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vs 한동훈 법무부 코믹대결…뻔한 판결

윤석열 징계 취소 소송 뒤집은 2심 법원

정권교체 뒤 뻔한 판결 이면엔 '법꾸라지' 잔기술

윤, 징계위원 기피신청으로 정족수 미달 유도

한, 변호사 자르고 증인신문 엉망 '패소할 결심'

2심법원은 본안 판단 않고 절차흠결로 1심 뒤집어

2023-12-19     김성진 기자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검찰총장 시절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자료 사진

원고 윤석열 대통령-피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코미디' 같은 재판에 '코미디' 같은 재판 결과가 나왔다.

서울고법 행정1-1부(심준보 김종호 이승한 부장판사)는 19일 오전 윤 대통령이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낸 징계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1심을 파기하고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받은 정직 2개월 징계를 취소해야 한다고 항소심(2심) 재판부가 1심 재판부의 판단을 뒤집은 것이다.

재판부는 '추미애 법무부' 당시 검찰징계위원회(이하 징계위)의 윤 대통령에 대한 징계 의결과 그에 기반한 징계처분 과정이 모두 위법했다며, 구체적 징계사유에 관해서는 판단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이면을 보면 법의 허점을 이용한 '법꾸라지'의 잔기술을 법원이 손들어 준 것과 다름 없다.

코미디 같은 재판의 시작

윤 대통령의 '징계처분 취소 소송'은 문재인 정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앞서 2020년 12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당시 검찰총장이던 윤 대통령에게 정직 2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징계 사유는 △주요 재판부 사찰 의혹 문건(주요 사건 재판부 분석) 작성·배포 △채널A 사건 감찰·수사 방해 △검사로서의 정치적 중립 훼손 등이었다.

윤 대통령은 이에 반발하며 징계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지만, 2021년 10월 1심 재판부(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 부장판사 정용석)는 징계 절차가 적법하며, 정치적 중립 훼손을 제외한 3건이 모두 인정된다며 징계가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당시 재판부는 "2개월 정직처분은 적법하며, 면직 이상의 징계가 가능한 사안으로 정직 2개월의 처분은 징계 양정 범위의 하한보다 가볍다"면서, 오히려 윤 대통령의 징계가 가볍다고 지적했다.

 

국회의 검찰 수사권 축소 입법이 정당했는지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최종 판단이 나오는 23일 오전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로 출근하고 있다. 2023.3.23. 연합뉴스

그러나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에서 대통령이 되면서 이 소송은 매우 이상한 모양새가 됐다.

윤 대통령은 자신의 주요 징계 사유였던 '채널A 사건'의 핵심 피의자인 한동훈 검사를 법무부 장관에 임명했고, 이 소송은 원고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피고 한동훈 현 법무부 장관의 맞대결(?)이 됐다.

형식은 '원고 윤석열 대 피고 측근 한동훈'이었지만, 실질은 '과거 윤석열 대 현재 윤석열'의 '셀프 소송'과 다름없었다.

이 때문에 2심 재판은 시작도 하기 전에 '패소할 결심'을 여실히 드러냈다.

윤 대통령을 처벌할 의지가 전혀 없는 '한동훈 법무부'는 1심 승소를 이끈 변호사들을 해임하고 준비기일을 연기하는 등 파행을 빚었다. 변호인도 법무부 장관의 지시·감독을 받는 정부법무공단 소속 변호사로 교체했다.

공판 과정에서도 윤 대통령 측은 다수 증인을 신청했지만, 법무부 측은 증인도 신청하지 않았고, 심지어 증인 신문 태도로 재판부로부터 지적까지 받았다. 올해 6월 재판에선 윤 대통령 측이 70분 변론하는 동안 법무부 측은 7분 만에 증인신문을 끝내면서 '침대축구'를 하고 있다는 비아냥까지 들었다.

법꾸라지 손 들어준 재판부

무대, 연출, 조명부터 주·조연까지 짜여진 각본대로 움직인 듯한 블랙 코미디의 결론은 뻔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1심을 완전히 뒤집은 사법부의 판단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2심 재판부는 윤 대통령에 대한 징계 의결과 그에 기반한 징계처분 과정이 모두 위법하다며, 구체적 징계사유에 관해서까지 판단할 필요가 없다고 봤다. 절차상 위법하기 때문에 내용은 볼 필요도 없다는 의미다.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이른바 '법 기술자'들의 손을 들어줬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특히 재판부가 윤 대통령이 일부 징계위원을 기피 신청한 것과 관련해 내린 판단이 대표적이다.

검찰개혁을 둘러싸고 정권과 검찰의 갈등이 극심했던 당시 열렸던 윤 대통령에 대한 징계위는 추 전 장관이 징계 청구권자로서 빠지고 2명이 불출석하거나 자진 회피하면서 최소 요건을 채운 4명으로 진행됐다.

 

202년 2월 검찰총장과 부산고검 차장 시절의 윤석열과 한동훈. 한동훈은 이 당시 사무실을 찾아온 채널A 이동재 기자 등을 만나 대화를 나눈 바 있다.2020.2.13. 연합뉴스

여기에 윤 대통령 측의 법 기술이 들어갔다.

검사징계법 제17조 4항에 따르면 징계위원 기피 여부 결정은 재적위원 과반수(4명) 출석과 출석위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할 수 있다.

윤 대통령 측은 징계위원 일부에 대해 기피 신청을 했고, 해당 위원은 본인에 대한 기피 의결에 참석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머지 3명이 기피 신청을 받아 이를 기각시키게 됐다.

윤 대통령 측은 이를 근거로 징계위의 절차상 하자를 주장해왔다. 재적위원의 과반이 안 되는 3명이 자신의 징계위원 기피 신청을 기각시켰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2심 재판부도 이를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3인 이하의 징계위원만 출석해 기피신청을 기각함으로써 적법한 기피 여부의 결정이 없는 상태에서, 기피신청을 받은 징계위원들이 모두 참여해 징계의결을 한 것은 위법"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 판례 무시한 2심 재판부

그러나 2심 재판부의 판단이 심각한 오류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법원은 이미 이전 판례(1991. 5. 28. 선고 90다20084 판결)에서 이해관계에 있는 자가 의결권을 행사할 수는 없지만 의사정족수 산정의 기초가 되는 수에는 포함된다고 판단한 바 있다.

이를 윤 대통령 징계위에 대입하면, 기피 신청을 받은 본인이 의결은 하지 못하더라도 의사결정을 위한 의사정족수(4명)를 채우므로, 출석위원 4명 중 과반수(3명) 찬성으로 의결이 위법하지 않다는 의미다.

오히려 대법원은 "기피신청이 징계 절차의 지연을 목적으로 함이 명백한 경우 등에는 그 신청 자체가 제척 또는 기피신청권의 남용에 해당돼 부적법하다(대법원 2009. 1. 30. 선고 2007추127 판결)"고 판단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당시 자신에 대한 징계처분을 막기 위해 징계위원들을 고의적으로 기피 신청함으로써 징계위가 1·2차로 진행되는 등 지연된 정황이 있는 만큼, 당시 기각 결정이 합당했다는 반박이 제기된다.

 

출근하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왼쪽)과 윤석열 검찰총장. 2020.12.30 연합뉴스

이 밖에 재판부는 "징계를 청구한 사람은 사건심의에 관여하지 못한다"는 검사징계법(제17조)에 따라 추 전 장관이 징계위원장으로서 1차 심의기일을 2020년 12월 10일로 지정·변경한 것은 위법하다고 했다.

심의기일 지정은 징계 혐의자의 방어 준비에 필요한 시간 확보와 밀접하게 연관돼 심의에 실질적 영향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당시 추 전 장관은 징계위 기일을 정하기 전인 2020년 11월 24일 윤 대통령에 대한 징계청구 결정을 대국민 발표 형식으로 공표했고, 1차 심의기일에 의결에도 스스로 참여하지 않았다.

단지 기일을 지정한 것을 두고 위법이라고 한 것은 오히려 지나친 엄격주의라는 비판이 가능하다. 심지어 윤 대통령의 징계위원 기피로 절차 자체가 지연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방어권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2심 재판 결과만 놓고 보면 충분한 방어권을 행사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재판부는 추 전 장관이 징계 청구 후 1차 심의기일에 임박해 정한중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를 징계위원으로 신규 위촉하고 그를 위원장 직무대리로 지정한 행위도 적법절차 원칙에 어긋난다고 봤다.

위원장 직무대리 맡은 정 교수는 당시 징계위원이 사퇴하면서 공석이 된 자리에 새 위원으로 위촉된 것이다.

적법한 징계 절차를 위해 공석 위원을 임명하고, 검사징계법에 따라 위원장이 반드시 의결에 포함되어야 하는 만큼 신속하게 위원장 직무대리를 정한 것이 위법이라는 지적도 납득이 어려운 부분이 있다.

"윤석열 사법리스크 해소, 직권남용"

야당은 이날 패소 판결을 이끈 한 장관을 향해 강도 높게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 검찰독재정치탄압대책위원회는 "공사 구분을 망각한 '한동훈 법무부'의 '패소할 결심'이 끝내 고약한 결실을 맺었다"며 "윤 대통령의 검찰총장 시절 저지른 권한 남용 범죄를 덮기 위해 한 장관이 또 다른 권한 남용을 저지른 꼴"이라고 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2021년 3월 4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 출근해 총장직 사퇴를 밝히고 있다. 2021.3.4. 연합뉴스 자료사진

대책위는 "'한동훈 법무부'는 피고의 지위를 망각한 채 '패소할 결심'을 굳힌 듯한 행동을 이어갔다"며 "1심 소송을 승리로 이끌었던 변호인들을 법무부 장관의 지시·감독을 받는 정부법무공단 소속 변호사로 교체한 것이 대표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징계 소송에서 패소해 '윤석열 사법 리스크'를 해소하는 것이 여당 비대위원장으로 지명되기 전 한 장관의 마지막 임무였느냐"면서 "어떤 이유에서이든 국민이 부여한 장관으로서 권한을 그야말로 사적으로 남용한 것임을 분명히 경고한다"고 했다.

추 전 장관은 페이스북에서 한 장관을 향해 "참 재판쇼도 잘한다"며 "'패소할 결심' 시나리오, 연출, 배우로서 연기 모두 마치느라 수고하셨고 정치무대로 이동할 일만 남았다"고 쏘아붙였다.

그러면서 "두 눈 뜨고 있는 국민을 직면해서 쇼가 안 통한다는 것 실감하셔야겠다"고 덧붙였다.

"한동훈 패소할 결심 아니면 상고해야"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 대해 '패소할 결심'이 아니라면서 즉시 상고하라는 비판도 이어졌다.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내고 "패소할 결심이 아니라는 한동훈 장관의 발언은 대국민 말장난이었냐"며 "누가 보더라도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의도한 고의적인 패소"라고 비판했다.

박 대변인은 "법무부가 패소할 결심이 아니라면 즉시 상고해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가 정당했음을 재판부 앞에 입증하라"며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한동훈 장관이 내뱉는 사법 정의는 권력자를 보위하기 위한 가짜 정의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박주민 의원도 페이스북에 "2심 재판에서 지겠다 작정하고 법무부가 소송에 나선 것 아닌지 매우 의심스럽다"면서 "만일 제 말이 틀렸다면, 한동훈 장관은 당장 상고하시라. 그렇지 않다면 '패소할 결심'이 사실임을 인정하는 것이 될 것이다"라고 적었다.

 

18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더불어민주당 최강욱 의원의 자리가 비어있다. 오른쪽은 한동훈 법무장관. 최 의원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아들에게 허위 인턴 확인서를 써준 혐의로 이날 대법원에서 의원직 상실형을 확정받았다. 2023.9.18. 연합뉴스

하승수 변호사는 페이스북에 "절차적 하자가 있다는 이유로 징계취소 판결을 내린 경우에는 검사징계법 제7조의3과 국가공무원법 제83조의2 제3항에 따라서 판결이 확정된 후 3개월 이내에 다시 징계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했다.

검찰징계법 제7조의 3은 검찰총장(검찰총장인 검사에 대한 징계 등의 경우에는 법무부장관을 말한다)은 절차상의 흠이 있는 경우로 법원에서 징계등 처분의 무효 또는 취소 판결을 받은 경우에는 다시 징계등을 청구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국가공무원법 제82조의2 제3항은 징계위 구성·징계의결 등, 그 밖에 절차상의 흠을 이유로 법원에서 징계처분 등의 무효 또는 취소의 결정이나 판결을 한 경우, 판결이 확정된 날부터 3개월 이내에 다시 징계의결 등을 요구할 수 있다고 돼 있다.

하 변호사는 "이 판결이 확정된다고 하더라도, 법무부가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생겼다"며 "만약 징계사유가 있는데도 징계절차를 다시 밟지 않는다면 직무유기라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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