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실패를 바란 세력의 김은경 마녀사냥

또 한목소리로 뭉친 족벌언론과 개혁언론들

노인 비하? 이구동성 속에 완성된 '삼인성호'

마녀사냥에 타협하는 게 '전통'이 된 민주당

내밀한 가족사까지 공격하는 언론에 속수무책

혁신이 달갑지 않던 의원들까지 함께 돌 던져

기득권 카르텔에 맞서면 만신창이 되는 '공식'

2023-08-08     전지윤 편집위원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3일 용산 대한노인회 중앙회에서 김호일 회장이 노인폄하 발언 사과를 위해 방문한 더불어민주당 김은경 혁신위원장과 면담 중 위원장의 뺨 대신 사진을 때리고 있다. 2023.8.3 [국회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지난주에 김호일 대한노인회장이 "1000만 노인 인구를 대표해 내가 볼이라도 때려야 노인들의 분이 풀릴 것 같다"며 김은경 민주당 혁신위원장을 바로 앞에 앉혀두고 '사진 따귀'를 때리는 걸 못 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거의 모든 언론과 포털에 맨 위쪽에 떴고, 뉴스에도 하루종일 나왔기 때문이다.

살면서 언제 한 번이든 위계 관계 속에서 자신보다 나이 많은 어른(대부분 남성)에게 이런 갑질과 폭력을 당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그 장면에서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고, 일부는 마치 내가 맞고 있는 듯한 느낌까지 들었을 것이다. 이것은 보통 때라면 전형적인 '갑질' '꼰대'라고 불릴만한 장면이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보수적 족벌언론만이 아니라 개혁언론들까지도 모두 이것을 당연하고 정당한 행위처럼, 심지어는 뭔가 재미있고 속 시원한 장면처럼 보도했다. 철저히 김호일 회장에게 감정이입을 했기에 벌어진 일이다. 일부에서 비판의 지적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그다음 날부터였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가 초기에는 '노인 비하도 아니었고 사과할 이유도 없다'던 김은경 위원장이 며칠 만에 결국 김호일 회장 앞에 가서 고개 숙인 이유기도 하다.

진영과 정파를 떠나서 거의 모든 언론이 김은경 위원장의 발언을 "노인 비하" "노인 폄하"라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은경 위원장이 "설화" "실언" "논란"을 일으켰다고 했다. 따라서 김은경 민주당 혁신위는 민주당에 '도움'이 아니라 반대로 "리스크"가 됐고 "동력을 상실하고 좌초"했으니 "해체"해야 한다고 했다.

물론 보수적 족벌언론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가장 앞장서서 매일같이 기사, 사설, 칼럼을 통해 '융단폭격'을 해댔지만, '진보'언론이라는 한겨레와 경향도 별로 다르지 않았고 사설까지 내서 김은경 위원장의 사과를 촉구했다. 족벌언론은 윤석열 정권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 개혁언론들은 민주당에서 혁신 대상이 된 구주류 세력의 편에서 그랬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밖에 없다.

분명 정치적 성향이 다른 족벌언론과 개혁언론이 잘 구분되지 않는 목소리로 '돈봉투 사건과 김남국 코인 사태를 해결하고 개딸과 강성 지지층을 정리하는 것이 민주당의 혁신 과제'라고 말하는 이상한 현상도 이렇게 볼 때 해석 가능하다. 이에 따라 민주당의 오랜 문제로 지적돼 온 '비민주적 당내 구조, 다선 의원들의 기득권, 호남 토호세력의 과도한 영향력' 등은 가려지고, 그것을 혁신하려는 시도는 잘못된 '친명과 강성당원들의 요구'가 돼 있다.

무엇보다, 족벌언론과 개혁언론의 '이구동성'이 중요한 이유는 그럴 때 진정으로 마녀사냥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삼인성호', 즉 세 사람이 다 호랑이를 봤다고 우기면 결국 없던 호랑이가 만들어지는 현상은 바로 이런 경우를 말한다. 족벌언론이 아무리 돈과 권력을 가지고 있어도 부족한 부분은 개혁언론들까지 같은 목소리를 내면서 채워진다.

이렇게 되면 '호랑이가 있다'는 것을 아무도 의심할 수 없게 된다. 최근에 김훈 소설가가 서이초 교사의 비극을 언급하면서 "'내 새끼 지상주의'를 가장 권력적으로 완성해서 영세불망(永世不忘)의 지위에 오른 인물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그의 부인"이라고 언급한 것도 이를 증명한다. 권력을 이용해 자식의 입시와 출세를 보장한 진짜 권력자들이 아니라, 거꾸로 그들에게 멸문지화를 당한 사람을 또다시 불러내 짓밟으면서 아무 의심도 없다.

왜냐면 지난 4년간 진영을 떠나 모든 언론이 '조국 부부는 파렴치한 위선자들'이라고 합창해 오면서 이 명제가 기정사실처럼 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견해가 우리 사회에서 하나의 헤게모니적 의견, 즉 '대세'가 됐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데 필요한 것은 조중동뿐 아니라 한겨레와 경향까지 그것에 동참하고 있는가가 하나의 리트머스 시험지가 된다. 그렇게 될 때 그것에 굴복하지 않고 거부하며 버틴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호일 대한노인회장. 대한노인회 홈페이지

결국, 마녀사냥에 타협하는 게 하나의 전통이 되어버린 민주당은 사흘 만에 굴복해서 지도부가 먼저 가서 김호일 대한노인회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것이 어처구니없는 이유는 대한노인회는 거의 정부 보조금에 의해 운영되다시피 하는 보수정치 편향성을 비판받아온 단체일 뿐 무슨 '1000만 노인의 의견을 민주적으로 대표'하는 기구나 단체가 아니라는 점에 있다.

보수정당에서 3번이나 국회의원을 했고 지난 대선 때 윤석열 지지 선언에 동참했던 김호일 회장으로 좁혀보면 이런 문제는 더욱 증폭된다. 지금 대한노인회 홈페이지 대문을 가보면 김호일 회장과 윤석열 대통령이 나란히 서서 웃고 있다. 하지만 진영을 넘어선 안팎의 압력에 결국 김은경 위원장도 버티지 못하고 김호일 회장 앞에 가서 고개를 숙였다.

이 모든 과정에서 제대로 묻지도 살펴보지도 않고 지나친 점은 과연 김은경 위원장의 발언을 노인 비하나 폄하로 볼 수 있냐는 것이었다. 물론 전혀 아니었다. 중학생 아들의 설익은 의문에 답하면서 결국 "투표장에 젊은 분들이 나와야 의사가 표시된다"고 설득하는 내용이 전부였다. 이것을 주류언론들은 앞뒤와 맥락을 빼놓고서 "여명 비례 투표"라는 자극적 용어로 프레임까지 짜서 그렇게 몰아갔다.

결국 한국 사회는 잘못도 없는데 주류언론들과 정치권이 다 같이 한목소리로 누군가를 표적으로 삼아서 계속 두들기면 무릎 꿇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다시 증명됐다. 민주당이나 민주당의 혁신에 큰 기대는 없었기에, 사실 김은경 위원장이 누구인지 잘 몰랐다. 교수에 금감원 부원장 출신이라니 또 수많은 출세한 엘리트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괴롭힘과 굴욕을 당하며 감내하는 모습을 보고 어떤 사람인지 찾아봤다. 오래전에 배우자와 사별하고 혼자서 2자녀를 양육하는 부담을 지면서도 힘겹게 자신의 직업과 경력을 지켜낸 강인한 여성이었다. 그 이야기를 김호일 회장 앞에서 하면서 나중에는 기자들 앞에서 눈물까지 글썽이는 모습을 봤다. 서슬 퍼런 윤석열 시대에 "윤석열 밑에서 (금감원 부원장) 임기를 마치는 게 엄청 치욕스러웠다"는 결기 있는 발언도 인상 깊었다.

결국 여전히 이 사회는 아무리 학벌과 지위가 높아도 젠더적 위계가 강하게 작동한다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페미니스트 심리학자인 해리엇 러너는 여러 연구를 통해 나타나는 공통적 현상이라면서 "사과하지 않는 사람으로 만드는 첫 번째 위험 요소는 남성이라는 성별이다. 바꿔 말해 지나치게 사과하는 사람이 되는 첫 번째 요소는 여성이라는 성별이다"라고 했다. 당장 정경심 교수와 윤미향 의원이 떠오를 것이다.

실제로 김호일 회장은 저 폭력적 갑질 행동에 대해서 사과를 요구받지도 않고 있고, 절대로 사과할 리도 없다. 대한노인회 역대 회장과 간부들을 보면 거의 전부가 남성이라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오히려 이재명 민주당 대표까지 직접 가서 김호일 회장에게 또 '사과'해야 한다는 이야기만 계속 나왔다. 족벌언론이 만들어낸 '노인 비하 정당'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꼼짝도 못 해온 민주당에게는 무엇보다 선거와 표가 중요할 테니 말이다.

 

더불어민주당 김은경 혁신위원장이 3일 용산 대한노인회 중앙회에 사과하러 방문해 김호일 회장을 만나고 있다. 2023.8.3 [국회사진기자단] 연합뉴스

반면 김은경 혁신위는 "조기 종료"한다고 한다. 사사건건 온갖 트집을 잡고 시비를 걸던 진영을 넘어선 주류언론들의 보도 속에는 '또 우리가 이겼다'는 만족감이 느껴진다. 게다가 김은경 위원장의 내밀한 개인적 가족사까지 파헤치는 언론의 신상털기 공격이 또 시작됐다. 김은경 위원장의 배우자가 어떻게 사망했는지, 시부모나 시댁과 관계가 어땠는지, 부부관계나 가족관계는 어땠는지가 낱낱이 파헤쳐지고 있다. 또 가족까지 불려 나오고 있다.

그 내용 하나하나가 알고 싶지도 않지만, 누구라 해도 결코 공개하고 싶지 않은 가슴 아프고 내밀한 사적 개인사들이다. 지난 대선 때 기득권 우파와 주류언론에 의해서 민주당 조OO 공동선대위원장이 당했던 소름 끼치던 인격 살해의 악몽이 다시 떠오른다. 이것은 공인에 대한 검증과도 무관하고, 김은경 위원장은 그저 임시직일 뿐이고 무슨 장관이나 국회의원을 하려고 나선 것도 아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이 상황에서 혁신이 달갑지 않았던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인신공격을 막아서기는커녕 '김은경은 사퇴하고 혁신위는 해체하라'고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결국, 이 모든 것의 배경에는 김은경 혁신위의 성공을 막고 싶어 한 다양한 세력들의 이해관계가 있다. 한국 사회에서 기득권 카르텔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안 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은 영혼까지 탈탈 털어서 만신창이로 만들어버리며 다시는 감히 그것에 도전하는 사람이 나오지 못하게 만든다는 법칙은 다시 확인되고 있다. 정말 이해할 수도 없고 분노하게 된다.

왜 별 잘못도 안 한 사람들은 괴롭힘을 당하다가 거듭 사과하고 정말 잘못하고 사과해야 할 사람들은 절대로 반성하지도 사과하지도 않는가. 우리는 윤석열 대통령이, 한덕수 총리가, 이상민 장관이, 한동훈 장관 같은 남성 권력자들이 이태원 참사에 대해, 양회동 노동자의 죽음에 대해, 양평 고속도로 의혹에 대해, 검찰 특활비에 대해, 수해와 오송 참사에 대해, 자신들이 저지르거나 책임 있는 너무나 심각한 수많은 잘못들에 대해서 반성하고 사과하는 모습을 도대체 언제나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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