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 나화린 선수의 용기 있는 도전
사이클 경륜 여성부 경기 출전…"논란 되고 싶다"
가부장적 성별 이분법의 억압이 만들어낸 ‘비정상’
폭력에 노출된 트랜스젠더들 높은 실업률‧자살률
존재에 대한 부정과 차별, ‘비가시화’가 불공정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트랜스젠더 여성이라는 것을 공개한 나화린 선수는 얼마전 강원도민체육대회 사이클 경륜 일반여성 1부 경기에 출전하면서 "나는 논란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 '180㎝·72㎏' 성전환 여성 선수, 국내 최초 도민체전 무대 밟아
나아가 "남녀로 딱 잘라 정해진 출전 부문에 성소수자가 비집고 들어갈 틈을 내는 것“이 자신이 바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많은 언론이 신기한 화제처럼 소개하는 데 그쳤지만, 우리 사회는 나화린 선수의 목소리에 더 많이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실제로 우리 사회는 모든 것이 ‘남녀로 딱 잘라져’ 있다. 이러한 성별 이분법은 ‘인간은 호르몬, 염색체, 생식기 등에 따라서 두 개의 성별로만 나누어져 있다’고 가정한다. 이에 따라서 두 개의 성별만을 기준으로 전형적인 특징과 규범을 부여한다. 두 개의 성별에 들어맞는 사람만 ‘정상’이 되고, 나머지는 ‘비정상’이 된다.
두 개의 성별 안에서도 다시 위계질서가 만들어지고, 같은 위계 안에서도 인종과 계급에 따라서 또다시 권력의 차이가 생긴다. 하지만 실제 자연과 동물, 인간 속에는 염색체나 생식기에 따라서 단 두 개의 분류 중에서 어느 하나로 나뉘지 않는 존재들이 무수히 발견된다. 과학과 사회에 대한 많은 책을 쓴 과학저술가 박재용은 이렇게 지적한다.
“염색체는 분명히 XY인데 생식기 구조는 여성으로 나타납니다. 이런 이들은 여성인가요? 남성인가요? 혹은 남성형 생식기와 여성형 생식기가 같이 발달하기도 합니다. … 현재까지 보고된 것으로만 보더라도 염색체가 하나뿐인 X, 염색체가 두 개인 XX, XY, 염색체가 세 개인 XXX, XXY, XYY 등이 있습니다. 아주 드물게는 XXXX, XXXY, XXYY, XYYY, XXXYY, XXXXY, XYYYY도 있습니다. 저 중 누구는 남성이고 누구는 여성일까요?” ☞ 트랜스젠더 입학 반대? 젠더와 생물학적 성(Sex)은 다양하다!
이런 존재들을 우리의 눈과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는 것이 가부장적 위계질서와 성별 이분법을 유지하기 위한 해결책이 된다. 전광훈 목사와 보수개신교, 국민의힘과 오세훈 등 보수우파 정치인들이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며 차별금지법과 퀴어문화축제를 반대하는 이유다. 최근 홍준표 대구시장은 “성다수자의 권익”을 말하면서 “시민에게 혐오감을 주는 퀴어축제는 안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성소수자 중에서도 특히 트랜스젠더를 혐오하는 이들이 집착하는 것이 스포츠, 화장실, 목욕탕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바로 성별 이분법을 전제로 만들어진 공간과 제도이기 때문이다. 이곳을 주목할수록 젠더 질서에 어긋나는 성소수자들을 ‘일탈자’라고 낙인찍으면서 대부분 허구적인 ‘공포와 위협’으로 사람들의 머릿속에 떠오르게 할 수 있다.
‘트랜스젠더가 스포츠의 공정한 경쟁을 망가뜨렸다’, ‘트랜스젠더가 화장실과 목욕탕에서 우리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소식들은 심심하면 등장한다. 하지만, 트랜스젠더가 일부러 불순한 목적이나 범죄의 의도를 가지고 여성 목욕탕이나 여성 화장실에 나타났다는 식의 보도들은 왜곡과 과장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트랜스젠더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과 혐오 때문에 그런 보도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러한 편견과 혐오를 다룬 ‘넷플릭스’의 <디스클로져>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면 과거에 우리가 본 수많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트랜스젠더를 변태, 사이코, 연쇄살인마, 사회질서의 위협으로 묘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사람들이 가진 다양한 정체성과 개성을 이해하는 게 아니라 오로지 ‘그 사람은 어떤 형태의 외부 생식기를 가지고 있는가’에만 끝없이 집착하게 만든다.
반면, 모든 사람이 두 개의 성별로 나누어지는가? 스포츠는 반드시 두 개의 성별로 나누어져 경쟁하는 방식으로만 가능한가? 두 개의 성별로 구분될 수 없는 사람들은 화장실과 목욕탕에 갈 권리도 빼앗겨야 하는가? 이러한 성별 이분법 사회는 언제부터 왜 만들어진 것인가? 등에 대한 기본적인 의문들은 제기되기 어려워진다. 성소수자 차별에 반대하는 사람들조차, 스포츠 경쟁에서의 ‘공정성’은 답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과연 순수한 ‘생물학적 능력주의’라는 것이 존재할까? 모든 스포츠에서 남성들이 여성들보다 항상 더 좋은 성적을 거둘까? 스포츠에서 결과를 좌우하는 것이 순전히 체격과 체력뿐일까? 트랜스젠더는 스포츠에서 남성경기도 여성경기도 출전할 수 없는 것일까? 그러면 질환 때문에 자궁을 적출하거나 난소를 제거한 사람도 출전할 자격을 박탈해야 하는가? 트랜스젠더는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여우주연상도 남우주연상도 못 타는 것일까?
사실, 존재에 대한 부정과 차별, 마치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만드는 ‘비가시화’야말로 가장 ‘공정’하지 않은 것이다. 이 때문에 트랜스젠더는 ‘공포와 위협’이기는커녕 거리와 작업장과 교육현장에서 가장 일상적인 차별과 폭력에 직면해 있는 사회적 소수자이다. 대부분의 트랜스젠더는 화장실도 남들처럼 편하게 이용할 수 없기에 밖에 나가면 물도 마음껏 마시기가 어렵다. ☞ 물도 마음껏 못 마시는 삶…공중화장실이 두려운 트랜스젠더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소수자 중에서도 소수자인 트랜스젠더들이 직면한 높은 실업률과 자살률과 타살률, 매우 낮은 기대수명 등은 이러한 고달픈 현실을 보여 준다. 따라서 예상대로 수많은 악플들(인조인간, 토 나온다, 끔찍하다, 나라 꼴이 개판이다, 민주당이 차별금지법 만들면 이렇게 된다 등)에 직면했던 나화린 선수의 이번 시도는 성별 이분법 사회에 대한 또 하나의 의미 있고 용기 있는 도전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디스클로져>에서 유명한 트랜스젠더 여성 배우인 레번 콕스는 ‘내가 성전환 수술을 했는지 어떤 생식기를 가졌는지에 대해서는 그만 묻고, 어떤 폭력과 차별을 겪어 왔고,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한다. 결국 상대방이 나와 같이 복합적인 생각과 삶의 궤적을 가진 인간이라는 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급진적인 사상가이자 활동가인 조너선 닐Jonathan Neale이 지적했듯이 우리는 모두 나름의 소중한 삶을 살고 있는 평등한 인간이다.
”트랜스젠더의 이슈는 트랜스젠더의 삶이 소중하기에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들은 다른 이유로도 중요하다. 남성과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평등하지 않다는 거짓말은 계급 사회의 발명 이후 모든 종류의 불평등에 대한 근본적 주장이었다. 트랜스젠더의 존재는 우리 모두에게, 서로의 눈 속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똑같은 인간이라고 말한다. 그 동일성은 모든 평등과 연대의 기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