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화물연대 파업 때 노동자들 절박함 이해했다”
회고록 '운명' 에서 “불법파업 솜방망이 대응 비난 들어”
“화물노동자 사회적 지위 높아지고 조합원 크게 늘어”
2003년 화물연대 ‘2차 파업’엔 “1차와 달라 단호한 대응”
화물연대 파업을 둘러싸고 국민의힘과 일부 보수매체들이 “업무개시명령은 노무현 정부 시절 만들어진 것인데도 윤석열 정부가 명령을 발동하니 난데없이 시비를 건다”는 식의 주장을 이어가고 있다.
일부 언론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회고록 <운명>까지 인용, 이같은 주장을 확산시키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1일 <文 회고록 “노무현, 화물연대 파업때 화 많이 내며 강경대응 지시”>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놓았다. 그 밑에는 <문재인의 책 ‘운명’에 상황 나와> <“軍 대체인력 투입도 검토 지시> <이 여파로 업무개시명령 만들어> 등의 작은 제목들이 붙어있다.
“정부가 화물연대의 집단 운송 거부에 대해 강경하게 대응하자 더불어민주당은 “반(反)헌법적 과잉 대응” “힘으로 찍어 누르려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3년 5월 화물연대 집단 운송 거부가 발생하자 군(軍) 대체 인력 투입까지 검토할 것을 지시하며 강경 대응을 했다.” 기사 앞부분이다.
그리곤 <운명>의 261쪽 내용을 인용한다.
“대통령은 화물연대가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라는 구호를 내걸고, 부산항 수출·입을 막아 주장을 관철하려는 방식에 화를 많이 냈다. 내게 단호한 대응을 지시했고, 군 대체 인력 투입도 적극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중략) 그러나 부산항 수·출입 화물의 육로 수송률이 절대적이고, 철도에 의한 수송 분담률이 얼마 되지 않는 상황에서 단호한 대응이 불가능했다. (중략)
결국 화물연대 파업은 합의 타결됐다. 말이 합의 타결이지 사실은 정부가 두 손 든 것이었다. (중략)
화물연대로선 대성공을 거뒀다. 사회적 지위도 높아지고, 조합원도 크게 늘었다. 그런데 그 성공에 도취했는지 그로부터 두세 달 후에 2차 파업을 했다. 딱한 사정을 이해할 수 있었던 1차 파업과 달리 무리한 파업이었다. 정부도 온정으로만 대할 수 없었다. (중략) 법과 원칙대로 단호하게 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만 보면 조선일보의 “노무현, 화물연대 파업때 화 많이 내며 강경대응 지시” 기사는 하나도 틀린 게 없다. 사실관계로는, 틀린 제목도 아니고 틀린 기사가 아니다.
그런데 이 기사는 <운명> 259쪽의 문장은 하나도 인용하지 않았다. 그 부분을 함께 봐야 전체적인 흐름을 알 수 있는데도 말이다. 그 부분을 읽어 보자.
“(화물연대 파업 등 굵직한 노동사건 대응을 담당하던 민정수석 당시) 불법파업에 대해 솜방망이 대응이란 비난도 많이 들었다. (중략)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했다. 예를 들면 화물연대 파업의 경우, 지나치게 낮은 운송료를 야기하는 구조가 원인이었다. 과거엔 화물운송 요금에 일종의 표준요율제가 있어, 운송료가 그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막아줬다. 그런데 국민의 정부 초기 규제철폐 차원에서 그 제도가 없어졌다.
거기에 IMF 위기를 겪으면서 구조조정된 노동자들이 지입차주로 몰리면서 화물차량 대수가 크게 늘어났다. 과당경쟁 속에서 운임이 크게 낮아지게 됐다. 게다가 화물운송업의 다단계구조로 인해 운임 중 20~30%가 운송주선 수수료로 떨어져 나갔다. 우리가 파악해 본 바에 의하면, 그런 요인들이 겹쳐 화물차량 운전자들이 실제로 받는 운송료는 몇 년 전 표준요율제가 있던 시기에 비해 60~70% 수준밖에 되지 않는 실정이었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표준요율제를 되살리고, 다단계구조를 개선해 화물차량 대수를 줄여나가는 정책적 접근을 해야 했다.”
노무현 정부와 당시 문재인 민정수석이 ‘불법파업에 대해 솜방방이 대응’이란 언론의 비난을 들을 정도로 화물연대 파업을 어떻게든 풀어보려 노력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지나치게 낮은 운송료’ ‘IMF로 구조조정된 노동자들’ ‘ 화물운송업의 다단계구조로 인해 운임 중 20~30%가 운송주선 수수료로 떨어져 나갔다’ 등의 말에서는 노무현 정부가 화물연대 파업과 노동자들의 고통에 대해 깊은 이해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화를 내며 강경 대응’으로 돌아선 건, 2003년 8월 화물연대의 2차 파업을 맞으면서부터다. 다시 <운명>의 261쪽을 보자.
“화물연대로선 대성공을 거뒀다. 사회적 지위도 높아지고, 조합원도 크게 늘었다. 그런데 그 성공에 도취했는지 그로부터 두세 달 후에 2차 파업을 했다. (중략) 딱한 사정을 이해할 수 있었던 1차 파업과 달리 무리한 파업이었다. 정부도 온정으로만 대할 수 없었다. (중략) 법과 원칙대로 단호하게 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편집자 주: 화물연대는 2003년 8월 두 번째 총파업을 벌였다.)
<운명>에 따르면 ‘노무현 정부의 화물연대 파업’ 대응은 명암이 엇갈리는 측면이 분명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가 고민하고 노력했다는 사실까지 부인할 수는 없다.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는 어떤 노력을 했고 어떤 노력을 할 것인지, 화물 노동자들과 국민 앞에 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