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가 저출산 주범…억울하면 진범 찾아내라

"고용·주거·양육불안 탓" 맞지만 공허한 진단

방송·신문·SNS의 '평균올려치기' '관찰예능'

유명인 삶에 비교하는 청년들 '영적결핍' 심각

2024-03-06     이상현 '스푸트니크' 한국 특파원 
'스푸트니크' 통신 이상현 한국특파원

지난 1월 26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과의 간담회에서 이 장관에게 한국 초저출산의 원인을 물었다. “괜찮은 일자리가 수도권에 죄다 모여 있다 보니 경제활동 인구가 대거 수도권으로 몰려들어 주거비와 사교육비 등 부담 때문에 출산을 꺼리는 게 아닐까”라는 기자의 질문에 이장관은 대체로 수긍했다. 하지만 일자리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딱히 일자리 지역편중과 저출산의 상관관계를 설명하지는 않았다.

기자가 뭔가 착각하고 있다는 점을 깨달은 것은 지난 2월 28일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외신간담회 때였다. 간담회 직전 서울의 합계출산율이 0.55명으로 2022년에 이어 전국 광역지자체 중 가장 낮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아뿔싸 일자리가 가장 많은 서울이 최저 출산율이라니.’ 각 나라에서 온 상주 외신기자들처럼 기자도 오 시장에게 ‘저출산’, 특히 ‘한국 저출산의 원인’을 물었다. 그런데 오 시장 역시 원인 얘기는 전혀 하지 않았다. 그냥 불임가구 지원, 귀국할 유학생을 한국에서 계속 살도록 하는 정책 등을 소개했다. 참석 외신기자 누구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한국은행은 작년 12월 “청년들이 느끼는 높은 경쟁압력과 고용·주거·양육 측면의 불안과 초저출산이 연관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누구나 공감하지만, 누구에게나 공허한 원인 진단이다.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마크 맨슨은 한국인들이 유교문화의 나쁜 점, 자본주의의 단점을 극대화한 점이 최악의 저출산 문제와 밀접하다고 지적했다. 체면과 선입견이라는 유교의 나쁜 점을 극대화하지만, 가족 및 사회와의 친밀감은 팽개쳤다는 것. 자본주의 최악의 면인 현란한 물질주의와 돈벌이에만 혈안이 돼 있고, “개인이 사라지고 자율성이 떨어져” 겪는 극심한 스트레스가 공동체를 병들게 했다는 지적이다. 

샹뱌오(项飙, 항표)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 사회인류학 연구소장은 “요즘 중국 젊은이들이 소비의 재원인 돈(money)에서 해방되기 위해 다른 욕구를 모두 억누른 채 죽어라 일만 한다”며 쉼 없는 날개짓으로 공중에 떠 있는(부유, 浮遊) 벌새(hummingbird)에 현대 젊은이들을 견줬다. 또 평범한 다수 젊은이들이 “이미 초격차로 앞서가는 제3의 대상을 따라잡으려는 ‘획일화한 인생목표’로 무의미하고 출혈적인 경쟁을 자처하는 행태”를 ‘안으로 돌돌 말린(내권, 内卷) 인생’으로 묘사했다. 아울러 ‘부유’와 ‘내권’에 이어 ‘윤택하다’는 뜻이지만 실제론 ‘탈출(Exodus)’을 의미하는 ‘윤(潤)’을 세 번째 화두로 제시한다. 자본주의 시스템이 젊은이들을 ‘부유’와 ‘내권’, ‘윤’으로 내몰았고, 이는 점점 젊은이들의 인간다운 삶을 앗아가 급기야 인류의 당연한 본능인 결혼과 출산이 ‘남의 문제’ 또는 ‘선택의 문제’가 됐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취재하면서 여전히 저출산의 원인(주범)이 뚜렷이 보이지 않았다. 저출산은 여전히 추상적이고 복합적인 시스템 때문에 빚어진 사회적 현상으로만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우연히 한 대학생과 나눈 대화에서 한국사회 저출산의 주범을 찾았다. 주범은 바로 ‘미디어’다. 심지어 ‘현행범’이다. 사회진출을 눈앞에 둔 남성 예비역 대학생이 들려준 얘기는 기자가 그간 어렴풋이 짐작하던 내용을 생생한 사실로 드러내 줬다. 

우선 요즘 20대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어 2개가 ‘미디어 저출산 주범론’을 관통한다. 먼저 ‘평균 올려치기’라는 유행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소통하는 젊은이들은 항상 ‘실제 평균’보다 높은 ‘체감 평균’을 잣대로 살아간다. 졸업 학점도, 회사 연봉도, 살고 있는 월세도, 이성친구에게 건넨 100일 선물 가격도 모두 실제 평균을 웃돌게 표시한다. 그것을 완전히 믿지 않더라도 그 이상을 해야 위축되지 않는 ‘체감 평균’으로 삼는 것이다. ‘지위경쟁 이론’과도 닿아 있다. 

 

분기 출산율이 처음으로 0.6명대로 떨어지며 저출산 현상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 2월28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산후조리원 신생아실에서 간호사 등 관계자들이 신생아들을 돌보고 있다. 통계청 '2023년 출생·사망 통계'와 '2023년 12월 인구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출생아 수는 23만 명으로 전년(24만 9200명)보다 1만 9200명(7.7%) 줄어들며 지난해에 이어 또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지난해 4분기 합계출산율은 0.65명으로 사상 처음으로 0.6명대로 떨어졌다. /연합뉴스

두 번째 유행어는 ‘관찰예능’이다. 미디어는 매순간 모든 분야에서 끊임없이 표상을 만들어 다른 사람들이 이 표상과 비교하도록 만든다. 미디어에 등장하는 대상에 못 미치면 패배감, 자괴감을 갖게 만드는 사회심리적 알고리즘이 만연된 사회의 단면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이것은 자신의 친구나 SNS 친구와의 비교가 아니다. SNS에서 본 부러운 사람의 스펙은 실은 가까운 지인과의 비교가 아니라, 연예인이나 유명인(초격차로 앞선 제3의 대상)들이 제시하는 표상이다. 이성친구에 줄 선물, 직장인의 악세사리, 기타 사소한 간식거리조차 사실은 본인 스스로의 욕구체계에서 파생된 게 아니라 초격차 유명인들의 것들이 잠재의식에 박혀버린 것들이다. 

요즘 모든 방송사들이 유명인을 동원한 이른 바 ‘먹방’과 집안살림 들여다보기, 아무런 특별함도 없는 여가시간 엿보기, 연예인 육아 실황중계 등을 경쟁적으로 방영한다. 이른바 ‘관찰 예능’이다. 유명인의 연출되지 않은 털털함을 드러내려는 의도가 보이지만, 결국은 유명인과 시청자의 ‘실제 평균’상 내재된 격차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외모 같은 본원적 차이는 물론이고 기본적인 생활 소품의 단가, 의식주 생활 규준, 가격에 대한 심리적 저항선 등은 유명인의 기준에 자연스레 수렴한다. 뭔가를 사야 할 때 유명인이 쓰던 물건이 잣대가 되고, 그 물건 소비로 잠시나마 유명인의 품격을 갖추는 착각에 빠진다.

그러나 ‘월급이 통장을 스쳐지나가 버린 순간’ 우리의 젊은이들은 다시 좌절한다. 다수 젊은이는 좌절을 딛고 이를 악물고 ‘부유’와 ‘내권’에 몰입한다. 50%, 아니 20%라도 유명인처럼 살려고 죽어라 일하느라 이성교제할 기회가 구세대보다 크게 줄었다는 통계도 있다. 이게 바로 미디어가 저출산의 주범이라는 결정적인 증거다. 

한국의 모든 방송은 심의 자체가 없어 보일 정도로 모든 연령대 시청자에게 연예인처럼, 유명인처럼 살라고 강권한다. 방송광고는 어린이에게 색조화장 장난감을 팔기 위해 걸그룹 춤을 권하기 일쑤다. 막장 드라마와 관찰예능이 방송 프로그램의 대부분을 차지했고, 개와 고양이를 밀착취재한 방송시간이 급증했다. 

출판인이자 한국 인문학의 대가인 김규항 칼럼니스트는 “자본주의에서 합리성은 경제적 효율성의 수단이기 때문에, 합리적 삶의 추구는 영적 결핍을 낳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자본주의에서 합리적 삶이란 자본의 증식 운동 메커니즘에 나를 효율적으로 욱여넣는 삶, 영성과 경제적 효율성을 교환하는 삶”이라고 정의했다. 

최소한의 제동장치도 부실한 한국 자본주의에서는 (초격차)유명인의 삶이 합리적 삶으로 둔갑한다. 미디어가 둔갑시켜 준다. 둔갑한 유명인의 합리적 삶에 견줘 내 삶은 너무나 처참해서 감추고만 싶어진다. 그렇지 않아도 남다른 강도로 진행되는 한국사회의 영적 결핍은 ‘초격차’로 앞서간다. 

강도 못지않게 지구촌 최고의 영적 결핍 속도가 결정적이다. 한 일본 외신기자는 “외모, 유행 등 모든 문화 소스 면에서 한국이 일본을 앞지른 지 오래”라며 “한국은 인터넷 유튜브 활용도 등도 일본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가장 빨리, 두드러지게 성장했고, 이런 점이 세계 최고 저출산율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만들어 젊은 세대에 유행하는 ‘블라인드’ 앱은 직장과 직업만 밝히고 이성을 찾는 방식인데, 최상위층을 제외한 99%의 이용자들을 좌절하게 하는 앱으로 일본에도 알려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영적 결핍’이 바로 한국 초저출산의 진짜 원인이다. 따라서 ‘영적 결핍’ 증폭기인 미디어는 세계 최고 심각단계 저출산의 주범, 현행범이다. 방송과 신문, SNS 등 한국의 미디어계가 저출산의 진범이라는 혐의를 벗으려면 다른 진범을 지목해보라. 처벌을 덜 받으려면 공범들도 낱낱이 실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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