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계적 폐지냐 감축이냐” 논란 불지른 COP28 의장

“화석연료 폐지는 석기시대로 가자는 것”

비판 쏟아지자 “오해다” 해명

앨 고어, 구테흐스 등 “폐지가 정답”

탄소 포집과 저장(CCS)도 해결책 못돼

2023-12-05     한승동 에디터
술탄 알자베르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의장이 4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발언하고 있다. UAE 국영 석유회사 최고경영자(CEO)이기도 한 알자베르 의장은 과거 화석연료 사용을 옹호하는 발언을 해 불거진 논란에 대해 "과학을 존중한다"고 해명했다. 2023.12.05. AP 연합뉴스

유엔기후변화협약 제28차 당사국총회가 열리고 있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기후특사요 당사국총회 의장인 술탄 알 자베르가 “화석연료를 폐지하는 것은 동굴(에서 살았던 석기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이라고 발언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COP 28 개막 전부터 그의 퇴진을 요구해 온 다수의 협약 가맹국들의 비판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화석연료 폐지는 석기시대로 가자는 것”

술탄 알 자베르에 대한 비판은 지구 대기 평균온도 상승 한도를 산업화 이전 대비 섭씨 1.5도 이내로 억제하려는 기후변화협약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탄소 등 온난화가스 배출 억제를 위해 석탄과 석유 등 대량의 탄소를 내뿜는 화석연료를 단계적으로 ‘폐지’(phase-out)할 것이냐 단계적으로 ‘감축’(phase-down)할 것이냐는 논쟁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4일 <가디언>에 따르면, 자베르는 지난 달 21일 아일랜드의 기후특사를 지낸 전 아일랜드 대통령 매리 로빈슨과의 인터넷 온라인 대담에서 “화석연료의 폐지가 지속 가능한 사회경제적 개발을 보장해 줄 것이라는 로드맵(지침)을 보여 달라.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세계를 동굴 속으로 되돌아 가게 만들려는 것”이라며 화석연료 폐지가 1.5도 상승한도 목표를 달성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4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리고 있는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회의장 밖에서 개발도상국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시위대가 지구 온난화의 책임이 큰 선진국들이 더 많은 '기후기금'을 낼 것을 촉구하는 퍼포먼스 시위를 벌이고 있다. 선진국들이 지금까지 출연한 기금으로는 개발도상국의 기후 위기 대응을 도울 수 없다는 지적이다. 2023.12.4. AP 연합뉴스

자베르 의장, 비판 쏟아지자 “오해다” 해명

<가디언>이 3일 이 발언 내용을 보도하자 그의 퇴진을 요구하는 비판들이 쏟아졌다. 자베르는, 2020년부터 UAE 기후특사를 맡아 온 UAE 석유 대기업 아드녹(ADNOC) 그룹의 최고경영자(CEO)이자 아부다비 재정경제최고회의 멤버, UAE 개발은행장, 인공지능(AI) 전문 모하메드 빈 자예드 대학 이사로 일하고 있다. 화석연료 폐지에 대한 모호한 입장을 견지한 채 화석연료 감축을 새로운 사업기회로 삼아 온 화석연료 기업의 총수인 그가 총회 의장을 맡아서는 안 된다며 사퇴를 요구하는 소리들이 COP 28 개막 이전부터 적지 않았다.

이날 오전 COP 28 사무국이 연 기자회견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던 그는 이날 오후에 기후변화 정부간협의체(IPCC)의 짐 스키 의장과 함께 회견장에 나와 “과학을 존중하고 있다.COP 28 의장으로서 그 원칙과 전략의 지침이 된 것은 과학이라고 거듭 얘기해 왔다. 우리는 과학과 사실에 기초해서 그 모든 것을 추진해 왔다”며 “오해”라고 해명했다. 스키 의장은 “IPCC는 1.5도 목표 달성에는 화석연료를 대폭 삭감하고, 대책없는 석탄을 완전히 폐지한다고 분명히 말씀드렸다”고 말했다.

 

4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UAE)의 두바이에서 열린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정상회의에서 최빈국을 대표해 마들렌 디우프 사르 세네갈 환경부 기후변화국 국장이 연설하고 있다. 이번 COP28 총회에서는 개발도상국들을 돕기 위한 '기후 손실과 피해 기금'이 공식 출범했으나 기대에 못 미친다는 지적이다. 2023.12.4. AP 연합뉴스

앨 고어, 구테흐스 등 “폐지가 정답”

이번 COP 28의 핵심 논제 가운데 하나인 단계적 폐지냐 단계적 감축이냐는 문제는 그에 대한 합의된 개념 정의가 없고, 탄소 포집과 저장(CCS) 같은 화석연료 배출 저감 기술의 모호한 역할 때문에 매우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해 선도적으로 대응해 온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은 화석연료의 단계적 폐지 약속만이 COP 28을 성공으로 이끌 것이라고 단언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통장도 지난 1일 “과학은 명백하다. 1.5도 상한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화석연료 태우기를 그만둬야 실현 가능하다. 삭감하는 것이 아니다. 분명한 기간을 설정해서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의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 소장인 요한 록스트룀 교수는 “과학적으로 보건대, 화석연료를 폐지해야 한다는 것 외에 우리가 논의해야 할 다른 방도는 없다”고 했다.

싱크탱크 E3G의 앨든 메이어 연구원은 “알 자베르가 ‘동굴 속으로 데려갈 것’이라고 한 건 잘못이다. 그것은 화석연료 산업이 오래 전부터 구사해 온 비유다. 장담하건대 그는 기회만 있으면 그 얘기를 다시 들고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나미비아의 젊은 기후활동가 이나 마리아 시콩오는 “(1.5도 상한 목표를 설정한 COP 21의) 파리협정을 지키기 위한 화석연료 폐지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없다”면서 “과학은 명확하다”고 했다.

마셜 군도의 기후특사 티나 스티지는 1.5도 상한이 “북극성”이라며 “수많은 생명들이 위기에 처한 지금 1.5도 상한 목표를 달성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다”고 말했다.

E3G의 에너지 정책 전문가 레오 로버츠는 1.5도 상한 목표가 화석연료의 단계적 폐지를 통해 달성될 수 있을지, 아니면 일부 화석연료를 태우면서 단계적으로 감축함으로써 달성될 수 있을지 두 가지 주장이 다투고 있다며, 후자를 “과학을 정치로 번역한 것”이라고 했다.

 

4일(현지시간)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8)가 열린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피카츄 복장을 한 사람들이 화석 연료 사용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COP28 의장국인 UAE의 술탄 알 자베르 의장이 지난달 인터뷰에서 화석연료의 단계적 감축 필요성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주장한 것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2023.12.04. AP 연합뉴스

탄소 포집과 저장(CCS)도 해결책 못돼

유럽기후재단 멤버로 2015년 파리 기후협상 설계자의 한 사람인 로렌스 투비애나는 4일 CCS(탄소 포집과 저장)는 여분의 도움은 되겠지만, 그것으로는 기후 참사를 피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로 온난화 가스 배출을 줄일 수 없기 때문에 화석연료의 단계적 폐지는 말할 것도 없고 단계적 감축조차 이룰 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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