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연대 총파업 돌입…"안전운임제 합의 파기가 원인"

전국 16개 본부 출정식 열고 무기한 전면 파업 돌입

"안전운임제만이 화물노동자 보호할 유일한 법제도"

野 "정부여당이 노동계와 첫 약속 헌신짝처럼 버려"

”대기업 화주들 이익만 뻔뻔하게 대변…묵과 않을 것"

與 "민주노총이 국가 물류 볼모 삼아 정권 퇴진 운동"

정부 "업무 복귀 거부, 예외 없이 무관용 법적 조치"

2022-11-24     김호경 에디터
24일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포항철강산업단지에서 열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 포항지부 총파업 출정식에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2.11.24 연합뉴스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는 24일 오전 10시 전국 16개 지역본부별로 총파업 출정식을 동시에 열고 무기한 전면 파업에 돌입했다. 지난 6월 총파업 이후 약 5개월 만이다.

각 지역본부가 출정식을 개최한 장소에는 운송을 멈춘 화물차가 대열을 이뤄 늘어섰고, 노조원들은 "안전 운임제 일몰제 폐지" 등 구호를 외쳤다. 수도권 물류 거점인 경기도 의왕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서는 조합원 1000여 명이 모여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와 적용 차종·품목 확대를 요구했다. 광양항국제터미널에는 조합원 2000여 명이 모여 대형 화물차량을 입구에 도열시키고 물류 진·출입을 막아섰다.

이봉주 화물연대본부 위원장은 "한 달 내내 하루 12시간 이상을 일하고 겨우 생활비를 가져가는 화물노동자는 더는 죽음과 고통을 연료 삼아 화물차를 움직일 수 없다"며 "안전운임제만이 화물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법제도"라고 강조했다.

당진 현대제철 앞 1000명, 군산항 1000명, 부산신항 800명 등 2만 2000명으로 추정되는 화물연대 조합원 중 43%(9600명)가 총파업 출정식에 참여한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주요 화주·운송업체들이 집단운송거부에 대비해 미리 운송 조치를 했기에 아직 피해가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평소 하루 8000t 물량을 출하하는 현대제철 포항공장은 이날 물량을 전혀 내보내지 못하는 등 물류 차질이 가시화하고 있다. 육로와 해상 출하량이 평균 2만7000t에 달하는 강원 삼척 삼표 시멘트는 파업으로 육로가 막히자 해상으로만 2만5000t을 출하했다. 동해 쌍용시멘트도 철도를 통해 4000t가량만 먼저 출하한 상황이다. 강릉 한라시멘트는 하루 평균 2만5000t에 달하는 출하량 중 2만t의 물량이 나가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24일 강원 동해시 북평산업단지 내 대한송유관공사 영동지사 앞에서 화물연대 총파업 출정식이 열리고 있다. 출정식에 참가한 조합원들은 차량 30여 대를 도로변에 주차해 놓고 '안전운임 개악저지', '일몰제 폐지', '차종·품목확대'를 요구했다. 2022.11.24 연합뉴스

이에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권은 정부여당이 약속했던 안전운임제 합의안 파기가 화물연대 파업의 주원인이라며 화물자동차 안전운임 대상 확대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화물 노동자들의 '최저임금제'로 불리는 안전운임제는 화물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운송료를 보장하고, 그보다 적은 돈을 주는 화주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는 제도다. 2020년 일몰제로 도입돼 올해 말 종료를 앞두고 있다.

민주당 김성환 정책위의장은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화물연대가 5개월 만에 다시 총파업을 결의한 것은 윤석열 정부가 당초 합의한 안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5개월 전 국토교통부는 안전운임제를 지속 추진하고, 적용 품목 확대 논의를 약속한 바 있는데 '품목 확대는 적절하지 않다'며 합의안을 공수표로 만들어버렸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여당은 뒷북 당정협의를 열어 '안전운임제 일몰 3년 연장 결정'을 했지만 이는 화물연대와 사전 교섭 없는 반쪽짜리 연장안이자, 당장 파업 막기에 급급한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면서 "민주당은 정기국회에서 안전운임제 '일몰 3년 연장'과 '적용 품목 최소 3개 확대'를 포함한 소위 '3+3 해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정책위의장은 "안전운임제는 화물노동자의 최저임금제도이고 주말도, 밤낮도 없는 화물 노동자를 위한 사회적 안전망"이라며 "총파업에 '법적 대응' 운운하며 노동계를 겁박할 것이 아니라 당초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을 다하는 것이 정부여당의 책임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영순 원내부대표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무력화 기도, 공공기업의 민영화 추진, 언론자유 파괴와 공영방송 장악 시도를 비롯해 민생 법안의 발목을 잡고 있는 윤석열 정부와 여당이 총파업의 원인이자 사태를 해결해야 할 책임자"라면서 "윤석열 정부와 여당은 노동계와의 첫 약속을 헌신짝처럼 저버렸다. 생존권 보장을 위한 노동자들의 절박한 외침을 공권력으로 짓밟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수진 원내대변인은 논평에서 "윤석열 정부는 이태원 참사에서 국민의 생명을 외면했듯 노동자를 '죽음의 일터'로 내몰고 있다"며 "정치파업이 아니라, 죽지 않고 일할 수 있게 해달라는 절규"라고 밝혔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도 이날 국회 기자회견에서 "당정협의를 거쳐 여당이 발의한 법안은 운송원가 항목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해 안전운임제도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악법"이라고 성토했다. 이들은 "정부 여당이 대다수 화물노동자들과 영세 운송업체들의 의견은 묵살하고, 어떻게 대기업 화주들의 이익만을 이렇게도 뻔뻔하게 대변할 수 있는지 참으로 개탄스럽다"고 비판했다.

정의당 역시 이번 파업이 정부여당 책임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강력 대처하겠다는 뜻을 천명했다.

이은주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상무집행위원회 회의에서 "화물연대뿐만 아니라 서울대병원과 보라매병원 보건의료노동자, 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상담사들도 어제부로 파업에 들어갔다. 또 일주일 뒤 30일에는 서울지하철 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가는 등 공공부문 연쇄 총파업이 예고돼 있다"면서 "모두 합의는 180도 뒤집고, 약속은 나 몰라라 하는 윤석열 정부가 부른 파업"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윤석열 정부가 계속해서 불법 운운하며 수수방관한다면 정의당은 결코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기중 부대표는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와 확대 요구는 화물기사뿐 아니라 도로를 이용하는 모든 국민의 안전을 위한 요구"라면서 "정부는 물류대란을 우려하지만, 노동자들은 이미 안전대란을 겪고 있다. 신당역 살해사건과 오봉역 사망사고는 안전을 위해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함을 보여줬다. 밑도 끝도 없이 예산과 인력을 감축하라는 윤석열 정부와 오세훈 시장의 태도는 사고가 반복되고 사람이 죽어도 상관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도 페이스북에서 "국토부는 지난 6월 '안전운임제 지속'과 '품목 확대'를 논의하겠다고 화물연대와 합의했지만 이후 국토부는 일몰제 폐지가 아니라 3년 연장, 품목 확대는 원천 논의 불가라는 입장을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그러다가 파업을 이틀 앞두고 당정협의회에서는 화주 책임을 면하는 개악안까지 보태어 일방적으로 입장을 통보했다"면서 "파업을 하루 앞두고는 운송개시명령을 내리겠다며 협박했다. 이는 명백한 국토부의 합의 파기이고 5개월간 정부를 믿고 기다려온 화물노동자들을 파업으로 내모는 꼴"이라고 설명했다.

심 의원은 "이렇게 불통과 개악안으로 노동자들을 투쟁으로 내몰고, 그다음에는 공권력 동원해서 해결하겠다는 이런 정부의 낡은 권위적 발상이야말로 국민경제에 타격을 주는 행위"라면서 "화주 책임을 제외하는 개악안은 철회하기 바란다. 국회는 당장 화물자동차법 개정을 논의하고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24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이상민 행안부 장관, 조승환 해양수산부 장관, 방문규 국무조정실장, 윤희근 경찰청장, 장영진 산업부 차관이 참석한 가운데 화물연대 운송거부 철회 촉구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2022.11.24 연합뉴스

반면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민주노총이 국가 물류를 볼모 삼아 사실상 정권 퇴진 운동을 벌이겠다고 공언하고 나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 비대위원장은 비대위 회의에서 "공공운수노조 파업과 화물연대 파업은 전국 항만과 산업시설의 마비를 초래할 것"이라며 "민주노총 총파업이 위기에 놓인 국가 경제에 타격을 줄 것이 불 보듯 뻔하다"고 말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에 따른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조승환 해양수산부 장관, 방문규 국무조정실장, 윤희근 경찰청장, 장영진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이 함께했다.

원 장관은 "이번 집단운송거부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하겠다"며 "운송 거부자에 대해서는 지자체와 과태료를 부과하고, 운송 방해와 협박 등의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끝까지 추적해 무관용 원칙으로 단호히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심각한 위기까지 초래한다면 업무개시명령도 발동하겠다"며 "업무에 복귀하지 않는다면 예외 없이 법적 조치하겠다"고 덧붙였다.

원 장관은 "지난 6월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 철회 당시 화물연대에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와 품목 확대를 약속한 바 없다"며 "교통안전 개선을 위해 도입된 안전운임제의 효과가 불분명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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