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 빠진 결의안 vs 미국 '거부권'…유엔 안보리 딜레마

"휴전 없는 인도 지원, 의미 없고 환상에 불과"

미국, 비토 활용해 가자 결의안 '물타기' 성공

가자 초토화…"우주에서 보면 이제 다른 색깔"

마크롱, 가자 아동 암환자 프랑스서 치료 제의

2023-12-22     이유 에디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멤버들과 대표단이 19일 팔레스타인 문제를 포함한 중동 상황에 관한 회의 직후 추가 협의를 위해 모여 있다.. 2023. 12. 19 [유엔 안보리 제공] 시민언론 민들레

미국, 비토 활용해 가자 결의안 '물타기' 성공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가자 전쟁 관련 결의안을 놓고 딜레마에 빠졌다. 아랍·이슬람 국가를 비롯해 국제사회 절대다수가 가자 주민의 인도주의 대참극을 완화하기 위해선 '즉각 휴전'이 긴급한 만큼 결의안에 그 표현을 넣어야 한다고 요구하는 데 반해, 이스라엘의 정신적·실질적 동맹국인 미국은 또다시 비토(거부권 행사)를 공공연하게 거론하며 '휴전' 표현 포함해 집요하게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아랍에미리트(UAE)가 작성한 '인도주의적 즉각 휴전' 결의안 초안은 미국의 비토를 피하고자 치열한 물밑 협상을 거치면서 '휴전'이란 표현을 빼는 등 전반적으로 그 수위가 크게 '약화'됐다. 하마스의 완전 제거 이전에 "휴전은 없다"는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입장을 미국이 철저히 옹호하는데 따른  것이다. 앞서 아랍권을 대표한 이사국인 UAE는 지난 12일 "인도주의적 즉각 휴전"을 요구하는 결의안이 유엔 긴급특별총회에서 153개국의 압도적 다수로 통과된 데 힘입어 다시 안보리 결의안 채택을 주도해왔다.

AFP통신이 입수해 21일 보도한 결의안 초안 최종안에는 "안전하고 방해받지 않는 인도주의 접근을 허용하기 위한 긴급한 조치(steps)와 지속가능한 적대행위 중단(cessation of hostilities)을 위한 여건 조성"을 촉구하고 있다. '즉각 휴전'이란 표현이 배제됐을 뿐더러, 인도주의 접근을 허용하기 위한 "긴급한 조치"란 모호한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그것이 '일시 휴전'인지조차 알 수 없게 했다. 전날인 '20일 버전'과 비교해도 해당 문구가 크게 희석됐다. 20일 버전에선 "안전하고 방해받지 않는 인도주의 접근을 허용하기 위한 긴급한 적대행위 중지(suspension of hostilities)와 지속가능한 적대행위 중단(cessation of hostilities)을 향해 긴급 조치를 촉구한다"고 돼 있었다. 또한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공격을 포함한 국제인도주의법(전쟁법) 위반 규탄도 미국의 압력으로 빠졌다.

 

유엔 회원국들은 27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긴급 총회를 열어 이스라엘과 하마스를 향한 휴전 촉구 결의안을 채택됐다. 2023. 10. 27 [AFP=연합뉴스}

안보리 딜레마… '휴전 빠진' 결의안 채택하나

이사국들은 19일로 예정됐던 결의안 표결 일정을 20일, 21일로 연이어 미뤘다가 다시 22일로 연기했다. 일부 이사국 대표들이 본국과 추가로 상의할 시간을 요청해서다. 일부 이사국은 가자로의 지원 확대와 관련한 문구가 약화됐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휴전'과 '국제인도주의법 위반 규탄' 부분이 제외된 최종 결의안 초안에는 찬성할 뜻을 밝혔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대사는 기자들에게 "결의안이 이대로 제시된다면 우리는 지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결의안 초안은 아랍권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아주 강력한 결의"라며 "이전보다 완화된 거라고 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찬성 의사를 비쳤다고 해서 22일 표결에서 이 초안이 통과된다는 보장은 없다. 러시아가 그동안 줄곧 "휴전이 필수적"이라고 역설해온 점을 감안할 때 상임이사국으로 비토할 수도 있어서다. 안보리 결의에는 15개 이사국 중 9개국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고 미국과 중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5개 상임이사국이 아무도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미국은 지난 10월 18일과 12월 8일 두 차례 휴전 촉구 결의안이 하마스에만 이익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며 유일하게 비토를 놨다.

 

팔레스타인이들이 21일 가자 남부의 라파 병원에서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친척이 숨지자 슬픔에 고통스러워 하고 있다. 2023 12. 21 [AP=연합뉴스]

"휴전 없는 인도 지원, 의미 없고 환상에 불과"

국제위기그룹(ICG)의 분쟁전문가 러처드 고완은 AFP에 "미국이 비토를 피하려는 다른 이사국들의 바람을 이용한 것 같다. 수정된 문구는 많은 측면에서 아주 약해 보이기 시작했다"며 "다른 이사국들은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약화된 텍스트라도 '삼킬'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카타르 소재 분쟁·인도주의 연구소의 중동 전문가 무인 라바니도 알자지라에 안보리가 딜레마에 처해 있다고 지적했다. 라바니는 "가자지구의 현장 상황을 고려할 때 의미 있는 차이를 만드는 어떤 결의안도 미국의 비토가 확실하고, 미국이 찬성해도 좋다고 느끼는 어떤 결의안도 봉쇄된 가자 주민에겐 실질적인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즉각 휴전'이 빠진 결의안은 '앙꼬 없는 찐빵'과 진배없다는 얘기다. 라바니는 "사실상 미국은 봉쇄의 지속, 가자의 대량 학살 지속을 위해 투표하는 것이며, 특히 휴전 없는 인도주의 지원이란 생각은 절대적으로 의미가 없고 환상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가자의 자발리아 지역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파괴된 건물의 잔해들. 2023. 10. 11 [AP=연합뉴스]

가자 초토화…"우주에서 보면 이제 다른 색깔

22일로 가자 전쟁이 77일째를 맞이한 가운데, 가자 북부는 이스라엘의 중단 없는 폭격으로 거의 폐허로 변했다. 뉴욕시립대 대학원센터의 전시(戰時) 매핑 전문가 코리 셰어와 오리건 주립대의 제이먼 벤덴훅 부교수가 코페르니쿠스 센티넬-1 위성의 사진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이스라엘 공격으로 가자 북부의 모든 구조물의 3분의 2 이상, 그리고 남부 칸 유니스 건물의 4분의 1이 파괴된 것으로 드러났다고 AP 통신 등 외신이 전했다. 특히 칸 유니스의 건물 파괴 정도는 이스라엘의 남부 공격 개시 후 고작 2주 만에 두 배로 확대됐다. 여기에는 학교와 병원, 모스크(이슬람사원)와 교회, 상점뿐 아니라 수만 채의 주택도 포함돼 있다. 유엔에 의하면, 가자 전역의 학교 중 70% 이상이 훼손되고 적어도 56개의 훼손된 학교들이 강제 난민의 숙소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110곳의 모스크와 3곳의 교회가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파괴됐다. 이와 관련해 코리 셰어는 AP에 "우주에서 보면 이제 가자는 다른 색깔로 보인다. 그것은 다른 질감"이라고 말했다.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오른쪽)이 요르단 아카바 공항에서 이틀 일정으로 방문하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왼쪽)을 맞이하고 있다. 2023, 12. 21 [AFP=연합뉴스]

마크롱, 가자 아동 암환자 프랑스서 치료 제의

또한 20일 현재 팔레스타인 사망자 최소 2만 명이며 그 가운데 어린이가 8000명, 여성이 6200명이다. 반면, 하마스 공격으로 인한 이스라엘 주민 사망자는 1140명이고 인질은 250명이다.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 민간인 사망에 '유감'을 표시하면서도 하마스가 인구 밀집 지역에서 작전하거나 민간인을 방패로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비난했다고 AFP는 전했다. 한편 사우디 매체 아랍뉴스에 따르면, 요르단을 방문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1일 압둘라 2세 국왕과 회담한 자리에서 가자의 아동 암환자들을 프랑스 병원으로 데려가 치료를 해주고 싶다는 의향을 밝혔으며, 다른 유럽 국가도 부상한 가자 아동들 치료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압둘라 2세 국왕은 가자 민간인 보호를 위해 국제사회가 즉각 휴전을 밀어붙어야 한다면서 가자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 행위가 지속된다면 중동 전역에 "재앙적 후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