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관세 발등에 불인데…윤정부 재생에너지 역주행
EU 2026년 본격 시행 앞두고 내달부터 시범기간
OECD 국가들 환경 관련 세제 지원 크게 확대
유럽의회, 2030년 재생에너지 목표 10.5%p 상향
원전 중시 윤 정부는 30.2%→21.6%로 되레 낮춰
윤석열 정부가 원자력에 기울어져 재생에너지 정책을 사실상 방기하면서 국내 수출 기업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다.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를 확보해야 하는 데 정부는 재생에너지 확대에는 관심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당장 다음 달부터 유럽연합(EU)이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전환기(준비 기간)에 돌입하며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CBAM은 철강과 시멘트 등 6개 수입품의 탄소 배출량이 기준치를 넘으면 탄소세를 징수하는 제도다. EU는 2026년 본격 시행을 앞두고 다음 달 1일부터 2025년 말까지 전환기를 거친다. 해당 업종에 속한 한국 기업들은 2년 3개월 안에 탄소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여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전환기에는 탄소 관세를 부과하지는 않는다. 다만 의무적으로 탄소 배출량을 보고해야 한다. 정부는 지난 14일 CBAM 대응 세미나를 열고 기업에 부과되는 의무와 이행 방법 등을 설명했다.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근본 해법은 뒷전으로 밀어놓고 피상적인 대책만 내놓고 있는 것이다.
CBAM는 시작에 불과하다. 탄소배출 기업에 대한 무역 장벽은 더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탄소배출을 감축하지 못하면 수출이 막히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재생에너지 비중을 빨리 높여야 하는 이유다.
세계 각국은 탄소배출을 낮추기 위해 재생에너지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14일 발표한 ‘2023 조세 정책 개혁’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에도 많은 국가들이 저탄소 경제로 전환하기 위한 세제 혜택을 크게 늘렸다. 앞서 유럽의회는 전체 에너지 소비에서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을 2030년까지 42.5%로 늘리는 법안을 승인했다. 기존 32%보다 10.5%포인트 목표치를 높인 것이다.
반면 한국 정부는 원자력에 집중하면서 재생에너지 정책이 후퇴하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4년 산업통상자원부 예산안을 보면 전력산업기반기금의 재생에너지 지원 항목 예산은 6054억 원에 불과했다. 지난 2022년 1조2657억 원에서 올해 1조490억 원으로 줄이더니 내년에는 42% 이상 삭감했다.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에 대한 자금 지원은 물론 주택과 건물에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설비 설치를 직접 지원하는 예산, 청정에너지원을 사용해 생산하는 전력 구매 등 모든 부문의 예산이 대폭 줄었다.
이는 신재생에너지 신규 설비 증가 폭 둔화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올해 국내 태양광 신규 설비는 2.5GW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보다 약 17% 줄어든 규모다. 태양광 신규 설비가 정점을 찍었던 2020년과 비교하면 거의 절반 수준이다. 태양광 신규 설비는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이후 해마다 줄고 있다.
정부는 올해 1월 발표한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2030년 신재생에너지 비중 목표를 30.2%에서 21.6%로 낮췄다. 태양광 발전 사업자에 대한 각종 우대 제도도 없앴다. 재생에너지를 신성장 동력으로 삼아 투자를 늘리고 있는 선진국과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강력하게 밀어붙이며 지난해 시행에 들어간 인플레이션감축법(IRA)만 해도 태양광 설비투자 비용 등 재생에너지 산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지 않으면 국내 수출 기업들이 큰 타격을 받게 될 게 뻔하다. 2050년까지 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사용하는 ‘RE100’ 프로젝트는 이제 캠페인 차원을 넘어 반드시 이행해야 하는 국제 규범이 되고 있다. RE100을 달성하지 못하면 세계적인 기업들과 거래가 끊길 수도 있다. 현재 400개가 넘는 기업이 RE100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구글과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BMW 등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동참하고 있고 이들 중에는 거래 업체에 RE100 이행을 요구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대기업들도 RE100 참여해 재생에너지 사용 비중을 높이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 국내 기업은 RE100 참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국내 재생에너지만으로는 이행이 어렵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RE100 가입 이후 미국과 유럽, 중국 등 해외 사업장에서만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을 높일 수 있었다.
한국은 전체 발전에서 재생에너지가 자치하는 비중이 OECD 회원국 중 꼴찌다. OECD 평균은 2020년 기준으로 27.3%인데 비해 한국은 지난해 기준으로 9%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해외에 사업장이 없는 국내 기업은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정부는 RE100을 대체할 국제 통용 표준을 마련하겠다며 딴소리만 하고 있다. 한국이 주도해 무탄소 에너지(CFE, Carbon Free Energy) 기준을 만들겠다는 이야기다. CFE는 원자력과 청정수소, 탄소 포집·저장(CCS) 같은 모든 탈탄소 에너지원을 포함한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RE100이 정착되고 있어 CFE를 국제 기준으로 만드는 것은 ‘희망 사항’에 그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