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낙점한 LH 사장도 '건설 이권 카르텔'?

이한준 사장 취임 전 LH 전관 회사서 일해

근무 당시 LH와 11건, 82억 규모 수의계약

2년 전 LH 임직원 투기 사건 때 발표했던

취업제한 확대·재산공개 등 혁신안 유명무실

2023-09-05     장박원 에디터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이한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이 취임 직전에 LH 퇴직자가 재취업한 전관 업체에 근무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5일 LH 임직원 투기 방지 혁신안 이행실태를 발표하며 이런 사실을 폭로했다. 이 사장이 근무했던 회사는 지난해 LH와 설계 용역 수의계약도 체결한 것으로 조사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LH가 발주한 아파트가 철근 누락으로 붕괴한 사고 원인을 ‘건설 이권 카르텔’로 지목했다. 하지만 정작 LH 수장으로 '건설 카르텔'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사를 선임한 것이다.  한국교통연구원 출신인 이 사장은 2008년부터 2011년까지 경기도시공사 사장을 역임했다. 20대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 캠프에 합류했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부동산 정책 설계 등에 참여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이한준 사장이 8월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LH 서울지역본부에서 열린 사장 주재 회의에서 최근 아파트 철근 누락 사태와 관련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3.8.2. 연합뉴스

이 사장이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에 따라 신고하고 경실련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이 사장은 취임 전인 2019년 2월부터 2022년 9월까지 ㈜용마엔지니어링에서 건설사업 분야 종합자문을 맡았다. 이 회사는 최근 김두관 의원실이 발표한 LH 퇴직자가 재취업한 용역업체 중 하나다. LH는 이 회사와 2022년 11건, 82억 원의 계약을 체결했다. LH가 공공기관 알리오에 공개한 LH 수의계약체결 현황에서도 LH는 이 업체와 2022년 7월 1일, 18억 5745만 원의 수의계약을 체결했던 사실이 명시됐다. LH 현직 사장이 근무했던 곳인 데다 LH 전관이 있는 용역업체인 만큼 수의계약 체결이 공정했는지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경실련은 주장했다.

 

  자료 : 경실련 

 

  자료 : 경실련

경실련은 2년 전 LH 임직원의 부동산 투기 의혹 사건 이후 발표됐던 LH 혁신 방안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도 검증했다. 2021년 3월 LH 임직원들이 3시 신도시인 광명과 시흥에 100억 원대 땅 투기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조사 결과 LH 직원들이 내부 개발정보를 이용해 부동산 투기를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국민 분노가 끓어오르자 국회는 LH 임직원 투기 방지를 위한 5개 법을 통과시켰다. 이 중에는 LH 임직원의 재산 등록을 의무화하는 ‘공직자윤리법’과 국토교통부 장관이 매년 공사 임직원의 부동산거래에 대한 정기 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공직자윤리위원회에 통보하는 ‘한국토지주택공사법’, LH 임직원이 업무와 관련한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거나 매수하면 이를 신고하는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 등이 있다.

경실련이 인사혁신처와 국토부, LH 등에 정보 공개를 청구한 결과 이들 법이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공직자윤리법의 재산등록제는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제3자가 알 수 없었다.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인사혁신처도 LH 임직원의 재산심사 내력을 별도로 관리하지 않고 있다.

LH가 경실련의 요청으로 공개한 자료에는 LH 임직원이 직무 관련 부동산을 매매했다고 신고했거나 직무상 비밀 정보 이용으로 처벌한 사례가 한 건도 없었다. 그러나 국토부가 정의당 심상정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는 미공개정보 이용과 업무상 비밀 이용이 2건(수사 의뢰), 미공개정보 이용과 투기 행위 의심이 2건(감사의뢰)으로 나타났다.

그런데도 국토부는 외부에 이런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있다. 경실련 요청에 대해서는 비공개로 처분했고 심상정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도 2021년 조사 결과 뿐이었다. 지난해 조사 결과는 제출하지 않았다. 경실련은 “국토부가 LH 임직원의 부동산 투기 행위를 발본색원할 의지가 있는 것인지, LH 혁신을 주도할 능력이 있는지 심히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2021년 6월 당시 정부가 발표한 LH 혁신 방안에는 공공택지 입지 조사 업무를 국토부로 이관하고 취업제한 대상을 고위직으로 확대하는 등 재발 방지책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 개혁안 역시 비난을 모면하기 위한 미봉책에 불과했다. LH의 고질적인 문제인 땅장사, 집 장사 방지를 위한 주택개발과 공급 업무 배제, LH 임직원의 내부 비리 근절을 위한 입찰 제도개선 방안, 분양 원가 공개 같은 실효적 대책은 빠졌다.

취업제한 대상 확대 방안도 빈틈이 있었다. 정부는 2021년 취업 심사 대상자에 LH 2급 이상 직원을 추가하는 공직자윤리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이에 따라 LH 취업제한 대상자는 7명에서 529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이 LH에서 받은 퇴직 공직자 취업 심사 현황에 따르면 2021년 6월 이후 최근까지 취업 심사를 받은 21명 중 불가 판정은 1명에 불과했다. 공직자윤리법상 취업 심사 대상 기업은 자본금 10억 원 이상, 연간 거래액 100억 원 이상의 업체라 LH 퇴직자 대부분이 그 이하 규모 기업에 자유롭게 취업한 것으로 경실련은 분석했다.

경실련은 LH 쇄신을 위한 해법으로 △주택개발업무 제외와 3기 신도시 사업 참여 배제 △공직자 투기와 이해충돌방지 제도 실효성 강화 △분양 원가 등 투명한 행정정보 공개 △전관 영입 업체 입찰 참가 배제 등을 시행하라고 촉구했다.

철근 누락 등 부실 공사 재발 방지를 위한 국토부와 LH의 어설픈 대응도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LH는 전관 업체들과 맺은 648억 원 규모 설계·감리용역 사업의 전면 중단을 검토하고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LH는 5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상혁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서 “(철근 누락 발표 시점인) 7월 31일 이후 설계 공모 및 종합심사낙찰제에서 1순위로 선정되고 전관이 재직 중인 것으로 파악된 설계·감리 11개 용역에 대해 계약 절차 이행을 중단한 상태”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들 용역 사업에 참여한 업체 중에는 전관이 근무하지 않는 곳이 상당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LH가 타당한 사유 없이 계약을 일방적으로 취소하면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하고 계약 취소 보상금을 잘못 책정하면 LH 직원들이 배임에 걸릴 수 있다. 철근 누락과 부실 공사 책임을 전관 특혜로만 몰다가 자승자박한 꼴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LH는 “전관의 개입 상황과 심사 과정의 공정성을 면밀하게 살펴 보고 법률적인 검토 이후 개별 대응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2009년 10월 1일 LH(한국토지주택공사) 출범식에 참석했던 이명박 대통령(오른쪽 세번째). 이 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민간과 경쟁하지 말라"고 발언, LH로 하여금 대장동 사업을 포기하게 하는 실마리를 제공했다. 청와대 제공

일각에서는 이참에 LH를 해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택지개발과 주택공급 정책을 이원화해 조직을 나누고 권한을 분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LH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가 통합되며 탄생했다. 시너지 효과를 기대했으나 조직이 비대해지면서 효율성이 떨어지고 임직원의 권한이 과도하게 커졌다. 임직원의 탈선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LH 관계자도 “한 직원이 담당하는 업무가 많다 보니 제대로 일을 처리할 수 없고 많은 유혹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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