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귀환 현실화…우크라이나·팔레스타인에 '악몽'

[이대로면 트럼프] ① 이미 달라지는 전쟁 양상

트럼프, 우크라전 즉각 중단·나토 재평가 다짐

"네오콘, 우리 최대 위협은 러시아라고 거짓말"

1기 트럼프 중동 정책, '이스라엘 이익' 최우선

네타냐후, 트럼프 귀환 고대하며 전쟁 강행 예상

11월 5일 바이든에 '설욕전'…여론조사서 우세

2024-01-20     이유 에디터

"(세계 각국의) 리더들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1년 후 실제로 백악관에 복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그레이엄 앨리슨(83) 미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정치행정대학원) 더글러스 딜런 정치학 교수는 '트럼프는 지정학의 모습을 이미 바꾸고 있다'란 <포린 어페어즈> 16일 자 기고에서 "2024년 미 대선은 전 세계 국가들의 결정에 영향을 주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앨리슨 교수는 2012년 패권국과 도전국 간의 구조적 대결을 뜻하는 '투키디데스 함정'이란 표현을 써서 미·중 무력 충돌 가능성을 제기했고 2017년 이런 내용을 담은 '예정된 전쟁'(Destined for War)이란 저서를 펴낸 학자로 유명하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17일 뉴햄프셔주 포츠머스의 한 호텔에서 공화당의 뉴햄프셔 프라이머리를 앞두고 연설을 하고 있다.  2024. 01. 17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 아이오와 경선서 압승…독주체제 굳혀

11월 5일 바이든에 '설욕전'…여론조사서 우세

트럼프 재집권 현실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자각'은 미 공화당의 첫 대선 후보 경선으로 15일 치른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가 트럼프의 압승으로 끝나면서 본격화하고 있다. 트럼프는 이날 51% 득표로 2위인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21.2%)와 3위 니키 헤일리 전 유엔 대사(19.1%)를 역대 최대 격차로 따돌리고 독주체제를 굳히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7일 트럼프가 이 기세를 그대로 몰아간다면 이르면 3월 중순쯤 대선 후보 지명에 필요한 매직넘버인 1215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할 것으로 봤다. 트럼프는 가급적 일찍 본선행을 결정짓고 11월 5일 조 바이든 현 대통령과의 '설욕전'에 가용한 모든 역량을 투입할 태세다. 최근 여론조사들도 트럼프의 승리를 예상하는 흐름이 전반적으로 우세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7년 1월부터 시작된 집권 1기 4년 동안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제일)'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란 구호 아래 전임 버락 오바마 민주당 행정부가 추진했던 모든 대외 정책을 뒤엎어 국제질서를 뿌리부터 뒤흔들어 놓았다. 재집권에 성공하면 동맹 관계에서부터 무역, 안보, 기후 변화, 이주민 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현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 안보 정책 전반을 뒤집는 것은 물론이고 강도도 더 세질 게 확실시된다. 그만큼 세계 각국은 트럼프 재집권의 파장에 대해 계산기를 두드리며 대비책을 서두르는 모양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국경에서 약 60km 떨어진 러시아 브리얀스크 지역의 원유 저장소가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을 받고 화염에 휩싸였다. 2024. 01 19 [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이면 24시간 내 전쟁 끝내"

앨리슨 "푸틴, 기다릴 것"…전쟁 격화 예상

트럼프가 백악관에 복귀하면, 뭣보다 현재 진행 중인 두 개의 전쟁, 즉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큰 영향을 받게 된다. 워낙 이들 전쟁에 대한 트럼프의 스탠스가 분명해서다. 특히 우크라이나전 스탠스는 즉각적인 모든 적대 행위 중단과 지체 없는 평화다. 트럼프 캠페인 공식 사이트에 따르면, 전쟁 발발 1주년에 즈음한 2023년 2월 1일 연설에서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내가 대통령이었다면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 내가 대통령이라면 협상을 통해 24시간 안에 이 끔찍하고 급속히 악화하는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장담하기까지 했다. 다른 자리에선 "나는 (우크라이나 대통령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에게 더 이상의 (지원은) 없다. 당신은 (러시아와) 타결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라고도 했다. 이런 점들을 염두에 둔다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트럼프가 백악관에 복귀할 내년 이맘때까지 기다릴 것이고 그때까지 우크라이나 전쟁은 휴전 없이 계속 격화될 것으로 앨리슨 교수는 예상했다. 앨리슨은 "트럼프는 오늘 바이든 대통령이 제안하거나 젤렌스키가 동의할 어떤 것보다 훨씬 더 유리한 조건들을 제시할 것"이라는 점을 그 근거로 들었다. 이미 점령한 돈바스 지역 등의 러시아 편입을 트럼프가 승인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9일  워싱턴D.C.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연례 동계 미국 시장 회의를 주관하고 있다. 2024. 01. 19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 우크라전 즉각 중단·나토 재평가 다짐

"네오콘, 우리 최대 위협은 러시아라고 거짓말"

반면, 우크라이나와 이를 지원하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서방 회원국들은 벌써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2년이 다 돼 가지만, 여전히 러시아군 우위의 교착 상태가 지속되는 와중에 미국이 발을 뺀다면 우크라와 유럽에는 사실상 완패를 뜻하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불법 침공'은 전쟁 없는 세계란 냉전 해체 이후 30년 지속된 유럽의 환상을 깨고 미국 주도의 나토 동맹 부활로 이어졌다. 그러나 트럼프의 귀환으로 이런 동맹 구조가 근본에서 흔들릴 위험이 커졌다. 트럼프는 '제3차 세계대전 예방'이란 연설(2023년 3월 16일)에서 재집권 때 우크라이나 전쟁의 즉각 중단과 함께, 전쟁을 부추기는 미국 네오콘(신보수주의자) 기득권 카르텔 해체, 근본적인 나토 재평가를 다짐한 바 있다. 그는 핵무기를 보유한 러시아와의 전쟁을 '최후의 핵전쟁'(Nuclear Armageddon)으로 규정하고 제3차 세계대전으로 비화할 위험성을 경고했다. 나아가 트럼프는 러시아와의 전쟁을 부추긴다면서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을 질타했다. 그는 네오콘 기득권 카르텔은 "러시아가 우리의 최대 위협이란 거짓말에 기초해 핵무기를 보유한 러시아와의 충돌로 세계를 끌고 들어가려 계속 노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오늘날 서양 문명에 대한 최대 위협은 러시아가 아니다"라면서 △ 국경 철폐 △ 치안 실패 △ 내부로부터 '법의 지배' 파괴 △ 핵가족 및 출생률의 붕괴 등을 최대 위협으로 지목했다.

 

21일 우크라이나 도네츠크 지방의 스피야소이르스크 마을에서 파괴된 러시아 탱크가 눈에 덮여 있다. 그 뒤로 예배당이 보인다. 2023.11.21. AFP연합뉴스 

미국 국방·외교·정보·군산복합체 카르텔 질타

"전쟁광들…전쟁으로 끌어들일 줄만 안다"

또한 트럼프는 "내 행정부에서 시작했던 나토의 목적과 임무에 대한 근본적 재평가 작업을 매듭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재임 당시 더는 "호구가 되지 않겠다"며 고립주의를 표방하고, 유럽 동맹국들을 상대로 방위비 분담의 대폭 증액을 요구하며 유럽 집단방위기구인 나토에서 탈퇴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재집권하면 아예 나토에서 탈퇴할 거란 관측도 있다. 트럼프 때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존 볼턴은 지난달 일본 교도통신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외교 방침 기본은 '고립주의'라며 백악관에 복귀하면 나토 탈퇴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트럼프가 재임 시절인 2020년 다보스포럼 비공개회의에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을 앞에 두고 "EU가 공격받더라도 미국이 도우러 가거나 지원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말한 일화가 최근 공개되기도 했다.

트럼프는 다른 연설(2023년 2월 22일)에서는 구체적으로 네오콘 등 '딥 스테이트'(미국 정치·외교를 주무르는 기득권 집단)를 비판했다. 그는 "펜타곤(국방부), 국무부, 그리고 다른 군산복합체 안에 있는 모든 전쟁광과 '아메리카 라스트'(미국 꼴찌) 세계주의자들의 집을 청소해야 한다"며 "이들은 우리를 전쟁으로 끌어들일 줄만 알지, 거기서 빠져나오게 하는 방법을 모른다"고 말했다. 심지어 "국무부가 우크라이나의 봉기를 돕는 것은 물론, 우크라이나를 나토 쪽으로 가게 하는데 집착하는 사람들"이 수십 년간 해먹고 있다면서 빅토리아 놀런드 국무부 정무 차관을 하나의 예로 들기도 했다. 트럼프는 "이들은 이라크와 세계 다른 지역 사례에서 보듯 오랫동안 대결을 추구해왔다. 지금은 3차 대전의 위험에 처해 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를 나토로 편입시키고 러시아에 대항해 봉기하도록 도운 게 러시아의 침공을 불렀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나아가 트럼프는 방산 업체와 로비스트들이 "우리의 고위 군사 및 국가안보 관리들을 금전적 이익을 위해 불필요한 전쟁으로 내민다"며 이들의 제거를 약속히기도 했다.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방의 바흐무트 인근에서 지난 3월 15일 우크라이나 군 특수부대 병사들이 모여 있다. 2023.3.15.  AFP 연합뉴스

'초읽기' 몰린 젤렌스키에 트럼프 귀환은 악몽

프·독 "러 승리 허용 못해…자력으로 싸워야"

당연히 프랑스와 독일을 포함한 유럽에선 트럼프 귀환에 대비해야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17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 포럼)에서 올해 미국 대선 결과와 관계없이 유럽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야 한다면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독일 기민련(CDU) 소속 노르베르트 뢰트겐 의원은 "독일 정부는 트럼프의 대통령 복귀를 전보다 집중적으로 준비해야 한다"며 "특히 미국의 도움 없이도 러시아의 공격에 맞서 우크라이나가 스스로 방어할 수 있도록 독일이 무기 생산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도 재임 시절 당시 트럼프 대통령과의 '불쾌한 만남' 이후 "우리의 미래를 위해 자력으로 싸워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알렉산더르 더크로 벨기에 총리도 아이오와 코커스가 끝난 직후 행한 유럽의회 연설에서 트럼프가 백악관에 복귀한다면 "유럽은 홀로 설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로선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는 처지다. 그동안 자국을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바이든 행정부가 남아 있는 올해 안에 어떻게든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중국의 불참에 뾰족한 결과는 없었지만 지난 14일 다보스에서 우크라이나 종전 구상과 평화 계획을 논의하는 4차 우크라이나 평화 공식 국가안보보좌관 회의를 주관한 것도 그런 몸부림의 일환이다. 전쟁 와중에도 16일 다보스포럼에 참석해 전 세계에 지원을 호소했던 젤렌스키는 "푸틴이 (전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문제는 미국과 트럼프가 이후 무엇을 할 것이냐"라고 말해 트럼프의 재집권을 걱정하는 눈치였다고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사태가 이렇게 흘러갈 경우 미국을 맹종하며 대러 제재에 누구보다 앞장서고 우크라이나 지원에 올인해온 윤석열 대통령도 곤혹스럽고 초라한 처지로 내몰릴 수 있다.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파괴된 가자 알마가지 난민 캠프의 주택과 건물. 2024. 01. 19 [EPA=연합뉴스]

1기 트럼프 중동 정책, '이스라엘 이익' 최우선시

네타냐후, 트럼프 귀환 고대하며 전쟁 강행 예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 가자 전쟁에도 상당한 영향이 불가피해 보인다. 집권 1기에 트럼프가 보였던 중동 정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스라엘 이익 중심으로 펼쳐졌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 사례로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진정한 수도로 인정하고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 △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에서 불법 점령한 골란고원(시리아)에 대한 이스라엘 주권 승인 △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모로코, 수단과 이스라엘 간의 관계 정상화를 담은 아브라함 협정 체결 등을 거론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의 운명과 주권 문제는 완전히 배제됐다. 트럼프에겐 전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 일방 파기, 이슬람 테러리즘과의 전쟁, 이슬람권 출신자의 미국 입국과 난민 규제 등 전방위적으로 '반(反)이슬람 정책'을 추진했다. 트럼프의 인식 저변에 극심한 '이슬람 혐오증'이 짙게 깔려 있다고 봐도 될 정도다. 재집권해도 이런 자세는 전혀 달라지지 않고 도리어 더 강화될 수도 있다.

 

강제로 내쫓긴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이집트와 접경한 남부 가자의 라파에 있는 언덕에서 친척들과 연락을 시도하고 있다. 2024. 01. 19 [AFP=연합뉴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스라엘 입장에선 국제사회 절대다수의 휴전 촉구에도 전쟁을 계속 밀어붙일 공산이 크다. 1년 후 트럼프가 복귀한다면 최대 원군을 얻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공범'이란 오명을 쓰면서까지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제노사이드(집단 학살) 행위를 "자위권"이라면서 사실상 옹호해왔다. 그러나 민간인 피해 최소화와 고강도 전쟁 전환을 주문하고 하마스 제거 후 가자 통치와 관련해 '두 국가 해법'에 따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에 맡길 것을 요구하는 있다. 하지만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속셈은 비용을 치르고라도 차제에 가자 재점령을 하겠다는 것이어서 서로 갈등을 빚고 있다. 바이든과 네타냐후는 19일 약 한 달 만에 다시 통화했지만, 별다른 합의는 도출하지 못했다. 네타냐후는 시간은 내 편이란 자신감 아래 바이든의 말을 무시한 채 살육전을 강행할 가능성이 커보인다.

10·7 하마스 사태 이후 이스라엘의 보복 폭격과 지상 작전으로 지금까지 최소 2만4000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하고 6만 명 이상이 부상하고 190만 명의 강제난민이 발생했다. 문제는 트럼프의 복귀를 믿고 앞으로도 네타냐후와 그의 극우 유대 광신자 각료들이 이런 팔레스타인인 집단 학살과 종족 청소 범죄를 지속해서 저지를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반면, 팔레스타인과 아랍·이슬람권 국가로선 그래도 바이든이 있을 때 어떻게든 이스라엘을 압박해 인도주의적 휴전을 이끌어내고 두 국가 해법의 기틀을 마련하는 일이 뭣보다 절박한 상황이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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