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유족 출입봉쇄"…용산구청 3교대 청사방호

국별로 인원 차출 직원 100여명 주요 출입구 배치

'상황발생 시 현장지원, 현장채증' 등 경찰작전 흡사

'보석' 박희영 구청장 출근과 함께 봉쇄 시작

지역 시민단체 "다음달 박희영 구청장 '주민소환'하겠다"

2023-06-26     이승호 에디터

 

박희영 용산구청장. 연합뉴스 사진 자료

서울 용산구청(구청장 박희영)이 하루 90~100여 명씩 일반 공무원을 동원해 ‘이태원 참사 유가족 출입 봉쇄’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보석으로 풀려난 박희영 구청장이 청사 출근을 시작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26일 CBS노컷뉴스 보도에 따르면, 용산구청의 ‘청사방호 근무자 명단 제출 및 직원 안내 협조 부탁’이라는 제목의 이메일에는 “지난주부터 계속 청사 내 유족분들이 시위하고 계셔서…오늘(19일)까지는 감사, 기획조정실, 행정지원국 직원들로 3개 조 90여 명씩 청사방호 근무를 했다”고 적혀있다.

메일 수신자는 ‘각 과’였으며, 20일과 21일에는 각각 102명의 인원을 요청했다. 용산구청이 ‘유가족 출입 봉쇄’에 매일 100명 안팎의 직원들을 조직적으로 동원해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구청의 한 직원은 취재진에 “일주일에 450여 명이 투입되는 걸로 안다”고 밝혔다. 지난 1월 1일 기준 용산구청 인력은 866명이니 절반 이상이 ‘구청 수호’에 투입됐다는 얘기다.

용산구청은 유족들을 막기 위한 봉쇄 시간대, 장소 및 동선, 차출 부서 등도 사전에 치밀하게 짰던 것으로 드러났다. 시간표를 보면 △오전 6시 30분~11시 △오전 11시~오후 3시 △오후 3시~7시 등 3교대로 편성했다. 봉쇄 장소 역시 △2층 민원실 정문·후문 △광장 야외 입구 민원인 안내 △지하 2~5층 민원인 안내 등 유족들이 구청으로 들어올 수 있는 장소와 동선을 예상해 짰다. ‘상황 발생 시 근무지원 현장 채증’ 등 경찰 작전을 방불케 하는 지침도 있었다.

 

이미지=노컷뉴스

취재진은 직원들이 계획표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지 시간별, 장소별로 확인해봤다. 모두 사실이었다. 투입된 한 직원도 취재진에 “혹시 유족이 들어오려고 하면 막아야 하니까”라고 답했다.

용산구청은 ‘유족의 안전과 직원 보호를 위한 조치’라는 취지의 해명을 내놨다. 직원 차출에 대해서도 “유족 동향에 따라 (정해진) 기한이랄 것이 없다”고 답해 ‘이태원 참사 유가족 출입 봉쇄 작전’은 무기한 계속될 수도 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 출입 봉쇄’ 작전은 박희영 구청장의 지시나 재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본업과 현업 근무중인 공무원을 엉뚱한 목적으로 차출해 투입했기 때문이다.

박 구청장은 보석으로 풀려난 뒤 첫 출근하던 지난 8일 유족들의 면담 요청을 거부해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이후 유족들은 매일 구청 앞에서 3명이 2명씩 교대로 연좌 농성을 벌이고 있다. 유족들은 박 구청장 면담과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이태원 특별법)을 만들라고 촉구하고 있다. 이에 용산구청은 지난 15일부터 정문을 봉쇄했다.

이태원 참사 유가협 송진영 대표직무대행은 “용산구청이 박 구청장 신변 보호를 위해서 공무원을 동원하는 건 공권력 낭비”라고 비판했다. 송 대행은 “(구청 앞에서 농성 중인) 현수 어머니와 통화했는데, 구청 직원들도 사실은 지시받아 나와서 막고 있지만 마음은 어머니들과 다르지 않다고 했다더라”는 말도 전했다.

박희영 구청장은 유족들의 면담 요청에 계속 귀를 막고 있다. 그런 박 구청장은 지난 14일 용산구에 있는 한 교회의 새벽 예배에 참석했다가 더팩트 기자에게 포착되기도 했다. 그때 박 구청장은 기자가 유족 면담 계획에 대해 묻자 “피해자 측과 불필요한 접촉을 해서는 안 되지만, 구청장으로서…유족들에게 만족스러운 회담이나, 무엇을 들을 수 없는 입장이기 때문에 그런 거지, 일부러 피하는 게 아니다”라는 아리송한 대답만 했을 뿐이다.

박 구청장장은 최근 지역의 경로당 등을 방문해 지역 주민들을 만나는 등 지역정치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박희영 용산 구청장에 대한 주민소환을 준비하고 있는 용산시민연대의 ‘박희영 구청장은 사퇴하라’는 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용산시민연대 브런치

지역 시민단체 “박희영 구청장, ‘주민소환’하겠다”

지역 시민단체인 용산시민연대는 박희영 용산 구청장에 대한 주민소환을 준비하고 있다. 주민소환을 주도하고 있는 이원영 시민연대 대표는 “정치가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시민이 나설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주민들은 선출직 지방공직자에 대해 임기 개시일로부터 1년이 지나면 임기 만료 전 주민소환투표 실시를 청구할 수 있다. 2007년 도입된 주민소환제가 근거다. 이에 따라 박 구청장에 대한 주민소환이 7월 1일부터 가능해졌다.

용산구의 유권자 15%가 동의하면 박 구청장에 대한 주민소환을 청구할 수 있다. 동의 요건이 충족되면 투표에 부친다. 유권자 3분의 1 이상이 투표하면 개표가 가능하다. 개표하여 유효 투표의 과반이 찬성한 결과가 나오면 해당 자치단체장은 지위를 상실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단체장의 지위 상실까지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주민소환제를 도입한 뒤로 2021년 말까지 126건의 주민소환 중 투표까지 이어진 경우는 10%가 채 안 되는 11건에 불과했다. 개표까지 간 경우는 2건밖에 안됐다.

그런데도 주민소환을 하는 이유가 있다. 그 과정을 통해 문제 있는 지자체장을 정치적으로 비판하고 압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원영 용산시민연대 대표도 정치권 등에 ‘경고 메시지’를 보내기 위한 것임을 밝혔다. 이 대표는 “박희영 구청장은 1심에서 유죄판결이 나와도 항소를 하리라 본다”며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올 때까지 임기 내내 재판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도 “재판부가 주민소환 전개 상황 등 여론을 무시한 채 판결을 내리지는 못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10·29 참사 유족들이 용산구청 정문 앞에서 박희영 구청장의 퇴진 등을 요구하고 있다. 2023.6.5.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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