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이념 전쟁'…외국 언론들 '비판적 주목'
로이터 "윤, 비판자를 공산주의자라고 비난"
"친일외교 비판에 국민 설득 않고 반대파 낙인"
광복절 경축사 '이념 전쟁' 본격 개시 신호탄
중국 관영지 "반중·반러 행보, 한국에 이익 안돼"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 세력들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 "공산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다."
윤석열 대통령이 8월 15일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했던 발언이다. 일제의 압제에서 민족의 해방을 기념하는 광복절 경축사인데도, '일제' '강점' '광복'이란 표현을 포함해 일제 식민지 과거사 부분을 통째로 들어냈다.
그 대신 뜬금없이 '공산전체주의'와 '반국가 세력'을 직접 거론하면서 '이념 전쟁'의 본격적인 개시를 알리는 계기로 삼았다.
같은 달 28일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에서는 "국가가 정치적으로 지향해야 할 가치는 제일 중요한 것이 이념"이라고 했고, 29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행사에선 "공산전체주의 세력, 그 맹종 세력과 기회주의적 추종 세력들은 허위 조작, 선전 선동으로 자유 사회를 교란시키려는 심리전을 일삼고 있으며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광복절 경축사 '이념 전쟁' 본격 개시 신호탄
이어 9월 1일 국립외교원 60주년 기념식에선 "아직도 공산전체주의 세력과 기회주의적 추종 세력, 그리고 반국가 세력은 반일 감정을 선동하고, 캠프 데이비드에서 도출된 한‧미‧일 협력 체계가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험에 빠뜨릴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념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야당 등 반대 세력을 '공산전체주의, 반국가 세력'으로 사실상 낙인찍는 윤 대통령의 '이념 전쟁'에 대해 주요 외국 언론들도 서서히 주목하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한국의 윤, 비판자들을 공산주의자라고 비난하다'란 제하의 22일 자 기사에서 윤 대통령의 이런 행보가 보수 지지층을 결속하고 일부 정책에 대한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릴지는 모르지만, 분열에 기름을 붓고 일부 유권자들을 소외시킬 리스크가 있다고 지적했다.
로이터는 북한의 지속적인 위협과 국가보안법 등을 거론한 뒤 "한국에서 공산주의자 낙인은 서구의 많은 나라들에서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고 말했다.
윤석열의 '이념 전쟁'…외국 언론도 주목 시작
통신은 윤 대통령의 '이념 전쟁' 돌입 시점을 주목했다. 지지율이 하락하고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긴장이 높아지고 있었고, 또한 일제 과거사 문제를 무시하고 미국, 일본과의 3자 협력 강행 등 한국의 외교정책에서 뚜렷한 변화가 일어난 상황에서였다고 꼬집었다.
케빈 그레이 영국 서섹스대 교수는 로이터에 "한국의 대중 여론과 국제적 추구 사이의 갭이 커진다는 의미에서 윤에게 정통성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왠지 국민을 설득하지 않고, 반대파를 반국가, 공산전체주의 세력으로 낙인찍은 접근법을 택했다"고 말했다.
로이터는 윤 정부의 외교정책, 경제 관리,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핵 오염수 해양투기에 관한 입장을 주요 이슈로 거론한 뒤, 부정 평가 60% 안팎의 낮은 지지율 속에서 반대파를 공산주의자로 모는 것은 보수 기반 고수에 유용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말을 전했다.
앤드루 여 브루킹스연구소 한국석좌는 한국전의 유산과 북한의 한국 잠입 상황에서 "빨갱이 사냥"은 반대파를 악마화하는데 여전히 효과적이라면서 "불행히도 그런 전술은 오직 정치적 분열을 심화하고 민족주의적 양극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벤저민 앵겔 서울대 연구교수도 그런 방식은 작년 대선에서 자신을 찍은 상대적으로 온건한 유권자를 소외시킬 리스크가 있다고 지적했다.
SCMP도 윤의 친일‧반공 '이념 전쟁' 소개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도 '역사적 인물, 전쟁 영웅 대우 문제로 비난받는 윤이 이념 전쟁에 나서다'란 17일 자 기사에서 윤 대통령의 친일‧반공 정책과 홍범도 장군 등 항일 독립투사들의 흉상 이전 등에 대한 야당과 학계 등 한국 내 비판 여론을 상세히 소개했다.
신문은 "윤 대통령이 적대적인 북한에 대항하고자 대일 밀착을 추진하는 가운데, 한국이 항일 독립투사 대우를 둘러싼 때아닌 논쟁에 휩싸였다"고 썼다. 신문은 윤 정부가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이전하려는 주된 이유로 소련 볼셰비키와의 관련성을 들었다고 적었다.
이와 관련해 신문은 "흉상 이전은 홍 장군에 대한 부관참시"라고 비판한 한국역사연구회 등 51개 관련 역사단체들의 공동성명을 소개하고 "역사학자들이 한‧미‧일 신안보조약에 따라 채택된 윤 대통령의 냉전 스타일 외교정책 비전에 맞추려고 좌익 항일 독립투사들의 역할을 무시하는 윤 정부를 비난했다"고 지적했다.
SCMP는 또한 윤 대통령이 확고한 보수주의자들을 정부 주요 포스트에 기용하고, 1941~45년 기간에 일제를 위해 항일 독립투사들을 상대로 싸웠던 장군 고(故) 백선엽의 행적을 지웠다는 점도 소개했다.
특히 윤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 대해 "그는 1919년 일제 식민 통치에 맞선 대중봉기,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위해 싸웠던 망명 정부, 그리고 독립투사들의 항일 전투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중국 관영지 "한, 중‧러‧북에 관여, 협력해야"
중국 당국을 대변하는 관영 글로벌 타임스는 미국 편향적인 윤 정부의 "가치 기반 외교"가 평화의 조류와 맞지 않는다면서 전략적 자율성 회복을 주문했다.
상하이 대외경제무역대학의 잔더빈 한반도연구센터 주임은 18일 기고를 통해 대일 관계 개선, 한미동맹 강화, 한‧미‧일 3자 군사협력 대응 과정에서 윤 정부의 "무원칙"을 지적했다.
잔 주임은 동북아에서 '한‧미‧일 vs 북‧중‧러'의 신냉전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면서 "한국은 아직 신냉전 구도 형성을 막는 데 중요한 역할을 지니고 있다"면서 "미국을 위해서 반중국, 반러시아 최전선으로 달려가는 것은 한국에 이익이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지역에서 신냉전이 불붙으면 한국의 경제에 추가적 피해를 줄 뿐 아니라 한국이 피할 수 있는 '열전'으로 끌려들어 갈 가능성도 있다"며 "그땐 한국의 운명은 갈수록 통제를 넘어설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러‧북에 관여, 협력하고, 군사적, 이념적 대항을 추구하는 미, 일을 추종하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