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촌기본소득'이란 사과나무를 심자
연천군 청산면에서 월 15만원 지급해보니
인구감소 다른 면과 달리 청년 전입 늘어나
전국확대 정책공약으로 총선 이슈화해 볼 만
입춘이 지났다. 이맘때가 되면 올해 농사를 어떻게 지을까 하는 농심(農心)이 생기곤 한다. 이 밭에는 뭘 심을까, 저 밭에는 뭘 심을까. 작년 초겨울 밭에 뿌려놓은 퇴비는 흙 속에서 미생물들과 어울려 좋은 밑거름이 되었을 것 같고, 작년 겨울 볏짚으로 덮어놓은 토종 마늘과 배추는 곧 새싹을 틔우기 위해 지금쯤 땅의 기운을 한껏 받아안고 있을 것만 같다. 도시에서 살 때는 내 삶과 무관했던 24절기가 나를 움직이게 하는 시간표가 된 것을 보면 초보 농부는 된 것 같은 뿌듯함도 생긴다. ‘입춘’은 농부의 마음속에 봄이 들어서기에 그렇게 불린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절망과 체념에서도 사는 힘을 끌어내는 농심(農心)
곧 우수(雨水)다. 우수가 되면 대동강 물이 풀린다는데 꽁꽁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생각하면, 들던 춘심이 부질없게 느껴진다. 며칠 전 지구 평균 온도가 1.5도 상승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죄스럽게 느껴졌다. 지난 2018년 10월 인천 송도에서 열린 제48차 IPCC총회에서 발표한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에서 예측하기로는 지구 평균 온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상 상승하는 시기가 2030년~2052년 사이였다. 가장 부정적인 예측이었던 2030년도보다도 6년이나 일찍 지구 평균 온도가 1.5도 이상 올랐다. 2018년에는 예측하지 못했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탄소배출이 줄었던 시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구 온도 상승은 앞당겨졌다. 위 보고서는 1.5도 상승에 따라 “많은 지역에서의 극한 기온의 온난화(높은 신뢰도), 일부 지역에서의 호우의 빈도, 강도 그리고/또는 강수량의 증가(높은 신뢰도), 일부 지역에서의 가뭄의 강도 또는 빈도의 증가(중간 신뢰도)”를 예측했다. 그래서 봄이 지나 다가올 여름을 피하고 싶어진다. 이런 현실을 자식에게 후세대들에게 속수무책 물려주는 것이 죄스럽다. 탄소배출 깡패 동물인 인간, 존재 자체가 탄소배출인 인간동물을 생각하면 시간의 흐름조차도 막고 싶어진다. 봄이 와도 봄이 오는 것을 원치 않는 춘래불원춘(春來不願春)이다. 인간아! 왜 사냐! 하고 자문하면 답을 찾기 어렵다.
그런데 요즘 나의 사는 힘은 역설적이게도 이런 절망과 체념에서 나온다. 그 이유가 ‘유(有)는 무(無)에서 나온다(有生於無)’는 노장철학의 영향 때문인지, 티끌 같은 작은 씨앗에서 줄기와 잎과 꽃과 열매가 마술처럼 생겨나는 기적 같은 역사(役事)를 접하면서 받는 생명의 기운 때문인지, 또 어떤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나는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이 누군가의 낭만적 문구가 아니라 이제는 내 영혼 속에서 나를 움직이는 실체적 문구가 된 것은 분명하다.
소멸위험 농어촌지역 살릴 기본소득
최근 내가 심고 싶은 또 하나의 ‘사과나무’는 <농어촌기본소득운동전국연합>(이하 기본소득연합)이 추진하고 있는 ‘농어촌기본소득’이다. <기본소득연합>의 이재욱 상임대표는 최근 「지방소멸은 없다」라는 농어촌기본소득 소개 책자를 출간했다. 이 대표는 소멸위험에 빠진 농어촌지역부터 해당 지역의 주민들에게 매월 30만 원의 농어촌기본소득을 지급하자고 제안한다. ‘기본소득’이 특정인 또는 특정 정당의 전유물이 아님은 2023년 3월에 서울시의회 의장(국민의힘 소속)을 포함해 전국 17개 시·도 의회 의장들이 전라북도의회(의장 더불어민주당 소속)가 제안한 「농촌기본소득 시행 촉구 건의문」의 필요성에 적극 공감하며 원안 동의한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제안에 대해 농림축산식품부는 ‘수용불가’를 통보했다고 한다. 보도에 따르면 농식품부는 검토 의견을 통해 “농촌기본소득 지급 대상 선별 문제를 비롯해 도시민과의 형평성, 재원 확보 문제 등에 난제들이 쌓여 있고, 무엇보다 이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불가 이유를 설명했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적지 않은 예산이 들어갈 것이고 유사한 예산의 조정도 필요할 것이니 ‘사회적 합의’와 그에 따른 법제화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국회의원 선거는 그런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낼 좋은 장이다. 오는 4월 10일 총선을 앞두고 <기본소득연합>이 적극적인 활동을 하는 이유일 것이다. 여기에 나도 힘을 보태고자 이 글을 쓴다.
먼저 ‘농어촌기본소득’이 어떤 의미 있는 효과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한 의견이다. 이에 대해서는 2022년 3월부터 농촌기본소득 시범사업을 시행하고 있는 경기도 연천군 청산면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경기도는 이재명 도지사 시절 경기도의 113개 면 지역 중 인구 수가 3000명 이상이고 전국 면 평균 인구 수(4167명) 이하인 곳 중 지역소멸지수 0.5 이하인 4개 면 지역을 대상으로 무작위 추첨을 통해 시범지역을 선정하고, 선정된 지역의 모든 주민에게 매월 15만 원의 지역화폐를 2022년 3월부터 2026년 12월까지 58개월 동안 지급하는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의 개요는 아래 표와 같다.
이 기본소득으로 청산면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인구수와 사업체수에서의 변화는 확연하다.
위 표에서 보듯 2018년 ~ 2022년 사이 연천군의 2읍·8면 중에서 인구가 증가한 읍·면은 청산면이 유일하다. 특히 청산면의 인구는 2021년까지 줄어들다가 기본소득이 실시된 2022년 322명이 늘어났고, 반면 같은 기간 군 전체인구가 4만 2721명에서 4만 2062명으로 659명 감소된 것과 크게 대조된다는 점에서 농촌기본소득의 효과가 컸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늘어난 인구의 연령대는 어떻게 될까?
역량 갖춘 귀촌인도 늘리고 사업체도 늘리는 유인책
농촌기본소득이 시행되기 전인 2021년 12월과 2022년 5월 시행되고 20개월 뒤인 2023년 12월의 인구를 비교해 보았다. 베이비붐 세대인 60대에서 가장 많은 전입(134명)이 있었고, 그 다음으로 20대 청년의 전입(98명)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베이비붐 세대가 인생이모작을 해야 할 시기이고, 20대는 새로 창업이나 취업을 해야 할 시기라는 점에서 향후 청산면의 경제적 변화에 대한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한다. 바로 농촌기본소득이 공정귀촌의 유인책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단서다.
비록 충분하진 못하더라도 농촌에서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는 기본소득을 제공받으며 자신이 도시에서 함양하고 축적한 인적·물적 역량을 촌에서 발현할 수 있는 귀촌인들이 늘어난다면 이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은 결과를 만들어왔던 그동안의 각종 농촌개발사업들과는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낼 것이라 생각한다. 그동안의 숱한 농촌개발사업이 농촌소멸을 막아내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진행됐던 사업을 유지하고 운영할 수 있는 마을의 주체가 없거나 부족했기 때문이다. 전문적 역량을 갖춘 귀촌인과 마을의 유무형 자원을 체화하고 있는 선주민이 서로 협력해 자립적이고 공동체 지향의 마을 발전을 추진하는 데 농촌기본소득은 특별한 계기를 만들어 줄 것이다.
이런 나의 희망 섞인 기대는 지역화폐를 사용할 수 있는 사업체 수의 증가 통계와도 무관치 않다. 연천군이 공지한 2023년 6월 현재 농촌기본소득 가맹점 안내자료를 보면 281개의 사업체가 소개돼 있다. 농촌기본소득이 처음 지급될 시기인 2022년 4월 190여 곳에서 90곳 가량이 늘어난 수치다. 그만큼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를 했을 것으로 여겨지고, 전입한 20대와 베이비붐 세대의 역할도 적지 않았을 것이라 추정된다.
관련 통계를 더 찾아봤지만 아직 최근 년도의 통계들이 작성되지 않아 더 구체적 비교를 할 수 없어 아쉽다. 올해 연천군은 2년간 시행된 농촌기본소득 시범사업의 정책효과를 중간 분석하기 위한 용역을 시행할 것이라고 하니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내용들을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이라 기대된다.
청소년들에게도 ‘자기결정적 감각’을 일깨워주는 계기
내가 농촌기본소득에 대한 희망을 갖는 이유는 청산면 청소년들에게서 발견된 농촌변화의 가능성이다. <농어촌청소년육성재단>이 2022년 11월 발표한 「농어촌 청소년 생활실태연구 – 청소년의 청산면 농촌기본소득 경험을 중심으로」 보고서에는 사회구성원으로서 ‘호명(呼名)된 주체’로서 자부심을 느끼고 자립적인 성장을 도모하는 청소년들의 인터뷰가 실려있다.
“저는 원래는 그냥 여기는 사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기본소득을) 받고 여기저기를 막 돌아다니다 보니까 여기는 이제 제가 진짜 좋아하는 고향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초등 I)”
“청소년은 이렇게 막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이 안 되잖아요. 환경도 안 되고. 그런데 그런 부분에서 어떤 일정량을 받았을 때 이 돈을 갖고 무엇을 하겠다는 그런 미래에 대한 이런 생각도 들 것 같고, 그 돈 관리에 대한 개념도 생길 것 같거든요. 그래서 그런 부분은 좋은 것 같아요. 무엇보다 손 안 벌리고 내가 일정 부분 나오는 부분이니까 이 돈 가지고 뭘 한다는 게 마음가짐이 달라질 것 같아요. (고등 F)”
“지역을 바라보는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고 해야 하나? 음, 뭐라 그러면 되지? 되게 뭔가 약간 그런 게 좀 있는, 약간 시골에 있는 그런… 예를 들어 식당이면 시골에 있는 식당은 저기 조금 시내, 도시에 있는 데 보다 좀 안 좋을 거라고 그런 생각, 그런 게 있잖아요. 좀 맛없을 거다. 좀 맛없을 것 같다는 그런 게 있잖아요. 근데 이걸 받고 조금 이 지역 내에서 쓰고 그러다보니까 뭔가 지역 그런 생각이 조금 달라지는… 편하기도 하고. (고등 E)”
“기본 소득 관련해서 저희가 지금 사실 활동을 하고 있는 게 있어요. 아무래도 가장 큰 지금 기본소득의 문제점은 제가 생각하기에 돈 쓸 데가 너무 없다는. 그리고 근데 생각보다 많은데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못 쓰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서. 그런 맛집들 같은 거를 이렇게 청산 전체를 다 둘러보면서 맛집 탐방을 하고 저희가 지도를 만드는 활동을 하고 있어요. 기본소득을 어디서 사용할 수 있다는 그런 거를 해서 이렇게 나눠주고 하면 아무래도 도움이 더 되지 않을까 싶어서 그런 활동을 지금 하고 있어서. (고등 C)
농촌기본소득은 청산면 청소년들을 ‘시민으로서 자기결정적 감각을 일깨워주고’, ‘지역 내 상호작용 및 관계를 확장’시켜주고, ‘삶의 다양성과 자극의 확대’를 가능케 해주고, ‘지역사회에 대한 평가 상승 및 터전으로서의 고려’를 할 수 있게 해준다고 연구서는 분석했다. 청소년들은 ‘청기와’라는 모임을 만들어 ‘농촌기본소득 활용도’라는 안내지를 제작했다. 이 안내지에는 청산면의 농촌기본소득 지역화폐 가맹점 리스트는 물론 청소년들이 꿈꾸는 청산면의 미래에 대한 제안도 담겨있었다. 농촌기본소득으로 마련된 자신의 돈을 써서 공공의 이익을 위한 공공재를 만들어 낸 청산면 청소년들의 활동을 보며 농촌기본소득이 만들어 낼 새로운 농촌에 대한 기대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전국적 정책 공약으로 총선 이슈화해 볼 필요성
<기본소득연합>은 ‘농어촌기본소득’을 ‘지방소멸의 방지턱’, ‘심정지 농어촌의 심폐소생술’이라며 현재의 농어촌 소멸위기의 속도를 늦출 수 있는 대안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내가 보기에 단기적으로는 그런 역할을 할 수 있겠으나 장기적으로는 압축성장으로 부실하게 자랐던 민주공화국의 뿌리를 실하게 만들어 내는 좋은 밑거름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설령 이 청소년들이 고향을 떠나 더 넓은 곳에서 소양을 쌓고 경험을 넓힌다고 해도 그들은 자신을 주체적으로 살게 해줬고 여전히 그것이 가능한 고향으로 돌아올 씨앗, 바로 공정귀촌의 씨앗이 심어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경기도는 올해 중간평가를 실시해 정책효과가 입증되면 경기도 내 인구 소멸위험도가 높은 면을 중심으로 확대하고 최종적으로는 도내 전체 면 지역으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 독자적 추진은 불가능하다. 과거 강원도 정선군과 전북 장수군에서 독자적으로 시도하다가 실패했다. 결국 국회에서 농어촌기본소득을 실행할 수 있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 이 법과 충돌하는 다른 정책 및 법들과의 충돌을 조정해야 한다. 우선 <기본소득연합>의 제안처럼 전국의 89개 인구감소지역에서부터 시범적으로라도 시행할 수 있게 하면 좋겠다. 현재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에 의해 집행되는 ‘매년 1조 원의 지방소멸대응기금을 지방자치단체가 기본소득 지급에 활용할 수 있도록 재정집행권을 허용’한다면 연천군 청산면에서 1년 만에 인구의 10%가 늘어난 것과 같은 시범사업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일단 이런 일을 해야 할 국회의원을 뽑아야 한다. 이번 총선에서 전국적인 정책 공약으로 ‘농어촌기본소득’이 이슈화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