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째 3%대 상승률…좀처럼 잡히지 않는 물가

11월 물가 상승률은 3.3%…상승률 꺾였지만

농산물 13.6%, 전기료 14% 뛰며 고공 행진

신선 과실도 24.6% 급등하며 유가 하락 상쇄

미국·유럽은 물가 목표 2% 달성 빠르게 접근

2023-12-05     장박원 에디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미국과 유럽은 목표 물가인 2%대에 빠르게 접근하고 있으나 한국의 물가안정 속도는 느린 편이다. 국제 유가가 하락하며 물가 상승을 주도했던 외부 압력이 완화됐는데도 물가 상승률이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농산물과 공공요금이 큰 폭으로 올랐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11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3.3% 올랐다. 사진은 이날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 시민들. 2023.11.2. 연합뉴스

통계청이 5일 발표한 ‘11월 소비자물가 동향’을 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2.74(2020년=100)로 1년 전보다 3.3% 올랐다. 올해 6~7월 2%대로 떨어졌다가 8월 3.4%로 오른 뒤 4개월째 3%대 상승률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9월 3.7%, 10월 3.8%로 오름세를 탔던 흐름은 다소 꺾였다.

인플레이션 강도가 약해졌다지만 안심할 때는 아니다. 물가 상승률 둔화가 국제 유가 하락 등 외부 요인에 영향을 받는 데 반해 물가 오름세를 주도하는 것은 국내 농산물 가격과 공공요금 인상 등 내부 원인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산물 가격은 단기에 낮출 수 없고 그동안 꽁꽁 묶었던 공공요금 인상도 막을 수도 없다. 이에 비해 국제 유가는 불안한 중동 정세와 산유국의 감산 등 예상하지 못한 변수로 언제든지 다시 급등할 수 있다.

개별 품목의 물가 흐름를 보면 석유류 가격은 1년 전보다 5.1% 하락하며 전체 물가지수를 0.25%포인트 끌어내렸다. 유종별로는 휘발유가 2.4% 올랐으나 경유와 등유 가격은 각각 13.1%와 10.4%씩 내렸다. 농산물은 석유류와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농산물 가격은 13.6% 폭등했다. 지난 2021년 5월(14.9%) 이후로 2년 6개월 만의 최고 상승 폭이다. 농산물은 전체 물가를 0.57%포인트 끌어올리며 석유류 가격 하락을 상쇄했다. 전기·가스·수도는 공공요금 인상 영향으로 지난해보다 9.6% 상승했다. 전기료가 14.0%로 가장 많이 올랐고 도시가스(5.6%)와 상수도료(4.6%)도 비교적 큰 폭으로 뛰었다.

국민이 체감하는 생활물가 지수는 4.0% 올라 평균 물가 상승률을 웃돌았다. 물가가 너무 많아 올랐다는 푸념이 나오는 이유도 생활물가가 더 올랐기 때문이다. 채소와 과일 등 일상적으로 많이 소비하는 신선식품 지수가 12.7% 올랐다. 이 중 신선과실 지수는 24.6%나 뛰면서 전월의 26.2%에 이어 20%대 상승률이 지속됐다. 가장 많이 오른 품목은 사과로 상승률이 55.5%에 달했다. 귤은 16.7% 올랐고 쌀은 10.6% 상승했다. 통계청은 “과실은 1년 단위로는 가격이 크게 떨어질 수 있어도 단기간에 하락하기는 어려운 품목”이라며 “(당분간) 전년 대비로는 전반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변동성이 큰 농산물과 석유류를 제외한 근원물가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3% 올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방식의 근원물가 지표인 식료품과 에너지 제외 지수는 3.0% 상승했다. 통계청은 “두 가지 근원물가 측면에서 10월보다 하락한 것은 기조적 물가 둔화 흐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전했다.

 

   소비자 물가 추이와 주요 품목별 가격 등락 추이. 연합뉴스 

그러나 미국, 유럽과 비교하면 물가하락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린 편이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가 최근 공개한 10월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 보고서 분석 결과 내구재 가격이 전년 대비 5개월 연속 하락하는 등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정책목표인 인플레이션 2%대 목표에 빠르게 다가서고 있다.

스위스의 투자은행 UBS는 내년 4분기에 미국 물가 상승률이 1.7%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모건스탠리도 변동성이 큰 에너지와 식료품 가격을 제외한 근원 상품들의 가격 하락은 내년 중반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유로를 사용하는 20개국(유로존)의 소비자물가도 11월 2.4%를 기록하며 유럽중앙은행(ECB)의 목표인 2%에 접근했다.

이에 비하면 한국은 갈 길이 멀다. 한국은행 김웅 부총재보는 5일 물가 상황 점검 회의에서 "물가 상승률이 둔화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보이나 그 속도는 완만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큰 폭으로 단기 상승했던 유가와 농산물 가격이 하락하면서 1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예상대로 상당 폭 둔화했지만 앞으로 이런 흐름이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물가 전망 경로상에는 국제유가 추이, 국내외 경기 흐름, 누적된 비용 압력의 영향 등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관련기사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