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없는의사회 “우린 목숨 거는데 당신들은 뭘 거나”

유엔 안보리에서 ‘당장휴전’ 결의 간곡히 호소

미국, 안보리 이어 브라질 G20 회의서도 '고립'

미국과 러시아 위상, 1년 만에 공수 뒤바뀌어

G20 '두 국가 해법' 만장일치…이스라엘 반대

"하마스 의료 시설 활용 증거 단 하나도 못 봐"

2024-02-24     이유 에디터

"오늘 우리 의료진은 환자들을 위해 다시 한번 목숨을 걸고 현장에 복귀했다. 당신들은 어떤 위험을 기꺼이 감수할 것인가?" 국경없는의사회(MSF) 크리스토퍼 라키어 사무총장이 22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 출석해 138일에 걸친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군사 공격으로 가자 지구에 펼쳐진 참혹한 지옥도를 전한 뒤 즉각 휴전 결의안 채택을 요구하며 이렇게 물었다.

 

22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 출석해 가자 참상을 전하는 국경없는의사회의 크리스터퍼 라키아 사무총장. 2024 02. 22 [유엔 안보리 제공] 시민언론 민들레

국경없는의사회, 안보리서 '당장 휴전' 간곡히 호소

"당신들은 기꺼이 어떤 위험을 감수할 것인가"

안보리 브리핑에 따르면, 라키어 총장은 이날 보고에서 "138일간 의사들과 간호사들은 의미 있는 인도주의적 대응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지만, 수십 년간 우리가 지원해온 의료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파괴되고 우리의 환자와 동료들이 살해되고 불구가 되는 과정을 지켜보게 됐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 상황은 이스라엘이 전 가자 주민을 대상으로 벌이는 전쟁이고, 집단적 처벌 전쟁이며, 규칙 없는 전쟁이고,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전쟁이다"라고 개탄했다.

이스라엘군이 병원 깃발로 분명히 식별되는 병원 건물들을 폭격하는 것에 대해 그는 "이런 공격 패턴은 의도적이거나 난폭한 무능의 표시"라면서 "의료에 대한 공격은 인류에 대한 공격"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하마스가 의료 시설들을 군사적 용도로 활용했다는 이스라엘의 주장과 관련해 "우리는 이에 대한 독립적으로 검증된 증거를 단 하나도 보지 못했다"고 일축했다. 이스라엘군은 작년 10·7 하마스 사태 이후 가장 최근의 나세르 병원 습격을 포함해 모두 9곳의 병원에서 의료진과 환자들을 강제로 내쫓았다. 국경없는의사회 의료진도 5명 숨졌다.

라키어 총장은 "이 방에선 더 많은 인도주의적 지원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넘쳐나지만, 가자에선 매일 점점 더 고갈되고 있다"면서 "우리는 최소한의 것도 없는 상황에서조차 어떻게 살아남을지를 논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임신부가 방치되고 플라스틱 텐트에서 출산하며, 마취 없이 절단 수술을 벌이는가 하면, 피로 물든 거즈들을 빨아서 다른 환자에게 사용하고 있는 극한적 상황을 소개했다.

 

이스라엘 탱크들이 가자 국경을 따라 달리고 있다. 2024 02. 23 [AFP=연합뉴스]

국경없는의사회, 휴전 결의안 '비토' 미국 성토

"휴전이 빠진 어떤 결의안도 중대한 과실"

'생존 가족 없는 부상한 아이'란 뜻으로 의료진이 새로운 약어인 WCNSF(Wounded child, no surviving family)를 만들었다면서 특히 가자 어린이들의 참상을 전했다. 그는 "이 전쟁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은 트라우마, 부상 등 눈에 보이는 상처뿐 아니라, 반복되는 이주와 끊임없는 공포, 잘려 나가는 가족들 목격 등에 따른 보이지 않는 상처를 견뎌야 한다"면서 "이런 심리적 상처로 인해 다섯 살 아이들이 '차라리 죽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

안보리의 무능과 그 주범인 미국을 성토했다. 그는 미국의 비토(거부권 행사) 때문에 안보리가 휴전을 결의할 기회를 세 번이나 놓쳤다고 비판한 뒤 "가자 주민은 휴전이 필요하다. (미국이 말하는) 실행가능한 때가 아니라, 지금 당장이어야 한다. 일시적 진정이 아니라 지속적인 휴전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이어 "휴전이 빠진 어떤 결의안도 중대한 과실"이라고 말했다.

국경없는의사회의 보고를 마친 뒤 미국의 로버트 우드 주유엔 차석대사는 하마스 억류 인질의 석방 없이 가자에서 지속가능한 휴전을 있을 수 없다면서 "미국은 이집트, 카타르와 함께 인질 석방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드는 최후 피란처로 난민 100만 명 이상이 몰린 가자 최남단 국경도시 라파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지상 공격 계획과 관련해 민간인 피해와 역내 불안정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하면서 "이스라엘에 우리의 우려를 분명히 전했다"고 말했다. 중국의 장쥔 주유엔 대사는 라키어 총장이 전한 "가자의 비극적 그림이 어떤 안보리 이사국(미국)의 양심을 건드렸기를 희망한다"며 또 하루의 전쟁은 더 큰 재앙을 낳을 것을 알면서도 휴전 결의안을 거부한 미국의 행동에 다시 한번 유감을 표시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에 라파 군사 공격 철회와 팔레스타인 인민에 대한 집단 처벌 중단을 촉구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21일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 회의가 열렸다. 2024 02. 21 [타스=연합뉴스]

미국, 안보리 이어 브라질 G20 회의서도 '고립'

동맹국 호주도 가자 휴전 지지, 이스라엘 비판

국제 외교무대에서 가자 전쟁 문제로 인한 미국의 고립은 유엔 안보리에서뿐이 아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21일부터 이틀간 진행된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회의에서도 확인됐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가자 위기가 악화하면서 G20에서 고립된 미국'이란 제목의 22일 기사에서 "미국의 즉각적인 가자 휴전 반대는 G20 기간에 반복해서 비판을 받았다"고 전하고 "이 문제와 관련해 미국의 고립을 보여주는 가장 최근의 사례"라고 지적했다.

WP에 따르면, 올해 G20 의장국인 브라질의 마우루 비에이라 외교부 장관은 미국에 대한 성토로 회의를 시작했다. 그는 지난 20일 즉각적인 인도주의 휴전을 촉구하는 안보리 결의안이 미국의 거부권 행사로 세 번째 실패한 것을 거론한 뒤 유엔 안보리의 기능이 마비됐다고 비판하면서 "이렇게 손 놓고 있는 상황은 무고한 인명 손실을 초래한다"고 말했다.

미국 동맹국인 호주의 케이티 갤러거 재정여성공공서비스 장관도 가자의 즉각적 휴전을 지지하고, 100만 명이 넘는 난민이 몰린 라파에 대한 이스라엘의 지상 공격이 초래할 "추가적 대량파괴"에 대해서도 강하게 경고했다. 갤러거는 "우리는 이 길을 가지 말라고 다시 한번 이스라엘에 말한다. 그것은 정당화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말 제노사이드(집단학살) 혐의로 이스라엘을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날레디 판도르 국제관계협력부 장관은 세계 지도자들이 이스라엘이 "제멋대로 해도 처벌받지 않도록 허용해왔다"면서 "우리는 팔레스타인 인민들을 실망시켰다"고 말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21일 개막된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한 미국의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왼쪽)과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외교장관(오른쪽)의 모습. 2024. 02. 21 [AFP=연합뉴스]

미국과 러시아 위상, 1년 만에 공수 뒤바뀌어

G20 '두 국가 해법' 만장일치…이스라엘 반대

워싱턴포스트는 이번 브라질 G20 회의 참석자들 발언을 보면 작년 인도 회의 때완 딴판이라고 봤다. 지난해에는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기 위해 회원국들의 규합에 나섰지만, 1년 사이에 미국의 국제적 위상이 수세로 바뀌었다. 1년 전에 블링컨은 유엔 헌장과 주권의 원리를 내세우며 러시아의 점령을 비판했을 때 회원국의 공감을 얻어냈지만, 올해에는 회원국들이 동일한 유엔 헌장과 주권의 원리를 내세워 미국이 이스라엘에 대한 정치적 보호와 수십억 달러의 폭탄 및 군사 장비 제공을 통해 가자 전쟁을 지속시키는 것을 비난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국제위기그룹(ICG)의 다자 문제 전문가인 리처드 고원은 "1년 전 미국이 우크라이나 문제로 러시아를 수세로 몰아넣었다"며 "이제 바이든 행정부는 우크라이나와 가자 사태에서 통제력을 잃는 듯하고 11월 대선에 대한 통제력도 잃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G20 외교장관들은 이틀 일정을 모두 마친 22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에 대한 '두 국가 해법'을 만장일치로 지지했다. 마우루 비에이라 브라질 외교부 장관은 이날 회의가 끝난 뒤 "두 국가 해법이 분쟁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것에 대한 사실상의 만장일치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독립 국가로 인정할 수 없다며 반대하고 있다.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모든 참가자가 두 국가 해법을 지지했다면서 "팔레스타인이 분명한 정치적 전망을 지니고 국가를 건설하지 않는 한 이스라엘에는 평화와 지속가능한 안보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자지구 가자시티에 있는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 본부. 2024.02.22. [AFP=연합뉴스]

미 국가정보국, 유엔 팔 난민기구 10·7 사태 연루

이스라엘의 원 정보 공유 거부로 자체 확인 못해

비에이라 장관에 따르면, 모든 G20 국가가 가자 전쟁과 중동 전역으로 번지는 분쟁에 우려를 표하고, 휴전과 가자에 대한 인도주의 지원을 촉구했다. 이스라엘의 라파 공격 계획도 비판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지킴이' 미국의 블링컨 장관은 회의를 마친 뒤 행한 기자회견에서 가자 분쟁 종식이 G20 국가들의 공통 목표임을 확인했다면서도 "전략과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서는 의견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우리는 실질적 결과를 얻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얼버무렸다.

한편, 월스트리트저널의 21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가정보국(DNI) 산하 국가정보위원회(NIC)는 지난주 펴낸 보고서에서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의 소수 직원이 하마스의 10·7 기습 공격에 가담했다는 이스라엘 측 주장이 타당해 보이지만, 이스라엘의 원 정보 공유 거부로 자체적으로 확인하진 못했다고 밝혔다. 또한 보고서는 UNRWA 직원 1천 명 이상이 하마스와 관련돼 있다는 이스라엘의 추가 주장도 확인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사실이 의심되는 이런 이스라엘의 주장을 구실로 미국과 독일, 일본을 비롯한 주요 기부국들이 재정 지원을 보류함으로써 UNRWA가 고사 위기에 처해 있다. 

관련기사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