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IRA 시행 1년…기업 불확실성만 키웠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 막대한 보조금으로

전기차·배터리 공급망서 중국 배제 노려

핵심 광물 중국 지배력 높아 실효성 의문

한국산 전기차 보조금 대상서 제외되는 등

기업 어려움 겪고 있지만 정부는 나 몰라라

2023-08-16     장박원 에디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뉴멕시코주 벨렌 소재 아르코사 풍력 타워를 방문해 경제 관련 연설을 하고 있다. 이날 연설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아르코사 풍력 타워를 사례로 들며 자신의 행정부 입법 성과를 강조했다. 2023.08.10. 연합뉴스

미국이 전기차와 배터리 공급망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기 위해 제정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16일로 시행 1년을 맞았다. IRA의 주요 내용은 북미에서 조립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고 배터리에 대해서도 핵심 부품과 광물의 일정 수준 이상을 북미나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에서 생산해야 보조금을 준다는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에너지 위기와 기후 변화에 대처하고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한 법안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세계 전기차와 배터리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중국에 타격을 주기 위한 의도가 깔려있다. 비슷한 시기에 시행에 들어간 반도체과학법과 함께 중국과의 기술 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법으로 볼 수 있다.

미국 정부는 시행 1년을 맞아 IRA 입법 성과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특히 미국 제조업과 친환경 에너지 분야 투자가 크게 늘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 내 투자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뉴욕타임스는 "IRA과 반도체과학법으로 미국 제조업 분야에서 약 2300억 달러가 투자됐다"고 보도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IRA가 통과된 뒤 친환경 에너지 사업이 270여 개가 발표됐고 이에 따른 민간 투자 규모가 1320억 달러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현대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한국 자동차와 배터리 기업들도 수십조 원의 투자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거대 전기차 시장인 미국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IRA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배터리 공급망에서 중국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해 주요 7개국(G7)과도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 지난 5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서도 이 문제가 논의됐다. 그러나 이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배터리에 쓰이는 핵심 광물인 망간과 니켈, 리튬 등은 채굴부터 제련까지 중국이 장악하고 있다. 망간은 중국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90%가 넘는다. 니켈과 리튬 등 다른 광물도 중국의 지배력이 절대적이다. 수십 년에 걸쳐 구축된 공급망이라 단기간에 바꾸기 어렵다. 광산을 확보하고 채굴하려면 10년 이상 걸리고 중국을 대체할 제련 기업을 육성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과 러시아, 이란, 북한 등 해외우려국가(FEOC)에 대한 구체적인 제재 방침(가이드라인)을 확정하지 못한 것도 이런 고민 때문일 것이다. IRA는 배터리 핵심 부품과 광물의 조달 요건을 충족한 차량 구매자에게만 최대 7500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FEOC에서 핵심 광물 조달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핵심 광물의 중국 의존도가 높다. IRA 시행 이후에도 중국산 광물 비중을 줄이지 못하고 있다. FEOC 가이드라인 발표가 늦어질수록 불확실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만약 중국 광물을 완전히 배제해야 한다는 FEOC 지침이 나오면 대응이 힘들 수 있다.

현실적인 방안은 중국 광물 기업과 합작해 북미나 미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에서 배터리 부품을 생산하는 것이다. IRA 규제의 우회로를 찾는 방식이다. 중국 배터리 기업들은 이미 미국 자동차 업체와 협력해 미국에 공장을 짓고 있다. 한국 배터리 기업들도 중국에서 조달한 광물을 한국에서 가공하는 합작사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전기차에 대한 가격 인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중국 저가 배터리 수요가 늘어난다는 점도 미국 정부로서는 고민거리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기차 보급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IRA 규제가 엇박자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배터리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면 한국 기업이 반사이익을 거둘 수 있다는 의견도 있지만 막연한 기대일 뿐이다. 미국의 제재에 맞서 중국이 본격적으로 자원을 무기화하면 한국 기업도 큰 타격을 입는다. 중국은 지난달 초 갈륨과 게르마늄에 대한 수출 통제 조치를 발표했다.

막대한 보조금 혜택을 기대하고 미국에 투자한 결정이 부메랑이 될 위험도 있다. 미국은 인건비가 비싸고 기술 인력을 구하기 쉽지 않다. 미국 정부의 보조금 지급 조건이 바뀔 수도 있다. 미국 내에서는 IRA 혜택이 미국 기업이 아닌 한국과 일본 등 외국 기업에 돌아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1년간 지급된 보조금의 60% 이상이 외국 기업에 돌아갔다는 비판 기사를 보도하기도 했다. 자칫 미국 내 투자가 현금을 주고 어음을 받는 꼴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윤석열 정부는 대미 외교에 치중하면서도 IRA로 한국 기업들이 겪고 있는 고충 해결에는 손을 놓고 있다. 정부의 늑장 대응으로 한국산 전기차는 IRA의 보조금 대상에서 결국 제외됐다. 시장조사업체인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중국을 제외한 세계 각국에 등록된 전기차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4% 늘었다. 하지만 미국 시장에서 보조금을 받지 못한 현대차그룹은 증가율이 5.6%에 불과했다. 이에 비해 미국 테슬라는 62.2%, 폭스바겐그룹은 41.0%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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