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사우스' 아우른 브릭스, 경제‧안보 협력체로 진화
"미국‧서구 패권, 지금처럼 격렬한 도전받은 적 없다"
브릭스, 개도국의 사이버‧수자원‧식량‧에너지 안보 논의
중국 왕이 "더 큰 브릭스 목소리 듣고 더 큰 역할 볼 것"
공식 가입 요청 22개국…"유럽 포함 전 대륙에 분포"
8월 22~24일 정상회의 주제는 '브릭스와 아프리카'
서구 선진국 그룹인 주요 7개국(G7)을 중심으로 미국과 서구가 국제질서를 주도해온 가운데, 그 대안을 모색 중인 브릭스(BRICS)의 움직임에 날이 갈수록 탄력이 붙고 있다.
브라질과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이뤄진 브릭스는 처음엔 이질적인 신흥 경제 대국들의 느슨한 모임이었지만, 중국의 주도로 최근 몇 년 사이에 경제협력 중심으로 실질적인 틀을 갖춘 그룹으로 변모한 데 이어 이젠 본격적인 안보협력체로 진화하고 있다.
특히 브릭스 가입을 공식 신청한 곳이 주요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을 포함해 22개국이 이르고, 비공식으로 관심을 표명한 나라도 20개국이 넘는다.
여기에는 '글로벌 사우스'(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동, 중남미의 개도국, 저소득국) 국가들도 대거 포함돼 있어 브릭스가 신흥경제대국과 개도국을 아우르는 거대한 글로벌 플랫폼으로 떠오르고 있어 서구 중심의 기존 질서를 고수하려는 서방 진영에는 큰 부담이 되고 있다.
브릭스, 개도국의 사이버‧수자원‧식량‧에너지 안보 논의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24~25일 이틀간 브릭스 국가안보보좌관 회의가 진행됐다. 회의에는 브라질의 셀소 아모림 대통령 최고 외교정책 고문, 러시아의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국가안보회의 서기, 인도의 아지트 도발 국가안보보좌관, 중국의 왕이 중앙정치국 위원 겸 공산당 중앙판공실 주임, 남아공의 시드니 무파마디 국가안보보좌관이 각각 참석했다.
2009년 러시아에서 시작된 브릭스 국가안보보좌관 회의는 올해로 13번째이다.
이번 회의에서는 갈등이 심한 사이버와 해양, 우주와 같은 핵심 분야는 물론, 식량과 수자원, 에너지 안보, 테러 등의 글로벌 도전들이 다뤄졌다.
특히 개도국의 안정적 발전과 세계평화를 크게 위협하는 일부 국가들의 파괴적 활동과 "색깔 혁명들", 사이버 공격과 관련한 개도국과 신흥 경제국의 안보 우려가 강조됐다.
왕이 "더 큰 브릭스 목소리 듣고 더 큰 역할 볼 것"
이 자리에서 중국은 개도국과 신흥경제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세력으로 미국과 서구를 지목했다. 왕이 위원은 25일 글로벌 안보 도전들에 대처하고 안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선 △ 일방주의와 패권 △ 디커플링(공급망 분리) △ 이중 기준 △ 냉전적 사고와 제로섬 게임 등에 저항하고 반대할 것을 촉구했다고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가 전했다.
왕 위원은 브릭스와 글로벌 사우스는 '한 몸'이라며 단합된 행동을 강조하고 나섰다.
그는 "글로벌 사우스는 신흥시장 국가와 개도국의 집합이며 국제무대에서 우리의 집단적 상승을 반영한다"고 말했다. 이어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은 외부 개입에 저항하고 정치적 안보와 체제 안보를 유지해야 하는 중요한 임무를 맞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세계는 더 큰 브릭스의 목소리를 듣고 더 큰 브릭스의 역할을 볼 것"이라고도 했다.
브릭스 5개국 인구는 32억 명을 넘어 세계 인구 80억 명의 40%가량을 점하고 총면적은 지구 전체의 약 26%를 차지한다.
국제통화기금(IMF) 예측을 인용한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세계 경제성장 기여도에서 2020년을 기점으로 브릭스가 G7을 앞지르고 있다. 브릭스와 G7의 글로벌 GDP(국내총생산) 기여도는 2009년에 25.6% 대 35.1%였으나 2020년엔 각각 31%로 같았다. 2023년 현재는 31.5% 대 30%로 역전됐고, 5년 후인 2028년에는 33.6% 대 27.8%로 격차는 더 벌어진다. G7은 미국과영국, 일본,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등 서방 선진 7개국을 말한다.
왕 위원은 '사이버 안보가 개도국에 점점 더 도전이 되고 있다'는 주제로 열린 24일 회의에선 네트워크가 디지털 세계에서 '철의 장막'을 치는 새로운 전쟁터가 되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그는 △ 진정한 다자주의 실천 △ 공정하고 합리적인 사이버 공간 구축을 위해 개도국의 정당한 우려 경청 △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사이버 공간 구축을 위해 모든 형태의 과학적‧기술적 패권과 사이버 패권 반대 △ 안전하고 안정적인 사이버 공간 구축을 위해 '색깔 혁명'을 수행하려는 사이버 공간 활용 시도 반대 등 4가지를 제안하기도 했다.
공식 가입요청 22개국…"유럽 포함 전 대륙에 분포"
인도의 도발 국가안보보좌관은 회의에서 수자원과 비료의 무기화를 반대했다. 또한 사이버 영역에서 신흥 기술로 인한 공동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선 R&D가 가장 중요하다면서 브릭스 ICT 워킹그룹의 잠재적 연구 분야로 AI(인공지능)와 양자 컴퓨팅, 클라우드 안보, 블록체인, 사물인터넷 등을 예시했다고 인도의 힌두스탄타임스가 전했다.
미국과 유럽의 주요 언론 매체들은 브릭스 국가안보보좌관 회의 등을 거의 다루지 않았다.
앞서 지난달 1일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개최된 브릭스 외교장관회의에선 국제 경제질서의 재편과 부(富)의 편중 완화, 달러 의존도 축소와 자국 통화 결제, 그리고 저성장·저개발 및 부채 문제로 고통을 겪는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지원과 브릭스 회원국 확대 문제가 논의됐다.
아닐 수클랄 주브릭스 남아공 대사는 20일 기자간담회에서 "브릭스 공식 가입을 신청한 곳은 22개국"이라면서 "같은 수의 국가가 비공식으로" 관심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그는 "가입을 공식으로 요청한 국가는 남미의 아르헨티나, 중동의 이란과 사우디, UAE, 아시아의 방글라데시 등 거의 모든 대륙에 골고루 분포돼 있다"며 "유럽에서도 신청한 나라가 있다"고 소개했다.
"미국‧서구 패권, 지금처럼 격렬한 도전받은 적 없다"
브릭스 정상회의는 오는 8월 22~24일 남아공에서 열린다. 정상회의 주제는 '브릭스와 아프리카: 상호 가속성장과 지속가능한 발전, 포용적 다자주의를 위한 파트너십'이다. 테크놀로지와 경제, 안보를 비롯해 브릭스와 아프리카 국가들 간의 더 나은 협력 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쿰부조 은차베니 남아공 대통령실 장관은 "아프리카 어린이도 중국, 인도, 브라질, 러시아, 그리고 다른 나라의 어린이와 마찬가지로 기회를 개발하고 기회에 접근할 수 있도록 의미 있는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남아공 일간지 더스타가 전했다.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체포 영장 발부로 대면 회의 불참을 결정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브릭스의 다른 정상들이 참여하는 모든 세션에 화상으로 참여하게 된다. 그를 대신해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이 참가할 예정이다.
한편 더스타는 작년 2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의 글로벌 영향에 대한 '독특한' 진단을 내놨다. 러시아에 대한 미국 주도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유럽연합(EU)의 제재가 글로벌 사우스의 반발을 사면서 단극 국제질서의 변화를 촉발했다는 것이다.
신문은 "남아공은 물론 아프리카와 아랍연맹, 남미, 글로벌 사우스의 대부분 나라가 러시아 제재를 강요하는 서구의 압력에 굴복하길 거부했다"며 "미국과 서구의 패권이 지금처럼 격렬하게 도전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