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공보물서 사라진 VIP…장관출신 후보도 시늉만
수도권 122개 선거구 윤석열 사진 20%만 사용
한동훈 79곳, 오세훈 38곳…대통령은 겨우 25곳
대통령실 있는 용산구 공보물도 조그맣게 들어가
장관 출신 후보도 윤석열 사진 안 넣거나 옆 모습만
민주당은 10개 선거구 중 7개 꼴로 '정권 심판' 강조
선거 공보물은 후보가 유권자들에게 보여주는 메시지의 결정체다. 후보가 내세우는 공약과 함께 이력 등을 한눈에 엿볼 수 있다. 후보는 몇 장 안되는 짧은 공보물에서 유권자에게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해 대통령이나 유력 정치인과 함께 찍은 사진을 넣는 경우가 많다. 특히 여당의 경우, 대통령 사진을 공약에 실천력을 불어넣는 ‘마패’처럼 사용하곤 했다. 4년 전 21대 총선에선 문재인 대통령 사진이, 8년 전 20대 총선에선 박근혜 대통령 사진이 여당 후보들에게 전유물처럼 사용됐다. 물론 지역의 대통령 지지율에 따라 다르지만, 대통령 사진이 실제 득표에 도움이 된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선 이전과 다르다. 윤석열 대통령 사진이 ‘마패’가 아니라 ‘애물단지’로 전락한 모습이다.
외면받는 윤석열 사진…5곳 중 1곳만
장관 출신이지만 사용하지 않는 곳도
1일 <시민언론 민들레>가 민심의 풍향계라고 할 수 있는 서울·경기·인천 122개 선거구(122개 중 2개 선거구는 공보물 등록 안됨)의 국민의힘 후보 책자형 공보물을 전수 조사한 결과, 단 25개 선거구(20.5%)에서만 윤 대통령 사진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의 사진을 사용한 선거구는 79개(64.8%)로 대통령보다 3배 이상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오세훈 서울시장을 사용한 선거구도 서울 28개과 경기도 10개 등 모두 38개(26.4%)로 대통령보다 많았다.
서울로 좁히면 그 격차는 더욱 커진다. 서울 48개 선거구만 분석한 결과, 윤 대통령 사진을 사용한 곳은 8개 선거구(16.7%)에 불과했다. 보수세가 강하다는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 8개 선거구에서도 대통령 사진은 단 1군데(송파병 김근식)만 사용됐다. 그마저도 대통령이 마스크를 쓰고 있어 온전한 사진으로 보기 어려웠다. 그에 반해 한동훈 위원장은 33개 선거구(68.8%), 오세훈 시장은 28개 선거구(58.3%)에서 사용돼 대통령 사진보다 3~4배 정도 많은 빈도를 보였다. 특히 서울의 경우, 여당 후보들이 재개발 이슈 등에 집중하면서 오세훈 시장 사진을 적극 내세웠다.
대통령실이나 국무위원(장관) 출신 가운데서도 윤 대통령 사진을 크게 사용하거나 제대로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대통령실이 위치한 용산구의 권영세 후보는 윤석열 정부 초대 통일부 장관을 지냈지만, 그가 낸 12쪽짜리 책자형 공보물에서 윤 대통령 사진은 옆 모습만 작게 쓰였고 부인 김건희 씨는 거의 가려져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다른 후보도 사정은 비슷하다. 강서을에 출마하는 국가보훈부 장관 출신 박민식 후보도 대통령의 옆 모습이 나온 작은 사진을 사용하고, 한동훈 위원장과 찍은 정면 사진을 크게 사용했다. 외교부 장관 출신인 서대문을 박진 후보도 대통령 사진을 작은 크기로 사용했다.
윤석열 정부 장관 출신이지만, 사진을 아예 사용하지 않은 사례도 있었다. 국토교통부 장관을 지냈던 원희룡 후보(인천 계양을)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지냈던 방문규 후보(경기 수원병)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한 책자형 공보물에서 윤 대통령 사진을 단 한 장도 사용하지 않았다.
대통령실 출신 가운데에선 김은혜 전 홍보수석(경기 성남분당을)이 상대적으로 윤 대통령 사진을 크게 사용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복심이라 불리는 이원모 전 대통령실 인사비서관(경기 용인갑)은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비율의 사진을 사용했다. 대통령실 미래전략기획관을 지냈던 장성민 후보(경기 안산갑), 대통령실 정무비서관을 지냈던 전희경 후보(경기 의정부갑)는 작은 크기의 대통령 사진 한 장만 공보물에 실었다.
과거 총선과 달리 여당 후보 사이에서 대통령의 사진이 외면받는 것은 정권 심판론이 거세게 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대통령 사진이 득표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 사용을 자제하거나 배제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여론조사꽃이 지난달 29~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5명을 대상으로 한 전화면접 조사 결과, 국정운영 긍정 평가는 34%, 부정 평가는 64.6%였다. 같은 조사에서 차기 총선에서 ‘정권 안정을 위해 여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정권 안정)는 응답은 38.4% ‘정권 심판을 위해 야당을 지원해야 한다’(정권 심판)는 응답은 56%였다(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민주당은 10곳 중 7곳에서 정권 심판
입틀막 사진 사용한 공보물도 곳곳에
반면 민주당은 공보물에 문재인·노무현 대통령이나 이재명 대표 사진보다 표심을 자극할 정권심판 메시지를 강조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이번 총선이 이슈나 인물보다 정권심판 구도 위에서 치러진다는 점을 반영했다.
민주당의 경우, 수도권 122개 선거구 가운데 83개 선거구(68%)에서 ‘이채양명주’ 등을 포함한 정권심판 문구를 강조하거나, 관련 사진을 사용했다. 특히 정권심판을 내세운 83개 선거구 가운데, 19개 선거구(22.9%)에서 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 졸업식에서 벌어진 이른바 ‘입틀막 사건’ 사진을 사용했다. ‘입틀막’ 사진이 정권의 폭력적인 모습을 극단적으로 드러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서울 지역 선거 캠프 관계자는 통화에서 “당 차원의 가이드 라인이 있었다기보다는 가장 정권의 폭정을 드러내기 알맞은 사진을 사용한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여당이었던 4년 전 총선과 달리 인물 사진 사용 빈도는 적었다. 인천 계양을을 제외한 121개 선거구를 조사한 결과, 39개 선거구(32%)에서만 이재명 대표 사진을 사용했다. 차기 대권주자 여론조사와 비슷한 수준의 분포였다. 지난 21대 총선의 경우,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면서 문 대통령 사진이 수도권 후보 공보물 곳곳에 쓰였지만, 이번엔 7개 선거구(5.7%)에서만 문 대통령 사진을 사용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사진은 5개 선거구(4.1%)에서만 사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