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러 빠진 뉴델리 G20 정상회의 개막…'독상' 받은 바이든
글로벌 사우스 '달러 현금 공략'…중·러 동시에 잡기
바이든, BRI 맞서 '인도·중동·유럽 잇는 인프라' 구상
바이든-모디, 전방위 대중 공조…"쿼드 중요" 성명
인도, 글로벌 사우스 '교량역' 자임…기후 위기 초점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인도 수도 뉴델리에서 이틀 일정으로 9일 개막됐다.
선진국과 신흥국·개도국의 회의체인 G20는 미국·프랑스·독일 등 선진 7개국(G7)에 한국·호주·유럽연합(EU)을 더한 서방 진영 10개국, 그리고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브릭스)과 아르헨티나·인도네시아·멕시코·사우디아라비아·튀르키예로 이뤄져 있다.
세계 인구의 60%를 점한 G20는 전 세계 총생산의 80% 이상, 무역에서는 75%를 각각 차지하고 있는 국제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경제포럼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뉴델리 바라트 만다팜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이번 정상회의는 '하나의 지구·하나의 가족·하나의 미래'(One Earth·One Family·One Future)란 슬로건 아래 지속 가능한 발전, 선진국과 개도국 간 더 균형 잡힌 성장을 위한 방안을 논의한다고 인도 정부는 밝혔다.
세부적으론 기후 위기 대응, 저소득국의 채무조정, '글로벌 사우스'(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동, 중남미의 신흥국·개도국)의 에너지 및 식량 위기 대처 등이 주된 의제로 올라 있다.
시진핑·푸틴 빠진 G20 정상회의…'독상' 받은 바이든
이번 뉴델리 정상회의는 개막되기도 전에 다소 '김'이 빠졌다. 우크라이나 전쟁 와중인 만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불참은 당연히 예상됐지만,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마저 불참하고 리창 총리를 대신 보냈기 때문이다. 그리곤 딱히 설명도 없었다.
시 주석은 2012년 집권 이후 3연임 한 지금까지 한 차례도 G20에 불참한 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의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각에선 그 불참 이유를 두고 최근 어려운 중국의 경제 상황을 들기도 하고, 불편한 관계에 있는 '라이벌 인도'의 G20 성공적 데뷔 견제라거나,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지원으로 수세에 몰릴까 봐 피했다는 해석도 나왔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시 주석의 불참 소식에 아쉬움을 나타냈지만 사실상 '독상'을 받은 셈이어서 '불감청 고소원'(감히 요청하진 못하지만 바라던 바)의 심정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번에 미국의 최우선 목표는 글로벌 사우스 내 편 만들기다. 미국으로선 중·러가 빠진 이번 G20 무대를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차단하고 러시아를 우호적인 그들과 떼어 놓을 절호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돌 하나로 두 마리 새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달러 현금'을 쏟아부어 글로벌 사우스를 공략하는 구체적인 계획도 마련했다.
표적은 글로벌 사우스에 막대한 규모의 인프라 투자를 해온 중국의 일대일로(BRI:중국-중앙아-중동-유럽-아프리카를 잇는 육상·해상 실크로드) 사업이다.
서방 진영이 "강압적이며 지속 가능하지 않은 대출과 인프라 프로젝트"(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라고 혹평하듯 일부 과도한 부채 문제가 있지만 글로벌 사우스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바이든, BRI 맞서 '인도·중동·유럽 잇는 인프라' 구상
그래서 미국이 커낸 카드가 인도-중동-유럽을 인프라와 통신으로 잇는 프로젝트다.
미국 매체 악시오스는 7일 미국과 사우디, 인도 등의 지도자가 중동과 인도를 철도와 항로로 잇는 프로젝트를 G20에서 발표하는 것을 목표로 마무리 협상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8일 정상회담을 갖고 이 문제를 협의했다. 악시오스는 "중동은 중국 일대일로 사업의 핵심 지역"이라며 "이 프로젝트는 중동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는 가운데 백악관이 추진 중인 핵심 구상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커트 캠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인도·태평양 조정관도 "중대 돌파구"가 마련될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 BRI 사업의 그늘인 일부 글로벌 사우스 국가에 지워진 부채 문제에 대한 대응이 또 다른 하나다. 더 나은 개도국 부채 변제를 위해 바이든은 세계은행(WB)과 국제통화기금(IMF)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WB와 IMF 프로젝트를 위해 바이든은 미국 의회에 20억 달러를 요청했으며, 중국 BRI에 맞불 성격인 미국 주도의 '글로벌 인프라 투자 파트너십'(PGII)를 위해 2027년까지 6000억 달러로 재정을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시 주석의 불참과 관련해 미 외교안보 전문지인 포린폴리시는 7일 자 기사에서 "바이든은 특히 중국이 국내 디플레와 자산 위기를 완화하지 못할 때 개도국을 도울 처지가 못 될 것이란 점을 알려주고자 한다"고 말했다.
중국은 미국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도 겉으론 크게 개의치 않는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탈리아가 탈퇴로 가닥을 잡으면서 일대일로 사업이 이미 한계에 봉착한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중국은 예정대로 10월 베이징에서 제3차 일대일로 국제협력포럼(BRF) 정상회의를 개최한다. 90개국 넘게 참석을 통보했다고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전했다. 푸틴도 참석한다.
글로벌 사우스 '달러 현금 공략'…중·러 동시에 잡기
우크라이나 전쟁 이슈도 뜨거운 주제 중 하나다. 러시아를 더 고립시키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를 확산하는 데 이번 G20 무대를 활용하겠다는 게 미국의 생각이다.
작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의 스탠스는 서방과 많이 달랐다. 러시아의 침공 행위를 비판하는 나라들은 꽤 있었지만, 서방의 대러 제재에 가담한 나라는 별로 없었다.
그래서 이번 G20 정상회의에서 러시아 규탄 정상 공동선언을 채택해 어떻게든 글로벌 사우스의 스탠스를 서방 진영 쪽으로 유도해야 한다고 미국은 여기고 있다. 푸틴은 물론 시진핑도 없는 틈을 놓치지 말아야 함은 물론이다.
이에 러시아가 반발하는 건 당연하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자국의 입장이 반영되지 않는 한 공동선언 채택을 '저지'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회의에는 푸틴 대신에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 장관이 참석했다.
현재론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견해차로 인해 공동선언 채택이 힘들 전망이나, 의장국인 인도는 러시아 침공을 비판하는 G7의 입장과 G20는 지정학적 문제를 다루는 자리가 아니라는 러·중 입장을 함께 공동선언에 반영하자는 대안을 제시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공동선언 도출에 실패하면 G20 사상 처음으로 기록된다. 작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도 치열한 논쟁 끝에 "대부분의 회원국"이란 용어를 사용해가면서 겨우 공동선언에 합의했다.
인도, 글로벌 사우스 '교량역' 자임…기후위기 초점
의장국인 인도의 모디 총리는 이번 정상회의를 통해 선진국과 글로벌 사우스를 잇는 '교량'(a bridge)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모디 총리는 작년 11월 비공개 회의에서 "세계에는 제1 세계도 제3 세계도 아니고, 오로지 하나의 세계만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동안 G20는 부채와 식량 안보, 기후 변화와 같이 특히 글로벌 사우스를 괴롭히는 이슈들을 해결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그래서 글로벌 사우스 교량역을 자임하는 인도가 내놓은 의제의 최우선 초점은 기후 금융과 그린 테크 개발, 공정한 에너지 이전 등 기후 위기 대처에 맞춰졌다. 또한 여성 권한, 포용적 경제성장, 디지털 공공 인프라 개발 등도 의제에 포함돼 있다.
앞서 지난달 하순 수브라마냠 자이샨카르 인도 외교장관은 "G20의 핵심은 경제성장과 발전을 증진시키는 것"이라며 "글로벌 사우스의 중대한 우려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전될 수 없다"고 말했다고 미국 타임지는 전했다.
인도는 올해 G20 회의에 과도한 부채로 고통을 겪는 방글라데시, 그리고 이집트, 모리셔스, 네덜란드, 나이지리아, 오만, 싱가포르, 스페인,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 9개국을 초청했다.
바이든-모디, 전방위 대중 공조…"쿼드 중요" 성명
한편, 바이든 대통령과 모디 총리는 지난 6월에 이어 전날 정상회담을 갖고 전방위적 공조를 약속했다. 두 정상은 공동성명에 △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포용적이고 회복력 있는 인도·태평양을 지지하는 데서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의 4자 안보 협의체)의 중요성 강조 △ 해외 파견된 미국 군용기·함정 보수·수리를 위한 인도의 허브 역할 공약 재확인 △ 인도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포함 등 안보리 개혁 지지 등의 내용을 담아 대중국 견제 의지를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