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관 속편’ 예고한 박민 KBS 사장 청문회
‘망가진 공영방송의 정상화’ 궤변으로 일관
노골적 극우 편향인데도 “난 중도 보수” 주장
대통령과의 친분 외에 발탁 이유 설명 못해
'정해진 결론' 속에 부실 공허한 답변
7일 박민 KBS 사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는 '이동관 청문회'의 재판이었다. 두달 여 전인 8월 18일 국회에서의 이동관 씨 자리에 박민 후보자를, 방송통신위원장 대신 공영방송 사장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라는 것만 달라졌을 뿐 거의 그대로 재연한 것이었다. 후보자의 임명에서부터 청문회, 앞으로의 전망까지 정부 여당에 의한 공영방송 장악 시리즈의 전편에 이은 후편, 이동관의 속편이며 제 2부 격이었다.
박민 후보자는 이동관 후보자를 모방하기로 작정하기라도 한 듯 자신에 대한 의혹을 부인하거나 모르겠다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이 후보자가 그랬듯 '공영방송 정상화' '노영 방송' 등의 주장도 그대로 복제판이었다. 여러 조사에서 신뢰도 1위의 결과를 꾸준히 보이고 있는 KBS가 왜 신뢰도가 실추해 있다고 보는지, 공정방송을 위한 제도적 장치들을 '노영 방송'이라고 하는 게 왜 타당한지에 대한 납득할 만한 설명 없이 되풀이할 뿐이라는 점에서도 박 후보자는 자신의 선배이며 공영방송 장악의 한 팀인 이동관 후보자와 다를 게 거의 없었다.
이날 야당 의원들의 질의와 추궁은 박 후보자를 거세게 몰아붙이기도 했지만 그의 부적격성을 드러내는 데는 충분치 못해 보였다. 그것은 야당 의원들의 준비와 날카로움의 부족일 수도 있지만 이 청문회의 결론이 그의 내정 때부터 사실상 정해져 있었기 때문인 듯했다. 이동관 씨에 대한 청문회가 그의 방통위장 입성을 위한 요식 행위였을 뿐이었듯 박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 역시 청문회 결과와 상관 없이 대통령의 재가가 예정돼 있는 듯한 상황에서 이미 KBS 사장실에 들어가 있는 것이 확정된 상황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민주당 과방위원들이 장제원 과방위원장의 인사청문회 진행을 지적하면서 박 후보자가 제대로 자료를 제출하고, 잘못된 태도에 대해 사과하게 해달라고 장 위원장에게 요청했지만 표적 공격을 당한 고민정 의원의 신상발언조차 허용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듯 여당의 박 후보자에 대한 비호와 두둔은 이 확정된 결론을 위한 요식 절차에 대한 조역이었다.
박 후보자는 방송 경력이 전혀 없는 자신이 KBS 사장으로 발탁된 배경으로 명백하게 보이는 사실들 외에 자신이 왜 국가기간 공영방송의 수장으로 적합한지에 대한 이유를 대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이던 시기 법조언론인클럽 회장을 지냈고, 이동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과 서울대 정치학과 동문이라는 권력자들과의 친분, 문화일보에서 대통령을 위한 찬가를 불렀던 것 외에 다른 이유를 제시하지 못했다.
그가 인삿말에서 얘기했던 "디지털과 모바일, OTT와 AI의 도전에 직면해 소모적인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능력은 그의 이날 답변 어디에서도 분명히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공영방송 경영자로서의 능력은 이렇듯 찾기 힘들었던 반면 그가 KBS 사장으로서 하고자 하는 일, KBS 사장으로 간택된 이유는 분명해 보였다.
'보도의 신뢰와 공정성 회복'.
이 '소신'을 청문회 내내 주문처럼 되풀이한 그는 “지금 우리 언론계가 ‘가짜뉴스’와 왜곡된 주장들이 사실과 진실을 압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일하고 효과적인 해결책은 공영방송의 정상화"이며, "불공정한 방송과 방만 경영으로 국민의 신뢰를 상실한 KBS가 정체성을 되찾아 공정과 공익, 공영을 지향한다면 한국 언론은 물론 민주주의와 우리 사회도 제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가 KBS를 가짜 뉴스의 온상인 듯 열거한 것은 대선 시기 김만배 인터뷰 보도, 오세훈 서울 시장 생태탕집 관련 의혹 보도, 검언 유착 의혹 보도 등 정부와 여당이 일방적으로 가짜뉴스라고 낙인 찍은 보도들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 자신이 문화일보 사회부장 시절 이 신문이 보도한 많은 가짜 뉴스 보도들의 목록은 그 주장을 무색하게 했다. 법원으로부터 오보 및 배상 판결을 받은 간첩조작 사건의 유우성 씨 북한사증 위조 보도를 비롯해 다큐 영화 ‘100년 전쟁’ 감독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보도, 청계산 무인기 보도 등은 '사실과 진실을 압도한 가짜 뉴스이며 오보들이었지만 이에 대해 그는 "사회적 파장이 크지 않은 보도들이었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이중 잣대를 보였다.
청탁금지법 위반 의혹 등에 이중 잣대
민들레에서 분석한 대로 그의 칼럼들이 드러낸 ‘극우 편향성’ ‘보수진영 대통령 시절에 용비어천가를 바친 어용 언론인의 흔적’, 특정 정당(국민의힘)의 편에 서서 노골적으로 훈계하는 ‘정치 훈수꾼’, 반면 상대편 진영 대통령과 정치인에게는 집요하고 폭력적인 언사로 비판을 쏟아낸 글들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중도 보수'라고 내세웠다. 그가 지난 7월 21일 문화일보에 쓴 '창조적 파괴자 윤석열의 숙명'이라는 칼럼에서 "윤 대통령이 ‘파괴자’의 운명을 타고났다"고 칭송한 것을 빗대자면 그가 청문회에서 보인 인식과 언론관은 공영방송 KBS의 독립성에 대한 파괴자인 것과 함께 '중도 보수에 대한 상식'의 파괴자라 할 만했다.
그는 위의 글에서 “공정을 넘어 ‘내 편에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나 이는 자기 자신에게는 전혀 해당이 안 되는 듯했다. 문화일보 재직 시절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위반 의혹, 상습 체납 문제 등 전반에 걸친 의혹에 대한 그의 해명은 자신은 그 '엄격한 잣대'에서 벗어나 있음을 보여줬다. 문화일보 휴직 당시 일본계 다국적 아웃소싱 기업인 ‘트랜스코스모스 코리아’ 비상임자문을 맡으며 월 500만 원씩 총 1500만 원을 받은 것이 청탁금지법 위반이라는 의혹에 권익위로부터 단순히 법령에 대해 안내를 받은 것을 상담이니 유권해석이라고 답변하는 태도에서 엄격한 잣대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인사청문회를 소관하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청문회 정회 시간에 입장문을 내고 “박민 후보자의 안하무인이 도를 넘고 있다"고 성토했다. “본인의 청탁금지법 위반 의혹을 포함한 인사청문회 준비 과정에서 제기된 각종 의혹에 모르쇠와 발뺌으로 일관하고 있다. 더 가관인 것은 후보자가 정당하게 문제를 제기하는 청문위원에게조차 ‘허위 주장’ 운운하며 적반하장식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