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화요일’ 압승한 트럼프 기다리는 치명적 악재들
공화당 내 지지층만큼 단단한 거부층
온건파·무당파, 헤일리 지지층 만만찮아
또 하나 중대한 약점은 4건의 형사 재판
25일 트럼프 첫 재판, 싸움은 이제부터
지난 5일(현지시각) 15개 주에서 한꺼번에 치러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슈퍼 튜즈데이’)에서 14개 주에서 이긴 도널드 트럼프(77) 전 대통령이 본선 후보로 사실상 확정됐다.
두 곳밖에 이기지 못한 헤일리 사퇴
유일한 경쟁자로 남아 있던 니키 헤일리(52) 전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이날 후보 경선(예비선거)이 끝난 뒤에 결국 사퇴했다. 헤일리 대사는 지난 1월부터 시작된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전에서 지난 3일의 수도 워싱턴DC, 그리고 이날의 버몬트 주 경선 등 단 두 곳에서밖에 이기지 못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공화당 대선 후보로 사실상 확정됐으며, 민주당 내에서 사실상 후보 경쟁자가 없는 현직 조 바이든(81) 대통령과 2020년 대선에 이어 오는 11월 5일 치러질 대선에서 다시 격돌하게 됐다.
하지만 공화당 예비선거는 오는 6월까지 각 주에서 계속되며, 트럼프는 총 대의원(2429명)의 과반수(1215명) 표를 얻은 뒤에야 7월 공화당 전국대회에서 정식으로 후보지명을 받게 된다. 5일의 슈퍼 튜즈데이(화요일)는 총 대의원의 3분의 1이 넘는 865명의 대의원을 뽑는 날이었다.
이날까지 트럼프가 확보한 대의원 수는 모두 995명이고, 헤일리는 총 89명의 대의원밖에 확보하지 못했다.
바이든이 대선 공식 후보로 지명받게 될 것이 확실한 민주당 전국대회는 8월에 열린다.
‘이단’에서 ‘주류’가 된 트럼프
이로써 2016년 처음 대선에 도전했을 때만 해도 공화당에서조차 주류로부터 ‘이단’ 취급을 받았던 트럼프는, 다수의 예상을 깨고 당선돼 집권한 뒤 재선에 실패했음에도 공화당원 절대 다수로부터 압도적 지지를 받는 ‘주류파’가 됐다. 최근의 일부 여론조사에서 트럼프는 근소한 차이이기는 하나 현직 대통령 바이든보다 더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트럼프의 치명적 약점 ‘공화당의 분열’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대선 본선에서도 우세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트럼프에게는 몇 가지 중대한 약점이 있다.
우선 그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극복해야 할 난관은 공화당의 분열이다. 후보 경선 과정에서 다른 후보들은 제대로 맞서 보지도 못했을 정도로 공화당 내의 트럼프 지지는 압도적이지만, 무시할 수 없는 트럼프 반대자들이 공화당 내에는 존재한다. 그들이 접전을 치르게 될 민주당 바이든과의 본선에서 트럼프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2020년 대선 때 그가 바이든에게 패배한 요인 중의 하나도 공화당 내의 트럼프 지지 반대자들이었다. 그들과 무당파층의 트럼프 지지 이탈 또는 적극적 반대 움직임은 본선의 당락을 가를 미시간이나 펜실베이니아, 조지아 등 경합주들(swing states)에서 그에게 결정타를 가할 수도 있다.
여러 주에서 헤일리 지지율 30~40%
지난 3일 수도 워싱턴의 공화당 예비선거에서는 헤일리가 약 2000명의 투표인들 중 63%를 확보했다. 이날 워싱턴DC 예비선거 패배 뒤 트럼프 진영은 재빨리 헤일리의 승리를 워싱턴의 로비스트들과 인사이더들의 지원 덕으로 돌리며 그 의미를 깎아내렸으나, 각 주 경선 과정에서 헤일리는 비록 졌지만 30~40%를 득표한 주도 많았다.
헤일리는 후보 사퇴 발표 때 “후보에서는 물러나지만 내가 믿는 것을 위해 목소리를 계속 낼 것”이라며 “이젠 트럼프 씨가 그를 지지하지 않는 당 안팎 사람들의 표를 받아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때 헤일리는 트럼프에게 축하를 보냈지만 그에 대한 명확한 지지 의사를 밝히진 않았다. 헤일리 진영은 그날 성명을 통해 “어느 주에서나 트럼프 씨에게 깊은 우려를 갖고 있는 공화당 유권자들이 있다”는 지적까지 했다.
경합주에서 관건 쥔 공화당 온건파와 무당파
트럼프의 핵심 지지기반은 공화당 내의 강경 보수파들이다. 미디어들의 투표소 출구조사에서 자신이 ‘매우 보수적’이라고 답한 유권자들의 90% 안팎이 트럼프에게 표를 던졌다. 이런 공화당 내 핵심 지지기반과 아웃사이더로서의 인기가 트럼프의 꺼질 줄 모르는 높은 지지를 떠받치고 있다.
하지만 공화당 예비선거 과정에서 헤일리가 얻어낸 상당한 지지율에서도 보듯 공화당 내에는 트럼프에 거부감을 지닌 온건파들이 있고 무당파층에는 더욱 많다. 트럼프의 약점은 그런 그들에게 침투해서 마음을 돌려 놓기 어렵다는 것이다.
워싱턴DC와 버몬트 주 외에 매사추세츠와 버지니아, 사우스 캐롤라이나, 유타 주 등에서도 경선 승리자는 트럼프였으나, 헤일리가 얻은 득표율이 35~40%나 됐다. 5일의 노스 캐롤라이나 출구조사에서 공화당 지지자들은 85%가 트럼프에 투표했으나, 무당파층 중에서 그에게 투표한 사람은 54%로 크게 떨어졌다. 이런 경향은 버지니아 주에서도 나타났다. 이것이 2020년 대선 때 트럼프가 고전하게 만들었고, 2022년 중간선거 때도 경합주들에서 트럼프가 추천한 후보들이 줄줄이 낙선한 원인이었다.
경선 과정에서 헤일리를 지지한 유권자들이 경선이 끝난 뒤에도 모두 트럼프 지지를 계속 거부하진 않겠지만, 트럼프가 당내의 이런 반대세력을 어떻게든 껴안지 못할 경우 그에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공화당 헤일리 지지자들 중 일부는 5일 공화당 경선 출구조사 때 본선에서는 바이든에 투표하겠다고 응답한 이들도 있었다.
5%의 ‘네버 트럼퍼즈’
트럼프가 완전히 장악한 듯 보이는 공화당은 이처럼 분열돼 있다. 공화당 지지자나 지지자였던 사람들 중에는 트럼프에 표를 던지지 않을 사람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트럼프는 절대 안돼!”라는 그런 사람들은 ‘네버 트럼퍼즈’라고 불리는데, 전체 투표수의 5% 정도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민주당 내 사정은 이에 비해 좀 더 나아 보인다.
고령자인 바이든의 나이 리스크 등에 대한 우려 및 거부감이 적지 않게 존재하지만, 민주당 내의 바이든 지지율은 상대적으로 더 견고해, 민주당 경선과정에서 바이든은 많은 주에서 90% 정도를 얻고 있다.
또 하나의 약점, 4건의 형사사건 재판
1952년과 1956년 대선 때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공화당)와 애들레이 스티븐슨(민주당)이 맞붙은 이후 두 번 연속으로 같은 후보들이 격돌하는 첫 선거가 될 11월 대선에서 바이든과 트럼프가 다시 맞설 경우 누가 더 많은 지지를 받을까.
여러 여론조사에서 지금은 트럼프 지지율이 조금 더 높게 나오고 있다. 2월 초에 발표된 NBC 조사에서는 트럼프가 47%, 바이든이 42%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왔다. 그러나 “만일 트럼프가 유죄 판결을 받는다면?”이라는 가정 아래 던진 질문에 유권자들은 좀 다른 선택을 했다. 그럴 경우 바이든이 45%, 트럼프는 43%로 역전돼 바이든이 더 높은 지지를 얻었다.
트럼프의 또 하나의 중대한 약점은 바로 그에 대한 4건의 형사사건 기소다. 그 가운데 2021년 1월 트럼프 추종자들이 미국 국회의사당에 난입해 점거한 사건을 부추긴 배후 조종 혐의에 대한 기소사건의 첫 재판이 3월 25일 뉴욕 주 법정에서 열린다. 당시 대선 개표 결과 자신의 패배가 분명해진 상황에서 트럼프는 그것을 뒤엎기 위해 자신의 추종자들을 동원한 불법(국가전복 내란죄)을 저질렀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본선 싸움은 이제부터
나머지 3개 사건 재판도 앞으로 계속 진행되는데, 그 중 일부 소송사건에서 대통령선거 전에 판결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 진영은 이를 막기 위해 시간을 끄는 지연전술을 쓰고 있다. 미결 상태에서 대선이 치러지고 트럼프가 이길 경우 그가 자기편 법무장관 임명 등을 통해 기소 자체를 무효화하는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있다. 그리고 설사 대선 전에 유죄 판결이 나오더라도 법률상 그의 입후보를 막을 규정은 없다. 하지만 재판이 유권자들 투표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
NBC 조사에서도 보듯, 그에 대한 재판이 진행돼 그 사건이 다시 조명되면서 대중들의 화제에 오르고 그가 그 과정에서 말 실수라도 하거나 유죄 판결을 받게 되면 여론의 방향이 바뀔 가능성이 있다. 그럴 경우 공화당 내 트럼프 반대자들과 무당파층의 트럼프 지지 이탈과 반대는 더 거세질 것이다.
그러니 누가 이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싸움은 이제부터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