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스트 김인섭 '비선실세'라면서 증거 태부족

[이재명 구속영장] ‘백현동’ 물증도 없이 추측성 문장만

법령 위반하며 용도 변경한 대가가 정치적 도움?

국토부 압력 행사는 제외…검찰, 불리한 증거 배제

2023-09-20     김성진 기자
검찰이 백현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과 쌍방울그룹 대북송금 의혹을 받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한 1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의 모습. 검찰은 지난 2월16일 이 대표에게 첫 번째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국회 본회의에서 체포동의안이 부결됐다. 한편 이 대표는 단식 19일째로 이날 오전 건강 악화로 인해 병원에 이송됐다. 2023.9.18.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체포 동의안 국회 표결 처리가 오는 21일 예정된 가운데, 검찰이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 사건' 배임 혐의와 관련한 결정적 물증이나 증언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백현동 로비스트 김인섭 씨(전 한국하우징기술 대표)를 이재명 대표의 '비선 실세'라고 규정하면서도, 정작 이를 입증할 만한 물증을 제시하지 못한 채 막연한 추측성 문장들만 나열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김 씨가 2006년 성남시장 선거에서 이재명 캠프 선거대책본부장으로 있었던 사실 등을 백현동 사건의 '주요 단서'로 보고 있다. 이 대표와의 인연으로 성남시에 로비를 해 파격적인 용도 변경이 이뤄졌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검찰은 이 대표가 김 씨와의 인연으로 사업 추진 과정에서 특혜를 줬다고 주장하기 위해 두 사람의 관계를 여러 차례 강조했지만, 이마저도 검찰이나 김 씨의 일방 주장일 뿐 두 사람의 관계를 보여줄 직접적인 증언 등은 사실상 전무했다.

20일 <시민언론 민들레>가 입수한 142쪽 분량의 영장 청구서를 보면, 검찰은 김 씨가 2006년 성남시장 선거 당시 선거대책본부장으로 활동한 이력 등을 나열하며 "각종 사업에 대한 인허가뿐만 아니라 성남시 공무원의 인사에도 영향력을 실제 미치거나 미칠 수 있는 이른바 '비선 실세'로 통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특히 이 대표와 김 씨의 관계를 두드러지게 하기 위해 이 대표의 측근이었던 정진상 전 민주당 당대표실 정무조정실장과 김 씨의 관계를 강조했다. 검찰은 정 전 실장이 2006년 성남시장 선거 이래 "중요한 현안이 생길 때마다 김인섭의 지시와 조언을 받았다"며 "백현동 개발사업이 원활히 추진될 수 있도록 김인섭과 밀접한 관계를 계속 유지하면서 이 대표와 김인섭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담당했다"고 영장에 기재했다. 이 대표가 정 전 실장을 통해 김 씨의 요구 사항들을 직접적으로 들어줬다는 논리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2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검찰청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 방북을 위한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사건' 관련 조사를 마치고 나오고 있다. 2023.9.12. 연합뉴스

하지만 검찰은 이 대표와 김 씨의 관계에 대해 과거 여러 차례 선거운동 당시 인연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과 관련해서는 직접적인 증언이나 물증을 제시하지 못하고 "정진상이 (구치소에 수감 중인) 김인섭과 직접 특별면회를 하면서 이 대표의 안부를 김인섭에게 전달했다" "김인섭으로부터 백현동 개발사업 관련 각종 청탁을 받고 피의자에게 전달했다" 등 김 씨와 정 전 실장 사이의 관계만 반복해서 강조했다.

검찰은 영장에서 성남시 공무원 인허가 알선 혐의로 수감됐다가 출소한 김 씨가 2016년 광화문 단식 농성장을 방문했고 이 대표가 김 씨에게 "형님, 나 때문에 고생 많습니다"라며 위로했다고 적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정치인의 단식 농성장 방문이 배임 혐의와 관련해 두 사람의 특수 관계나 친분을 드러내는 증거로 보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광화문 단식 농성장 방문 자체를 백현동 개발 문제와 직접 연관짓기도 어려워 보인다.

김 씨와 정 전 실장의 친분이 곧 이 대표와의 친분이라는 논리 자체도 비약이지만, 검찰이 김 씨와 정 전 실장의 관계를 드러내기 위해 115차례 통화한 사실을 확인했던 점을 고려한다면, 김 씨와 이 대표의 관계를 입증할 직접적인 물증이 없어 정 전 실장을 끌어들여 무리하게 논리를 만든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이 대표는 2021년 10월 경기도청에서 열린 경기도지사 사퇴 기자회견에서 김 씨와 관련해 "전혀 연락을 안 한다"며 "인연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호가호위하면 다 잘라버린다"고 말한 바 있다. 김 씨와 관계를 끊은지 10년 여 세월이 됐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검찰이 구속영장에서 제시한 논리대로면 이 대표가 백현동 부지 용도변경을 할 당시 김 씨의 민원을 적극적으로 들어줬어야 한다. 그러나 검찰 자신들이 쓴 영장에서 밝힌 것처럼, 성남시는 '경기도 종합계획' 및 '성남시도시기본계획'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두 차례나 부지 용도변경 요구를 반려했다. 게다가 검찰이 영장에서 밝힌 것처럼, 이 대표는 2010년부터 2015년까지 매년 기자회견과 언론 인터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성남시 보도자료 등을 통해서 수차례 반복해서 백현동 개발 사업과 관련해 "주거용도로 절대 허용하지 않겠다"거나 "R&D 센터 등 기업유치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백현동 개발사업 관련 '대관 로비스트'로 지목된 김인섭 전 한국하우징기술 대표가 4월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2023.4.14. 연합뉴스

그러나 검찰은 이 대표가 기존의 입장을 번복하고 백현동 땅을 용도 변경한 데 대해선 과거 인연 외에 명확한 설명 없이 "향후 김인섭으로부터 피의자의 선거 기타 정치활동 등에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하에 김인섭이 청탁한 내용들을 수용해주기로 했다"라고 주장했다.

법령까지 위반하며 도시계획을 변경한 대가가 로비스트의 정치적 도움이라는 검찰의 주장은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검찰 영장에 따르면 김 씨는 성남시가 2015년 3월 용도 변경을 한 다음 달인 2015년 4월부터 성남시 공무원에 대한 알선수재 사건으로 수원구치소에 수감됐다. 범죄에 연루된 지역 로비스트에게 정치적 도움을 기대해서 무리한 요구를 들어줬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져 보인다.

오히려 일각에서는 당시 박근혜 정부의 압박으로 부지 용도가 변경됐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민들레> 취재에 따르면 2014년 국토교통부와 한국식품연구원은 성남시에 '대통령 지시사항' '대통령 관심사안' 등을 언급하며 백현동 부지 용도변경을 수차례 요청했다. 이 대표 측도 "박근혜 정부가 1년 동안 24차례나 공문을 보내 용도 변경을 요구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검찰은 국토부와 식품연구원의 공문에 대해서는 영장에 적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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