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표'는 없었다…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결국 낙마

국회 본회의 표결서 찬성 118, 반대 175로 부결

1988년 정기승 임명동의안 첫 부결 후 35년 만에

윤석열‧한동훈‧이균용의 자업자득…또 '인사 참사'

대통령실과 국힘, 야당 협조 구하긴커녕 자극만

일부 언론, 이재명 체포안 때처럼 '이탈표' 예상도

대통령실 "반듯하고 실력 있는데 부결, 대단히 유감"

2023-10-06     김호경 에디터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19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 2023.9.19 연합뉴스.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예상대로 국회에서 임명동의를 받지 못하고 낙마했다.  ☞ 대법원장 인준안 부결 가능성 높다…손놓은 여권, 왜?

집권여당에서는 '사법 공백'이 국민에게 피해를 준다며 가결론을 펼쳤지만,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은 사법부에 총체적 혼란과 폐해를 초래하게 될 '사법 공황'보다 차라리 '사법 공백'이 낫다고 판단했다. 재산을 둘러싼 각종 의혹과 과거 판결 사례들을 볼 때 도덕성과 청렴성, 인권 및 젠더 감수성 등 기본 자질이 의심스러운 데다 '친윤 성향'으로 법원의 독립성마저 위태롭게 할 부적격자라는 이유다. ☞ 대법원장 후보자는 그 많은 재산을 어떻게 모았을까 ☞ 여성·아동·가정폭력 가해자들에 '감형 제조기 ☞ '친윤' 대법원장이 부채질할 사법부 우경화

결국 이런 문제적 인물들만 골라서 지명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과, 인사 검증의 무능‧무책임을 수없이 반복하고 있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 그리고 국민들은 물론 법원 내부조차 설득하지 못한 이균용 후보자 본인의 자업자득이다. 윤석열 정권의 속성상 다음에 지명될 후보자가 크게 다른 인물일 것이라고 기대할 수도 없어 대법원장 공석 상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국회는 6일 오후 본회의에서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표결에 부쳤다. 무기명 전자투표를 통해 출석 의원 295명 중 중 찬성 118명, 반대 175명, 기권 2명으로 부결됐다. 이는 1988년 여소야대 국면에서 정기승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헌정사상 첫 부결된 이후 35년 만이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의 경우 2017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과 바른정당의 맹렬한 반대가 있었지만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별도의 입장문까지 내고 민주당 지도부도 야당을 향해 읍소를 하다시피 해 겨우 임명동의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에 윤석열 대통령은 이균용 후보자를 지명만 해놓고는 거의 나 몰라라 하는 식으로 아무런 지원사격을 하지 않았다. 국민의힘도 연일 야당을 갖가지 명목으로 공격하며 자극만 할 뿐 낮은 자세로 협조를 구하는 모습은 일절 없었다.

따라서 이날 투표 결과는 예견된 것이었다. 임명동의안은 '재적 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과반 찬성'이 가결 요건이기 때문에 111석인 국민의힘은 단독으로 임명동의안을 처리하기는커녕 표결 자체를 할 수 없었다. 압도적 1당인 민주당이 재적 298석(본래 300석에서 국민의힘 김선교·정찬민이 의원직을 상실했으나 남은 임기가 1년 미만이라 재·보궐선거 미실시) 중 168석을 차지하고 있고, 여기에 정의당 6석, 기본소득당 1석, 진보당 1석, 그리고 무소속 10석 중 민주당 성향이 5석이기 때문에 간단히 부결시킬 수 있었다.

 

6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표결 결과가 나오고 있다. 2023.10.6. 연합뉴스

일부 언론에서는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 때처럼 민주당 내 일부 '이탈표'가 나오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내놨으나, 의원총회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한 결과 이균용 후보자에 대해 적격 의견을 낸 의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원내부대표단에서 개별적으로 의원들을 접촉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부결 투표를 당론으로 정하고 투표에 임했다.

윤영덕 원내대변인 이날 오후 민주당 의원총회 뒤 "홍익표 원내대표가 이 후보자가 사법부 독립을 지키고 고위공직자로서 직무 수행하는 데 있어 능력, 자격 등 여러 문제가 있는 후보라는 민주당 의원들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당론 부결을 제안했다"면서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참석 의원 전원 일치 의견으로 당론 채택으로 부결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앞서 오전에 국회 본청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부결 시 사법부 공백이 우려된다는 정부‧여당의 여론몰이에 유감을 표한다"며 "이는 국회가 인사청문제도와 임명동의제도를 통해 부적격 인사를 걸러내도록 하는 삼권분립의 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사법부 공백 우려 때문에 자격 없는 인사를 사법부 수장에 앉히도록 하는 것은 사법 불신이라는 더 큰 부작용을 불러올 것"이라며 "대통령과 여당이 할 일은 국회와 야당에 대한 부당한 압박이 아닌, 실패한 인사 검증에 대한 사과와 부적격 인사 철회"라고 강조했다.

정청래 최고위원도 "부적격 인사를 추천한 윤석열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밥 먹듯 했던 윤석열 대통령의 오만과 독선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면서 "국회의 힘을 보여줄 때가 왔다. 국회 거부권 행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못박았다. 서은숙 최고위원은 "한동훈 장관은 법무부에 고위 인사검증단을 두는 것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자신의 책임 하에 인사 검증을 하고, 결과는 자신이 책임질 것이라 큰소리쳤지만 수많은 인사 참사에도 불구하고 전혀 책임지고 있지 않다"며 "한동훈 장관 휘하 고위인사검증단은 윤석열 정권 고위 인사를 검증하는 것이 아니라 고위 인사 검증 프리패스를 발급하는 무능한 검증단이다. 그야말로 '인사 리스크'가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의당도 당론으로 부결 투표를 결정했다. 강은미 원내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정의당은 오늘 의원총회를 열고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에 대한 부결 당론을 결정했다"며 ▲후보자 본인의 비상장 주식 재산 누락과 농지법 위반 등 위법 행위, 아들의 김앤장 인턴 특혜 의혹 ▲반기본권적이고 반소수자적이며 처참한 성인지 감수성을 보여준 과거 판결들 ▲반헌법적인 뉴라이트 역사관 등을 사유로 꼽았다.

정치권뿐만 아니라 시민사회계에서도 반대 성명이 빗발친 바 있다. 지금까지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성폭력상담소, 대한간호협회, 서울여성회, 인권운동사랑방, 전국공무원노조 성평등위원회 등 57개 여성·인권단체가 연대 성명을 냈고,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도 각각 지명 철회 등 명확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국민의힘이 6일 국회에서 이용균 대법원장 임명동의안 부결 관련 더불어민주당 규탄 대회를 갖고 있다. 2023.10.6

이균용 후보자는 표결 전날 입장문을 내고 "국회에서 제가 받은 지적과 비판의 말씀을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대법원장 직위의 공백을 메우고 사심 없이 국가와 사회, 법원을 위해 봉직할 기회를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한다"며 9억 9000만 원 상당의 비상장주식 처분까지 약속하는 등 국회에 가결을 호소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법원노조가 반대 의견을 낸 것은 마지막 결정타였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본부장 이경천)는 4일 입장문을 배포해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증여세 탈루, 국민건강보험법 위반 등 수많은 의혹들이 제기됐으나 후보자가 가장 많이 한 말은 '송구하다'와 '몰랐다'였다"며 "여러 의혹이 전혀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법원장에 임명된다면 국민은 법원 판결을 신뢰하지 않고 사법 신뢰는 요원해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하루빨리 국민 법감정과 눈높이에 맞는 새로운 대법원장 후보자를 찾아 다시 후보자 임명 절차를 밟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이 후보자는 법원장 근무 시절 법원 내 구성원들이 참여한 다면평가에서 최하위권 점수를 연속 받은 바 있다. 서울남부지법원장(2017년 2월~2019년 2월)과 대전고등법원장(2021년 2월~2023년 2월)으로 재임한 4년간 이뤄진 8차례의 '법원장 이상 다면평가' 결과에서 모두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이 평가는 3300명 이상의 법원 공무원들이 참여하는 것으로, 전체 다면평가 대상자는 35~40명 안팎이었다. 특히 이 후보자는 지난해 상반기 전국 법원장 다면평가에서 평점 0.653점을 받아 법원장 40명 중 39등을 기록했다. 지난해 하반기 같은 평가에서도 평점 0.552점으로 39명 가운데 38등이었다.

이 후보자는 재판에 참여하는 변호사들이 매년 선정하는 '지방변호사회의 법관평가'에서도 우수 법관으로 뽑힌 적이 한 차례도 없었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이 후보자가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로 근무한 9년 동안 약 6만 건의 변호사 평가를 모아 모두 97명(중복 선정 포함)의 우수 법관을 뽑았는데 이 후보자는 여기에 한 번도 들지 못했다. 이 후보자에 대한 법원 안팎의 평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실은 국회 표결 직후 "반듯하고 실력 있는 법관을 부결시켜 초유의 사법부 장기 공백 상태를 초래한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이도운 대변인은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이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야당의 일방적 반대로 부결됐다"며 "그 피해자는 국민이고 따라서 이는 국민의 권리를 인질로 잡고 정치 투쟁을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대법원장 후보자는 처음부터 다시 임명 절차를 거쳐야 해 최소 한 달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정기국회에서 예정된 다음 본회의는 11월 9일이지만 이달 10일부터 27일까지 국정감사 일정이 빼곡해 그 전에 인사청문회를 마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은 지난달 24일 퇴임해 현재 안철상 선임대법관이 대법원장 권한대행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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