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비판 받으며 정치판에 소환된 '펨코 이대남'

'펨코'로 살펴본 '이대남 현상'…국내 첫 분석 논문

'김치녀' 조롱 '일베'와 달리 정치세력화 된 '이대남'

"신자유주의·시장주의 기반한 공정성…혐오 정당화"

페미니즘이 불공정하다고? '공정의 가치' 알려줘야

2023-09-27     이승호 에디터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다시 정치판으로 소환된 ‘이대남’

‘이대남’이 다시 정치판으로 불려왔다. 유시민 작가가 지난 22일 노무현재단 유튜브 방송에서 ‘이대남’과 ‘펨코’를 비판한 게 계기였다.

유 작가는 방송에서 ‘이대남’ 세대에게 “불평만 하지 말고,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을 모아 요구를 표출하고 장애물이 있으면 대결하라”는 취지의 ‘충고’를 했다. 펨코 비판 발언은 이 과정에서 나왔다.

보수언론 등 일부 매체들은 유 작가의 특정 워딩을 꼬투리 잡아 비난했다. 국민의힘 허은아 의원, 김종혁 전 비대위원 등 여권 인사들이 비난에 가세했다. 최근의 선거 때마다 이슈로 떠올랐던 ‘이대남’이 다시 정치판으로 소환된 모양새다.

펨코(에펨코리아)는 ‘혐오 양산’으로 유명한 초대형 남초 인터넷 커뮤니티다. 이들의 혐오 대상은 여성은 물론 난민·흑인·무슬림·조선족·중국인·성소수자 등으로 무차별적이다. 언어도 거칠어 성소수자를 XX충으로 부를 정도다. 한 시기 ‘친 이준석’ 성향을 보여 관심을 끌기도 했다.

그동안 펨코는 사회적·정치적 ‘영향력’에도 불구, 학자들의 연구 대상에서 제외돼 왔다. 일베에 대한 논문이나 단행본이 종종 나온 것과는 대조적이다.

 

'펨코' 게시판 이용자들의 주요 단어 가중치(표)

흥미로운 논문‘펨코’로 살펴본 ‘이대남 현상’

이런 가운데 시민언론 민들레가 비교적 최근에 발표된 흥미로운 논문 한 편을 찾아냈다. 김선영(경남대)의 <온라인 커뮤니티 ‘에펨코리아’로 살펴본 ‘이대남 현상’>(한국언론정보학보, 2023년 4월호)이다. ‘이대남 현상’을 실증적으로 분석한 국내 최초의 연구다.

저자는 2021년 4월 1일~2022년 3월 31일 펨코의 정치·시사 게시판에 올라온 6만 3030건의 글을 분석하여 ‘이대남’의 머릿속을 들여다 봤다. 저자는 무엇을 보았을까.

‘이대남’의 페미니즘 비난은 과거 ‘일베’들의 ‘김치녀’ 비난과 달라

페미니즘은 핵심 키워드였다. 페미니즘은 ‘여성’ ‘민주당’ ‘반대’ ‘안티’ ‘정책’ 등의 키워드와 연계돼 나타나는 현상을 보였다. 페미니즘은 ‘이대남’ 관련 핵심 키워드이기도 했다.

핵심 키워드 간의 연결망 구성을 분석한 결과에서는 ‘페미니즘’과 ‘여성’이 핵심 키워드로 나타났으며 ‘여성’은 ‘페미니즘’ ‘혐오’ ‘가족부’ ‘할당제’ ‘정책’ ‘인권’ 등 키워드와 연계돼 있었다.

특히 ‘여성’→‘가족부’→‘폐지’→‘공약’의 연결망이 강하게 나타났다. 펨코 커뮤니티에서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 관련 이슈가 많이 언급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이 결과에서 두 가지를 주목했다. 우선 ‘이대남’(펨코 게시판 이용자들)의 페미니즘 비난은 여성 친화적 제도 및 정책 문제와 결부돼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는 과거 일베의 ‘김치녀’ 비난과는 성격이 매우 다르다. ‘김치녀’ 비난은 여성 개인에 국한하는 양상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이대남’은 페미니즘을 비난하며 제도와 정책 문제를 결부시키고 있었다.

페미니즘이 ‘반대’ ‘안티’ ‘혐오’ 등의 키워드와 연결돼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대남’이 페미니즘을 어떻게 소비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나경원 전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 2018년 3월 27일 극우 성향의 '일간베스트 저장소' 폐쇄에 대해 반대 의사를 밝혔다. 당시는 '일간베스트 저장소'를 폐쇄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23만 명을 넘어설 정도로 비판 여론이 높던 시기였다. 와이티엔 뉴스 화면

“성차별은 반대하지만 페미니즘은 불공정”?

‘이대남’이 생각하는 페미니즘 문제의 핵심 키워드는 ‘공정성’이었다. 현상적으로 반페미니즘 얘기를 하고 있지만, 그들이 진짜 하고싶은 말은 ‘공정성’이라는 얘기다. 그 예로 ‘이대남’들은 “성차별에는 반대하지 않지만, 여성할당제나 여성가산점은 공정하지 못하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성평등’과 ‘반페니즘’은 서로 모순돼 보인다. 저자는 이에 대해 “페미니즘 이슈를 단순히 젠더 문제가 아닌 ‘공정성의 논리’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며 “이것은 ‘이대남 현상’을 이해하는 핵심”이라고 밝혔다.

신자유주의와 능력주의에 기반한 ‘이대남의 공정성’

‘이대남’이 주장하는 ‘공정성’의 실체는 무엇일까. 그들의 ‘공정성’은 개인의 능력에 따라 사회적 보상이나 가치를 분배해야 한다는 능력주의를 바탕에 깔고 있다

능력주의에 기반한 공정성은 ‘이대남’이 페미니즘을 공정하지 않은 것으로 의미화하며 여성 및 사회적 약자, 소수자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논리적 근거가 된다. 또한 능력주의에 기반한 공정성은 모든 사람이 노력한 만큼 보상받을 수 있다는 신자유주의적 논리와 맞물려 있다.

이런 논리에서 ‘페미니즘=공정하지 않은 것’이라는 등식이 나온다. 이 등식은 다시 여성은 물론 사회적 약자, 소수자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논리적 근거로 채택된다. 또 여성은 개인적 노력과 공정의 원칙이 아닌 ‘국가 찬스’를 통해 정치적·경제적 혜택을 부여받는 존재로 전락한다. ‘이대남’이 여성할당제 등을 비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장주의와 결합한 공정성, 약자 혐오 정당화”

‘이대남’이 생각하는 공정성은 교환 가치 개념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교환 가치의 기본은 노력한 만큼의 대가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러나 교환 가치 관점에서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다양성 존중’ ‘다문화 인정’ ‘약자와 소수자 배려’ 같은 가치는 혐오 대상이 된다.

저자는 “시장주의와 결합하여 형성된 공정성은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진 동시에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혐오 표현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일베’와 달리 정치세력 된 ‘이대남’

저자는 “일베 유저들은 그들만의 리그에서 공유되고 회자 되었던 것들이 에펨코리아 유저들에게는 특정 정당 세력의 정치적 의제로 인하여 ‘정치적 효능감(political efficacy)’으로 발휘되었다”고 분석했다.

“‘이대남 현상’은 우익 포퓰리즘과 일정 부분 공명해서 나타나고 있는 동시에 온라인 커뮤니티 유저의 불만과 분노를 정치세력화하였다는 점에서는 ‘일베 현상’과는 확연한 차별점을 가진다”는 것이다.

논문은 이어 “언론이 이들의 불만과 분노의 목소리에 (긍정적·부정적이든 간에 일정부분) 정당성을 부여해주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행동하는 보통 남자들’ 소속 활동가들이 지난해 2월 9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개최한 '우리는 이대남이 아니란 말입니까'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22.2.9 연합뉴스

‘이대남’에게 공정의 가치 알려줘야

‘이대남’들의 사고 체계에서 ‘여성 혐오=불공정성 혐오’다. 불공정에 대한 생각이 기성 세대와 다르다. 조국 전 법무장관 자녀의 이른바 ‘대학입시 특혜 의혹’을 바라보는 세대간 시각차가 여기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저자는 “정치계든 학계든 간에 우리 사회에 ‘공정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역설한다.

“우리 사회가 그토록 공정을 말하고 공정을 원하고 있지만 정작 우리 사회에 무엇이 공정인지를 제대로 제시한 적이 있었던가? 또한 공정사회를 열망하기 전에 공정의 가치에 대해 청년 세대에게 제대로 가르친 적이 있었던가? 이와 같은 물음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요구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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