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장기불황에…중국 지방정부 직원 봉급도 '쩔쩔'
헝다·비구이위안 등 부동산개발업체 파산 직면
재정수입 40% 의존 지방정부 땅장사 수입 격감
공무원 급료삭감·감원, 시영버스 운행 축소 조처
탈부동산 등 산업정책 전환 효과 나오기까지 요원
“우리는 6개월 간 급료를 받지 못했다. 동물의 먹이도 다 떨어졌다. 곧 굶어 죽게 생겼다.”
지난 9월 중국 랴오닝 성 와팡뎬 시 중심부에 있는 시영공원 동물원에서 일하는 사육사가 써서 우리에 붙여 놓은 종이에 적혀 있던 글이다. SNS 등에 영상이 떠돌면서 큰 화제가 됐다.
4일 일본 <아사히신문>은 자사 기자가 그 현장을 찾아가 취재한 내용을 기획연재 기사로 내보냈다.
동물 사료비도 사육사 급료도 못 준다
그 첫 번째 연재 기사에서 기자는 화제가 됐던 그 동물원을 찾아갔다. 소 우리 안을 청소하고 있던 남성 사육사에게 물어 보니, 그는 몇 명의 동료들까지 포함해서 “모두 반년간 급료를 받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동물 사료비도 지급되지 않아 동물들은 “시민들이 배추와 당근 등을 가져다 줘 간신히 연명하고 있다”고 했다.
동물들이 걱정돼 살펴 보러 온 시내의 한 여성에 따르면, 주변의 공무원들도 반년 정도 급료를 받지 못했고, 파출소의 젊은 경찰관도 급료를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모두 저금한 것을 깨서 쓰거나 일가친척 도움으로 살아가고 있다며, “이 도시의 모두가 경제상태가 좋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많은 지방정부, 도시들 공무원 급료 지불 못해
상대적으로 안정돼 있는 것으로 여겨졌던 공무원의 급료가 지불되지 않고 있는 사태가 많은 도시들에서 벌어지고 있다.
“지도자 여러분, 우리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톈진 시의 공영 버스회사 사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지난 9월 인터넷에 투고한 내용도 화제가 됐다. 급료가 3개월간 지급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부모님이 보내 주는 돈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정말 괴롭다.”
원인은 지방정부 재정수입 40% 차지 부동산 개발 불황
급료가 지불되지 않고 있는 이유는 지방정부의 재정난이다. 지방정부가 공무원들 월급조차 줄 수 없을 정도로 돈이 없다. 그 원인은 길게 이어지고 있는 부동산 불황이다.
중국에서는 대부분의 땅이 국유지로, 이를 관리하는 지방정부가 부동산회사 등에 땅 사용권을 팔아서 개발을 하게 된다. 사용권 매각 수입이 지방정부 재정수입의 약 40%를 차지한다.
중국 재무부 통계를 보면, 지방정부 전체의 땅 사용권 매각 수입은 2021년에 8.7조 위안(약 1583조 원)으로, 약 20년간 150배 정도 불어났다.
하지만 부동상 경기 악화로 2022년에는 전년 대비 약 20%가 줄었고, 올해 1~9월에도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약 20%가 감소했다.
광둥, 푸젠성 등 공무원 급료 삭감
이 때문에 지방정부에서는 급료를 깎거나 인원을 줄이는 사태가 확산됐다.
중국 언론들이 온라인 뉴스로 보도한 바에 따르면, 지난 7월 경제적으로 비교적 윤택한 광둥성과 푸젠성 등 4개 성이 직원의 급료를 15~25% 깎았다. 그런데 이 뉴스는 곧 삭제됐다. 4개 성 지방정부는 가타부타 아무런 발표도 하지 않았으나, 중앙정부 관계자가 “어느 지방정부든 모두 돈이 없어 급여를 줄이고 있다”고 말한 사실이 알려졌다.
헤이룽장성 하얼빈 시는 앞으로 5년간 비정규직 직원을 매년 20%씩 줄이겠다고 밝혔다. 허베이성 스옌 시에서는 지난 4월, 300명이 넘는 직원들을 줄여 인건비를 “1500만 위안(약 27억 3000만 원)을 아꼈다”며 성과를 자랑했다.
공영버스 운용도 축소
지방정부의 재정난이 사람들의 일상생활에도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간쑤성 란저우 시는 지난 8월, “공공버스가 장기간 적자경영을 계속해 왔는데, 이런 힘든 상황을 계속 밀고 나갈 수 없다”며 요금 인상 방침을 밝혔다.
허베이성 바오딩 시는 7월에 1300대가 넘던 노선버스를 약 300대까지 줄였다. 노선 수가 줄고, 운용 편수가 적어져 이용자들이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졌다.
중국 GDP 30% 차지하는 부동산 개발산업
중국 부동산업계는 2년 전에 대기업인 중국헝다집단(Evergrande)의 경영위기가 표면화된 것을 시작으로 심각한 경영난에 빠진 기업들이 속출하고 있다. 부동산 관련 산업은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어서, 부동산 산업이 불황에 빠지면서 중국경제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중국 부동산 산업 불황은 중국경제 전체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세계의 경제성장을 견인해 온 중국경제 불황이 심화되면 세계경제 또한 어려움을 겪게 된다.
파산보호 신청한 헝다집단의 경우
총 부채가 2조 4000만 위안(약 437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 부동산 개발 거대기업인 헝다집단이 지난 8월 미국 뉴욕에서 연방 파산법 제15조에 따라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중국 내에서는 헝다집단이 발행한 채권이나 은행 대출 기한이 임박해도 정부가 나서서 기한을 유예해 주면서 부채처리를 위한 시간벌기를 도와 준다. 하지만 홍콩시장에서 발행한 미국 달러 베이스 부채나 미국에서 차입한 부채도 일부 있는데, 이들 부채 채권자들 중에 헝다집단이 제시한 부채처리 방안에 동의하지 않고 자산 차압에 나서는 등의 조치를 취하는 이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럴 경우 기업이 돌연사하거나 청산될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있다. 파산보호 신청은 이를 피하고 채무 재편 교섭의 시간을 벌기 위한 방편이다.
‘잃어버린 30년’의 일본과는 다를까?
헝다의 총부채 규모 중 이자를 지불해야 할 부채는 약 6천억 위안(약 109조 원)으로, 이는 중국 은행 전체 대출규모의 0.3% 정도여서 중국 은행 시스템 자체를 흔들만큼의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또 땅 소유권과 공급권을 지방정부가 갖고 있어 수요가 줄어들 때는 토지 공급을 억제할 수 있는데다, 거대 국유기업들을 동원해 부실화한 부동산 자산을 시장가격보다 높게 사들일 수 있는 중국에서는 도쿄와 오사카 상업지구 땅값이 80% 전후로 급락한 일본의 부동산 거품 붕괴와 같은 사태가 일어나진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하지만 비구이위안 등 다른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들도 비슷한 경영위기에 빠져 있고, 이런 상황에서는 구매자 쪽의 불안 때문에 부동산 매매가 이뤄질 수 없어 부동산 불황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중앙정부가 이런 심각한 부동산 문제를 과소평가하면서 제때에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있다. 이미 채무초과 상태인 헝다집단이 자력으로 경영을 재건하긴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문제는 저성장 기조 굳어지는 것
중국이 이른바 ‘중진국의 함정’을 피하기 위해서는 반도체와 같은 고부가가치의 첨단기술 분야 쪽으로 자원과 에너지를 집중하는 ‘탈부동산’ 전환이 필요하고, 중국정부가 그런 전략 아래 산업정책 전환을 꾀하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장기 부동산 불황 상태에서 중국경제의 성장률도 개인 소득 상승률도 모두 내려가는 상황이 더 길게 이어질 경우 저성장 기조가 굳어지고 다시는 과거와 같은 성장기조로 되돌아가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들이 있다. 부동산 거품이 터진 뒤 ‘잃어버린 30년’ 얘기가 나돌고 있는 일본과는 달리 중국은 아직 성장의 여지가 있고 재정 투입 등의 동원수단도 많이 있지만, 인구 고령화와 마이너스로 돌아선 소비지출 약화 추세 속에서 부동산 불황으로 인한 이런 저성장 기조가 굳어질 경우 사태가 심각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