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바뀐다…중국 껴안고 러시아 고립시키기

미중관계 올해 들어 미묘한 기조변화

대결과 협력 동시 추진 ‘양수겸장’ 전략

냉전 1.0 경험 재활용한 냉전 2.0버전

'반중 베팅' 윤석열 외교 방향잡기 혼란

2023-06-12     한승동 에디터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5월 15일 워싱턴 국무부에서 국제종교자유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 블링컨 장관은 다음 주에 중국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블링컨 장관은 지난 2월에 중국방문이 예정돼 있었으나 중국 고공 풍선(기수) 소동으로 연기됐다. 2023. 05.15. 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이 대통령이라면 우크라이나 전쟁을 “하루 안에 끝낼 것이다. 24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폴리티코> 5월 3일) 발발한 지 이미 1년을 넘기고 장기전 양상을 띠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트럼프가 호언장담한 대로 단번에 끝낼 수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그의 대선 재도전 자체가 순탄할지부터 안갯속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될 경우 그것을 언제 어떻게 끝낼 수 있느냐가 내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당락에 영향을 끼칠 정도의 주요 쟁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4월 재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조 바이든 대통령으로서는 여전히 유력한 경쟁자가 될 가능성이 큰 트럼프가 전쟁 조기 종결을 장담한 마당에 미국이 승패의 관건을 쥐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어떻게든 빨리 끝내는 것이 재선에 유리할 것이다. 트럼프가 아닌 다른 어떤 주자가 공화당 최종 후보자가 되든 우크라이나 전쟁은 민주-공화 양당의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미중관계의 미묘한 기조변화

“정말로 냉전 2.0이 존재하나?” 6월 11일 미국의 국제문제 전문 잡지 <포린 폴리시> 기획기사 제목이다. ‘미국과 중국 경쟁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의 내부’라는 부제가 붙은 이 기사는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중국과의 냉전을 “피하기로 했다”고 한 말과 함께 그가 몇 주 안에 중국을 방문할 것이라는 얘기로 시작한다.

블링컨 장관의 중국방문 예고 뉴스는 지난 6일(현지시각) 블룸버그 통신이 전했다. 7일에는 커트 캠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인도태평양 조정관이 “(중국과의) 신냉전을 피하고 싶다는 신호를 보내려 한다”고 말했다. 블링컨 장관은 원래 2월에 중국을 방문하기로 일정이 잡혔으나 중국의 고공 풍선(기구) ‘침투’소동이 불거지면서 기약없이 연기됐다가 몇 개월만에 다시 추진되고 있다. 이번에는 성사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계속 긴장도를 높여 온 ‘미중 분쟁’이 최근 한 고비를 넘어서는 듯한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중국부터 지난해 말 방송된 연례 신년사에서 시진핑 주석이 양국간 쟁점인 ‘대만문제’에 대한 발언 수위를 낮췄다. 워싱턴 주재 중국 대사로 있던 친강 외교부장은 베이징으로 떠날 때 “한 쪽이 다른 쪽을 이기거나, 한 국가가 희생하는 대신 다른 국가가 번창하는 제로섬 게임”을 하지 말자고 간곡히 얘기했다. 또 미국에 대해 가시돋친 발언을 해 온 자오리젠 외교부 대변인을 다른 사람으로 바꿨다.

블링컨 장관의 중국 방문은 그런 ‘변화’ 조짐 속에서 나온 것이다.

 

 12일 중국을 방문한 시오마라 카스트로 온두라스 대통령(오른쪽)이 베이징의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환영식에서 시진핑 주석과 함께 의장대 사열을 받고 있다. 2023.06.12. AFP 연합뉴스

지난 5월에는 미국 중앙정보국(CIA) 윌리엄 번스 국장이 비밀리에 중국을 방문한 사실이 알려졌고, 이번 달 5일에는 대니얼 크리텐브링크 미 국무차관보(동아시아태평양 담당)가 중국에 갔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조정관은 크리텐브링크 차관보의 방중이 블링컨 장관의 베이징 방문 준비작업임을 우회적으로 밝혔다. 성사되진 못했지만 지난 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 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 간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도 리샹푸 중국 국방부장과의 회담을 제의했다. 리샹푸 부장이 제의를 거절한 것은 중국의 러시아제 무기 구입을 이유로 미국이 리 부장 개인을 제재 리스트에 올려 놓은데 대한 반발 때문이었지만, 중요한 것은 미 국방장관이 먼저 중국 국방부장을 만나자고 한 것이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4, 5월에 걸쳐 독일과 프랑스의 총리, 대통령 등 유럽의 최고위 관리들이 중국을 잇따라 방문해 중국과의 ‘디커플링’(탈동조화, 분리)이 아니라 ‘디리스킹’을 추구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뒤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 보좌관과 재닛 옐런 재무장관 등 미국 고위관리들도 잇따라 미국 역시 중국과의 디커플링은 하지 않겠다고 얘기했다.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이 끝난 뒤인 5월 21일 기자회견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과의 관계가 해빙되기 시작하는 것을 조만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한 것은 미중 간의 이런 미묘한 기조 변화를 바탕에 깔고 있다.

 

지난 8일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 중인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리야드의 인터컨티넨털 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장에 파이잘 빈 파르한 사우디 외무장관과 함께 들어서고 있다. 2023.06.08. 로이터 연합뉴스

냉전 2.0 이 1.0과 다른 점

<포린 폴리시>가 얘기한 ‘냉전 2.0’이란 2차 세계대전 종결 직후부터 1991년 소련 붕괴 때까지 이어진 동서냉전을 ‘냉전 1.0’이라 했을 때, 그 새로운 버전을 가리킨다. 말하자면 미중분쟁이 격화되고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겹쳐 세계가 다시 냉전 1.0 때와 비슷한 진영간 대결체제로 가는 새로운 흐름, 이른바 ‘신냉전’의 다른 표현이 냉전 2.0이다.

지난해 말 노르웨이 국방연구소의 중국전문 선임연구원인 조 잉게 베케볼트는 이 잡지에 쓴 기사(2022년 12월 29일)에서 신냉전, 즉 냉전 2.0이 냉전 1.0과 다른 점 5가지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1. 불안정한 권력 이양.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기 전 강국으로 힘을 키워가던 후발 도전자인 독일은 결국 선발 영국 미국과 충돌해 전쟁을 일으켰다. 냉전 1.0에는 이런 힘의 불균형과 불안정한 권력 이행 과정이 없었다. 미국과 소련은 원래 같은 연합국이었고 2차 대전이 끝난 뒤 군사적으로 동등한 경쟁자였다. 그런데 냉전 2.0 상황하의 중국은 1차 대전 전의 독일과 닮은 점이 있다. 말하자면 독일처럼 선발자와 후발자의 권력이양 과정에서 배태되는 불안정 때문에 전쟁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더 높다. 게다가 중국은 잠재력이 소련보다 더 큰데, 군사적으로 열세이기 때문에 재래식이든 핵무기든 군비통제 협상에 나설 여지가 더 적다.

2. 냉전 1.0의 군사적 경쟁의 주무대는 유럽쪽 육군이었지만, 냉전 2.0의 그것은 동남중국해 등 해양의 해군이다. 해군은 육군보다 불안정하고, 특정 국가에 실존적 위협을 가하거나 전면전, 핵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은 적지만 제한전쟁의 위험성은 더 크다. 제한적인 해상전쟁도 지역과 세계 경제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3. 대만. 냉전 1.0 때의 분단된 베를린처럼 냉전 2.0 시대의 양안(대만)문제도 양극 대립의 불안정 요소다. 미중 양극의 지정학적 확장력과 무기 사용 능력으로 볼 때 그 위험성은 더 크다.

4. 우주와 사이버 영역이라는 새로운 전투영역의 등장이 우발적 충돌 등의 위험을 확대시킬 수 있다.

5. 미국과 중국의 상호의존이 오히려 충돌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역사가 존 루이스 개디스는 냉전 1.0의 장기간 안정성을 높여 준 중요한 요소로 미소 두 강대국 간의 상호의존성 결여를 들었다. 이는 그때와는 달리 경제적으로 서로 밀접히 얽혀 있는 상호의존적 미중 간이 오히려 잠재적 충돌 가능성이 더 클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소련과 미국이 완전히 별개의 영향권으로 존재했던 냉전 1.0 때와 달리 냉전 2.0의 미국과 중국은 교역과 투자를 통해 얽혀 있고 서로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 인구성장이 멈추고 오히려 줄어들기 시작한데다 최근 경제성장이 급격히 둔화되고 있는 중국에게는 미국과의 분리 및 대결체제가 득이 되지 않고 위험할 수 있다. 중국시장에 기대 온 미국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단독으로 통제할 수 없는 코로나 팬데믹 같은 대규모 자연재해나 기후위기도 대결보다는 협력 쪽을 택하게 할 가능성이 높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8일 저녁 성북구 중국대사관저에서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를 만나고 있다. 2023.6.8. 연합뉴스

대결과 협력, 양수겸장 전략

물론 경쟁자들은 두 가지 상황 모두를 상정한 대책을 강구할 것이다.

미국이 천문학적인 군사비를 계속 투입하면서 일본과 호주를 무장시키고,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결속을 강화하면서 이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까지 확장하려는 움직임은 중국과의 대결을 중심으로 한 신냉전의 강화 가능성을 염두에 둔 방책이다.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이었던 일본의 재무장뿐만 아니라 독일의 재무장도 이런 맥락에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말 이른바 안보관련 3문서 개정을 통해 ‘전수방위’ 개념을 버리고 ‘적기지 공격 능력’을 합법화한 자민당 기시다 후미오 정권의 일본은 미국의 이런 대중국 전략 또는 냉전 2.0 전략에 편승하면서 염원했던 군사대국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윤석열 정부는 미국의 그런 전략과 거기에 편승한 일본의 재무장에 적극 동조하고 있다.

중러 분리, 러시아 고립의 냉전 1.0 전략 재활용

그 한편으로 미국은 중국에 대한 접근정책을 동시에 펴고 있다. 앞서 살펴봤듯이 올해 들어 미국은 중국과의 대화를 적극 시도하고 있고 중국 역시 경계를 풀지 않으면서도 미국의 그런 움직임에 호응할 태세를 보이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중심에 놓고 생각할 때, 미국은 중국과 손을 잡고 러시아를 고립시켜야 할 절박한 이유가 있다. 이제까지 미국의 대중국 전략은 중국 봉쇄 위주로 짜여졌다. 그 결과 중국은 러시아와 손을 잡았고, 브릭스 등 ‘글로벌 사우스’ 나라들도 중러 진영으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앙숙이던 사우디 아라비아와 이란의 관계 정상화를 중국이 중재하고 미국과 사우디 사이가 껄끄러워진 데서도 보듯 중동지역에도 중러의 영향력이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고립 기미를 보이고 있는 쪽은 오히려 미국과 G7으로 대표되는 서방 부국들이다.

냉전 1.0 때 미국이 1970년대 초 ‘중소분쟁’ 틈을 활용해서 중국을 끌어들여 소련을 고립시킨 것이 소련과 냉전 붕괴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미국은 지금 다시 이 냉전 1.0 때의 전략을 재활용하고 있는 게 아닐까.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이기는 최선의 방략 중의 하나가 러시아 또는 블라디미르 푸틴을 고립시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국을 떼어내 중러 협력체제를 와해시켜야 한다. 1970년대 초 냉전 1.0 시대 리처드 닉슨 정부의 ‘핑퐁 외교’를 냉전 2.0 시대에 맞게 변용해서 재활용하는 것, 이것이 내년의 대선을 앞둔 바이든 정부의 정권 재창출을 위한 ‘비장의 카드’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역사가인 멜빈 레플러 버지니아대 교수는 지금의 중러 간 전략적 제휴는 일시적인 것이며, 두 나라의 상호 불신과 적대감은 뿌리깊은 것임을 지적했다. 이는 냉전이란 말의 창안자 조지 케난이 한 말이기도 하다. 케난은 냉전 초기에 소련 봉쇄를 주장했지만 전쟁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고, 그 뒤 100살이 넘도록 살면서 줄곧 소련(러시아)을 고립시키지 말고 협상 즉 외교를 통해 상호이익을 추구하는 길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사를 쓴 <포린 폴리시> 칼럼니스트 마이클 허시도 이에 동조하면서 탈선을 막는 ‘가드레일’과 정치적 수완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윤석열 정부는 어디로

이럴 경우 윤석열 정부에게 어떤 전략적 선택지가 있을까.

중국과의 대결을 상정한 전략에서, 윤석열 정부는 일본의 재무장과 경제적 부활을 중심에 둔 바이든 정부의 인도태평양 정책 및 나토 확장의 ‘행동대장’을 자처했다. 찬양도 받았다. 그러나 미국 ‘핑퐁 외교’의 냉전 2.0 버전에서는 그런 저돌적 ‘행동대장’ 역할은 위험하며, 환영받지 못할 수도 있다. 외톨이가 돼 비웃음을 살지도 모른다. 최근 중국이 유독 한국만 냉대하고 윽박지른다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는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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