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한동훈, 서천 화재현장 동행이 보여주는 것

'독립투사' 됐나 했더니 도로 '윤석열 아바타'

'김건희 호위무사'서도 여전히 벗어나지 못해

김건희↔특검↔공천 연계 돼…언제든 재점화

'정권 심판론' 생각하면 김건희 버려야하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한동훈 비대위원장

윤석열 부부 벗어나려 할수록 당정 균열 가속화

2024-01-23     김성진 기자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김건희 방탄'과 '총선 공천' 문제 등을 두고 갈등을 겪은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23일 충남 서천 특화시장 화재 현장을 동시에 방문했다. 양측의 충돌이 표면화한 지 이틀 만의 만남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1시 30분쯤 화재 현장에 도착했다. 먼저 현장에 도착한 한 위원장은 윤 대통령을 만나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윤 대통령은 한 위원장과 악수하며 어깨를 한 차례 두드리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23일 충남 서천군 서천읍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만나 허리숙여 인사하고 있다. 2024.1.23. 연합뉴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은 지역 소방본부장으로부터 화재 진압 상황을 보고받고, 현장을 점검했다. 두 사람은 현장 점검 뒤 각자 다른 차량을 타고 떠났지만, 익산역에서 다시 만나 함께 열차편으로 서울로 복귀했다.

언론에서는 깍듯이 인사하는 한 위원장의 사진 등을 띄우며 사실상 두 사람의 만남을 '갈등 봉합 국면' '갈등 봉합 수순' 등으로 해석하고 있지만, 갈등의 근본적인 문제가 일회성 만남으로 일단락됐다고 보긴 어렵다.

독립투사된 줄 알았더니 도로 아바타

이틀 전부터 불거진 윤석열-한동훈 갈등은 △'김경율 사천 논란'으로 촉발된 국민의힘 공천 △김건희 명품가방 수수 문제 처리 등이 원인이었다. 한 위원장은 이관섭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자신에게 사퇴 요구를 했다는 사실을 공개하며 대통령 측과 정면 충돌했다.

이를 두고 여의도에선 "약속대련이다(개혁신당 이준석 대표)" "약속대련 아닌 실전이다(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고도의 정치게임인지 갈등의 폭발인지는 알 수 없다(홍준표 대구시장)" 등 여러 갈래의 해석이 나왔고, 보수언론에선 한 위원장의 '독립' '홀로서기' '마이웨이' 등으로 해석했다.

갈등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여전히 확실치 않지만, 이 국면에서 보수진영과 언론이 한 위원장의 '독립' 홀로서기' '마이웨이'를 강조한 것은, 그의 태생 문제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202년 2월 검찰총장과 부산고검 차장 시절의 윤석열과 한동훈. 한동훈은 이 당시 사무실을 찾아온 채널A 이동재 기자 등을 만나 대화를 나눈 바 있다.2020.2.13(연합뉴스)

한 위원장은 윤 대통령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서울대 법대 선후배 관계인 이들은 국정농단 특검 수사팀장-특검 파견검사, 서울중앙지검장-3차장검사, 검찰총장-대검 반부패강력부장 등의 관계를 거치며, 오랜 기간 '윤석열 사단'의 '2인자' 자리를 굳혀왔다.

한 위원장은 윤 대통령 당선 뒤에도 법무부 장관으로서 이재명 대표 사법 리스크를 띄우며 윤 대통령 '정적 지우기' 최일선에 섰다.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받았던 정직 2개월 처분 재판에선 '패소할 결심'을 보여주고, 김건희 씨 명품가방 수수엔 모르쇠로 일관하는 등 여론의 질타도 아랑곳 않고 충신으로서 면모를 보였다.

세력도 없는 한 위원장이 여당 비대위원장으로 추대받으며 정치 전면에 나선 것도 본인의 능력이 아닌 윤 대통령의 '후광'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채널A 검언유착' 사건에서 감찰을 막아줬던 검사 시절 윤석열 총장이 대통령이 돼서 '2인자' 한동훈에게 '레드카펫'을 깔아준 셈이다.

그렇기에 한 위원장은 '윤석열 아바타' '김건희 호위무사'라는 태생적 문제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는 한 위원장 본인뿐 아니라 수구·보수 세력에게는 곤혹스러운 선택지일 수밖에 없다.

수구·보수 세력 전체에 있어 존망 문제가 달린 이번 총선은 정권 심판론의 핵심인 '윤석열·김건희 부부 리스크'와 어떻게 선을 긋느냐가 최대 관건이다. 반대로 윤석열·김건희 부부에게도 이번 총선은 단순히 '레임덕'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생존이 걸린 문제다.

이들은 총선에 있어서 운명 공동체지만, 대통령 부부 리스크, 특히 김건희 씨를 어디까지 안고 가느냐에선 기로에 설 수밖에 없다. 한 위원장 취임 한 달 동안 국민의힘 지지율이 답보 상태인 점은 그만큼 심판론이 거세다는 것을 보여준다. 총선에서 성과를 내야 하는 한 위원장으로서도 고민 지점일 수밖에 없다.

한 위원장이 김건희 씨의 명품 가방 수수에 대해 "전후 과정에서 분명히 아쉬운 점이 있고, 국민들이 걱정하실만한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18일)" "국민의 눈높이에서 생각해야 한다(19일)" 며 김건희 씨의 사과 정도는 필요하다는 듯이 시사한 점도 이런 입장과 맥락에서 해석된다. 보수언론에서 한 위원장의 '독립' 홀로서기' '마이웨이'를 강조한 것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충남 서천군 서천읍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에서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만나 피해 상황을 둘러보고 있다. 2024.1.23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연합뉴스

그러나 한 위원장은 이번 대통령과 갈등(혹은 연출)을 통해 '아바타' 역할에서 조금 벗어나는듯 했지만, 결국 제자리를 찾아간 것으로 보인다. 한 위원장이 갈등 이틀 만에 자신의 일정을 조정하며 윤 대통령을 따라 서천까지 간 것은 그가 '윤석열 아바타'에서 여전히 독립하지 못했다는 것을 방증한다. 일정 부분 훼손되긴 했지만, 윤 대통령의 당 장악력도 건재한 것으로 보인다.

한 위원장은 이날 윤 대통령과 상경 열차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한 뒤 기자들과 만나 '윤·한 갈등이 봉합되는 것이냐'는 질문에 "대통령님에 대해 깊은 존중과 신뢰의 마음을 갖고 있다"며, 비대위원장 취임 이후 가장 낮게 엎드렸다. 지금 그의 위치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수습 않고 대충 묻은 갈등…또 터질듯

한 위원장은 '윤석열 아바타'뿐 아니라 '김건희 호위무사' 역할에서도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의 핵심은 김건희 씨의 명품 가방 수수 문제였다. 한 위원장이 서울 마포을 출마를 밀어준 김경율 씨(비대위원)의 '마리 앙투아네트' 발언은 김건희 씨의 '역린'을 건드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 위원장은 이번 갈등 국면에서 김건희 씨에 대해 입장을 명확하게 정리한 적이 없다. 스스로 입장 정리도 어려워 보인다. 그저 미묘하게 말을 바꿨고, 정치권과 언론이 김건희 씨와 조금 선을 그은 것처럼 해석했을 뿐이다.

한 위원장의 불명확한 태도는 전날(22일) 국회에서 이뤄진 기자들과의 문답에서도 확인된다. 그는 '김건희 리스크가 당정 갈등 요인으로 거론되는데 입장에 변화가 있느냐'는 질문에 "제 입장은 처음부터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법무부 장관 퇴임 즈음부터 지금까지 일련의 발언을 보면 최근 들어 미묘하게 뉘앙스가 바뀌었지만, 변한 게 아니라고 한 것이다. 명확한 입장으로 보기 어렵다.

오히려 이번 갈등이 불거지는 과정에서 김건희 씨가 이 정권의 '실세' '브이아이피(VIP)' 노릇을 한다는 점만 재확인됐다. 윤 대통령 입장에서 보면, 총선을 위해 자신이 직접 한 위원장을 '선수'로 내세운 만큼 사퇴 요구할 개연성이 적을 뿐더러, 정치인에게 전화·메신저를 서슴없이 사용하는 평소 성향을 고려한다면 직접 전화해도 충분할 문제다.

그럼에도 이관섭 비서실장이라는 제3자를 등장시켜 의사를 전달하고, 대통령 부부의 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국회의원을 통해 한 위원장 사퇴 관련 기사를 확산시킨 점 등은 이번 대통령실의 사퇴 요구가 대통령보다는 김건희 씨 의중이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리고 김건희 씨 의중에 따라 대통령실이 움직였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윤 대통령이 "가장 아끼던 사람에게 바보같이 뒤통수를 맞느냐는 소리까지 들었다(채널A)"고 말했다는 언론 보도는 이 국면의 배후에서 김건희 씨가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는 또다른 증거다. 대통령에게 직접 '바보같이 뒤통수를 맞느냐'고 이야기할 사람은 대통령실 전체를 통틀어 단 한 사람 밖에 없을 듯하다.

 

명품 수수와 국정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김건희씨가 남편 윤석열 대통령과 네덜란드 국빈 방문을 위해 11일(현지시간) 암스테르담 스히폴 공항에 도착, 전용기인 공군 1호기에서 내린 뒤 차량에 탑승한 모습. 연합뉴스

그러나 한 위원장이 김건희 씨 문제를 정리하지 못한다면 갈등은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의 이날 만남으로 갈등이 수면 아래로 내려간듯 보이지만, 완전히 봉합됐다고 보기 어렵다. 김건희 씨 문제는 단순히 명품 가방에서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국민의힘 공천은 이미 '김건희 특검 국회 재의결'과 연계돼 있다. 김경율 씨의 마포을 출마를 밀어주면서 '낙하산 공천' 논란을 불러일으킨 한 위원장이 어떻게 칼을 휘두르냐에 따라 김건희 씨 문제는 얼마든지 재점화될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실 참모 및 검찰 출신과 현역 의원, 당협위원장들이 공천을 두고 충돌한다면 어디로 튈지 예상하기도 어렵다.

아울러 총선이 다가올수록 윤석열·김건희 부부 '심판론'은 거세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 위원장이 유권자들의 정권 심판론을 피하기 위해 윤석열·김건희 부부의 '원심력'을 벗어나 독자적으로 행동하려면 김건희 씨 문제를 건드리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대통령실이 사퇴 요구로 '레드 라인'을 그은 사안에 대해, 한 위원장이 여론 반전 등을 위해 이 문제에 접근한다면 2차, 3차 당정 간 균열은 불 보듯 뻔하다.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실과 여당이 영부인의 권력형 비리를 두고 어설픈 권력 충돌만 이어간다면 악영향일 수밖에 없다.

이번 국면에서 대통령의 당무개입 문제가 불거진 것 역시 한 위원장 입장에선 부담이다. 그의 입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당무개입은 헌법과 공직선거법상 정치적 중립의무 위반으로 형사고발 대상이자 탄핵 사유가 된다. 야당이 법적 조치까지 언급한 만큼 총선 내내 이 문제를 안고 갈 수밖에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충남 서천군 서천읍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에서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만나 피해 상황을 둘러보고 있다. 2024.1.23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연합뉴스

한편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의 서천 특화시장 화재현장  방문을 두고도 뒷말이 무성하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방문한 서천 특화시장은 야간에 화재가 발생해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설 명절을 앞두고 점포 227개가 전소된 만큼 상인들의 피해 지원에 집중됐어야 한다. 그런 자리에서 두 사람의 정치적 만남을 부각시킨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두 사람은 실제로 상인들과의 제대로 면담도 하지 않고 자리를 떠나 반발이 일었다. <뉴시스>에 따르면 이날 특화시장 상인들은 윤 대통령의 방문 소식에 면담을 기다렸지만, 윤 대통령은 1층 로비에서 일부 상인대표만 만나고 떠났다. 이에 상인들은 "시장서 장사한다고 우습게 아냐" "사진만 찍고 가냐"고 울분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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