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고 했다.

나아가 "거부권 남발을 비롯해 윤석열 정권이 저지른 권력 남용 때문에 우리 사회를 지탱하던 법치주의, 삼권분립, 헌정질서는 급격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다. 국민 통합에 앞장서야 할 대통령이 먼저 최일선에서 이념 전쟁을 벌이고 폭압적인 검찰 통치가 이어지면서 민주주의의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대화, 타협, 공존은 사라졌다"며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 정권이 나라의 주인인 국민을 대하는 태도다. '확정 범죄자도 사면해서 출마시키겠다, 어쩔래? 우리 가족은 절대 못 건드린다, 어쩔래?' 국민을 완전히 무시하고 능멸하는 정권 탓에 이제 정치는 통치와 지배로 전락했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러면서 주권자인 국민이 투표를 통해 무도하고 무능한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점을 역설했다. 이 대표는 "지난 2년간 행정 권력만으로도 나라를 이렇게 망친 정권이다. 만일 국회 과반이 그들의 손에 넘어가 그들이 입법권까지 장악한다면 법과 제도, 시스템까지 마구 뜯어고쳐서 이 나라는 회복 불가능한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라며 "국민 여러분, 이번 총선에서 절대로, 절대로 주권을 포기하지 마시고 꼭 투표해달라. 국민을 거역하는 권력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어떤 권력도 국민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국민 여러분의 손으로 증명해 주시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총선 하루 전날인 9일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대장동·성남FC·백현동 관련 재판에 출석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4.4.9. 연합뉴스

이 대표는 전국 지역구에서 박빙의 접전을 치르고 있는 민주당 후보들 이름을 일일이 나열해 눈길을 끌었다. 현장에 못 가는 대신 법원 앞 기자회견을 통해서라도 선거운동을 지원하겠다는 절박감이 묻어 있었다. 경남 진주갑 갈상돈, 강원 강릉 김중남, 충북 보은·옥천·영동·괴산 이재한, 충남 서산·태안 조한기, 경기 포천·가평 박윤국, 충남 공주·부여·청양 박수현, 경기 동두천·양주·연천을 남병근 등 후보들을 직접 거명한 이 대표는 "그 외에도 수없이 많은 민주당 후보들이 박빙의 결전을 치르고 있다. 이 초박빙 접전지에서 민주당 후보가 승리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졌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이번 총선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인, 선거 전날인 오늘, 초접전지들을 들러서 한 표를 꼭 호소하고 싶었다. 재판에 출석하지 말고 지역을 돌아야 한다는 그런 제안도 있었다"면서 "1분 1초를 천금같이 쓰고 싶었다. 저의 손발을 묶는 것이 검찰독재 정권, 정치검찰의 의도인 것을 안다. 그러나 국민으로서 재판 출석 의무를 지키기로 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제가 다 하지 못하는 제1야당 대표의 역할을 국민 여러분이 대신해 달라. 손이 닿는 모든 연고자들을 찾아서 투표해 달라고 독려해 달라"며 "주권자인 여러분의 신성한 한 표 한 표를 모아서 대한민국의 새로운 역사를 국민 여러분의 손으로 직접 써 주시기 바란다"고 거듭 곡진하게 당부했다. 이 대표는 "4월 10일에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반드시 다시 만들겠다. 국민 승리의 도구로써 주어진 역할을 다하겠다"면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바로 여러분들이 이 나라의 주권자다. 주권을 배반한, 국민을 거역한 정권에 엄정한 심판을 내려 주시기를 간곡하게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마지막 대국민 호소를 전할 때 이 대표는 감정이 복받친 듯 울컥한 표정에 목소리도 다소 떨리는 모습이었다.

앞서 이 대표는 재판부를 향해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에 대한 저의 반대신문은 끝났고, 정진상 피고인 측의 반대신문만 남았는데 제가 없더라도 재판 진행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며 선거운동 기간만은 재판 일정을 조정해 달라고 수차례 요청했지만 재판부는 "정치 일정을 고려하면 특혜라는 말이 나온다"며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동현 부장판사는 이 대표가 선거를 이유로 불출석할 경우 구인장을 발부하겠다고 여러 번 공언한 바 있다.

이날 재판 역시 유동규 전 본부장에 대한 정진상 피고인 측의 증인 신문으로 진행된다. 저녁 6시를 전후해 재판이 끝나면 이 대표는 서울 용산역 광장에서 7시부터 열리는 당 차원의 마지막 유세인 '정권 심판·국민 승리 총력 유세'에 참석할 예정이다. 민주당은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지난달 28일에도 이곳에서 출정식을 열었다. 선거운동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행사를 모두 대통령실 인근에서 개최함으로써 '정권 심판' 메시지를 여론에 최대한 전파하려는 전략이다. 이 대표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지역구인 인천 계양을로 이동해 지역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는 것으로 선거운동의 대장정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와 관련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배우자 김혜경 씨가 8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2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4.4.8. 연합뉴스

한편 민주당 검찰독재정치탄압대책위원회 김지호 부위원장​은 입장문을 내고 "어제는 이재명 대표의 배우자 김혜경 씨가 법정에 섰다. 그리고 오늘, 총선을 단 하루 앞두고 이재명 대표가 법정에 섰다"며 "검찰 출신 대통령과 검찰 출신 여당 비대위원장이 쌍두마차로 이끄는 검찰독재 정권의 선거 핵심 전략은 국민을 위하고 민생을 살피는 정책이 아닌, 그들이 제일 잘하는 검찰을 이용한 '수사농단'인 것 같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독재 정권은 야당 대표를 법정에 세워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선거마저 검찰이 쥐고 흔들 수 있다는 오만한 착각을 하고 있다. 검찰독재 정권의 22대 총선 최종 병기는 역시 검찰이었나 보다"라면서 "국민께서 단호하게 검찰독재 정권을 심판해 달라. 주가조작으로 23억 원가량의 수익을 얻은 의혹이 있는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고발 사주 '윗선'과 '공범' 혐의자인 대통령 윤석열, 여당 비대위원장 한동훈을 비롯한 검사들의 범죄 의혹을 끝까지 밝히겠다"고 전했다.

민주당은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대북 송금' 의혹으로 전날 검찰로부터 징역 15년을 구형받은 데 대해서도 입장을 내놨다. 강민석 민주당 선대위 대변인은 이날 서면 브리핑에서 이 전 부지사의 최후진술과 변호인의 최후변론을 거론하며 "야당 대표를 죽이기 위해 무리한 회유공작에 나섰던 정치검찰이 자기가 판 함정에 자기가 걸려든 셈"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야당 대표를 겨냥한 '조작 수사'는 이처럼 '정치공작 수사'였다. 진실을 조작하려 무리수를 두며 허둥대는 검사독재 권력의 추악한 모습에 가책을 느낀 '양심고백'에 의해 진실이 우리에게 그 모습을 서서히 드러내고 있다"며 "이에 당황한 정치검찰은 15년이라는 무도한 구형으로 입틀막을 하려 하고 있지만 진실은 결코 감옥에 가둬둘 수 없다"고 강조했다.

 

쌍방울 그룹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지난 2022년 9월 27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리는 사전구속영장 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심문)에 출석하기 위해 수원지방검찰청 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2022.9.27. 연합뉴스

전날 이 전 부지사는 수원지법 형사11부(부장 신진우)에서 열린 결심 공판 최후진술을 통해 "저는 그냥 이 사건이 '이재명 대표를 구속하기 위한 수단과 도구로서 내가 이용된 것에 불과하구나'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며 "검찰은 끊임없이 '이재명에 관련된 이야기를 해라, 공모했다는 진술을 하면 나가게 해 준다'고 내게 말했다. 전두환 노태우 신군부 정권도 이렇게 드러내놓고 심한 조작을 통해 야당 대표를 구속시키려고는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전 부지사의 변호인인 김현철 변호사는 최후변론에서 "본 변호인은 민주당원도 아니고 이재명 지지자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재명의 무죄를 주장한다. 이재명의 무죄가 이화영의 무죄를 의미하기 때문"이라며 "검찰은 이재명을 제거하려고 이화영을 도구로 삼아서 대북 송금 사건을 조작했다. 이 건은 1980년 신군부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사건'처럼 '이화영 조작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검찰은 (이화영의) 2100만 원 법인카드 사용에 대해 처벌받지 않게 한다고 회유했다. 결국 이화영은 거짓된 내용으로 피의자 신문서를 작성했는데 양심의 가책으로 견딜 수 없었다"면서 "이재명의 알리바이가 있는 날짜를 보고, 날짜를 특정했다. 나중에 진실을 밝히려고 그런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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