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코 사후 50년 만에…스페인 정부에 극우파 진입하나

23일 총선, 좌우연합 모두 과반획득 실패

극우 VOX 참여 연립정권 성립 여부 주목

집권 사회노동당과 좌파연합 예상외 선전

좌우파 연합 모두에 집권 기회 열려 있어

우파연합 집권할 경우 EU에도 큰 파장

2023-07-24     한승동 에디터
알베르토 누녜스 페이호 스페인 중도 우파 인민당(국민당 PP) 대표가 23일(현지시간) 총선 결과 발표 전 수도 마드리드에서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이날 실시된 총선에서 제1야당인 PP가 하원 전체 의석 350석 중 136석을 차지해 가장 많은 의석을 확보했으나, 좌우 어느 진영도 과반을 차지하지 못했다. 2023.07.24. EPA 연합뉴스

23일 실시된 스페인 총선에서 야당인 중도우파 인민당(국민당)이 제1당이 됐으나 페드로 산체스 총리가 이끄는 중도좌파 스페인사회노동당 등 좌파 연합쪽이 예상보다 선전해 좌우파 두 블록 중 어느쪽도 정부 구성에 필요한 단독 과반의석을 확보하지 못했다.

야당 우파 인민당 1당으로

24일 개표 결과 인민당은 기존 의석보다 47석을 더 얻어 136석을, 집권 사회노동당은 122석을 얻었다. 인민당과 연립 가능성이 높은 극우 VOX는 33석을 얻었는데, 지난 총선 때 얻은 52석보다는 많이 줄었다. 사회노동당과 연립한 새로운 좌파연합 수마르(산체스 연립정부에 참여한 ‘포데모스’도 이에 합류)는 31석을 얻었다.

 

스페인 총선이 실시된 23일 집권 스페인사회노동당 당수 페드로 산체스 총리가 마드리드의 당 본부에서 지지자들의 환호에 손을 들어 답하고 있다. 2023.07.23. AP 연합뉴스

집권 좌파 사회노동당 예상외 선전

이에 따라 인민당과 VOX는 모두 169석, 사회노동당과 수마르는 합계 153석을 확보해 두 블록 어느쪽도 과반인 176석에 미달함으로써 단독으로는 정부를 구성할 수 없어 8월 17일 새 의회 개원 뒤 정부 구성을 놓고 협상하면서 지역 군소정당까지 끌어 모아 과반의석을 확보하기 위한 흥정을 벌여야 한다.

원래 120석에서 110석 정도로 의석이 줄 것으로 예상됐던 사회노동당은 오히려 의석을 2석 더 늘렸다. 이에 따라 좌우 두 블록은 서로 자파의 승리를 주장하고 있다.

이는 선거 전에 야당이 압승하리라던 예상을 벗어난 결과로, 선거전은 막판에 인민당 당수 알베르토 누녜스 페이호의 실언, 극우세력의 대두에 대한 우려 등으로 좌파 쪽이 반사이익을 얻으면서 막상막하의 싸움이 됐다.

투표 1주일 전 여론조사에서는 인민당과 VOX의 우파 연합 쪽이 과반인 176석 이상을 획득할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번 총선 자체가 지난 5월의 지방선거에서 산체스의 좌파 연립정부가 대패한 결과, 의회(하원)를 해산하고 실시한 선거였다.

 

스페인 총선이 실시된 23일, 극우 정당 VOX의 지지자가 투표 뒤 VOX의 대형 포스터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2023.07.23. AFP 연합뉴스

극우 VOX가 정권당이 될까

이 때문에 야당이 압승할 것이라는 예상 속에 인민당이 단독 과반 의석을 차지하거나, 극우 정당 복스(VOX)와 연립정부를 구성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측됐다. 그리하여 VOX가 정부 구성에 참여할 경우, 프랑코 총통 사후 스페인이 민주화된 지 50년만에 극우세력이 중앙정치 무대에 진입하게 된다는 점에서 이번 선거가 스페인 안팎에서 특히 주목을 받았다. 또 스페인이 올해 하반기 유럽연합 순회 의장국이 된 상황에서 또 하나의 극우 정당이 유럽 정치 중심무대에 진입하게 되는 셈이어서, 스페인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에 끼칠 정치적 파장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들이 많았다.

VOX는 유럽연합에 회의적인 자세를 취하면서 불법이민자 추방, 카탈루냐와 바스크 등을 기반으로 한 분리주의 정당의 활동금지, 동성애와 성소수자 배척 등을 표방하는 애국주의 극우정당인데, 스페인 젊은층의 지지를 얻고 있다.

 

스페인 총선이 실시된 23일 집권 스페인사회노동당과 좌파연합 지지자들이 마드리드의 사회노동당 본부 앞에서 기세를 올리고 있다. 2023.0723. AFP 연합뉴스

좌우 두 연합세력 모두에게 기회

8월 17일 새 의회 개원 이후 총리 선출과 정부 구성을 위한 협상이 시작되는데, 이에는 적어도 몇 주일 길게는 몇 개월의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가디언> 등 외신들이 전했다.

좌우 두 블록이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려면 각기 지역 군소정당들의 협력을 얻어내야 한다. 그럴 경우 좌파연합 쪽이 더 유리할 수 있다는 관측들이 나오고 있다. 우파연합 쪽은 인민당과 VOX 외에 확장의 여지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의회 개원 뒤 국왕 펠리페 6세는 먼저 다수당인 인민당 당수 알베르토 누녜스 페이호에게 총리직과 정부 구성권을 주게 된다. 2015년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져 국왕은 당시 인민당 당수 마리아노 라호이에게 정부 구성권을 주었으나 라호이가 정권구성에 필요한 의석을 결집시키지 못해 집권에 실패했다.

이번에도 페이호가 정부 구성에 실패할 경우 국왕은 다시 페드로 산체스 현 총리에게 같은 제안을 하게 된다. 사회노동당이 제1당이 아니어도 과반의석을 확보하면 지난 번처럼 다시 집권할 수 있다.

법률상 시한은 없지만 어느 쪽도 정부 구성에 필요한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총리 선출을 위한 투표 뒤 2달 안에 다시 투표를 해야 한다. 좌우 두 연합이 끝내 과반수를 얻지 못할 경우 선거를 다시 실시해야 할 수도 있다.

 

스페인 총선이 실시된 23일 야당인 인민당 지지자들이 마드리드의 인민당사 앞에서 인민당 깃발 등을 흔들며 지지를 표시하고 있다. 2023.07.23. 로이터 연합뉴스

우파연합이 집권할 경우 EU에도 파장

인민당 등 우파 연합 쪽이 집권할 경우 유럽에서는 최근 몇 년간 우익 정당들이 집권하거나 연립정권에 참여해 온 추세가 한층 더 뚜렷해지게 된다.

지난해 9월 이탈리아 총선에서 파시즘의 흐름을 이어 온 우익정당 ‘이탈리아의 형제들’이 승리해 극우 평판의 멜로니가 첫 여성총리에 취임했다. 핀란드에서는 올해 4월 이민과 난민 수용을 제한하자는 ‘핀(란드)인당’이 제2당이 되고 6월에는 연립정권에 참여했다.

VOX가 지난 21일 마드리드에서 개최한 선거집회에는 멜로니 외에 유럽연합 가맹국 중에서 우파 지도자의 대표격인 헝가리의 오르반 총리와 폴란드의 모라비에츠키 총리가 지지 동영상을 보냈다. 내년에는 유럽의회 선거가 예정돼 있어서 VOX가 연립정권에 참여할 경우 우익정당들이 한층 더 기세를 올릴 가능성이 있다. EU에 대해 자국 이익을 주장하는 흐름이 가맹국들에서 더 강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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