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보호지역 확대' 두달 전 약속조차 뒤집은 정부

울산 간 윤석열 "비수도권 그린벨트 대대적 해제"

총선 앞두고 표심 잡으려 모순된 정책 쏟아내

최후의 보루인 환경평가 1~2등급지도 해제

그린벨트 풀어도 비수도권은 기업 유치 난망

“부동산 투기 세력에 개발 이익 기회만 줄 것”

2024-02-22     장박원 에디터

정부는 지난해 12월 12일 국무회의에서 '제5차 국가생물다양성전략'(2024~2028)을 의결했다. 2030년까지 자연 보호지역을 전 국토의 30%로 늘리고 훼손된 생태계를 복원하겠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자연 청정 지역의 총량을 확대해 생물다양성 위협요인을 줄여나간다는 원칙도 천명했다. 이는 국제사회에 공언한 약속이기도 하다. 환경부는 “제15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채택된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의 23개 실천 목표를 국내 상황에 맞게 구성한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자료 : 환경부. 제5차 국가생물다양성전략(2024~2028) 개요.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불과 두 달 전에 확정된 국가전략과 모순되는 정책을 21일 내놓았다. 비수도권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규제 혁신안이다. 이날 윤석열 대통령은 그린벨트가 다른 지역보다 많은 울산을 찾아 13번째 민생토론회를 진행하며 이 정책을 발표했다.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이 대놓고 선거운동을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는 김포와 구리 등 서울 인접 도시를 서울로 편입시켜야 한다는 국민의힘의 수도권 개편 공약과도 상충된다. 정부와 여당의 이런 엇박자는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그린벨트 규제 혁신안은 환경 보존의 금도를 넘어섰다. 무엇보다 지역 전략사업으로 지정되면 그린벨트 해제 총량에 포함하지 않고 개발이 불가능한 환경평가 1~2등급지까지 풀겠다는 건 과도한 규제 완화다. 수도권에 집중된 기업들을 지방으로 유인하겠다는 취지지만 이 정도 이유로 국토의 허파 역할을 하는 자연 보존 구역까지 개발을 허용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그린벨트는 난개발에 따른 부작용을 막기 위해 박정희 정부 때인 1971년부터 지정되기 시작했다. 1977년까지 8차례에 걸쳐 전국 14개 도시권에 총 5397㎢가 지정됐는데 이는 전 국토의 5.4%에 달하는 면적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말 이후 주택 공급과 산업단지 조성, 지역 민원 해결 차원에서 여러 차례 그린벨트를 해제하며 지금은 7대 광역도시권 내 3793㎢만 남았다. 전 국토에서 차지하는 면적도 3.8%로 축소됐다. 이 중 64%가 울산을 비롯한 부산과 대구, 광주, 대전 등 비수도권에 있다.

 

수도권 일대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너머로 아파트 단지가 보이고 있다. 2020.7.20. 연합뉴스

그린벨트 해제는 법 개정 없이 국토교통부 훈령인 ‘개발제한구역의 조정을 위한 도시·군관리계획 변경안 수립 지침’만 개정하면 추진할 수 있다. 정부는 올해 5월 안에 관련 지침을 개정하고 지역 전략사업 추진을 위한 그린벨트 해제 신청을 받아 내년부터 사업이 착수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한다. 정부가 비수도권 그린벨트를 대대적으로 해제하는 건 2003년 이후 20년 만이다.

하지만 비수도권 그린벨트를 푸는 정책은 지역경제 발전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고 무분별한 개발을 부추기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특히 지역별 특성을 고려해 일부 지표의 등급 기준을 완화하고 환경평가 1~2등급지를 해제하면 큰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 현재 전국 그린벨트 중 1~2등급지 비율은 80%에 육박한다. 이번 조치로 훼손 가능성이 매우 높다. 윤 대통령이 직접 그린벨트 해제를 공언한 울산과 창원 지역에 1~2등급지가 몰려있는 것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모호한 지역경제 활성화나 산업단지 조성을 위해 그린벨트 해제를 허용하고 국민 생활과 미래세대를 위한 토지이용규제를 낡은 규제로 치부하면서 없애겠다는 건 특정 집단의 이익만을 보호하고 무분별한 개발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라며 정부를 비판했다.  경실련은 현재 토지이용규제가 적용되고 있는 규제지역의 필요성을 5년 단위로 검토하겠다는 정부 방침도 그린벨트 해제를 가속화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규제지역의 필요성을 5년 단위로 검토하겠다는 것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규제지역을 해제하고 또 새롭게 지정하겠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경실련은 "토지이용 규제가 필요한 지역의 생태적 가치 혹은 사회적 가치는 5년이라는 한정된 기간 내에 그 존재 여부를 분명하게 확인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개발제한구역 도면 [국토교통부 제공] 연합뉴스 

그린벨트는 국토의 난개발을 막고 국민의 건강할 삶을 위한 자연 공간을 확보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해왔다. 우리뿐 아니라 대부분의 선진국은 더 많은 자연 녹지를 확보하기 위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무분별한 개발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 그런데도 거의 모든 정부는 틈만 나면 그린벨트를 해제하려고 했다. 주택 공급과 지역경제 활성화 등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지방자치단체와 땅 주인의 민원을 들어주기 위해서였다. 지금처럼 선거를 앞둔 시기에 그린벨트 해제가 남발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번 정부의 규제 혁신안은 실효성이 떨어진다. 그린벨트를 풀어 싼값에 땅을 공급해도 기업들이 비수도권으로 이전할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수도권인 안산·의정부·김포·하남시조차도 2021년 경기도에서 부여받은 해제 가능 총량을 활용하지 못해 회수당한 사례가 있다. 이번에도 지역 유권자를 겨냥한 선심성 공약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그린벨트가 아니라도 비수도권에는 건물과 공장을 지을 땅이 널려있다. 땅이 없어 기업들이 본사나 공장을 이전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우수 인재와 물류, 거래선 등 사업에 필요한 자원이 수도권에 몰려있기 현실적으로 지방 이전이 힘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비수도권 그린벨트 해제는 지역경제 발전보다 부동산 투기 세력이 개발이익을 챙길 기회만 줄 뿐이다.

 

 

관련기사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