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일 수는 없다

[관료의 나라 ⑬] 주권자인 국민이 국가 재정을 통제해야

2023-11-09     소준섭 전 국회도서관 조사관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소준섭 전 국회도서관 조사관

‘재정준칙’? 경제위기에 오히려 확장적 재정이 필요하다

우리 인간 세상에서는 항상 이른바 ‘돈줄’을 쥔 사람이 주인이고 대장이다. 이는 정의와 가치를 최고 판단기준으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비극적인 일이지만, 부인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다. 어느 회사든 돈줄을 쥔 사람이 사장이고 회장이며 주인이다. 사장이면서, 회장이면서 돈줄을 쥐지 못했다면 그 사람은 바지저고리 사장일 뿐이다.

이러한 ‘상식’에 비춰보면, 우리나라는 이 나라 돈줄을 쥐고 있는 기재부가 사실상 이 나라의 주인이다. 기재부 관료집단은 현직에서 주인일 뿐 아니라 전관으로서 금융관련 기관을 완전하게 독점함으로써 금융시스템을 장악하면서 이들의 지배력은 더욱 철저하게 관철하고 있다.

그런데 이 기재부는 ‘재정준칙’을 마치 금과옥조인양 내세운다. 그러나 2008년 세계금융위기와 2020년 COVID-19 팬데믹이라는 두 차례의 큰 경제위기에 많은 국가들이 경기부양과 확장재정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즉, 이러한 긴급상황에서 재정준칙의 적용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거나 심각한 경기 침체 또는 자연재해 등 예외 상황을 인정하는 조항들을 발동하고, 외부적 경제충격에 적극적으로 재정적인 대응을 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확장적 재정정책은 경제위기 시기에 반드시 필요하다. 저명한 경제학자 케인즈는 경기 침체 상황에서 적자 지출을 해야 한다고 갈파하였다. 재정준칙이란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경제위기에 적절히 대처하기 위해 재정 여력을 사전에 확보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초라한 전문성, 기득권 옹호 그 자체인 근원적 보수성

기재부는 자신들의 전문성을 자랑하고, 그 자랑은 정치권을 비롯해 대부분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정작 그런 그들이 발표하는 세수 통계는 매년 두 자리 수 오차를 드러내고 있다. 가장 기본적인 통계조차 큰 오차를 보이고 있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들이 내세우는 전문성은 초라하다. 기재부 출신들이 국가 경제정책을 완전히 주도했던 문재인 정부 후반기에 기재부 출신이던 어느 정책실장은 국정감사 현장에서 국가정책의 가장 기초적인 통계인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답변하지 못했다. 기재부는 늘 전가의 보도처럼 재정건전성을 내세우며 세금감면을 한사코 반대하더니 보수정부가 들어서자 역대 최고의 세수 펑크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의 법인세를 비롯하여 부유층의 양도소득세 등은 대폭 감면한 반면, 직장인들에게 걷는 근로소득세는 대폭 늘어만 가고 있다. 그들의 근원적 보수성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사람들은 우리나라 기재부만 알기 때문에 국가재정이란 항상 지금처럼 운용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 나라 기재부는 한 나라의 예산과 금융 그리고 재정을 한 손에 완벽하게 장악한 일본의 재무성(구 대장성)을 벤치마킹한 것일 뿐이다. 대부분 현대 국가들의 재정은 이와 다르게 운용된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이 19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기획재정부에 대한 국정감사가 잠시 휴정하자 김완섭 2차관, 김언성 기획조정실장(가운데) 등과 대화하고 있다. 2023.10.19. 연합뉴스

미국은 대통령이 예산 편성권 가지고 있다

미국의 예산 편성 과정을 알아보자. 미국 연방 행정부는 예산정책집행을 관리·감독하기 위한 기구로 대통령 직속기구로 백악관 관리예산처(OMB;Office of Management and Budget)를 두고 있다. 대통령은 예산안작성 및 제출을 통해 예산의 기본골격을 제시하고, 예산법안 등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처음에는 예산편성이 각 부별로 작성되고 각각 별개로 의회에 제출되었다. 그러나 행정부 전체의 예산통합을 위해 1921년부터 재무부 예산국(BOB: Bureau of Budget)에서 관장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1939년에 재무부에서 예산국을 대통령 직속으로 옮기면서부터는 관리예산처(OMB: Office of Management and Budget)가 관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1970년에 닉슨(Nixon) 행정부에 이르러 관리예산처(OMB)로 재조직화된 이후 예산 및 행정관리의 핵심 역할을 담당해왔으며, 1990년에 관리담당 부서와 예산담당 부서를 자원관리실(Resource Management Office)이라는 하나의 부서로 통합함으로써 행정관리의 통합성을 제고하고 있다.

OMB의 기본적인 역할은 예산편성 및 연방정부 재정사업 계획수립을 관장하고 대통령을 보좌하는 일이다. 구체적으로 대통령이 의회에 제출하는 예산교서, 예산 개요와 예산서 및 그 부속서류를 작성한다. 행정부의 각 기관은 요구계획서를 OMB에 제출하는데, 여기에는 각 기관의 전년도 예산집행의 평가, 현행 정책의 문제점, 장래의 계획 등이 검토되어 있다. OMB는 재무부 및 경제자문위원회와 협력하여 경제전망(Economic Assumption)과 재정전망(Economic Projections)을 작성한다.

대통령은 OMB 처장이나 관계 각료와 예산 전망 및 예산정책에 대해 협의한다. 이어서 대통령은 OMB 처장과 협의하여 전반적인 예산지침과 각 부처별 예산한도액(budget ceiling)을 설정한다. 각 국·과에서 제출한 자료를 토대로 각 기관의 예산책임자들이 참석하여 검토한다. 대통령한테 재정정책, 예산규모, 개별정책에 대하여 보고하고, 재정정책은 재무부 및 경제자문위원회와 공동으로 수립한다. 대통령은 OMB 처장 또는 관계자와 일반적 예산정책, 예산 전망 등에 대해 협의·검토하고, 당해연도의 예산에 대하여 일반적 지침 및 각 기관별 계획목표를 결정한다. 또한 대통령이 각 기관에 대해 결정한 ‘예산안편성지침’과 ‘예산한도액’을 제시한다.

각 부처의 예산요구서의 작성은 OMB의 예산편성지침을 받은 다음부터 본격화한다. 대개 매년 7월과 8월 중에는 각 부처는 「한도액」 등의 예산정책에 관한 지시에 비추어 각 부처의 예산요구에 대한 엄격한 검토와 수정을 한다. 각 부처에서 예산요구서가 제출되면 OMB의 사정이 시작된다. 예산사정에는 전문가와 각 기관의 대표로부터 정책, 예산 및 관리의 문제에 대하여 설명을 듣는 청문회(hearings)를 열기도 한다. 청문회가 끝나면 예산사정관들은 사정작업의 결과에 대한 보고서 작성에 앞서 관리예산처장과 비공식적 협의를 거친다. 그리고 사정관들의 보고서는 사정위원회의 심의를 거친다. 또한 재무부 및 경제자문위원회와 협력하여 경제전망 및 경제정책을 재검토하고 11월에는 전망 및 정책에 관해 대통령과의 협의를 고려하면서 대통령에 대한 예산권고(Budget Recommendation)를 준비한다.

예산 편성의 최종단계는 11월과 12월에 이루어지며, 이때 대통령의 예산교서가 작성된다. 예산교서는 10월 하순 또는 11월에 OMB에서 기초를 잡고, 11월 중에는 각 부처에 회람되어 그들의 의견을 청취한다. 그리하여 12월 초순에는 백악관으로 이송된다. 이때 재무성은 세입의 최종적인 추계를 마련하여 예산서에 포함될 「세입 추계에 관한 설명」(Explanation of the Estimates of Receipts)을 준비한다. 각 부처에 통고된 한도액의 기초인 예비적인 세입 추계와 크게 차이가 발생하는 상황도 있는데, 이 경우 대통령은 OMB·재무성·경제자문위원회와 협의한 후 세출예산안에 대해서 수정을 할 수 있다. 그런 다음 OMB는 예산서를 정리하고 각 부처 예산에 대한 대통령의 승인을 얻어 해당 부처에 그 결과를 통고한다. 대통령은 예산교서(The President’s Budget Message)와 예산안(The Budget of the United States Government)을 보통 2월 첫째 월요일에 의회에 제출한다.

미국 의회, 예산법률주의에 의해 최종적인 예산편성권 보유

한편, 미국은 ‘예산법률주의’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의회가 최종적인 ‘편성권’을 행사한다. 대통령이 예산안을 제출하기는 하지만 이는 예산안 심의과정의 ‘시작’을 알리는 것으로서 법적 구속력이 없다. 대통령 예산안은 의회 예산 심의에 있어 참고사항이 될 뿐, 의회는 무제한의 수정 권한 또는 독자적 예산 편성권을 가지고 있다.

결국 의회 예산위원회가 국가 예산 총액과 분야별 예산 한도의 조정과정을 거쳐 예산결의안을 만들고 의결절차를 거쳐 예산이 최종적으로 완성된다. 의회가 예산의 편성 및 확정권을 가지고 있어 주도적으로 예산안을 만들지만, 행정부와 의회가 예산에 있어서 상호 견제가 이루어진다. 의회의 예산 심사 기간도 약 8개월 정도로 길게 확보하고 있다.

아무도 관심 없고 기대도 전혀 없는 예산국회

목하 예산국회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 예산국회에 대하여 기대하는 사람은 1도 없다. 그저 수박 겉핥기에 여야 정쟁으로 지새고 결국에는 쪽지 예산이니 자기 지역구 챙기기로 귀결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우리 국회는 매년 어김없이 예산 문제로 시끄럽다. 그러나 정작 국회에서 예산 심사에 겨우 두 달이 주어질 뿐이다. 심지어 그 두 달도 사실은 지켜지지 않는다. 국회에서 여러 차례 예산 심사를 해왔다는 어느 의원은 필자에게 두 달 심사기간은커녕 의원들이 행정부로부터 회의 일주일 전에야 겨우 심사 자료를 받는데, 그것도 산더미처럼 많은 엄청난 자료로서(이것도 일 년 전의 그 자료에 단지 숫자만 바꾼 것이 태반이라 했다) 열람할 수도 없고 또 실제로도 거의 열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의원에 의하면, 그렇게 하여 예산 심사에 들어간다 해도 의원들은 언론에 자기 이름을 내기 위해 이미 매스컴에 소개된 예산 관련 사안 발언을 되풀이하거나 아니면 자신의 지역구 관련 예산 발언만을 계속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행정부 공무원들은 “1년에 3, 4일만 국회에 나가 수모 당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의원들 질문이 이어지는 회의장 뒤쪽에서 졸고 있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말했다(사실 공무원들도 실제 예산 내용을 잘 알고 있지 못하다고 의원은 말했다).

이렇게 수박 겉핥기식으로 진행되는 심사는 결국은 대부분 규정에도 없는 이른바 ‘소소위’에 넘겨져 예산의 구체적 내용이 아닌, 단지 “총액 규모를 얼마 깎자”라는 여야의 ‘보여주기식 숫자 싸움’으로 마무리된다. 이 와중에도 각당 중진들을 비롯해 자기 지역구 예산 증액을 목표로 하는 ‘쪽지 예산’이 횡행한다. 결산 분야는 더욱 심각해서 아예 관심도 없고 물론 능력도 전혀 없다는 평가다.

국회에서 역대 국회의 행정부 예산안 수정은 겨우 1%에 그쳐, 99%가 그대로 통과된다. ‘통법부’가 따로 없다. 또한 국가 재정통제의 중요한 수단으로서의 국정감사는 실효성이 심각하게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다. 근본적으로 재정통제가 불가능한 현실이다. 이런 식으로 국민들의 혈세는 엉망으로 관리되고 낭비되고 있다. 

국회는 예산 감액 권한밖에 없다

사실 우리 국회는 항상 큰소리치지만, 정작 예산 조정의 권한도 보유하고 있지 못하다. 오직 감액만 가능하다. “국회는 정부의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는 헌법 제57조의 규정 때문이다. 국회가 예산 조정을 할 수 없고, 기재부가 내놓은 예산안을 감액하는 것이 고작이다. 필연적으로 기재부의 힘이 막강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국회는 감액한 그 예산으로 ‘쪽지 예산’이라는 편법을 관행화한다. 근본적으로 국회에 의한 재정통제가 불가능한 현실이다.

다른 나라 의회는 어떻게 예산심의를 하는가?

미국의 의회는 행정부 소속의 예산국에 비견되는 의회예산처(CBO: Congressional Budget Office)의 뒷받침에 의해 충실한 예산 심의를 수행한다. 미국은 1974년도에 의회예산 및 지출거부통제법(Congressional Budget and Impoundment Control Act, 약칭 의회예산법)이 제정되면서 의회예산처(CBO)가 신설되었다. CBO는 행정부 예산안에 상응하는 입법부 예산안(budget resolution) 작성을 보좌한다.

CBO의 주된 역할은 대통령의 예산에 대한 분석과 대안을 의회에 제시하고, 개별의원들에게 재정문제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다. 재정정책의 대안, 세출예산의 규모, 예산상의 우선순위 등에 관한 포괄적인 연구보고서를 작성·제출하며 여기에 자신들의 독자적인 견해를 덧붙인다. OMB가 집권당의 정책과 같은 입장인 데 비해, CBO는 야당의 입장을 함께 반영하므로 보다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입장을 취한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의회예산처는 의회 예산위원회에 경제 및 예산 전망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며, 각 상임위원회도 예산위원회에 예산 관련 입장과 추정치를 제출한다. 의회의 예산 심사 기간은 약 8개월에 이른다.

독일에서 예산안은 매년 9월 1일 의회에 제출되어 연방의회 상하원 각각의 제1독회를 거쳐 (정당 소속의 정책위원을 포함하여) 전문성을 갖춘 하원 예산위원회의 심사만 꼬박 3개월이 소요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본회의에 회부되어 제2독회와 제3독회를 거쳐 의결된다. 상원은 이에 반대해 수정안을 낼 수 있지만, 하원은 다수결로 이 수정안을 거부할 수 있다. 프랑스 그리고 영국 등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 최소한 3개월 이상의 심사 기간을 경유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중요한 점은 이들 나라도 행정부가 예산안을 작성하기는 하지만, 반드시 회계감사원(혹은 검사원)에 의한 사실상의 ‘사전 감사’ 과정을 거쳐야 예산안이 작성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우리의 경우처럼 행정부가 독주하는 예산안이 아니라 의회와 회계감사원의 통제가 가능하게 된다.

한편, 결산 심사는 미국의 경우 별도의 심사제도가 없이 의회에 설치된 회계감사원에서 연중 상시적으로 실시한다. 프랑스나 독일 그리고 영국은 독립된 회계검사원의 회계감사 보고서를 제출받아 시행한다.

국가 예산은 국가 운영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핵심적인 사안이다. 도대체 우리는 언제까지 이 중요한 예산 심의를 비체계적이고 무책임하게 운용해야 하는가?

'재정민주주의' 뒤바뀐 현실

국가 재정에 대한 통제는 주권자인 국민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곧 국민주권주의 정신의 실현이고, 재정민주주의의 내용이다. 기재부가 ‘재정준칙’과 ‘재정 건전성’을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면서 국가재정을 완전히 통제하고 장악하는 것은 주객전도의 상황이다.

원래 의회의 형성 자체가 행정부에 대한 재정통제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미국 독립전쟁 당시의 “대표 없이 세금 없다”는 격언은 이를 한 마디로 웅변하고 있다. 특히 의회의 재정통제 기능을 제도화하고 정상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독립적인 회계검사 기관을 설치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국회의 예산 심사 기간은 다른 나라들처럼 훨씬 확대되어야 한다. 그리고 예·결산 상임위원회의 위원 임기는 4년 임기로 전문화되어야 한다. 동시에 국회에 설치되어 있는 예산정책처가 명실상부한 예산 전문기관으로서의 위상을 정립함으로써 의원들의 예·결산 심사 활동을 효율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나아가 국회 소속의 회계감사원 혹은 국회와 긴밀히 연결되는 독립적인 회계감사원을 기초로 국가재정 통제라는 임무를 “국민의 이름으로” 수행해야 한다. 또한 국회는 오로지 예산 감액만 할 수 있게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제57조를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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