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윤' 대법원장이 부채질할 사법부 우경화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해부] ③보수+친윤 정체성

'사법부 하나회' 민판연 활동…'반(反) 김명수' 선봉

'친한 친구' 윤석열과 적극 코드 맞추기…"자유 수호"

대법관 구성 '보수 편중' 불 보듯 뻔해…도로 '서오남'

인권 신장 기능 약화, 정치 사건 '우향우 판결' 우려

트럼프 집권 때 물갈이한 미국 연방대법원 꼴 날까

2023-09-07     김호경 에디터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명한 이균용 신임 대법원장 후보자는 현재로서는 국회에서 임명동의안이 통과되기 어렵다. 다시 말해 야권의 반대표로 부결될 가능성이 높다.

이 후보자의 막대한 재산을 둘러싼 각종 축소‧은폐‧투기 의혹과 함께 여성‧아동‧가정폭력 등에 관한 문제적 판결 사례가 '까도 까도' 계속 나오고 있어 도덕성과 청렴성, 인권 감수성 등 기본 자질이 의심받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가 윤 대통령의 '40년 지기'이고 대표적 보수 판사라는 점은 대법원의 독립성과 삼권분립을 위협하며 사법부의 우경화를 심화시킬 것이라는 강한 우려를 낳고 있다. 시민언론 민들레는 이 후보자의 문제점과 임명동의안 처리 전망 등을 종합 정리해 4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주]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2023.8.29 [공동취재] 연합뉴스

'사법부 하나회' 민판연 활동…'반(反) 김명수' 선봉

이균용 후보자가 6년 임기의 대법원장으로 부임하면 사법부가 급격히 보수화‧우경화할 것이라는 전망이야말로 가장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우려 사항이다. 한국 사회를 전방위적으로 퇴행시키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이 "사법부를 이끌어나갈 대법원장으로 적임자"라며 이 후보자 인선을 발표했을 때부터 이 같은 불안감이 시민사회와 법조계에 엄습할 수밖에 없었다. 이 후보자 지명 전부터 여권에서는 "사법부의 비정상화가 심각한 상황이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사법부의 추를 돌려놓을 적임자가 이균용 부장판사"라는 기대감이 공공연히 나돌았다.

경남 함안 출신으로 부산 중앙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이 후보자는 법조계에서 대표적인 보수 성향 판사로 평가된다. 일선 판사들 사이에서는 전형적인 '보수 벙커'(배석 판사들이 함께 일하기를 꺼리는 부장판사를 골프장 모래 구덩이에 빗대 표현하는 법원 내 은어)로 통한다고 한다. 이 후보자는 앞서 언급한 '사법부 하나회' 민사판례연구회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우리법연구회 회장 출신인 현 김명수 대법원장과는 '대척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 이 후보자가 법원장급 중에서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에 가장 비판적인 인물이었다는 전‧현직 법관들의 여러 증언이 언론에 소개됐다.

보수 정체성이 강하고 직설적인 그가 2021년 2월 대전고등법원장 취임사에서 "법원을 둘러싼 작금의 현실은 사법에 대한 신뢰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법원이 조롱거리로 전락했다"며 "정치가 경제를 넘어 법치를 집어삼키는 사법 정치화가 논란이 되고 있다"고 했던 발언은 김명수 대법원장을 겨냥한 것이라고 해서 언론이 앞다퉈 보도했었다. 당시 김 대법원장은 '사법농단'에 연루된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국회 탄핵이 정국의 핵으로 떠오른 시점에서 임 부장판사의 사표를 반려한 조치와 관련해 거짓 해명을 했다는 논란으로 몹시 곤혹스럽던 상황이었다.

이 후보자는 2021년 10월 8일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장에 대전고등법원장으로 출석했을 때도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이 "김명수 대법관의 거짓말은 위선의 상징"이라며 "일선 법관이 대법원장을 믿고 따른다고 보느냐"고 묻자 "언론 보도대로 사법부 신뢰에 좋지 않은 영향이 있었다는 것은 부정하지 못한다"고 맞장구를 쳤다.

이 후보자는 심지어 지난달 23일 지명 후 처음으로 공개석상에 나타나 기자들을 만났을 때도 "최근에 무너진 사법 신뢰와 재판의 권위를 회복해 '자유'와 권리에 봉사하고 국민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바람직한 법원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성찰하겠다"고 말해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에서 사법 신뢰가 무너졌다고 주장하는 한편, 윤 대통령이 기만적으로 애용하는 단어 '자유'를 첫 마디부터 강조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23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2023.8.23. 연합뉴스

'친한 친구' 윤석열과 적극 코드 맞추기…"자유 수호해야"

이처럼 공개적인 '반(反) 김명수' 성향에 더해 이 후보자가 윤석열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 1년 후배로 오랜 친분이 있다는 점은 사법부 보수화의 우려를 더욱 깊게 하는 지점이다. 이 후보자는 대전고등법원장 때 국정감사에서 대통령과 친분을 묻는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 질의에 "제 친한 친구(문강배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의 친한 친구다. 제 연수원 동기와 아주 친한 분이기 때문에 (저와도) 친하다고 볼 수 있다"고 답했다.

애초에 대법관은커녕 법원행정처 근무 등 사법행정 경험도 없는 이 후보자가 대법원장 후보자로 파격 지명된 것 자체가 윤 대통령과의 사적 관계가 없었다면 설명이 어려운 부분이다. 역대 대법원장 14명 가운데 초대 김병로, 3·4대 조진만, 그리고 김명수 대법원장까지 3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대법관(옛 대법원 판사)을 거쳤다. 이 후보자는 지난해 7월 윤석열 정부의 첫 대법관 후보로도 추천된 바 있다. 당시 김재형 대법관 후임으로 이 후보자와 오석준 당시 제주지법원장, 오영준 서울고법 부장판사 등 3명이 추천돼 오석준 법원장이 대법관이 됐다. 오석준 대법관 역시 윤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다.

이 후보자가 지난해 12월 대전지방변호사지 기고를 통해 '자유의 수호'를 역설하며 윤 대통령과 적극적으로 '코드'를 맞추는 듯한 주장을 편 것도 새삼 눈길을 끈다. '인문학의 광장에서 법관의 길을 묻는다'는 제목의 글에서 그는 "(법관은) 적어도 자유의 수호에 있어서 극단주의는 결코 악이 아니며, 정의의 추구에 있어서 중용은 미덕이 아니라는 확고한 신념을 가져야 한다"며 "정의의 여신이 안대를 벗고 양손에 든 칼과 저울을 내팽개치는 참으로 희한한 행태가 적지 않게 벌어졌고 이를 부채질하거나 방관하는 행위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이 26일 오후 서초동 대법원 접견실을 방문, 김명수 대법원장과 기념촬영을 준비하고 있다. 2019.7.26. 연합뉴스

대법관 구성 '보수 편중' 불 보듯 뻔해…도로 '서오남'

이 후보자가 대법원장이 되면 자신의 보수 성향을 대법관 제청은 물론 사법행정에도 적극 반영하면서 사법부 지각 변동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내년부터 대법원 구성이 급변할 텐데, 내년 1월 임기가 끝나는 안철상·민유숙 대법관을 시작으로 김선수·이동원·노정희 대법관이 8월, 김상환 대법관이 12월에 퇴임한다. 대법관 임명은 통상 대법원장이 제청하면서 대통령실과 협의를 거치는 만큼 대법원 구성이 '코드인사'를 통해 보수 우위로 재편되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경우 취임 후 야간대학 등 비서울대 출신, 여성, 재야 변호사, 지방에서 오래 일한 향판 등을 대법원에 입성시켰고 일선 법원에서도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우리법연구회·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이 약진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들어 오석준·권영준·서경환 대법관에 이어 이 후보자까지 대법원 구성이 도로 '서오남(서울대·50-60대·남성)'으로 회귀하고 있다.

지난 7월 조재연·박정화 대법관이 퇴임하기 전까지만 해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3명 대법관 중 진보 성향으로 평가되는 법관이 7명으로 과반을 차지했다. 그러나 현재는 진보 6 대 중도·보수 7 비율이다. 이어서 오는 24일 김명수 대법원장이 퇴임하고 그 자리에 이 후보자가 들어오면 5 대 8 구도로 확실히 기울어지게 된다. 대법원 구성의 보수 편중은 윤 대통령의 남은 임기 내에 대법관 9명이 더 교체되기 때문에 갈수록 심화할 전망이다.

 

트럼프가 물갈이한 미국 대법원처럼 '우향우 판결' 쏟아질 듯

대법원이 이렇게 보수화하면 미국 연방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절 공화당 성향 대법관들로 물갈이 되면서 낙태권(임신중지권) 폐기, 소수인종 우대 정책(어퍼머티브 액션) 위헌 결정, 학자금 대출 탕감 정책 제동 등 '우향우 판결'을 무더기로 쏟아내고 있는 사태가 한국에서도 그대로 재연될 수 있다. 소수자와 약자를 배려하고 각종 차별을 시정하는 대법원의 진보적 인권 신장 기능이 약화할 수 있는 것이다

대법원장은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재판장이자 사법행정을 총괄하고 대법관 외 판사 임명권을 행사하는 등 막강한 권한을 가진다. 이제 이균용 대법원장 체제가 되면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처럼 정권과의 유착, 법관의 독립성 침해 및 관료화 체제 강화, 고법 부장판사 승진제 회귀와 법원장 추천제 폐지 등 다방면에서 사법개혁의 후퇴가 진행될 우려가 크다. 현 대법원이 검찰의 거센 반발을 무릅쓰고 추진해온 압수수색 영장 사전심문제에 대해서도 이 후보자는 "다른 기관의 의견을 충분히 고려해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부정적 입장이어서 대법원장으로 취임할 경우 압수수색 영장 사전심문제 도입이 늦어지거나 무산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통장 잔고증명 위조 혐의로 2심에서 법정 구속돼 대법원 소부에서 심리 중인 윤석열 대통령 장모 최은순 씨 사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아들에게 허위 인턴증명서를 발급한 혐의로 기소돼 1·2심에서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받고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심리 중인 민주당 최강욱 의원 사건, 서울고법에서 항소심이 진행 중인 조 전 장관의 자녀 입시비리 및 청와대 감찰 무마 의혹 사건, 윤미향 의원 사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피고인인 여러 사건의 심리 방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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