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간 뉴스통신사 '연합뉴스'가 사는 길
[한국언론 현실 점검 ] 반쪽짜리 뉴스의 원천과 표준
관영으로 돌아갈 게 아니라 제대로 된 '국가' '기간' 돼야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공영언론이 일대 위기에 처해 있다. KBS 수신료 분리징수 추진과 YTN의 공적 지분 매각, 방송 규제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의 파행 등 정부와 여당에 의한 노골적인 공영언론 흔들기가 휘몰아치고 있다. 또 다른 공영언론 연합뉴스도 휘청이고 있다. 국가기간 방송사인 KBS와 함께 ‘국가기간’ 자가 붙는 뉴스통신사인 연합뉴스에 대해 정부가 '공적기능 수행'에 따른 국가 지원금의 집행을 일방적으로 크게 삭감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연합뉴스 소관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가 내년도 연합뉴스 지원금 예산안 금액을 정하지 않은 채 기획재정부에 1차 예산 요구안을 제출한 상황이다. 지난 5월 말 2024년도 연합뉴스 지원금 예산안 액수를 ‘공란’으로 둔 채 예산 요구안을 국회에 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첫 해인 지난해 50억 원이라는 전례 없는 폭의 지원금 삭감에 이어 올해에는 지원금 집행 여부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그러나 연합뉴스의 더 큰 위기는 외부로부터 오고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떠한 외부의 요인이든 그 외인(外因)은 내부의 조건을 통해 작용한다. 내부의 역량과 여건이 어떤가에 따라 외부의 압력을 막아내기도 하고, 때로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도 하지만 외부의 공격을 더욱 키우는 가중작용을 하기도 한다. 연합뉴스의 진정한 위기는 연합뉴스가 내는 기사들에 드러나 있다.
연합뉴스는 '국가기간뉴스통신사'로서 스스로를 '뉴스의 원천이며 표준'이라고 밝히고 있다. 뉴스통신사로서 언론의 언론이라는 매체의 성격과 함께 국가기간 언론사라는 자부심이 실려 있는 말이다. 뉴스의 '원천'이라는 말 그대로, 심한 경우 어떤 사실이 발생해도 연합이 보도하지 않으면 뉴스로 성립되지 않는다. 뉴스의 전달을 넘어 '생산' 기능까지 수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 '표준'이라는 말에는 어떤 사안에 대해 최초의 보도로써 그 사안의 성격과 관점을 규정 짓는, 말하자면 '프레임' 제시자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설명이 담겨 있다.
그러나 연합뉴스가 과연 스스로 내세우듯 뉴스의 원천과 표준이 되고 있는지 많은 국민들이 수긍하기는 쉽지 않다.
온 나라를 떠들석하게 하고 있는 '양평 고속도로 김건희 게이트' 의혹은 연합뉴스의 기사로는 그 전모를 알기 어렵다. 의혹을 제기하는 기사는 거의 볼 수 없다. 반면 의혹을 반박하고 해명하는 내용의 기사는 발생과 함께 신속하게 올라온다. 한쪽 사실의 원천은 빠지고 그 사실에 대한 반대쪽의 사실은 충실하게 보도한다.
후쿠시마 오염수 투기에 대한 국민들의 반대와 규탄도 연합뉴스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반면 국민들의 불안과 의문을 '괴담'으로 몰아가는 정부와 여당, 일부 전문가들의 얘기는 넘쳐난다. 많은 시민들의 항의를 받았던 국제원자력기구(IAEA) 라파엘 그로시 사무총장의 방한 시 그가 '간택'했던 언론사에는 조선 중앙 동아와 함께 연합뉴스도 포함됐으나 시민들이 듣고자 했던 100만 유로 이상의 뇌물 의혹이나 IAEA 최종 보고서 사전 유출 의혹에 대한 질문은 일체 없었다. 일방적으로 일본 정부와 IAEA 측의 입장만 상세하게 실어줬을 뿐이다. 민들레가 지적한 것처럼 “일본 핵오염수 투기를 정당화해온 그로시 총장의 발언을 다시 한 번 들려주기 위한 마이크를 제공한 셈이다."
연합뉴스의 눈에는 전국적으로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는 후쿠시마 오염수 투기에 대한 반대와 저항이 극소수의 움직임인 듯하다. 국민들의 반대 시위를 전하는 사진은 연합뉴스 기사에서 찾기도 어렵지만 그나마 제공되는 사진에는 이런 설명이 붙어 있다.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의 일본 도쿄 총리 관저 밖에서의 시위 모습을 촬영한 사진을 연합뉴스 자신이 아닌 AFP발로 전하는 사진에는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후쿠시마 제1원전의 오염수 해양 방류 계획이 국제기준에 부합한다는 종합보고서를 내놓았으나 국내외 일각에서는 중립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등 우려가 끊이질 않고 있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IAEA의 종합적 보고서에 대해 국내외의 '일각'에서 '우려'하고 있는 정도라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합의의 산물로 출발
이같은 보도가 ‘대한민국 대표 뉴스통신사’로서 국내 최대 규모인 600여 명의 기자가 ‘공정하고 균형 잡힌 보도를 위해 헌신한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듯 국가기간뉴스통신사로서의 공영언론의 자부심에 맞는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국언론 최대의, 세계 33개 주요 도시에 60명에 달하는 해외 취재망(특파원과 통신원)을 가동하고 있는' 그 규모와 위상에 부합하는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뉴스의 원천과 표준의 역할을 위한 인력과 재원, 법적 위상을 한국사회로부터 부여받은 언론사의 보도인가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뉴스의 원천과 표준과는 거리가 멀다고 볼 수밖에 없는 연합뉴스의 보도 행태는 단지 최근의 일은 아니지만 현 정부 들어 더욱 심해진 양상이다. 무엇보다 해마다 정부로부터 받는 300억 원 안팎의 국가기간뉴스통신사 지원금을 깎고 심지어 끊을 수도 있다고 압박을 가하는 정부에 대한 눈치 보기의 결과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연합뉴스는 문체부와 2년마다 맺는 계약 형식으로 ‘공적 기능 순비용 보전’과 ‘정부부처 뉴스정보 사용료’ 명목으로 지원금을 지급받아 왔다. 지난해 연합뉴스 지원금(328억 원)은 연합뉴스 매출액 규모(1828억여 원)의 17.9% 정도였다.
그러나 연합뉴스가 무엇보다 바로 알아야 할 것은 이것이다. ‘정부 구독료’든 보조금이든 지원금이든 명칭부터 논란이 있는 그 자금의 이름을 무엇이라고 부르든 간에 그것은 '정부'가 아닌 '국가', 혹은 한국사회가 주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지금의 국가기간뉴스통신사 연합뉴스의 출범 자체가 한국사회의 공동의 노력의 산물이었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에 의한 동양통신과 합동통신의 강제합병으로 만들어진 '연합통신'으로서 20년간 사실상 관영 매체 역할을 하다가 2003년 '뉴스통신진흥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국가기간뉴스통신사로 지정됐던 것은 연합뉴스 내외부의 오랜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었다. 연합 내부의 "우리도 언론다운 언론이 돼 보자"는 반성과 염원을 언론계와 시민사회가 받아 기간뉴스통신사의 필요성, 공영언론의 강화라는 사회적 필요에 의해 출범시킨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 20년간의 국가기간뉴스통신사로서 연합뉴스가 보여 왔던 모습이 그 출발 당시의 기대와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었는지는 의문이다.
연합뉴스가 지금 권력에 의한 위협 앞에서 사는 길은 다시 예전의 '관영'매체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정부' 지원금을 넉넉히 받으면서 '회사'로서 안정적으로 지속되는 것이 아니다. 연합뉴스가 진정한 지속가능 매체가 되는 길은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국가기간뉴스통신사'다운 모습을 실현하는 것이다.
'정부'가 아닌 '국가'기간이 되는 것이다. '기간(基幹)'이 된다는 것은 기초, 토대로서의 '기'가 되는 것이며, 기둥으로서의 '간'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언론'이 되는 것이다. '국가기간’ 언론사로서의 위상은 20년 전 제정된 법으로 완료된 게 아니다. 그 법에 담긴 사회적 합의와 요구는 연합뉴스가 지속적으로 노력해 실현해야 할 목표이며 과제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지속가능성 높이는 활로, 무엇보다 '언론'이 되는 것
그같은 인식을 위해 먼저 필요한 한 가지는 연합뉴스가 지난 2018년 이명박 박근혜 정권 9년간의 불공정 보도에 대한 반성과 청산, 혁신을 내세워 내놨던 결과물인 <과거사 백서>를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것이다. 이 백서는 6개월간의 대대적 작업 끝에 나왔으나 새출발을 위한 쇄신이라는 각오나 다짐이 무색한 내용이었다. 백서는 여러 사례들을 나열하며 전반적으로 불공정보도를 ‘외부 권력의 압력 및 그에 순응한 경영진의 부당한 지시에 따른 불가피한 상황’이었다고 해명하는 것으로 그쳤다. 주요 불공정보도 사례로 제시된 일련의 보도들 외에 연합뉴스의 많은 보도에서 공통적이며 지속적으로 나타난 불공정성의 구조적 요인에 대한 분석과 반성으로 이어지지도 못했다. 연합의 내부의 구조나 조직문화에 대한 철저한 성찰과 진단이 필요했으나 그 같은 시도는 거의 없었다.
몇 년 뒤 연합뉴스는 다시 한 번 과거사 백서를 내놓게 될 것인가. 또 다시 지금의 보도를 돌아보고 새출발하겠다는 각오를 내놓을 것인가. 그러나 훗날의 반성과 자기고발보다 더욱 필요한 반성은 바로 지금 하는 반성과 자기비판이다.
연합뉴스에 지금의 위기는 한편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연합뉴스의 모델이 된 프랑스의 국가기간뉴스통신사 AFP에 대한 프랑스 국민들의 탄탄한 신뢰가 하나의 실례다. 위기 속에 기회를 찾아야 한다. 그것은 외부의 위협과 공격을 막아내는 가장 분명하고 확실한 길은 무엇인가에 대한 연합 구성원 자신들의 인식과 자각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국가기간언론사답고' '공영언론다운' 모습은 무엇인가에 대한, 연합뉴스가 20년 전 어떻게 태어났고 어떤 언론이기를 국민들은 바라는가에 대한 바로 그 단순한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좋은 직장인만큼의 좋은 언론이 되는 길의 출발이 그것이다. 상황은 어렵지만 답은 간단한 것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