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남한을 '대한민국'이라 부른 이유

적대는 전쟁의 길, 평화공존이 함께 사는 길이다

2023-07-22     윤영상 칼럼
윤영상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연구교수

7월 10~11일 양 일에 걸친 김여정의 담화가 논란이다. 과거와는 달리 남한을 상대로 ‘남조선’이 아닌 ‘대한민국’이라는 정식 국호를 사용하며 ‘<대한민국>의 합동참모본부’ ‘<대한민국> 족속’ ‘<대한민국> 군부’ ‘<대한민국> 군부깡패’라고 표현했는데, 그것이 북한이 ‘두개의 국가=TWO KOREA’ 정책으로 전환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놀라운 것은 보수언론과 국민의힘, 통일부가 보여준 관심에 비해 민주당이 보여준 무관심이다. 보수언론은 ‘적대적 공존’의 제도화가 남한의 흡수통일 포기를 제도화하는 것으로 이어질까봐 당황스러워 하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민주당의 무관심은 의도된 무관심이다. 민주당은 두 개의 국가를 인정하는 평화정책을 입안할 것인가, 아니면 기존의 하나의 국가론에 근거한 평화정책을 계속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적 고민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도 그런 고민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다. 그 점에서 민주당은 솔직하지 못할 뿐 아니라 무책임하다.

 

미국 전략핵잠함 켄터키 함이 부산에 입항한 뒤 24시간이 지나지 않아 북한이 19일 동해상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을 2발 발사했다. 사진은 서울역에서 관련 뉴스를 보고 있는 한 시민. 2023.7.19. AFP 연합뉴스

그런데 이런 해석논란에서 놓치는 부분이 있다. 북한이 왜 그렇게 태도를 바꾸었는지,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했는지에 대한 고민이 없다는 것이다. 아니 그만큼 북한을 알려고 하지 않고, 발등에 떨어진 불만 보고 허둥댄다는 것이다.

냉정하게 남북관계는 두 국가간의 관계이며 동시에 적대관계다. 그중 적대관계가 더 본질적이다. 그 적대관계는 상대방을 격멸, 흡수하겠다는 의지의 현실적 표현이다. 상대방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배경에는 영구분단을 걱정해서가 아니라 상대방을 무너뜨리기 위함인 것이다. 그런데 보수든 진보든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의도적으로 외면한다. 영구분단을 막고 통일을 위해서 ‘두 개의 국가 공인’은 안 된다는 것이다. 본말이 전도된 사고법이거나 허위의식이다.

냉정하게 통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그것은 과정이 어찌 되었든 하나의 국가가 되는 것이다. 이론상 남과 북이 서로를 흡수하거나 남과 북이 협력해서 하나의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후자가 바람직해 보이지만 역사적으로 그것이 성공한 사례는 없다. 그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남한의 보수는 그런 점에서 솔직하다. 힘으로 흡수하겠다는 사람도 있고, 부드럽게 흡수하겠다는 사람도 있고, 그게 어려우면 영원히 딴 살림 차리자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부분 솔직하게 그것을 말한다. 그러나 남한의 진보는 그런 점에서 솔직하지 않다. 그래서 내 경험상 터득한 감으로 정리해 본다. 일부는 북한이 아닌 남한 중심의 평화적 흡수통일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그런데 그들은 보수와 사실상 비슷한 입장이라는 소리를 듣기 싫어한다. 또 일부는 아예 서로 다른 나라로 살면서 어느 쪽이 더 진보적인지 경쟁하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들은 반통일론자로 불리워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쿨한 입장인데 소수파다. 또 일부는 남과 북이 협력해서 새로운 통일국가를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들은 그것이 바람직하지만 실현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실은 나도 그렇다. 일부 극단적인 사람들은 보수를 배제한 상태에서 남과 북이 협력해서 새로운 통일국가를 만들자고 주장한다. 그들은 그것이 북한의 적화통일방안과 똑같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걱정한다.

최근 김여정이 김정은 위원장의 위임을 받은 담화에서 최초로 ‘대한민국’이란 단어를 사용한 것은 북한이 과거의 ‘하나의 조선’ 정책에서 ‘두 개의 조선’ 정책으로 전환했다는 신호가 될 수도 있다. 그것을 통미봉남(通美封南)을 위해 그렇게 했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사안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두개의 조선’ 정책은 북한의 역사 속에서는 75년, 아니 78년 만의 전략전환을 의미한다. 북한식 표현으로라면 소위 ‘신랭전’의 상황에서 통일을 먼 미래의 일로 미루고 서로 다른 국가로 ‘상종’하지 않겠다는 장기생존전략이 가시화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체제와 국가의 보위를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것이다. 북한의 공식적 발언이나 문건은 치밀하고 전략적이다. 남한 정부나 정치인들도 적어도 북한의 그런 치밀함과 전략적 사고는 배울 필요가 있지 않을까? 압박을 통해서든 협력을 통해서든 흡수통일을 꿈꾸는 남한의 보수파들 입장에서는 그 꿈에서 멀어지는 상황이기 때문에 달갑지 않을 것이다. 남한의 진보세력은 ‘두 국가 승인’이 피할 수 없는 길인지 머리가 복잡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남한의 일반대중들은 같은 민족이지만 서로 다른 국가에 살고 있다는 것을 대부분 인정하고 있다. 정치인들만 그렇지 못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19일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한 미국의 오하이오급 전략핵잠수함(SSBN) 켄터키함(SSBN-737)에 승선하고 있다. 2023.7.19 [대통령실 홈페이지]

사실 북한은 이미 1961년 이후 남북이 두 개의 국가로 점차 고착되어 가는 상황을 인정하면서 그에 맞는 통일전략을 수립하려고 했다. 그것이 바로 남조선 지역혁명론과 연방제 통일론이다. 남조선혁명론은 과거의 민주기지 노선과 달리 북한이 남한을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남한의 혁명은 남한 인민 스스로가 남한 전위당의 지도하에 추진하고, 그렇게 해서 수립된 남한의 인민민주 정부와 북한의 사회주의 정부가 연방제 방식으로 통일하는 전략을 의미한다. 그것이 통일론으로 집대성된 것은 1973년 고려연방공화국 통일방안이다. 소위 북한의 연방제 통일방안의 원형이다. 당시 북한은 그것을 머지않은 시간 내에 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에 혁명은 두 개의 국가를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추진하지만 대외적으로는 두 개의 국가가 아닌 단일국가를 유지하는 전략을 수립했던 것이다. 북한이 교차승인반대, 유엔동시가입 반대를 외쳤던 배경이다. 북한주도로 빨리 통일하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 80년대, 90년대를 거치면서 북한주도의 통일은 사실상 물건너간다. 그래서 북한은 통일담론은 유지하면서도 사실상 체제유지, 국가보위를 중심으로 전략을 전환한다. 그것이 바로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를 조약에 준해 비준하면서 핵무기 개발에 돌입하게 된 배경이다. 김대중 정부의 포용정책과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정책을 수용하면서도 황색바람 차단운동을 벌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김정은 위원장이 집권하고 난 뒤에는 그런 경향이 더 강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2016년 조선로동당 제7차 당대회에서 김정은식 조국통일노선이 그런 방향에서 발표될 것으로 전망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표현만 등장했지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대신 2017년 이후 우리민족끼리보다 우리국가제일주의가 강조되기 시작했고, 2019년 하노이 노딜 이후에는 통일담론을 축소하고 체제보위, 국가보위, 핵보유국을 더 부각시켰기 때문이다. 2021년 조선로동당 규약개정에서 사실상 ‘민족해방 민주주의혁명’이 사라진 것도 그것을 보여준다. 소위 통일을 근본적으로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남조선혁명을 포기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최근의 변화는 북한의 확실한 태도변화로 읽혀진다. 두 국가론을 ‘평화’가 아닌 ‘적대’의 맥락을 통해 기정사실화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윤석열 정부와 미국의 침략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논리가 등장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아마 그것은 최근 윤석열 정부가 노골적 흡수통일론자 김영호 교수를 통일부장관으로 임명하면서 통일부를 대북지원부가 아니라 사실상 흡수통일부로 바꾸려 하는 상황과도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과거 이명박 정부가 통일부의 존폐를 거론했던 상황과도 다른 상황이다.

걱정스러운 것은 ‘적대’의 전면화이다. 김여정의 담화는 충돌불사를 선언하는 것이었다. 그 속에 ‘대한민국’이라는 말을 끼워 넣은 것이었다. 남한의 합동참모본부는 김여정의 위협은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깎아내렸다. 그리고 하루 뒤 화성-18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발사되었다. 그러나 남한과 미국은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4월 워싱턴 선언에 따라 용산 대통령실에서 핵협의그룹(NCG)을 출범시켰고, 북한이 심각하게 우려하는 전략핵잠수함 켄터키함을 부산에 입항시켰다. 그리고 북한은 김여정의 예고담화 뒤 켄터키함을 겨냥해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과연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북한이 남북관계를 ‘적대’에 기반한 국가관계로 바꾸겠다는 의사를 피력한 것은 체제보위, 국가보위를 위한 선택일 것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와 미국은 여전히 적대를 인정하고 강화하는 선택을 하고 있다. 적대는 충돌과 전쟁의 길이다. 사실 그것을 막기 위해서는 김여정 담화에 숨겨져 있듯이 남한과 미국이 북한의 체제와 국가성을 보장해주면 될 일이다. ‘적대’가 아닌 ‘평화공존’의 방향에서 ‘두 국가 현실’을 인정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사실 답이 안보이는 북한 핵문제의 해법도 그 속에 담겨 있다. 북한만의 비핵화가 아니라 ‘공통의 위협을 비가역적으로 제거’하는 ‘한반도의 비핵화’를 선택한다면 핵문제 해결은 지금도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북한 핵무기와 미국의 핵우산, 남한의 3축체계를 단계적으로 동시에 폐기해 나가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남한과 미국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적대는 전쟁을 부르지만 평화공존은 상호 번영을 만들어 낸다. 평화공존의 첫 출발은 상호존중과 인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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