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시민이 공권력에 맞서 5년이나 싸우는 이유
과태료 고지서 늑장 발부에 항의하자 벌어진 일
공무집행방해로 기소…경찰 독직폭행은 무혐의
검사, 형식적 질문만…법원은 사실조회신청 묵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졸지에 전과자로
"실체적 진실 외면, 부당한 법집행 끝까지 싸울 것"
시민언론 민들레는 수사·사법기관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는 어느 시민의 얘기를 싣는다. 자신을 ‘사법피해자’라고 말하는 이들의 주장이 얼마나 사실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한 개인이 장기간에 걸쳐 생업에 상당한 차질을 감내하면서까지 ‘억울함’을 밝혀보려는 절박함에서 그 주장의 사실관계를 따져볼 만하다고 봤다. 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부닥친 장벽들은 사법기관의 관련 절차와 제도가 과연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해 상당한 의문을 갖게 했다. 이 같은 평범한 이들의 경험은 작고 사소하다고 여겨지겠지만, 보통 사람들의 일상의 저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경찰과 검찰, 법원의 개혁에 요구되는 미세한 측면, 본질적인 면을 드러낸다. [편집자 주}
안태근 씨는 2018년부터 지금까지 5년간 경찰, 검찰, 법원과 지루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이쯤 되면 그만둘 법도 하지만 안 씨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다툼을 이어가고 있다. 안 씨에 따르면 그를 ‘무모하고 지루한’ 다툼으로 이끈 것은 경찰의 잘못된 법집행이었다. 안 씨는 “실체적 진실을 외면하고 공정하지 않은 공권력 집행에 대해 끝까지 싸우려고 한다”고 말했다.
과태료 고지서를 놓고 벌어진 경찰의 이해할 수 없는 공무집행
2018년 3월 안 씨는 한 정부기관과 면담을 위해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한 도로에서 운전하면서 휴대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운전 중 통화가 경찰관에 의해 적발됐고, 안 씨는 휴대전화 사용을 인정하고 경찰관에게 신분증을 제시했다. 경찰관으로부터 과태료 고지서를 받고 가던 길을 갈 작정이었다.
안 씨는 “문제는 경찰관이 바로 고지서를 발부해 주지 않고 신분증을 갖고 다른 단속 현장으로 가버린 뒤 다른 공무를 봤다는 점”이라며 “경적을 울리면서 큰 목소리로 경찰관에게 빨리 고지서를 발부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안 씨를 격분케 한 것은 기다리는 와중에 15분이 흘러갔다는 사실이다. “정부기관 면담 약속이 늦어져 전화로 양해를 구하는 과정에서 적발되었는데도 그런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른 사건을 집행한다는 이유로 나를 무시하는 사실에 화가 났다. 고지서 발부를 위해 경찰관이 다가오자 차 문을 열고 나가려 했는데 경찰관이 오히려 내 차 문을 닫아 버렸다.”
이 과정에서 안 씨는 어깨에 상처를 입었다. 다시 차에서 내리는 안 씨를 경찰관이 멱살을 잡아 약 2~3분가량 서로 멱살잡이를 했다는 것이 안 씨의 주장이다. 멱살이 풀리자 경찰관은 고지서를 발부했는데 이는 15초 만에 이뤄졌다. 안 씨는 “경찰관에게 고지서 발부가 지연되고 멱살을 잡은 행위에 대해 사과를 요구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계속 사과를 요구하면서 경찰관의 조끼를 잡자 경찰관이 오른손 등으로 내가 잡은 손을 내리쳐 손톱이 깨지는 부상도 입었다.”
안 씨에 따르면 이내 다른 경찰관 2~3명이 다가왔고 안 씨는 재차 사과를 요구했다. 그런데 그 경찰관들은 그만 가라고 하면서 “이러면 공무집행방해로 수갑을 채우겠다”고 했다. 이에 안 씨는 “그냥 수갑 채우시라”면서 팔을 내밀었고 경찰관이 안 씨의 왼팔을 비틀어 꺾으면서 지구대로 끌고 갔다. 이 때문에 어깨에 멍이 드는 부상을 입었다는 것이 안 씨의 주장이다.
경찰관이 가한 폭행은 무시…졸지에 전과자 신세로
안 씨는 공무집행방해 혐의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이에 안 씨도 경찰관을 상해 및 독직폭행 혐의로 고소했다. 이후 경찰의 상해 및 독직폭행 혐의는 무혐의 처리되고 안 씨의 공무집행방해 혐의만 기소됐다.
안 씨는 검찰의 태도에 더욱 분노했다. 안 씨는 “검사가 나한테 한 말은 단 세 마디였다. ‘딱지 끊는 데 하루가 걸렸나?’ ‘또 그러실 거냐?’라고 물었다”고 했다. 이에 안 씨가 ”당연합니다“라고 하자 검사는 ”됐네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것이 검사 조사의 전부였다.
법정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안 씨에 따르면 판사는 안 씨에게 사건 경위에 대한 제대로 된 의견 표명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 안 씨는 ”수사보고서도 멱살잡이 등 상해 관련 내용은 빠지고 공무집행 방해만 포함된 거짓 보고서였다“고 말했다.
안 씨는 1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항소심에서는 경찰이 제출한 CCTV 원본이 30분 분량인데 17분으로 돼 있어서 나머지 13분도 추가 제출해 달라고 요청했다. 또한, 사건 당시 앞에서 고지서를 부과받은 오토바이 운전자에 대해 사실조회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법원에서도 원심 그대로 확정됐다.
안 씨는 현재 담당 경찰관에 대해서는 위증으로, 담당 형사를 허위공문서작성으로, 담당 검사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직무 유기로 고소하며 싸움을 지속하고 있다. 법정에서 현장을 목격한 증인으로 채택됐던 한 정육점 주인의 법정 진술과 경찰 목격자 조사에 나온 진술에도 차이가 있다는 것이 안 씨의 주장이다.
징역형에 집행유예가 확정된 공무집행방해 혐의 사건에 대해서도 재심을 청구할 계획이다.
안 씨는 “검찰의 선택적 수사권, 기소권에 의한 조사 없는 무혐의 결정이었다”면서 “독직폭행 무혐의 처분을 바로잡아 검찰의 처분이 잘못되었음을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상 무너졌지만 사후 설명도 제대로 들을 수 없어
기자는 안 씨의 주장에 대한 사실 확인을 위해 경찰과 검찰, 법원에 여러 차례 연락을 취했다. 이는 평범한 개인이 권력기관을 상대로 수년간 포기하지 않고 문제 제기를 한다면 그 주장에 대한 동의 여부와는 별개로 주목해 줄 만한 사정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족할 만한 답변을 얻기는 어려웠다. 검찰은 연락을 취한 지 5일 만에 “해당 사건은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 과정에서 확보된 참고인의 진술, 이에 부합하는 증거자료 등을 토대로 수사 및 처분하였다”면서 “이미 재판 확정된 사건 및 불기소 처분된 사건과 관련한 구체적 사항에 대하여 답변드리기 어려움을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라는 답변을 보내왔다. 그나마 이것이 세 개의 기관들 중에서 유일한 답변이었다.
국민, 민원인들을 대하는 수사·사법기관들의 태도가 꾸준하게 나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군림하는 권력기관에서 봉사하는 기관, 친절한 기관으로 변신하고 있다. 그 같은 개선과 변화의 한 부분이 이들 기관에 의해 부당한 일을 당했다고 주장할 경우 호소할 수 있는 창구 형식을 갖춘 것이다.
그러나 그 같은 제도와 형식이 실질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는 끊임없는 점검이 필요하다. 안 씨처럼 일상이 무너진 채 장기간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안에 대해 수사·사법기관이 ‘설명 책임’을 얼마나 충실히 하고 있느냐를 살펴보는 것이 그 같은 점검의 기본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