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홍보기사 '주문생산·납품'한 살굿빛 문화일보
MB정권의 기획기사·사설 요청에 '적극 협조'
'용산참사 책임은폐' '민주노총 비난' 기사 쓰고
'MB 청계천 복원 미화' 기사 등 16편 주문생산
민주당엔 '사냥견' 보수우파엔 '애완견' 언론 자처
'신정아 누드' '도색소설' 유명한 '살굿빛 조선일보'
윤석열 정부에서도 '기관지' 전락해 언론 망칠까
이동관 방통위원장 후보 청문회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민형배 의원이 공개한 ‘VIP 전화격려 필요대상 언론인’ 보고문건에는 부끄러운 한국 언론인들의 이름이 적혀있다. 이명박 정권 시절 당시 이동관 대변인실이 정권에 협조적인 언론인들을 뽑아 대통령에게 ‘격려’ 전화를 해줄 것을 건의한 문서다.
한마디로 대통령이 애완견 언론인들에게 “잘했다”는 칭찬 전화를 해달라는 것이다. 칭찬의 대상이 된 언론인들은 ‘듣보잡’ 매체 출신이 아니다.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모두 이른바 한국의 ‘주류 언론사’ 소속이고, 직책도 편집인·논설주간·사장 등 최고위급 인물들이다.
이 문건의 내용 중에 특히 충격적인 부분이 있다. 이병규 문화일보 사장을 ‘전화격려 대상’으로 선정한 이유로 ‘VIP에 대해 우호적인 스탠스, VIP 동정·정부시책에 대한 기사를 부각시키거나 기획기사 및 사설 보도 협조 요청에 대해 적극적으로 호응’했다는 대목이다. 보고문건 뒤에는 ‘청와대 대변인실에서 기획, 문화일보에 보도협조 요청해서 실제로 보도된 대표적 기사·사설 스크랩’이 첨부되어 있다.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청와대가 기획해서 기사를 써달라고 요청했고, 문화일보는 그 요청대로 기사를 작성해 보도했다는 이야기다. 기사를 ‘주문생산’하고 ‘납품’했다는 것이다. 독재정권이 통치하는 후진국, 아니 30여년전 한국의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나 있을 법한 권언유착이다. 이 신문은 권력 비판은커녕 오히려 권력과 한몸이 된 것이다.
이동관 대변인실 보고문건에 첨부된 문화일보의 ‘주문생산, 주문납품’ 기사 무려 16건이다. 2009년 1월 경찰의 폭력진압으로 발생한 용산참사로 국민 여론이 악화되자 문화일보는 21일자 신문 1면에 “망루 농성 사전 연습했다”라는 제목의 검찰발 기사를 작성해 보도하고 같은날 “용산참사, 불법·폭력과 진압의 악순환 경계한다” 제목의 사설을 게재했다.
같은달 28일에도 “대리투쟁 대가 철거민에 돈 받아/전철연 남경남 의장, 건설·시행사엔 투쟁중단 빌미 뒷돈 요구”(1면), “검찰 용산 사고 엄정수사·기소방침 관철하라”(사설) 제목의 기사와 사설을 내보냈다.
‘민노총이 여성 조합원 성폭력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했다’(2월6일, 1면)는 기사와 사설, ‘자유기업원이 교수들의 시국선언문 발표를 비난하고 중단을 촉구했다’(6월5일, 2면)는 기사, ‘공무원 노조 간부들이 노조 돈으로 산 아파트에 살았다’(6월23일, 1면)는 기사, ‘MBC가 노무현 대통령 추모기사를 SBS의 7배나 많이 보도했다’(6월26일, 8면)는 기사, 이명박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차 방남한 북측 사절단을 만나지 않기로 한 이유를 상세히 설명하는 기사와 사설(8월21일) 등 하나같이 이명박 정권의 실책을 덮어주고 입장을 대변해주는 기사와 사설들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추진한 청계청 복원사업을 미화하는 내용의 “청계천은 하천 복원 모범사례/IHT, 1면 머리기사로 보도”(7월17일, 2면)기사도 있다. ‘VIP’ 동정과 업적을 꼼꼼이 챙겨 보도한 사례다.
이 정도면 당시 문화일보는 ‘언론의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정권의 나팔수’였다는 비난을 면하기 힘들다. 언론이 자사의 주 수입원인 기업 광고를 기사처럼 써주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이처럼 정권이 ‘주문’하면 기사를 ‘납품’하는 일은 상상하기 힘들다. 언론, 언론인의 자존심을 내팽개치지 않고서야 하기 힘든 일이다.
문화일보는 ‘전국단위 종합일간신문’ 가운데 대표적인 ‘강경보수’ 성향 매체로 알려져있다. 발행부수가 많지 않아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미치지는 못하지만 유일한 ‘석간’ 종합일간신문으로 자리잡고 있다. 문화일보를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강경한 보수우파 반공주의 논조와 성향으로, 현대그룹이 경영권을 행사한 2000년대 초중반부터 급격히 보수적으로 논조가 바뀌면서 조중동과 함께 조중동문이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적혀있다. 문화일보 종업원들조차 ‘살굿빛 조선일보’라고 불렀다.
언론이 ‘보수·우파적’ 혹은 ‘진보·좌파적’인 성향을 갖는 것만으로 비판할 일은 아니다. 다만 문화일보처럼 정권에 따라서, 정권을 가려가면서 애완견과 사냥견의 입을 바꿔간다면, 이를 언론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문화일보는 2000년대 중반인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조중동 못지 않게 민주당 정권을 집요하게 공격한 대표적인 ‘사냥개 언론’이었다. 당시 문화일보 편집국장과 기자들은 ‘권력은 비판의 대상일 뿐’이라는 말을 열심히 실천했으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언제 그랬냐는 듯, 권력의 온순한 애완견 혹은 권력을 지켜주는 경찰견으로 변신한 것이다.
이런 언론은 ‘특정 정권, 특정 정치세력의 기관지’라고 불러야 한다. ‘언론이 섬겨야 할 주인은 오로지 시민’이라는 언론학의 교과서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을 꺼내들지 않아도, 이동관 방통위원장 후보가 최근 언급한 ‘공산당 기관지’ 발언에 따르면 그렇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는 이런 언론을 ‘매춘언론’이라고도 불렀다.
문화일보는 2007년 9월 노무현 정부 당시 ‘신정아씨 누드사진 게재’와 도색적인 소설 ‘강안남자’ 연재로도 한국 언론사에 흑역사를 장식했던 매체다. 특히 ‘신정아씨 누드사진 게재’는 보수·진보를 떠나 한국 언론의 보도윤리와 사회적 책임에 큰 타격을 입힌 언론계의 대참사였다. 문화일보는 파문이 커지자 ‘독자여러분께 드리는 글’(10월18일자)을 통해 ‘선정성·인권침해 논란을 야기한 데 사과합니다. 전국단위 유일 석간 책임 다하겠습니다’라는 글을 게재하기도 했다.
‘유일 석간지로 책임을 다하겠다’는 약속은 지면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인 2009년 ‘이명박 정권의 주문생산 보도’로 뒤집어졌다. 정권의 주문을 받아 기자들을 ‘정권 주문생산’ 기사작성에 동원한 사장과 고위 간부 언론인들은 후배 언론인들에게 무엇이라고 할 것인가? 그 때 그 일을 주도했던 이동관씨가 이제 윤석열 정부의 방송통신위원장 자리에 앉으면 또다시 언론을 참담하게 망가뜨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