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려도 내려도 짐…'안전빵' 한은, 6번째 금리동결
경기 회복, 물가 상승 우려에 9개월째 어정쩡 동결
환율·유가 등 불확실성 커져 물가 목표 2%대 늦춰져
"3개월 뒤 금리 인상-인하 가능성 다 열어야" 의견도
이 총재 "금방 1%대 금리 기대 마라" '빚투족'에 경고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3.5%를 계속 유지했다. 지난 2월 이후 연속 동결이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는 19일 오전 9시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열어 현재 기준금리(연 3.50%)를 조정 없이 동결했다. 지난 2·4·5·7·8월에 이어 6번째다.
금통위는 가계부채가 빠르게 늘고 원/달러 환율도 11개월 만에 최고 수준에 이르는 등 금리 인상 요인이 있지만, 최근 소비 부진과 중국 등 주요국의 경기 회복 지연 등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통화 긴축 압력이 최근 다소 줄어들었다는 판단도 이번 기준금리 동결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크게 오른 미국 장기 채권 금리, 근원 소비자물가(에너지·식품 제외) 상승률 하락,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태에 따른 경기 불안 등을 고려해 기준금리 추가 인상을 하지 않는다면 당분간 한미간 금리 격차는 현재의 2.0%p로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금통위는 통화정책방향 회의 의결문에서 "물가상승률이 기조적 둔화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되지만, 주요국 통화 긴축 기조 장기화, 지정학적 리스크 증대 등으로 물가와 성장 전망 경로의 불확실성이 커졌다"며 "물가상승률 둔화 속도가 예상보다 완만해질 것으로 전망되고, 가계부채의 증가 흐름도 지켜볼 필요가 있는 만큼 현재의 긴축 기조를 유지하는 게 적절하다고 봤다"고 이날 금리 동결 배경을 설명했다.
특히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관련해 "상승률이 올해 말 3%대 초반으로 낮아지고 내년에도 완만한 둔화 흐름을 이어갈 것"이라면서도 "다만 높아진 국제 유가와 환율의 파급 영향, 이스라엘·하마스 사태 등에 따른 물가 상방 리스크(위험) 등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목표 수준(2%대)에 수렴하는 시기는 당초 예상보다 늦춰질 가능성이 커진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국내 경기에 대해서는 "앞으로 수출 부진 완화로 성장세가 점차 개선되면서 올해 성장률도 8월 전망치(1.4%)에 대체로 부합할 것"이라며 "다만 지정학적 리스크 증대, 주요국 통화 긴축 기조 장기화 등의 영향으로 향후 성장 경로의 불확실성이 높아졌다"고 진단했다.
이날 한은이 6번 연속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엇보다 불안한 경기 상황이다.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전 분기 대비 0.6%)은 1분기(0.3%)보다 높지만, 세부적으로는 민간소비(-0.1%)를 비롯해 수출·수입, 투자, 정부소비 등 모든 부문이 뒷걸음쳤다. 다만 수출보다 수입이 더 크게 줄어 순수출(수출-수입)만 늘면서 불황형 흑자를 보였다. 8월 산업활동동향 통계상 소매판매액지수는 내구재·준내구재 소비 부진과 함께 전월 대비 두 달 연속 떨어졌다.
그러나 한은이 경기부양을 위해 기준금리를 서둘러 낮추기에는 가계부채·환율·물가 등이 걱정거리다.
은행권과 전체 금융권의 가계대출은 지난달 각 4조 9000억 원, 2조 4000억 원 또 늘어 4월 이후 6개월째 증가세를 유지했다. 미국(5.25∼5.50%)과의 기준금리 역전 폭이 사상 초유의 2.0%p까지 커진 가운데 이달 초 원/달라 환율은 11개월 만에 가장 높은 1,363.5원까지 뛰었다. 외국인 증권(주식+채권) 투자자금도 8월과 9월 두 달 사이 31억 달러 이상 순유출됐다. 원화의 기준금리가 미국보다 크게 낮아지면, 더 높은 수익률을 좇아 외국인 투자 자금이 빠져나가고 원화 가치가 떨어질 위험이 커진다.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3.7%로 두 달 연속 올랐고, 이스라엘·하마스 사태 등으로 유가가 오른다면 상승률이 한은 목표 수준을 벗어날 가능성도 크다. 한은은 지난 8월 올해와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로 각각 3.5%와 2.4%를 제시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통화정책방향 회의 후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기준금리 동결은 금통위원 전원 일치 의견으로 결정했지만 향후 3개월 기준금리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날 금통위원 중에는 가계부채가 더 악화하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과 정책 여건의 불확실성이 커져 3개월 후 기준금리는 올릴 수도, 낮출 수도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이 총재는 설명했다.
이 총재는 이어 "금리가 금방 예전처럼 다시 1%대로 떨어질 것 같지는 않다"며 "집값이 오를 것이라고 예상하더라도, 자기 돈으로 투자하는 게 아니고 레버리지해서(돈을 빌려서) 하는 분들이 많은데 금융 부담이 금방 줄어들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기준금리는 지난 2020년 3월 코로나19 충격으로 인한 경기 침체 예상으로 한 번에 0.50%p 낮추는 '빅컷'(1.25→0.75%)에 이어 5월 추가 인하(0.75→0.50%)를 통해 2개월 만에 0.75%p나 빠르게 내렸다. 이후 무려 아홉 번의 동결을 거쳐 2021년 8월 26일 마침내 15개월 만에 0.25%p 올리면서 이른바 '통화정책 정상화'에 나섰다.
그 뒤로 기준금리는 같은 해 11월, 지난해 1·4·5·7·8·10·11월과 올해 1월까지 0.25%p씩 여덟 차례, 0.50%p 두 차례 등 모두 3.00%p 높아졌다. 하지만 금리 인상 기조는 사실상 지난 2월 동결로 깨졌고, 3.5% 기준금리가 이날까지 약 9개월째 유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